이토록 황홀한 블랙 - 세속과 신성의 두 얼굴, 검은색에 대하여
존 하비 지음, 윤영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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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3 저승의 왕 하데스는 무자비하게 공정하다. 그는 대개 어둡거나 검은색을 띤다고 여겨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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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2
권김현영 엮음, 권김현영.루인.엄기호 외 지음 / 교양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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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알라디너에게 물었다. 페미니즘 이론에 입각한 이상적인 남성상은 무엇인가? 마초? 초식남? 나도 그도 아는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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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론에 입각한 ‘이상적 남성상‘이 과연 있을까요?

마립간 2017-06-29 13:58   좋아요 0 | URL
없겠죠.

syo 2017-06-2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적 남성상은 특정 이론이나 그 이론을 추구하는 집단이 합의해서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가치관의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일텐데, 어째서 페미니즘 이론이 단일한 이상적 남성상을 제시할거라(혹은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페미니스트건 아니건, 개인이 생각하는 이상적 남성상이 있거나 없거나 하는게 아닐는지요??

마립간 2017-06-29 14:08   좋아요 0 | URL
그러면, 질문을 바꿔 페미니스트가 비판하는 (나쁜) 남성상의 여집합 餘集合이 있을까요? 서로 모순되는 것, 또는 상보적인 것을 동시에 주장한다는 것이 저의 페미니즘에 대한 주된 비판입니다.

(혹시 페미니즘의 남성에 대한 비판이 개인적 가치관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생각지 않으시죠.)

syo 2017-06-29 14:14   좋아요 0 | URL
제가 드린 말씀이랑 관련 없는, 제 관점에서는 이미 대답을 드린 질문을 하셨어요.

마립간님이 다시 하신 질문 속의 페미니스트가 어떤 페미니스트 개인이라면, 저는 그 페미니스트가 그리는 이상적 남성성도, 나쁜 남성상의 여집합도 모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말씀하신 페미니스트가 복수의 페미니스트로 이루어진 군집을 뜻하는거라면 그 군집이 이상적 남성상을 정의할 방법도 의사도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거구요. 제가 드린 질문은 왜 단체의 것이 될 수 없는 관념을 단체의 것으로 생각하시냐는 거죠. 바꾸신 질문 속의 페미니스트가 여전히 집단을 뜻하는 거라면, 우리의 대화는 지금 겉돌고 있는것 같습니다.

모순되고 상보적인 것을 동시에 주장하는 면이 있다는 마립간님의 말씀에 확실히 그렇지 않다고 대응할만한 지식이 저한테는 없기 때문에, 그 주된 비판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할 부분이 아니라 그냥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구나- 하는 정도밖에는 도리가 없지만, 이 글이 그 말씀을 하시는 건줄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마립간님, 오랜만입니다! ㅎㅎ 또 제가 인사도 없이 따지고 들었네요. 이 버릇 아직 못고쳤어요. 죄송합니다.

마립간 2017-06-29 14:43   좋아요 0 | URL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댓글을 주고 받는 것은 의견 소통과 조율입니다. 그리고 간단한 문장으로 행간의 의미를 추정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요.

제가 언급한 (단평의 페미니즘, 댓글의) 페미니스트는 (집단을 의미하는) 보통 명사입니다. 이 책은 여러 사람이 글쓴이로 참여한 책이기도 하지만, 위의 제 단평은 제가 읽은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그 군집이 이상적 남성상을 정의할 방법(도, 의사도) 없다‘면 따라서 여집합이 공집합이라면 비판이 무의미한 것 아닌가요? 모든 남성은 어떤 페미니스트에게 반드시 비판받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syo 2017-06-29 15:09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이 그리는 벤다이어그램을 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과 마립간님이 비판하시는 페미니즘의 형태가 다른 것이 이유인것 같습니다. 마립간님이 읽으신 많은 페미니즘 관련 도서의 저자들이 하나의 관점으로 무장하여 책을 쓰진 않습니다.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도 많은 충돌이 있었고 있음을 마립간님도 잘 아실겁니다. 정희진의 관점에 따르면 이런 점에서 버틀러가 틀렸고 버틀러의 관점에 따르면 저런 점에서 벨 훅스가 틀렸다고 해서 ˝페미니즘˝의 모순이라고 말씀하시기에는 페미니즘이 다소 포괄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집합을 가지고 말씀을 하시겠다면 전 이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집합 첫시간에 배웁니다. ˝키가 작은 사람의 집합˝은 기준이 불명확하여 집합이 될 수 없다구요. 그건 그 집합이 공집합이 아니라 집합의 정의에 어긋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집합도 집합이니까요. 페미니스트 전체를 놓고 보면 나쁜 남자 혹은 이상적 남자를 책정하는 기준이 없거나 각자 달라서 ˝이상적 남성상˝을 모은 집합 자체가 정의될 수 없을수도 있지만, 그건 집합의 정의가 가진 한계(?)지 비판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개인의 입장이라면 나쁜 남자부터 시작해서 이상적 남성상에 관해 제가 지닌 관념을 집합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어떤 페미니스트가 지닌 집합과 교집합을 이루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반드시 제가 가진 집합이 마립간님이 상정하신 페미니스트 집합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리고 제 집합의 기준에서는 비판 받지 않아도 되는 남성이 수두룩합니다. 다른 페미니스트들도 그럴겁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들 다르고, 기준에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보면 이론적으로는 마립간님 말씀대로 거의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이 비판하지 않는 어떤 남성이 되게 사소하거나 설득력없는 이유로 소수의 어떤 페미니스트에게 비판받는 일이 발생할 확률이 0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그런 사람이라면, 비난하지 않는 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이 힘이 되어 줄거라고 믿어봅니다. 너무 없어서 그들도 막 찾고 있습니다. 이게 제 순진한 생각일까요?

마립간 2017-06-29 15:20   좋아요 0 | URL
저는 개인적 페미니스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에 생긴다면 제 딸이 직업적인 페미니스트F가 되었을 상황일 것입니다.

제가 정희진를 자주 언급한 것은 정희진의 의견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언급한 정희진 씨는 개인이기보다 제가 경험한 페미니즘의 mean, mode, median에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제 가치관은 벨 훅스와 거의 일치합니다. (그래서 몇 여성 알라디너는 저를 페미니스트로 보기도 합니다.)

기준이 불명확하여 집합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제가 수용한다면 페미니즘에서 비판하는 (나쁜) 남성상은 페미니스트의 개인의 의견이기 때문에 ‘집합‘화될 수 없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즉 집합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나쁜 남자‘의 객관성이나 보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syo 2017-06-29 15:40   좋아요 0 | URL
집합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쓰시는지에 따라 다른것 같습니다. 엄밀한 수학적 정의에 따라 ˝페미니즘˝이 하나의 나쁜 남성상을 선언하고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따라갈 수는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생각하는 나쁜 남성상들이 집합˝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집합이라는 말에 수학적 권위와 엄밀성을 싣는데 치중하면, 실제로는 딱딱 끊어서 판단할 수 없는 많은 기준들이 뭉텅 사상될 수 있음을 염려합니다. 실제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동시에 지적하는 나쁜 남성상이 존재하니까요. 집합이라는 용어는 오로지 수학적으로 엄밀하게만 사용되지 않잖아요. 나쁜 남자의 객관성 보편성은 어떻게 쓰신 용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객관적으로 나쁜놈, 이라는 말은 제 기준에서는 남자 여자 떠나서 희한한 말 같습니다.

덧붙여 계속 말씀드립니다. 제가 여기 댓글을 통해 계속 남긴 말들은 마립간님이 관심이 없으신 제 ‘개인적 페미니즘‘이고, 제 의견을 ˝어떤 페미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밝히시는 것은 좋지만, 마립간님이 가지고 계신 페미니즘이라는 집합체의 자체 모순을 비판하기 위한 방식으로 제 의견을 쓰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의견은 그럴만한 권위가 없을 뿐더러,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과 상반되는 일이라서 만약 그런일이 벌어지면 저는 제 의도와 정 반대되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셈이니까요.

마립간님과의 토론은 제게는 너무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입니다..... 분명 여기서 한번만 더 댓글을 다시면 저는 눈에띄게 아무말이나 하게 될 것 같습니다 ㅎㅎㅎ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마립간님께 궁금한 부분은 대답을 들은 것 같고, 마립간님께서도 제 개인적 페미니즘에는 관심이 없으실테니까요^^

마립간 2017-06-29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in.co.kr/maripkahn/8983393

압정 2017-06-29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론에 입각한 이상적 인간상은 존재하지 않을까요?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인것은 아니지만 그를 전제해서 완전 경쟁시장이라는 시장을 논하는 것이 경제학에서 기준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처럼, 페미니즘에서 요구하는 인간상에서 멀 수록 페미니즘은 나쁜 것으로 보겠죠. 실제로 그런 인간이 있는지는 논외로 하구요. 독점시장이 실제로 장점을 가져다 주는 것을 제하고, 장점보다 폐해가 훨씬 많은 것을 비판하는것 처럼요. 마립간님은 정확한 용어 사용으로 의미의 운신의 폭을 좁혀 적확하게 도달 되길 바라시는 것 같은데, 오히려 참여자간의 합의되지 않은 정확성으로 두분의 대화가 겉도는 것 같네요. 저는 제 문장이 비유를 통해 의미의 폭을 넓혀 뉘앙스로 전달되길 바랍니다.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은 이론이고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여 비슷하게 생각해봤습니다만, 전 제가 아직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귀납적으로나 연역적으로 연구를 통해 이론이 성립된 페미니즘보다 개인적 경험에 치우친, 그것도 귀납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끝에 어떤 이론,법칙,공식 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립간 2017-06-29 19:11   좋아요 1 | URL
저는 페미니즘의 주장이 이율배반적(, 또는 모순적 또는 상보적인 것을 동시에) 주장하기에 (scientic defintion이 없는 사회 용어로서의) 대개 사람이 동의하는 ‘이상적 인간(남성)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상보적이라고 해도, 경험에 의한 귀납적 그리고 그 끝에 이르러 연역을 통한 이론에 최적점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불확정 원리의 플랑크 상수와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런 최적점을 찾고자 합니다.

적확한 용어 ; 제가 전문가가 아니면서 댓글 대화로 인해 번번히 부딪히는 한계입니다. 댓글 대화를 통해 격차를 좁히려하지만, 제가 부족한 탓으로 댓글 대화를 끝까지 유지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알루미늄오이 2017-07-18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지만 마립간님께서는 대단히 견고한 인식틀을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란에서 이뤄진 심도있는 토론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마립간님께서 충분히 합리적인 부분을 짚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립간님의 말씀에서 다소간의 불편함을 느껴 몇 자 끄적여 봅니다.
마립간님께선 냉소적인 어투로 여성주의 이론에 입각한 이상적 남성성의 부재를 거론하시며 별 2개를 부여하셨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마립간님께선 기본적으로 여성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제가 마립간님의 말씀에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아마도 제가 여성주의라는 사상의 존재가 가지고 있는 당위성 때문에 여성주의라는 틀 안의 사소한 논전은 존재할지라도 여성주의의 당위나 그 자체에 대한 논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여성주의에 대한 마립간님의 주된 비판점은 여성주의에 명확한 범주의 설정이 부재한다는 사실일 거라 추측하는데 저는 어째서 그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인식한 여성주의는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모든 사상의 총체입니다. 그러므로 남성성에 대해서는 각각의 여성주의자마다 수없이 많은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명확한 범주의 설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는 않는다 생각합니다. 또한 마립간님께서는 페미니즘이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것을 주장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마립간님께선 기본적으로 모든 이론과 현상등을 지나치게 교조화하여 바라보신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마립간님께서 설정하신 기준에서 어긋나면 그 이론을 비정합적인 것으로 간주하신다고 보는데 저는 여성주의 문제에 그러한 접근은 유효하지 않다고 봅니다. 여성주의는 시도와 저항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러한 시도와 저항은 그 움직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프랑스 혁명이란 대사건은 그 자체에 수많은 모순을 노정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의 전진을 이끈 사건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성주의도 동일한 시좌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성주의도 여타 많은 사상들과 같이 여러 자기모순을 내포하겠지만 저는 그러한 사실이 여성주의를 모순덩어리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앎이지만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마립간 2017-07-19 11:01   좋아요 0 | URL
THEAD 님, 우선 댓글 남겨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댓글 중간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라는 글이 보이는데, 우선 간단하게 답변을 드리고 저의 추가적인 의견을 원하신다면 다시 글을 페이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상징적으로 첫 논점과 마지막 논점만 언급하겠습니다.

교조화 ; 어떤 의미로 ‘교조화’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알라딘에서 정형 steretype화 성향이 있음을 알고 있고, 다른 분으로부터 지적도 이미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저 자신을 노출시키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그 정형이 전부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다른 의미로 ‘교조화’를 의미한다면, 저는 오히려 ‘페미니즘’이 교조화돠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표현으로는 ‘페미니즘의 종교화’입니다. 그 어떤 비판과 지적도 허락하지 않더군요. THEAD 님의 ‘여성주의도 여타 많은 사상들과 같이 여러 자기모순을 내포하겠지만’라는 것을 제가 지적했다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신경질적인 감정적 반응이 제가 경험한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전진 ; THEAD 님이나 샤르트르처럼 인류가 진보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레비스트로스처럼 진보하지 않는다고 의견(과 남녀불평등의 형식적 개선과 실질적 답보라는 여성들의 의견)도 있고, 저처럼 우왕좌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여성의 참정권과 교육권은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그 외에 (시도와 저항, 그 움직임 자체에 의미를 넘어서는) 결과로서의 의미 있는 진보가 있었나 싶습니다.

마립간 2017-07-19 11:03   좋아요 0 | URL
참고로, 정희진 씨의 의견에 동의하는 제 의견을 ≪낯선 시선≫ 독후감 관련 글에 섰습니다. 읽어 보시면 제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루미늄오이 2017-07-20 00:21   좋아요 0 | URL
지적하신대로 저조차도 한국 여성주의가 자칫하면 교조주의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겠다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꾸준히 읽고 있는 소위 진보지(誌)나 언론(창비, 문학과 사회, 한겨레 etc)은 페미니즘의 모든 측면은 정합한다라는 전제하에 관련된 글들을 풀어놓고 있는데 이는 여성주의에 대한 합리적인 반론이나 회의마저 차단해버리는 건강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여성주의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된 것 같다는 회의까지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이론은 변증법적 구조로 발전해나가고 진보해나가는 것인데 현재 여성주의 진영에선 그런 변화마저도 차단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마립간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유사하게-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얼치기 여성주의자인 저도 안타까울 따름인 상황인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의 교조화‘라는 문제가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전체에 관한 냉소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시대의 조류이고 당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립간님께서 여성주의 세력의 모순이나 여러 전횡(?)들에 관해 조금은 관대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득권에 저항하는 세력의 움직임은 언제나 껄끄럽고 거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의 한 부분으로 봐 주실 수는 없을까요? 메갈리아도 워마드도 그들 혹은 우리들 나름의 시도이고 과정이라고 바라봐주시라 부탁하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 없는 요구일까요? 그들의 시도를 냉소보다는 따뜻한 회의로 맞아주셨으면 합니다.

‘전진‘에 관한 마립간님의 코멘트를 읽자니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라 말했던 랑케가 떠오릅니다. 한 때 랑케를 열렬히 추종했던 저로서는 마립간님께서 서 계신 그곳이 어디인지 어림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역사란 현상인가 당위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지금까지 고민해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답이 있을지는 더 오랜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야기를 나누는 이 과정이 즐겁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마립간 2017-07-20 07:52   좋아요 0 | URL
냉소 ; 저의 냉소주의는 페미니즘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인간 자체에 적용됩니다. 제가 선택했다가 보다 그렇게 태어났(거나 제게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환경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관대 ; 저는 이론과 실천을 구분하는데, 제 이 서재글 비판은 이론에 관한 것입니다. 운동가로서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에 관해서는 이론 측면만큼 비판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잘 모르기도 하고요.)

메갈리안, 워마드 ; 이 두 집단에 관해서 ‘일간 베스트‘와 같은 평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 집단에 잘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차이에 관해 명확하게 저를 납득시키면 생각을 바꿀 용의도 있지만, 제가 들은 설득, 설명에서는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제 글에서 THEAD 님께서 배우는 것이 있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를 가르치기 위해 서재를 운용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배우기 위해 서재를 운용합니다. 댓글 대화가 즐거우셨다니, 이것도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제 개인적 경험은 ‘페미니즘‘에 관한 알라딘의 댓글 대화가 끝까지 즐겁게 끝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알루미늄오이 2017-07-20 17:43   좋아요 1 | URL
대화를 나누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라 생각합니다.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것 자체, 배움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환류로서 양자 모두에게 작용한다고 믿습니다. 마립간님과의 대화가 즐거웠던 이유는 이런 대화의 기회가 저에게 좀처럼 없었기도 했거니와 대화에 임하시는 마립간님의 태도가 저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 진중하시고 크게 흥분하거나 도취하는 것을 경계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같이 잘 흥분하는 사람에게는 참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사실입니다.
나름 여성주의자를 자처하지만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려 노력합니다. 마립간님께서도 말씀하셨듯 이론과 실천은 일견 동일한 층위의 것으로 비춰지지만 실상은 상당히 다른 층위의 것이지요. 이론적으로 정합한다하여 그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따르라고 명하는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물줄기가 나무판자를 뚫듯 꾸준히 현실과 살을 맞대며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메갈리아,워마드를 일베와 동일히 여기신다는 견해를 다시 한번 피력하신 점은 조금 유감입니다. 내저적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그렇게 이해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만..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서면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의 한계를 절실히 느낍니다. 만나 뵐 수 있다면 그 주제에 대해 보다 깊게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여성주의는 인류 지성계가 풀어나가야할 거대한 과제인 듯합니다.

마립간 2017-07-20 19:22   좋아요 0 | URL
댓글 대화가 잘 마무리되어 THEAD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서면으로 주고 받는 대화에 한계가 있지만, 대면 대화에서 흥분하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말을 뱉는 경우를 생각하면 나름 장점도 있습니다.

댓글에 ‘내저적 관점‘이라고 쓰신 것 ‘내재적 관점‘의 오타인가요?

알루미늄오이 2017-07-20 21:30   좋아요 0 | URL
대화가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어서 기쁩니다. 요 며칠 동안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저 또한 감사드립니다.

(평소에 오타에 엄정한 편인데 후다닥 적다보니 오류를 범했네요. ‘내재적 관점‘의 오타입니다.)
 
상호작용 의례 - 대면 행동에 관한 에세이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38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 아카넷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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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성은 성스러운 것이다. 누구도 감히 범하거나 넘볼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위대한 선은 다른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는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이다.” (뒤르켐) ; 덧붙여, 자연 自然은 성스러운 것이다. 동시에 가장 위대한 선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다. (마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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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6-1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저입니다, 명저 ! ㅎㅎ 어빙 고프먼이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는 책이 별로 없습니다..

마립간 2017-06-19 04:11   좋아요 0 | URL
곰곰발 님 서재에서 보고 읽게 된 책입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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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 웍스의 짧은 노래에 담긴 이야기가 다 큰 어른에다 눈물도 헤프지 않은 나를 이토록 빨리 녹여 완전히 무장 해제시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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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2-2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59 남자아이와 여자아이/p64 젠더에 깊은 생물학적 뿌리가 있다는 생각은 요즘 누구나 수긍하지만 점잖은 자리에서 입 밖에 내기를 꺼린다.
 
끌림의 과학 - 사랑, 섹스, 모든 끌림에 대한 과학적 접근
래리 영.브라이언 알렉산더 지음. 권예리 옮김 / 케미스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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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진실은 불편했다./p26 일부 대학의 여성학과에서는 머니가 주장한 개념이 반영된 ‘성의 사회적 형성‘과 같은 상투적 표현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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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2-21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