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8일 <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정지환 저/인물과 사상사)에 대한 마태우스님의 리뷰 ‘우리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추천을 해 주셨고, 저는 오른쪽 왼쪽은 상대적이라는 뜻으로 댓글을 올렸고 마냐님은 좌우는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건강한 보수란게 어떤건지 구경 좀 해봤음 좋겠슴다....’라는 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논제 13) 건강한 보수란 무엇인가.


* 이 논제는 마냐님에게 직접 여쭤 볼 수도 있겠지만 여러 알라디너의 생각을 묻습니다.


주의) 건강한 정치상이 아니며 건강한 진보(좌)와 비교되는 건강한 보수(우)를 말합니다. 가능하면 비교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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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현재 재판이 재판관 검사 변호사로 아주 공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훌륭한 변호를 할 수 있는 변호사는 수임료가 비싸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있는 사람들을 비교하면 공평하지 못하다고 했더니, 친구가 ‘그럼 대안이 있냐?’ 물었고, 저는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혹시 로버트 드니로 Robert De Niro와 닉 놀테 Nick Nolte 주연의 영화 케이프 피어 Cape Fear를 보셨나요. 이 영화에서는 성폭행범인 로버트 드니로를 닉 놀테의 변호사 변호를 받는데, 피해자가 창녀인 사실을 닉 놀테가 고의로 변호에서 누락합니다. 로버트 드니로가 너무 나쁜 범죄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드니로는 닉 놀테에게 자기가 나쁜 범죄자인줄 자기도 안다. 그렇지만 너는 나의 변호사였다. 최선을 다해 변호를 했어야 하지 않았나 반문합니다.


 레스리 닐슨 Leslie Nielsen의 주연 '롱플이 어큐즈 Wrongfully Accsed' 영화를 보면 잠깐 변호사를 비난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변호사는 돈만 알고 변호인이 어떤 사람이던 간에 감형, 무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대사가 있습니다.


 * 신인 변호사 마굿간씨는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언변으로 많은 재판에서 승소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찾아와 자기의 아들에 변호를 부탁하였습니다. 그 부인은 매우 착하였고 돈도 많이 지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의 행실을 알고 보니 아들은 둘도 없는 망나니였습니다. 절도, 강도, 성폭행, 범죄집단 구성 등. 그런데 그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연민으로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보석保釋, 감형, 석방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성정만 비교해 놓고 보면 친모자 사이 같지 않습니다. 일단 사건(성폭행으로 하면 어떨까)을 맡겠다고 했지만 탐탁치가 않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이번만 마굿간 변호사님이 최선을 다해 변호를 해 주면 이후에 새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다짐을 하십니다. 마침 상대편 검사도 어리숙하여 피고인의 잘못을 눈감아 주고 잘만 변호한다면 보석은 물론이고 무죄까지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논제 12) 변호사 마굿간은 최선을 다해 이 어머니의 아들, 피고를 위해 변호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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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12-19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월 7일 부터 시작한 이벤트같지 않은 이것이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지루해집니다. 만명이 넘지 않아도 마감일은 올해 내로 제한하겠습니다. 글은 그 이후에 올려 주셔도 되나 3분에게 책을 보내야 되니까요. 검은비님, 호련님, 강쥐님, 준비가 아직 안 되셨나요. 내일 부터 chika님을 비롯한 논제에 대한 저의 의견이 나갑니다. 혹시 저의 의견을 읽고 글을 써 주셔도 좋습니다.

호랑녀 2005-12-20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관심있는 주제에요. 정확하게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요.
물론 책 추천은... 몰라서 못해유 ㅠㅠ
제가 관심있는 건 이거에요.
변호사는 정의를 위해 일하는가,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일하는가 하는 거요.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일하기를 기대하지만 사실은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진실을 애써 외면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요. 의뢰인의 승소가 변호사의 정의가 아닌가 생각도 되구요.

조선인 2005-12-20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벌최소주의의 원칙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기존 행실이 아무리 나빴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변호를 내가 등한시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 않나요?

코마개 2005-12-2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 여기 있습니다. 분발 하겠습니다.
사람은 그 사람이 무슨 악독한 범죄를 저질렀을 지라도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거든요...
그리고 케이프 피어, 그 영화의 핵심은 "보호할 필요가 있는 정조"라는 법논리가 주된 것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음음...

마립간 2005-12-20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영화 <케이프 피어>의 주제는 '보호할 필요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법논리에 반대하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코마개 2005-12-2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보호할 필요가 있는 정조" 라는 언설이 핵심이었다는 의미 입니다.

마립간 2014-05-26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7440
 

* 어제 이벤트 글을 올려했는데, 하도 어의가 없는 일을 겪고 나니, 허탈하여 이 글을 올리는 것을 계속해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가을산님이 아무 글도 안 올려주시다가 저의 핵심을 파고드는 댓글을 읽고 나니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한데.

 이벤트에 글을 올려주신 3분이 계시고 2분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마무리는 해야죠.


* 황우석 박사님 사건이 있은 다음날 - (공개적인 글에서 존칭을 빼고 쓴 적이 없었는데, 박사님이라는 존칭을 붙이가...) 사실 어제가 아니고 그제 알아야 했던 것을 저는 어제 아침에 알게 된 고로.


 의사에게 인술을 베풀라고 하지만 의사 집단은 보통 사람의 집단입니다. 정말 좋은 의사도 있고, 나쁜 의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는 보통 의사입니다. 의사 중에는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도 허위 부당 의료 보험 청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약 분쟁 때 언론에서는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난하지만 밥그릇에 무관심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언론이 의사들의 밥그릇을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그러나 의사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윤리는 환자의 생명입니다. 혹자는 의약분업 때 언론에 보도된 암환자 등의 치료가 미루어진 것을 반례로 들며 반박하실지 모르겠으나 참의료 진료단을 비롯하여 환자에 대한 진료는 하였고, 진료 수준은 환자들에게 심리적 부담감과 번거로움을 주었을지 모르나 충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잠시 있던 병원에서의 예로 들면 파업을 하였다고 하여 소아과 외래는 닫았는데, 응급실에 소아과와 똑 같이 책상, 간호사를 배치하고 오는 환자 모두를 진료하였고, 수술 환자도 예정된 스케줄을 변경하였지만 파업이 없는 현재도 수술실을 포함한 시술실, 의사, 환자의 사정에 따라 시술 시기는 변동됩니다. 이야기 딴 곳으로 흘렀네요. 의사의 기본은 환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의사라고 할 수 없지요.


 학자도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이 집단의 특징은 학문적 진실성입니다. 교수님이 약물 실험을 위해 학생이나 레지던트에게 약물을 먹이는 실험을 자발적 지원자라는 명목으로 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지금에는 그 때 약물의 부작용을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지만 당시 당사자에게는 곤욕이었지요. 이런 비윤리(?!)인 일이 있지만 그 결과(Result)를 보고하는 논문에서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물론 논평(Conclusion)에서는 왜곡이 많습니다. 따라서 전문가는 논문에서 서론(Introduction, Background/Aims), 과정(Methods), 결과, 논평을 모두 세심하게 검토합니다. 그러므로 결과(Result)를 허위로 기재하지 않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그것은 의사의 기본이 환자인 것과 같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환자가 죽었을 때 의사가 ‘그래 잘 죽었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학자의 기본은 진리에 접근하는 것에 있어서의 정직입니다. 잘못된 논문은 매우 많습니다. 기생충을 암의 원인이라도 생각하여 노벨상이 주어진 적도 있고, 70년에는 김칫국물인가, 식초인가가 연탄가스(일산화 탄소) 중독의 치료로 발표된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학문의 오류이지 부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PD 수첩에게 황색 저널리즘으로 비난했던 것을 사과했듯이 황우석 박사님에게 다시 사과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정황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네요.


* 이미 제가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주제이고, MBC 뉴스 앵커 최일구씨의 진행에서 논란되었던 주제입니다.


논제 10) 뉴스는 사실만 전달해야 하는가, 아니면 전달자의 의견/논평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허용이 된다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 전문가

 직업란 항목에 전문가도 있고 변호사와 같은 직업이 그 예로 들지만 전문가 집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란 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비전문가와 다르게 깊고 폭 넓습니다. 그래서 부여되는 것이 자율성과 결정권입니다. 그러나 그 분야에 파생된 부분에 관해서 비전문가는 자율성의 유보를 전문가는 자율성의 유지를 주장합니다. 글이 어려워서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수학과 교수님과 국문학과 교수님, 국사학과 교수님 세분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당연히 수학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국문학과나 국사학과 교수님은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수학과 교수님은 수학의 전문가이시니까요. 국문학 이야기나 국사학 이야기 때도 마찬가지로 각각 교수님이 이야기할 때 다른 교수님은 전문성을 인정하셨지요.

 그런데 이야기가 강의 방법으로 옮겨갔습니다. 국문학 교수님이나 국사학 강의는 학생들이 재미있어 하는데, 수학과 교수님의 강의는 학생들이 지루하게 생각합니다. 수학과 교수님은 항변을 하십니다. ‘어떻게 국문학이나 역사 강의와 수학의 강의를 비교할 수 있는가? 수학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논제 11) 전문가의 자율성은 어디까지 인정되는가? 예를 들면 수학자의 수학 강의 방법은 수학자 이외에 간섭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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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대의 변화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06-05 11:46 
     제거 어렸을 때 서울우유를 가끔 마셨는데, 그 당시에 포장은 원통형의 유리병으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서주우유에서 carton pak이고 불리는 종이로 만든 포장을 시작했습니다. 임성훈와 최미나씨가 광고 모델이었죠. 우유 종이 포장이 나온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우유의 포장이 종이 포장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우유가 종이 포장으로 바뀌었을 때 충격은 종이 포장이 처음 나왔을 때 이상이었습니다.  
 
 
 

* 마구간이 친구 외양간을 만나서 흥분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마구간 : “이봐! 외양간 이 기사 좀 봐.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중국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다는데.”

 외양간 : “뭐라고 너 농담하냐? 나비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고? 나비가 날갯짓으로 태풍을 일으키면 내가 부채질하면 지구축이 흔들리겠다.”

 마구간 : “그게 아니고 초기 민감도가 시간이 흐르면...”

 외양간 : “초기던 조기던, 나비던 나방이던 간에 내기를 하자. 내가 부채질, 아니 선풍기를 틀테니 태풍이 생기는지 안 생기는지. 좋지, 좋지.”

 마구간 : “그게 아닌데... ㅜ.ㅜ”


* 국가 보안법 폐지에 관한 라디오 방송


 어느 사람 : “만약 국가 보안법이 폐지된다면 시청 앞 광장에서 인공기를 흔들고 북한으로 사회주의로의 통일을 외쳐도 처벌할 법 규정이 없습니다. ......”


 진** 교수 : “아니 당신은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시청 앞에서 인공기를 흔들며 사회주의 통일을 외쳤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망하고 사회주의가 될 만큼 우리나라가 그렇게 허약하다고 보십니까. 그렇게도 자신이 없으십니까.  ......”


* 뉴 라이트 운동에 관한 라디오 방송


 어느 사람 : “집권 세력이 어쩌고, 사회 좌편향이 저쩌고...”

서#### 김## 편집위원 : “뉴 라이트운동은 보수 기득권 세력의 결집과 과거 군사독재와 같은 시대로의 회귀를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


 마립간의 생각에는 진**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정도의 사회 건강성이 있다면 뉴라이트 운동이 뭔지 모르지만 군사독재로 회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논제 9) 사회 현상에 있어서의 초기 민감성 어디까지 허락할 것인가?


* 한 가족이 강가에 놀러갔는데, 아이가 위험하게 강가 너무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애야 잘못하다가는 물에 빠지겠다. 가까이 가지마라.” 아이가 하는 말, “어머니, 저는 어린 아이가 아니에요. 강물까지는 ## m나 남아 있잖아요.”


 아이가 몇 살이고 강물까지 몇 m가 남았다면 어머니는 안심할 수 있을까?

* 이스라엘 사람 또는 유대인이라면 독일 나찌즘에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우리나라 카페에서 나찌즘을 이용한 인테리어를 하였다가 항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논제 8-3) 나찌즘은 다양성으로 포용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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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와 사형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문제와 닿아있다.
하지만 현실은...

낙태는 과연 여성에 의해 발전했는가?
농업에 의존하던 시대에는 인간의 노동력이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었고, 다산은 신의 축복이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의 운명은 전적으로 남성 가장에 의존해야 했다.
남성의 부양 능력 이상으로 자녀를 임신하였을 경우 공공연히 낙태가 종용되었고,
아직 충분한 경제 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미혼의 남녀는
결혼 또는 출산을 지연하는 수단으로 낙태를 감행하게 되었다.
즉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기 보다 제한해야 하는 사회의 특성이 낙태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끔찍하게도 우리나라의 많은 기혼여성이 낙태 역시 '피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

물론 사회가 풍요로워질수록 산아 제한의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나,
여전히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인간 종족이 무제한적으로 번식하는 것은
가이아의 균형을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피임 기술의 발달로 비폭력적인 산아 제한만 존재하는 세상이다.
다만 여전히 성폭력 피해여성의 낙태는 '장려'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낙태를 생명 윤리와 결부짓기 보다는,
여성의 몸 결정권과 결부짓는 논리가 필요하다. -.-;;

한편 형법이 응보주의에 기초하는 한 사형제도는 옹호될 가능성이 있다.
탈리오의 법칙을 버리고, 일반적으로 처벌을 최소화한다 하더라도,
공공의 안전에 위협 되는 살인죄(연쇄살인, 무차별 살인, 전범)에 대한 처벌이
과연 최소화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나로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형제를 반대하지만 그 이유는 대단히 잔인하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기 때문인데, 사형은 상황 종료가 될 뿐이며,
범죄자가 양심의 고통을 받도록 끊임없이 동기 부여를 주는 무기징역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형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가령 전두환과 노태우 일가의 재산을 몰수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평생 부역형을 살면서
매년 5월 18일이면 광주에서 하루종일 일보삼배를 시켰으면 좋겠다. -.-;;

* No image는 심영희 교수의 '여성의 사회참여와 성폭력'입니다.

* 전반적으로 반말을 써서 미안해요. 생각을 다듬느라 어체를 다듬지 못했어요.

* 이따 시간이 나면 다시 손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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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12-1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좋은 책을 많이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이 문제일까'의 감상은 천천히 글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