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위의 명제를 이야기하였는지 또는 하지 않았는지 그 자체가 논란거리이나 현재 시점에서 위 명제의 정당성을 ‘예 또는 아니오.’라고 쉽게 단정 짓지 못하는 것은 현 사회에서 생각해 볼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위 이야기를 설령 소크라테스가 하였다 하더라도 다음 네가지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그는 영혼을 믿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죽음이 인간적 감정의 두려움 외에 이성에 의한 위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그는 귀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형집행 전에 탈출을 하였어도 귀족의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면 사형 집행에 순응하는 것이 탈출하여 평민, 노예 생활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셋째, 그 노령이었습니다.

 넷째, 현재 그가 항변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했었습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악법도 법이다.’는 현대인 생각하거나 당시의 평민/노예가 생각했던 ‘악법도 법이다.’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어느 방송에서 한 법안(4대 개혁 법안중의 하나, 아마 국가 보안법을 추정됨.)을 국회 소위원회에서 상의하자는 것입니다. ‘왜 법안을 의논하는 국회에서 소위원회 상정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냐? 일단 상정을 해 놓고 의논하면서 수정을 하든지 말든지 하자.’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한편 얼마 후 ‘쌀 개방 법안’ 비준의 경우는 민주노동당이 소위원회 상정조차 못하게 물리적으로 막았습니다. 논리적으로 동일하게 반대 방향으로 행동했습니다.

 민주 노동당의 행위에 대한 해석은 법이나 절차는 중요하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선善(악법의 惡에 반대되는)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판단이 어려운 것이 ‘선악이 무엇이냐?’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존 롤스는 절차주의자인데, 선악이 자의적 또는 상황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법이 될 수 있는)과정, 절차를 중요시 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피상적으로 알고만 있던 것인데 책을 더 읽어 보겠습니다.)


 강쥐님, 좋은 글과 책을 소개하신 것 감사합니다. 곱씹어 보면서 새로운 시야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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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12-2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대학 2학년때 존 롤스의 정의론이 저의 주제 발표 과제 였는데, 그 때 쥐뿔도 모르면서 말하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이번에 새로 잘 번역된 책이 나왔던데 저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은 매우 익숙하게 듣는 말이다.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했다는 말인데, 과연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다.
어쩌면 무덤에서 나는 아니라고 절규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선 악법도 법이라는 언설이 나올때 마다 혐의를 받고 있는 법실증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법실증주의 관점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가 참이 될 수 있는지.


권영성 교수의 헌법학원론을 보면 "사회나 개인에 대하여 국가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입장(법실증주의)"이라고 말하고 있다.(2002년, 382 - 최근 책을 안사서...죄송)
언론에 가끔씩 법실증주의가 거론될 때에도 "법률의 문자적 해석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이론"정도로 설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법실증주의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기에 적절치 않고 역량도 안되므로 간단히 설명하겠다.
법실증주의는 19세기 근대국가가 성립되려는 움직임이 있고, 시민의 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시기에 태동하였다. 법실증주의가 가장 꽃피운 독일에서는 법실증주의가 개념법학, 일반법학, 순수법학으로 발전한다.
거칠게 말하면 법실증주의는 "법관은 법률에 완전히 기속된다. 법체계가 흠결이 없으며, 사안이 주어지면 그 체계로부터 논리적으로 올바른 답이 도출된다고 할 때, 법관의 자유재량의 여지는 사라지게 된다. 법관은 다른 어떤 윤리적 관점이나 사회현실에 대한 고려없이, 오로지 법체계만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올바른 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관의 임무는 다만 실정법규를 해석하는 것이지 어떤 윤리적 사명을 실현하거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된다" (법철학, 강경선·정태욱 공저, 22쪽)

그렇다. 저 문구 그대로 보면 이렇게 불합리한 이론은 없어보인다. 사회적 맥락이 반영되지 않은 법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제반 사정과 사회현실이 고려 되어야만 올바른 법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저러한 이론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도 이론의 해석에 반영하여야 함이 옳다. 이 시기는 프랑스 혁명으로 시민의 권리에 대한 주장이 터져 나오던 시기였고,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의 철권통치로 개인의 인권이란 무시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법률가에 대한 시민적 불신의 반영으로 "있는 법을 그대로 적용하라"는 "법의 지배"정신의 발로인 것이다.
"법이 정치적 고려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흔들리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융통성이 있을것 같지만, 종국에 가서는 질서의 근본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법관이 법률에 종속하지 않고 개인적인 판단을 앞세우게 되면 이 또한 원칙의 확보에 어려움을 낳게 되고, 결국 자의적인 법질서를 결과할 수 있다.....법은 법관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의 총의, 즉 일반의사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법관의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바로 그 인민의 총의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위의 책, 31쪽)

따라서 역사적 맥락에서의 법실증주의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총의로서의 법을 법률가의 정치적 해석을 배제하고 있는 거라도 잘 적용해라"라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법실증주의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는 합리화 되지 않는다.

두번째, 소크라테스가 그랬단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 말이 맞다고 누가 정당성을 부여했는가.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의 이름이 바로 정당성의 근원이 될 수 없으며, 이에 대해서는 다른 훌륭한 저술이 있으므로 그것을 참조하면 되겠다.(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강정인, 문학과지성사)

세번째, 그렇다면 사회계약론이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원론적으로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권리와 의무를 계약한다.(실제 나는 계약한적 없다. 이에 대해서 롤스는 '동의할 법한 원칙'이라고 하여 가상적 합의를 상정한다) 그리고 대표를 선출하고(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하고, 하위법의 제정을 위탁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우리의 대표가 정한 법률에 구속될 것을 계약하였으므로, 이의 합법적 폐지가 없는 한 이를 준수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절차적 합법성이 결과의 정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존 롤스는 "헌법이 정의롭다고 해서 거기에 근거하여 제정된 법률의 정의로움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다수가 입법한 것 -그것이 일정한 한계를 넘지 않는 한-을 중수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물론 그렇다고 하여 다수가 제정한 것 자체를 정의롭다고 간주해야 할 책무나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법률을 제정할 권리가 그 결정이 올바르게 작성될 것이라는 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시민은 그 행위에 있어 민주적 권위의 판단에 복종하지만, 그는 자신의 파단마저 그것에 종속시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약 다수결에 의해 제정된 것이 부정의의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시민은 시민 불복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시민불복종론을 펴고 있다.(존 롤스, 시민불복종의 정당화, 위책에서 재인용)

즉, 사회계약이라는 절차적 정의가 그 결과 도출된 법률의 내용적 정의를 보장하지는 못하며, 그럴 경우 시민은 일정한 경우 불복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법은 언제나 불복종의 대상인가?
이에 앞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가 주로 언제 사용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명제는 어떠한 정권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뭇 다른 내용을 가진다.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정권이 사용하게 되면 준법의 강조로 사용되지만, 정당성을 결여한 정권이 사용하게 되면 정권에 대한 굴종을 의미하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저 명제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너무도 자명하다.(나만 자명한가?)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역사적 맥락만을 가지고 당 명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원화 사회라고 불리는 현사회에서 어떤게 악법인가는 100인 100색의 주장이 가능하며, 악법에는 무조건적 불복종이 가능하다면 정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요건은 세가지 정도로 생각된다.

첫번째는 법에 심대한 부정의가 있어야 한다.
두번째, 정당한 절차를 모두 거쳤어야 한다. 그리고 정당한 시정의 절차가 존재하여야 한다.
세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 시정이 의도적으로 방치, 거부 되고 있어야 한다.

우선 불복종하고자 하는 법에 심대한 부정의가 있어야 한다. 심대한 부정의가 무엇이냐의 논의는 또 정의가 무었이냐의 논의를 불러 오므로, 이건 다른 이에게 논의를 맡기고, 대략 인권침해적 내용이나 민주주의에 만하는 내용쯤으로 인식해 두자.

두번째, 정당한 구제 절차가 존재하여야 하며, 이를 모두 거쳤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3심의 재판과 헌법소원, 법률위헌심판 등의 제도가 존재한다.
만약 이런 정정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계약에 의하여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들이 정한 법은 지켜야하며, 그 부정의한 법을 만든 입법기관에 시민불복종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스스로 물러나거나, 개정하지 않는다면 시민은 계속 악법을 지켜야 하는 불합리가 발생한다."
따라서 정당한 절차가 존재하여야 하며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복종의 정당성은 두번째에서 충족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절차가 존재한다면 이를 모두 거쳐 합법적 시정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세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행위에도 불구하고 부정의가 시정되지 않고(국가보안법과 같은 경우를 상정하면) 의도적으로 방임내지는 거부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민의 불복종은 정당화 된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멋지게 마무리 하고 싶지만 필력이 딸리는 관계로 존롤스의 논문을 인용한다.

"어느 경우나부정의는 굴종 또는 저항을 초래한다. 그러나 굴종은 압제자의 경멸을 야기하고 그의 의도를 확인해 주는 것이다. 적정한 기간 동안 정상적인 방식으로 합당한 정치적 호소를 한 연후에 사람들이 시민 불복종을 통해 기본적인 평등한 자유권의 침해에 대해 반대한다면, 내가 믿건대, 이로 인해 이러한 자유들이 취약해 지기 보다는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정당한 시민 불복종은 적절히 행사된다면 입헌 정체를 안정화시키는 기제이며, 그 정체를 보다 확고하게 정의롭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강정인 교수의 책. 훌륭함다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가 나오긴 나오나 봅니다. 검색마다 품절인데 교재로 쿠폰 주는것 봐서는.  새로운 편집으로 나온 책이라는데 내용은 같겠죠???

 

 

 

 

 

 이건 자본주의와 헌법이란 책인데, 이미 절판입니다. 헌책방에서만 구입 가능하실듯.

 

 

 

 하나는 알라딘에 없는데, 이건 교과서 파는 서점에 가셔야 있겠습니다.
법철학,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법철학 개론서로 매우 쉽게 나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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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12-20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멋있습니다.

kleinsusun 2005-12-20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그 동안 항상 궁금했던건데....도대체 전공이 뭐예요? 사회학? 여성학? 법학? 법철학? 정말 궁금.....

호랑녀 2005-12-21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혹시 법 여성학이 아닐까요?

코마개 2005-12-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립간님 칭찬이죠? 부끄~~
수선님 제 전공은 법학인데 그 중에서 헌법학이요. 먹고 사는데 전혀~~도움 안되는 과목이죠. 사회적 불만만 키우는 전공.
호랑녀님...법 여성학. 이름이 좀 그렇긴 한데 비슷한 분야가 있긴 한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워드로 글을 쓴 후 인터넷에 붙이기를 하는데, 이글을 그냥 바로 쓰면서 오타나 문맥이 안 맞을 수 있습니다.

* 이벤트라고 할 수 없는 이벤트는 원래 지금 쓰려고 했던 글이 아닌데, 가상뉴스 2005를 정리하면 마지막 가상뉴스가 생명공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마침 황우석 박사님의 난자채취와 관련된 논쟁이 사회에 불붙었고 과연 우리가 상대를 얼마나 잘 이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을산님은 이와 같은 사회적 반응이 놀랍다고 하셨고, 저도 황우석 박사님과 관련된 것이 광기에 가까운 사회적 반응으로 나오리라는 예상을 못했지만 사회적 광기는 처음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안타까웠던 사건은 부안 방사선 핵 폐기장입니다. 알라딘에 많은 분들이 '올 크리스마스엔 나도 몰래 산타가 된다!'에 참여하셨고, 그와 같이 된 것은 아마 어렵게 사는 이웃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역시 어렵습니다.(쓰고 나니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저 역시 이해의 폭을 넓이자 하나 개인적 경험에 한정지울 수 밖에 없지요.

* 오늘 올라갈 논제를 비롯하여 첫 논제부터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모순矛盾과 선택입니다. 첫 논제를 보고 모순에 글을 써 주시고 모순의 고사가 언급된 중국고전이나 양귀자님의 '모순'이라는 추천해 주시는 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둥근 사각형의 언급은 괴델의 불완성 원리와 러셀의 집합론 즉 '그것 자신을 멤버로 포함하지 않는 집합의 집합'에서 흔하게 언급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리철학이나 괴델, 불완전성 정리에 관한 책의 추천이 가능합니다. 이와 같은 원리를 안다면 다음과 같은 수수께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 마음을 알아 맞추면 5천원을 주겠다."라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사실 아버지는 아들이 뭐라고 이야기 하던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주지 않으려고 했다. 아들이 뭐라고 하니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뭐라고 하였나?
 답 : 아버지는 저에게 5천원을 주려고 하지 않으려 마음을 갖고 있다.

# 어느 한 사람이 표류하여 식인종이 있은 섬에 와서 잡혔다. 식인종들은 이사람을 죽이려하나 이야기를 일단 시킨 후 참말을 하면 참수형, 거짓말을 하면 교수형에게 처한다고 한다. 표류한 사람이 뭐라고 했더니 참수형도 교수형도 시키키 어려웠다. 뭐라고 이야기 하였나?
 답 : 식인종 당신들은 나를 교수형 시킬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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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12-2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설이 나간 후의 논제는 더 좋은 글과 책을 추천해 주셔야 합니다.^^
 

논제 10) 뉴스는 사실만 전달해야 하는가, 아니면 전달자의 의견/논평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허용이 된다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앵커는 뉴스 전달시 자신의 의견이나 논평을 포함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1분뉴스를 들을 때는 정해진 짧은 시간 내에 아나운서가 대본을 읽듯 그 뉴스의 중요한 사실만 전하고 끝나 버립니다. 그런 경우, 사실을 들은 후 머리 속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귀에 뉴스가 남기보다는 눈(머리) 속에 아나운서의 무표정함만이 맴돕니다.


뛰어난 앵커는 간단한 소식을 전할 때도 표정, 목소리톤 등에 변화를 줍니다. 참사 소식을 전할 때는 애통한 마음을 최대한 자제하고 침착하게, 미담을 전할 때는 만면에 편안한 미소를 잔잔하게 띠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런 식으로 앵커 자신이 뉴스를 대하는 태도를 시청자들에게 나타냅니다.


저는 속내를 조금씩 드러내는 앵커들이 좋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날마다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진실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경우 제 생각이 어떤 건지 옳은 건지 잘못된 건지,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생각을 다시 해보는 게 좋을지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앵커는 매우 중요한 위치의 전문직업인입니다. 일반 대중이 모르고 있는 일에 대해 알려주는 최초의 사람이고, 그 사안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앵커가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습니다. 무너진 건물잔해로 인해 반경 3km 이내는 대기가 뿌연 상태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있는 생존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구조견과 경찰, 119 구조대원 등이 수색작업 중입니다.” 라고만 말한다면 저 같은 사람은 속이 터져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경우 저는 앵커에게서 다음의 예와 같은 말이 덧붙여지길 원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요. 초고속 발전의 대가치고는 너무 어마어마합니다.”


하지만 앵커가 사실에 덧붙이는 자신의 의견(혹은 논평)은 뉴스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정도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이 전할 사실을 정확히 파악한 후 그에 덧붙이는 의견은 시청자에게 신뢰를 주지만, 앵커의 의견이 장황하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본질을 흐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경성(硬性, hard) 뉴스보다는 연성(軟性, soft) 뉴스를 지향한다고 하던데, 이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뉴스가 나아가야할 태도는 확고히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 / 김은혜

 

이 책을 저는 지금도 가끔 들추는데요. 그 이유는 김은혜 기자(현재 뉴스투데이 앵커)의 당당함과 부지런함, 추진력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지금까지 제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앵커는 김은혜입니다. ^^


혹시 이 책 보고 싶으시다면 제가 갖고 있는 책 보내드릴게요.


 

전에 언제 한 번 들른 적 있는데, 다시 우연히 방문하여 이벤트 기간이라는 걸 깨닫고 이렇게 짧은 글 남깁니다.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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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12-2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春)님 감사합니다. 형식에 딱 맞는 글을 올려주셨네요. 저는 책에 관해서 사양하는 법이 없습니다. 보내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혹시 들으시게 되면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 워낙 자폐적 성격이라 이번 이벤트가 끝나면 한동안 페이퍼 쓰는 일은 쉬려고 합니다.

하루(春) 2005-12-20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습니다. 김은혜 기자의 책이 나온지 오래된 거라 제가 드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건데 흔쾌히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저도 책 1권 고르도록 하죠. ^^

2005-12-20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바람의 검심劍心


밑줄긋기 : 착한 전쟁은 없다.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아무리 멋진 미사여구나 대의명분으로 치장해도 그것이 진실. 자신의 달콤한 이상과 현실의 위기 ! 양쪽을 다 지키고 싶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야.” by 히코 세이쥬로


밑줄긋기 : 필요악이다.


“믿으면 배신당한다. 방심하면 죽는다. 죽기 전에 죽여라.” by 마코토 시시오

“그는 착하기만 한 청년이 아냐” by 카시와자키 넨지


“화를 낼 땐 마음을 굳게 먹고 귀신처럼 화를 내야 한다구요.”

“무엇이 옳은지는 후세의 역사가 판단할 일이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중에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싸우는 것뿐... 자비로 구원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은 만만하지 않아...” by 파괴의 화신 유큐잔 인지


악즉참 惡卽斬 by 사이토 하지메


* 착한 전쟁은 없다. 전쟁을 피하다.

 대장장이 아라이 세이쿠는 전투용 검인 발도제의 칼을 만들 것인가? - 이 책에서는 아버지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으로 상황을 만들어 회피하게 된다.

 살인검과 활인검에서 줄타기를 하던 히무라 겐지劍心, 마지막 까지 살인을 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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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12-1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ika님, 바람에 검심을 모두 읽었는데, 주제에는 적절한 책이었습니다.^^

chika 2005-12-20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다 읽으셨군요! 제가 엄청 좋아해서 돈주고 장만한 첫 만화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