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약은 12월 23일 방학과 동시에 끝났다. 학교는 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행정실에서 퇴사 처리를 해버려서 네이스 접속도 안 되어서 월급 명세서를 뽑지도 못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가지가지 야박하다.
방학식 전날 고마웠던 선생님들께 책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선물했다. 역사과에 어느 선생님은 내 계약이 다음날 끝나는 것과 방학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몹시 분개하셨다. 사실, 이것도 불법일 거다. 학기 중에 근무한 사람이 방학 급여를 받는 게 당연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약을 잘라서 급여를 받지 못하는 기간제 교사는 무지무지 많다. 나 역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였지만, 난 그분이 안타까워해 주셔서 참 고마웠다. 내 현실에 아무 반영되는 것 없고 설령 그게 립서비스라고 할지라도 난 고마웠다.(물론 그분은 진심이었다고 믿고 있다.)
이 사회에서 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자이다. 상대적으로 더 약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연대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연대'의 방법과 스펙트럼이 또 무지 넓다. 자신을 희생해 가며 제일처럼 나서서 돕는 분들이 계신가 하면 마음만 보태는 사람도 있다. 나로서는, 마음이라도 보태준다면 그마저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게 자기 만족이나 자기 과시라 할지라도, 그게 동정이든 연민이든, 뭐라 불린다 할지라도 그래도 그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나 불의한 일들에 내가 연대를 내세우며 함께 참여해 왔던 건 아니다. 촛불집회나 거리 시위는 작년에 광우병 사태 때 처음 나가보았고, 유네스코 정기 후원을 시작한 지는 이제 딱 1년 되었고, 어떤 기업의 불매 선언같은 것도 내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촛불 집회 당시 내 귀가 시간은 거의 신데렐라 수준이었다. 날을 새워가며 시위를 한다거나 닭장차 순례를 할 정도로 덤비지 못했다. 꼭 그래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분명 자신의 것을 더 많이 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한 나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들은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한 것보다는 분명 나은 거라고.
김종호 씨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대개의 사람들이 짐작했을 것처럼 나 역시 부정적인 결말을 먼저 떠올렸다. 이기기도 힘들지만 망가지지 않은 채 지는 것도 어려울 거라고. 그래도 한 걸음을 보태면, 열 사람의 한걸음이... 백 사람의, 천 사람의 한 걸음으로 바뀌는 기적에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알라딘 조사장님께 편지를 쓸 때도 역시 순진한 꿈을 꾸었다. 김종호씨를 품어낸다는 건 알라딘 입장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선례를 남길 테니까. 그래도 눈앞의 손해를 감수하면, 더 크게 보았을 때 알라딘의 승리로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상상했다. 철옹성같은 비정규직 문제라지만, 그렇게 아주 조금이라도 희망의 씨앗은 되는 것 아닐까 하는...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바람이었을까? 그런 바람을 꿈꾸려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실천해야 했던 것인데 적은 몸짓으로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있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이 싸움의 대상은 알라딘이라는 기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라디너들끼리 더 많이 싸우고 상처 입고 누군가는 이 공간을 떠나버렸거나 짐을 싸고 있다. 누군가 거친 언사를 한 번 던지면, 상대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싸잡아 다 함께 욕을 먹는다. 불매 참여자든, 그 반대 입장이든 모조리. 감정이 버겁다. 좋아하던 사람에게 실망을 하는 것도, 미움을 받는 것도, 혹은 민폐를 끼치는 것도... 참 좋아하던 내 안식처가 내게 족쇄가 되어버리는 것도...
결국,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연대의 끈 수준은 딱 이만큼이었다. 불매를 선언하고 불매에 동참하고 편지 쓰기에 동참하는 정도. 여기서 더 나아가질 못하겠다. 마치 12시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돌렸던 광화문 광장처럼.
지금도 해고 노동자를 위해서, 또 제도적 악습 관행을 바꾸기 위해 연대의 끈을 더 조여매려고 하시는 분들께 몹시 죄송하다. 다소 거친 언사들이 나올 때도 있고, 때로 투쟁의 방법이 덜 세련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보태준 마음의 그릇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고작 3주 간의 시간 동안 이름만 보태며 함께 했을 뿐인데 이리도 지치고 힘들 수가 있는 것인지, 기륭이나 이랜드 파업 노동자들의 고생은 감히 언급도 못하겠다. 무기력하고, 부끄럽고, 지극히 슬프다.
나의 알라딘 불매는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