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맨 - 할인행사
스파이크 리 감독, 덴젤 워싱턴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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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부분의 내용이 맞물려서 다시 반복되는 가운데 점층 강화하는 편집을 좋아한다.  이 작품도 그랬는데, 주인공인 은행 강도가 자신의 완전 범죄를 '누가', '언제', '어디서', '왜', 그리고 '어떻게'하게 되었는 지를 차분한 어조로 말하면서 시작한다.

확실히 그의 범죄 행각은 완벽했다.  은행에 잠입하여 인질극을 벌이면서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끌었고 또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는 거기에 넉살까지 부려가면서 유유히 도망친다.  그 사이사이에 경찰은 실컷 바보가 되었지만 정작 잃은 것은 없다.  오히려 사건의 해결을 맡은 협상가 키스는 진급이라는 행운에 선심성 다이아몬드까지 얻었으니 손해는커녕 오히려 득만 본 셈이다.

모처럼 선한 주인공이 아니라 차갑고 독한 변호사이자 로비스트로 분한 조디퍼스트는 꽤 신선한 느낌이었는데 그녀 역시 일의 의뢰를 나름대로 성사시켰고 자신은 그 대가를 제대로 챙겼으니 역시 손해날 것 없는 화끈한 사건을 겪은 것이고, 은행강도였지만 사람 하나 다치게 하지 않고 은행 재산에 손도 대지 않은 주인공 역시 이름과 부를 모두 거머쥐었다.

정작 이 영화에서 손해본 사람이라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하여 양심을 팔아 부를 거머쥔 이중인격의 은행 이사장 뿐이라 하겠다.  그는 은행강도에게 털리고, 조디 퍼스트에게는 약점 잡히고 경찰에게는 추궁을 당한다.  당할 만한 사람이 당했다는 의미에서 나름대로는 윈윈이었다.  뭐, 그 사이에 고통을 받은 인질들의 외침은 별도로 생각하자...;;;;

영화는 액션영화로서, 또 두뇌전으로서, 심리전으로서 꽤 재미를 준다.  인질범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은행예 해를 입히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으니 경찰들은 도깨비에 홀린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인질이 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완벽한 알리바이로 무죄가 되는 장면들은 꽤 인상 깊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사건의 주범이었던 주인공이 어떻게 은행가의 비밀을 알아내고 또 은행에 숨어들고, 또 은행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가에 대한 설득력은 솔직히 부족했다.  작품에서 나온 대사처럼 데이비드 카퍼필드처럼 짠!하고 나타났다가 짠!하고 사라지는 식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키스 형사가 꽤 유능한 인물로 설정되었지만 작품 후반에 이르기까지는 주인공 은행강도에 비해서 두뇌 회전이 너무 느렸다..;;;;

그래도 주의를 끄는 장면들이 꽤 여럿 있었는데, 밖으로 빠져나온 인질을 확보하는 장면에서 그가 아랍사람이라고 여기자 바로 돌변하는 경찰들의 태도라던가, '왕가슴'으로 대변된 여자가 은행에서 동양인 남자를 깔보는 눈빛으로 대하던 장면, 흑인 남자의 아들이 너무도 폭력적이고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자 은행 강도의 수장이 "네 아버지 좀 만나야겠다"라고 말하던 장면의 희극성이 나를 웃기게도, 또 씁쓸하게도 만들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다른 작품을 접해보지 못했는데, 명성은 익히 들었던 터라 아마도 이 작품과 성격이 많이 다를 것으로 짐작된다.

덴젤 워싱톤은 기존의 느낌과는 다르게 좀 더 투박하고 소시민에 가까운 인상을 주었는데, 오랜만에 보기도 했지만 갑자기 너무 늙어버린 것 같아서 조금 섭섭했다.  조디 퍼스트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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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1disc) - 할인행사
강석범 감독, 김래원 외 출연 /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쌈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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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입소문을 들어서 선택한 영화는 그 사람의 취향을 잘 알고 있을 때에 후회가 적어진다.

하지만 입소문 말고 영화 평점 정도만 보고 선택하면 후회할 때가 많아진다.  해바라기가 딱 그랬다.

많이들 감동적이었다고 하고 많이들 울었다고 하고, 연기도 정말 잘했다고 하고... 그러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진탕 후회했다ㅡ.ㅡ;;;

 주연배우 김래원, 김해숙, 허이재

허이재는 처음 보는 배우였지만, 김해숙씨는 딱 그런 역할의 어머니 배역을 너무 많이 하셔서 진부함이 도가 텄다.  이제는 그녀의 그 울상짓는 눈매만 보아도 짜증이 날 것 같다. 중견배우가 많은데 왜 항상 그런 어머니상은 김해숙 아니면 고두심인가.  것도 아니면 윤여정? ㅡ.ㅡ;;;



밑바닥 인생을 전전긍긍한 오태식. 10년을 감옥 생활하다가 가석방되었다.  그에게는 낡은 수첩이 하나 있는데, 첫 페이지에는 하지 말 것 세가지가 적혀 있고, 그 뒤로는 하고 싶은 일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다.

술을 마시지 말 것, 싸우지 말 것, 울지 말 것.

요 세가지를 다짐하고, 대중 목욕탕에 다녀오기, 소풍 가기, 담배 피기, 문신 지우기 등등 어쩌면 소박할 수도 있는 것들을 이루어 가며 태식은 자신이 지키고픈 소중한 것들에 행복해 한다.

그러나, 주먹 쓰는 조폭 이야기 나오면서 어디 주인공이 소박하게 살도록 내버려두는 내용을 보았던가.

태식을 십년이나 감옥에서 썩게 만들었던 음모를 꾸민 조판수. 시의원에 당선되고 시장까지도 꿈꾸는 인물.  그는 태식이 어머니라 부르는 덕자의 해바라기 식당을 처분하여 그 지역에 쇼핑몰을 건설하려고 한다.  허나 덕자는 조금 치도 타협을 해주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조판수를 끝장낼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데...

영화는, 꽤 슬프다.  밑바닥 인생살이에서도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태식이나, 자기 아들 죽인 녀석을 양자 삼아 새 인생 시작하게 해주려고 애쓰는 덕자나, 기이하게 되어버린 가족을 자랑스러워 하며 밝게 살아가는 희주까지도.

허나, 그들의 행복을 지키기엔 방해물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 방해물은, 과연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조판수의 악덕을 왜 굳이 입다물고 덕자는 버텼을까.  자신의 협박이 먹혔다고 자신해 하는 그 어리숙한 순진함이 나는 짜증이 났다.  아들과 함께 시작했기에 소중했다고 말하는 그 식당이 살아있는 아이들의 미래보다 더 중요할까.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지만, 극 중 조판수는 무섭고도 더러운 놈이었다.  차라리 보상금 받고 뜨는 게 나았다.  추억이 보잘 것 없어서가 아니라, 추억 이외에는 없는 그곳을 그렇게 피흘리며, 목숨 내놓고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조판수의 입장은 어떤가.  떠나겠다고 했다.  싸움을 할 수 없게 손마저 내놓았다.  헌데도 그렇게 목숨을 취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악독한 놈이라는 설정이라 할지라도 이건 과했다.  태식의 분노를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태식이 기어이 다시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하고 오열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래야 영화가 슬퍼질 테니까.  헌데, 그럼 홀로 남은 희주는??? 복수 한 번에 제 목숨 내놓고, 희주 홀로 남겨두는 것이 과연 잘한 선택일까.

나야 당사자가 아니고 관람자일 뿐이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좀 너무 아니다 싶다.

아무리 싸움의 귀재라고 해도 그 많은 사람을 상대로 일당백을 하는 것도 어이 없고, 일당백으로 자기 차례가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어주는 조연들도 우습고...

슬픈 영화에 동조해야 하는데 내 마음은 어이 없음으로 가득참이었다.

시간이 아깝다던지 돈이 아깝다던지... 그 정도는 아닌데, 그 식상함과 진부함에는 화가 난다.

배우들은 연기 훌륭했다.  허이재는 좀 더 무르 익어야겠지만, 김래원은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음악도 참 좋았다.  누가 불렀지??

그리고 화면 비율이 2.35 : 1이 아니라 1.85:1인데, 아무래도 넓은 화면으로 보여주기엔 액션씬에 부담이 갔던 게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2.35:1에 익숙해서인지 좀 답답하단 느낌이 들었다.

해바라기... 예전에 안재욱 나왔던 그 드라마랑 송지나 극본이었던 것 같은데 이병헌 이승연 나왔던 해바라기도 더불어 생각난다. 

 덧글. 영화 속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는커녕 민중에 기생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들은 밥 때 맞춰 밥 먹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그런 경찰이 물론 있겠지만, 아닌 경찰들도 많을 텐데 너무 한쪽으로 편향되어 그린 듯하다.  이 역시 작품의 비장미(?)를 위한 것일 테지만 가지가지 맘에 안들어!(환상의 커플 한예슬 버전.ㅡ.ㅡ;;;)


그들의 한때나마 행복했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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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감독판 [dts] (2disc) - 할인행사
김대승 감독, 유지태 외 출연 / 에이치비엔터테인먼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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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미처 극장에서 챙겨보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이 영화 '가을로'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번지점프를 하다와 혈의 누의 김대승이 이 작품의 감독이다.  세 작품 모두 재밌게 인상 깊게 보았는데 이제는 이름을 잊지 말아야겠다.  캐스팅을 잘하는 것도 감독의 역량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이 작품 역시 최고의 캐스팅을 해낸 것 같다.  (유지태의 나직한 음성과 김지수의 청아함과 엄지원의 상큼한 매력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작품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막 사법고시를 패스한 현우는 민주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일이 많아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되자 기다리겠다는 민주를 백화점 지하 커피숍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이때의 선택을, 그는 이후 얼마나 오랫동안 후회하고 절망하게 되던가.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단잠이 한순간에 달아났다. 백화점은 붕괴되었고, 그곳에 있던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현우는 그 환하던 미소를 잃고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는 메마른 인간이 되고 만다.

검사로 일한지 십년, 사고로부터도 십년이 지났다.  원치 않는 휴직을 권고받은 현우는 민주의 아버지로부터 다이어리를 하나 건네받는다.  그녀가 신혼여행으로 가고자 했던 멋진 여행길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현우는 지친 몸과 마음으로 그 길, '가을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자꾸 마주치는 인연 하나를 알게 된다.

세진은 가슴의 답답증을 풀고자 훌쩍 여행을 떠난다.  매 길목마다 마주치는 한 남자, 그가 들고 있던 다이어리를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빛이 변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떨쳐내려 애써 피해보려고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그들은 만나게 된다.  그 둘 사이에는 '민주'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작품이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저런 곳이 있단 말야?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절경들이 끝없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제작진이 엄청 공을 들였다는 것을 영화 끝날 때까지 계속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연출의 미학으로, 이미 죽은 민주의 여정과 지금 현재를 걷고 있는 세진과 현우의 여행이 앞뒤로 마주치며 붙어있다는 것이다.  위 사진에서 민주가 떠내려보낸 나뭇잎을, 현우가 집어드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작품에는 멋진 풍경과 멋진 명대사와 명연기가 녹아있는데, 사실 그 모든 것들보다 더 마음을 울리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와, 그 상처의 오랜 후유증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고단한 삶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마땅한데, 그건 말처럼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실화라는 점에서 보는 사람 역시 감정이입의 극대화를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사고가 그 이전에도, 또 그 이후에도 너무 많았다는 점에서 마음은 답답하다 못해 요동을 치게 된다. 


함께 걷던 길을, 이제는 홀로 걷고 있다.  추억은 여전히 귓가에 속삭이지만, 사랑하는 이의 손길은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삶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그 흐름에 순응하여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남겨진 이의 의무이며 권리가 된다.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햇살같은 웃음, 그 웃음을 되찾는 것도 그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영화는 시작할 때의 그 밝음으로 다시 마무리를 짓는다.  상처는 덮었고 이제 새 살이 돋을 것이다.  아픔은 잊기 어렵겠지만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본다면, 사랑은 더 깊어지고 그 소중함은 더 뜨겁게 다가오지 않을까.  모처럼 마음을 울리는 좋은 작품을 만났다.  오늘같이 궂은 날씨엔 유독 더 아플 수 있지만, 지금 들리는 저 빗소리와 자동차 경적 소리마저 살아있음의 흔적이라는 것을 더 선명하게 깨닫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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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보세 (dts 2disc)
안진우 감독, 변희봉 외 출연 / 팬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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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코미디라고 해야 할까.  영화 초반에는 코믹을 무기로 상당히 웃긴 내용도 있었지만 영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슬퍼진다. 이 영화가 그닥 흥행에는 성공 못한 것으로 아는데 타겟을 잘못 잡은 것 같다.  요새 추세가 무조건 웃겨야 한다!가 강하기 때문에, 또 김정은과 이범수의 콤비가 '코믹이 되는 배우'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렇게 몰아간 것 같다.  글쎄, 코믹으로 생각하기에는 영화는 크게 웃기지 않고 오히려 진지한 내용이 더 많아서 관객으로부터 더 외면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주연배우와 중견배우들의 접목이 대체로 균형이 맞았지만, 이범수의 아내 전미선만은 미스 캐스팅이었다.  시골 아낙으로 분하기에는 너무 곱다.  황진이에서 하지원의 어머니로 '현금' 역을 맡았는데, 딱 그런 분위기의 배우를 데려다가 안 맞는 옷을 입혀놓으니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이건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70년대 초반이면 내가 아직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그 시절에 산아제한이 있었고, 영화 속에서 공권력이 행사하는 힘들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지만, 21세기를 사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땐 기막힌 희극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는 것에서 우리의 비극이 있다.

그때 당시 우리의 경제 상황으로는 산아제한이 필요했던 것을 인정한다.  지금처럼 아이를 낳지 않아서(못해서) 문제가 되던 시절과는 분명히 다른 입장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넘어서 그런 '명령'이 떨어져서 시행되는 과정의 비민주성과 보다 고질적이고 근본적인 계급의 문제가 영화 속에 깔려 있는지라 보는 내내 참으로 서글펐다.

마을의 지주 계급이며 유지인 전 이장 변희봉은 모자란 큰아들 대신 둘째 아들로부터 아들을 보기 위해, 아이 낳기를 두려워 하는 며느리의 아픔을 외면한다. (며느리는 딸아이를 낳으면서 32시간의 진통으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고, 그 후로도 두 아이를 유산하는 바람에 더 큰 공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다시 낳게 되는 아이가 아들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변희봉을 대변하는 둘째 아들은 친구인 석구(이범수)를 종부리듯 대접하고 걸핏하면 소작 떼겠다고 협박을 하며 실제로 폭력배를 동원하여 실력 행사를 한다.

한 번 잘 살아보겠다고 일치 단결한 마을 주민들은 출산율0%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무지함으로 임신을 한 마을 주민 한 가족을 내쫓는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들은 '빚'을 청산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인간성을 저버려야 했으며 필연적으로 행복과 멀어진다.

새로 마을 이장이 되어 악착같이 일하는 석구(이범수)는 정관수술까지 했지만 아내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가정파탄에 이른다.  거기에는 수술이 잘못된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책임한 언사를 내뱉은 보건소 의사의 책임이 크나 그들이 책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석구는 또 어떻던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가 의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었지만, 그 의심의 힘은 또 얼마나 무섭던가.  결국 아내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또 자기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도 석구 자신이었다.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그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길은 서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거기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잊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깔려있지만, 더 깊은 곳에는 그들의 처절한 '가난'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는 클라이막스에서 예기치 못한 반전을 한 번 보여주고 나름대로의 수습을 하고 끝마친다.  그 수습이란 다 함께 잘 살수 있게 만들어주지는 못했지만, 그들 울타리 안의 자그마한 행복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준다.

김정은이 마을을 떠나면서 변희봉을 다시 한 번 찾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변희봉의 큰아들을 통해 맨 처음 변희봉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리메이크 하면서 묘하게 꼬게 되는데, 그 어법이 기막히다.

"백성이 망해야 나라가 있고, 가문이 번창해도 나라는 망하는 법이다."

백성이 망하든 말든 관심 없는 나라가 있고, 나라가 망하든 말든 번창하는 가문이 아직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깔리는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의 노래는 더 극적이다.  요즘처럼 부동산이 요동치는 때에는 더 인상적이랄까.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고, 그 이상으로 많은 생각들을 안겨 준다.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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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브라더스(CJ한국영화할인)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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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던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직업으로까지 연결된다면 그것은 굉장한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꿈을 이루며 살기도 어렵지만, 꿈꾼 대로 살아가기도 어렵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산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란 법은 없다.  때로 삶은, 욕심부리지 않아도 충분히 신산하고 버거울 때가 있으니까.



고교시절부터 밴드를 구성해서 음악에 올인하고자 했던 성우는 현재 찾아주는 이 별로 없는 밴드의 리더다.  초라한 모습에 고향만은 피하고자 했지만, 결국 갈 수 있는 곳이 고향밖에 남질 않아 수안보에 정착하게 된 성우.  그 과정에 섹소폰 주자는 고향 부산으로 돌아가고, 초기 7인조로 시작했다던 밴드는 이제 세사람만 남게 된다.  건반주자는 여자를 너무 밝혀서 문제가 많았고, 드러머는 너무 쑥맥에 대마초까지 손을 댄다.  지금이야 반가운 얼굴이지만 당시에는 오디션을 통해 힘겹게 배역을 따낸 황정민이 "너는 내 운명"에서 보았던 그 순박한 총각의 얼굴로 등장하고 있다.

연주 도중 사고를 내고 고향에 돌아가 버스 운전을 하는 드러머.  대신 드럼 주자로 들어온 것은 성우가 어려서 기타를 배운 원장님이나 지금은 알콜중독자가 되어 있는 모습.  그 역시 연주 도중 쓰러지고 밴드는 더 이상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성우는 수안보에서 고교시절 반했던 첫사랑 인희를 다시 만나는데, 남편과 사별하고 야채장수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그녀를 보는 눈길이 쓸쓸하다.

어릴 적 음악을 하던 친구들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약사가 된 한 친구는 돈밖에 모르는 위인이 되어 있고,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는 명예욕에 사로잡혀 구청 건축과에 일하는 친구를 난처한 입장에 몰리게 한다.

너는 원하던 음악 하고 있지 않냐며 부럽다는 친구에게, 그렇다/아니다 말할 수 없는 입장의 그들.  캬바레 웨이터로 분한 류승범은 음악을 하고 싶다고 가르쳐달라고 떼 쓰지만 그 역시 심각하게 음악에 열중한다기 보다 튀고 싶고 놀고 싶은 욕망으로 느껴진다.  음악해서는 밥 벌어 먹고 살 수 없다고 극구 말리는 그들의 말에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회한이 잔뜩 묻어 있다.



친구들을 배신했던 건반주자는 크게 사고를 치고나서야 후회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여수에서 새롭게 밴드를 시작할 때, 인희가 그들과 합류하여 보컬을 맡게 된다.  적어도 트럭을 몰며 장사를 할 때보다는 노래할 때의 그녀가 더 행복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앞날이 앞으로도 얼마만큼 고될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라디오를 듣다가,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음악인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점에서 라디오 스타가 같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한 번이라도 정상에 올랐던 사람의 어리광같은 이야기보다, 늘 삶에 치여 막다른 골목을 따라 내달리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맺힌다.  물론, 영화적인 재미야 라디오 스타가 훨씬 앞설 테지만.

요즘 들어 더 어려워진 우리나라 음악계 현실과 맞물려 내게는 마치 시사/다큐 영화처럼 보였다.  며칠 전 뉴스에서는 대학에 합격한 예비 대학생들이 벌써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던데, 사회는 점점 '안정적'이고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쪽으로만 몰리고 있다.  안전에 대한 욕구야 인간으로서 당연한 욕망일 테지만, 우리는 점점 '행복'과는 먼 길을 걷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열심히 사는 것인데, 열심히 산다고 해서 모두 행복해지지는 않는 것 같은 이상한 뫼비우스의 띠.

삶이 더 고단하게 느껴지는 무거운 영화였다.  그렇지만, 외면하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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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1-2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 장난 아니죠? 정말 이런 영화 좀 많이 팔리고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왜 맨날 신데렐라 스토리만 화면을 장식하는지... 저 이 영화 보면서 정말 많이 울컥했어요 비루한 우리네 삶, 과장도 허풍도 없고 너무 진솔한, 마노아님 말씀처럼 외면할 수 없는 바로 우리 삶이잖아요

마노아 2007-01-2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무료시사회로 3만 명을 보여주었대요. 그렇게까지라도 해서 이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을 제작진의 노고가 안타까워요. 예전에 대중문화 전문 사역자 신상언 선교사님이 꼭 봐야 할 영화지만 절대 안 팔릴 영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딱이었죠. 정말 울컥, 왈칵! 영화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