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제442호 2016.03.05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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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가 성적 장학금을 없앴다. 장학금이 개인의 성취에 대한 상금이 아니라 구조적인 불평등을 조정하며 각자 처한 조건과 상관없이 공부를 장려한다는 의미에서 '장학'금의 본래 취지로 돌아간 것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학생들에게 공부할 '시간'을 돌려준 것이다.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아주 바람직한 시도이고 결정이지만, 이것이 더 의미가 있으려면 개별 대학이 아닌 그 이상으로 확대되어야 더 큰 파장력을 줄 것이다. 장학금이 상금이 아닌 말 그대로의 장학금이 된다... 당연한 일인데도 그동안 참 당연하지 않아 왔다. 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이 국공립 대학으로 모두 확장되고, 고향 땅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 고향 땅에서 당당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그래서 서울로 서울로 집중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풍경을 그려 본다. 아득해 보이지만, 그런 길로 갔으면 한다. 


김형민 피디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도 재밌게 보았다. 무려 쿠빌랑 칸에게 맞서서 할 말을 해낸, 그렇게 국익을 지켜낸 인물이다. 쿠빌라이는 고려 왕족 영녕군 준이라는 자로부터 "고려 군대가 5만씩이나 되니 일본을 치는 데 도움이 되고도 남습니다"라는 허튼소리를 듣고 있었다. 쿠빌라이가 고려 군대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자 이장용이 이렇게 맞받아쳤다. 


"30년 전란으로 인해 다 죽어서 없어졌습니다."


세상에! 그 전쟁의 당사자에게 늬들 때문이잖아!라고 외친 게 아닌가! 쿠빌라이도 기가 막혔을 것이다.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너희 나라에는 여자가 없느냐? 죽은 자는 있고 태어난 자가 없다?" 하지만 이장용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성은을 입어 (즉 몽골과의 전쟁이 끝나) 9년 동안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래봤자 이제 9살입니다. 폐하의 군인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히야..... 감탄스럽다. 앞서 영녕군이라는 작자가 한 행위는 나라를 골백 번을 팔아먹을 해위. 왕족이라는 자가 저랬다.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간 자식을 몸값 치르고 데려오면서, 지나치게 돈을 많이 지불해 이후 다른 백성들이 몸값을 지불할 수 없게 만들었던 어느 몹쓸 인사가 겹쳐 보였다. 징글징글한 놈들...


김형민 피디는 이렇게 잇는다.

몽골의 침략에 고려는 치열하게 항전했어. 그러나 전쟁이란 정의롭든 그렇지 않든 나라를 망가뜨리고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다. 요즘 들어 전쟁이라는 소리를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빠는 견딜 수 없게 슬프다. 군사작전권도 갖지 않은 처지에 '대통령이 김정은을 제거할 결심을 해야 한다'느니 운운하며 떠드는 족속들이, 과거 쿠빌라이 옆 고려인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또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테러방지법을 그토록 목 놓아 떠들다가 정작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이 자신이라는 사실도 몰랐던 총리를 본다면, 고려 재상 이장용은 몽골 말로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오오, 탱그리시여(오오, 하늘이시여)."


저렇게 내뱉어도, 나라를 팔아먹는데도 무조건 찍어주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으니.... 오오 탱그리시여!!


리베카 솔닛에 관한 기사도, 하퍼 리에 관한 기사도 반가웠다. 얼마 전에 파수꾼을 읽어서 더 눈길이 갔다, 앨라배마 대학 학생들이 영문학부 건물의 이름을 '하퍼 리 홀'로 바꾸자는 인터넷 청원을 시작했단다. 현재 건물의 이름은 '모건 홀'인데, KKK의 리더였던 존 타일러 모건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그가 남북전쟁 때 불타버린 대학 재건에 재정적 도움을 줬기 때문이라는데... 우리나라 사학을 세운 친일파들의 이름이 스쳐지나간다. 아흐 동동다리, 아흐 탱그리시여!


표지 때문에 시사 인을 샀다. 한참 필리버스터가 물 오를 때였다. 하지만 배송이 지연되었고,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는 허무하게 필리버스터가 중단된 뒤였다. 그러고도 얼마나 갖은 우여곡절이 지나갔던가. 정치가 생물이라는 것만 생생하게 경험한 지난 보름이었다. 하지만 표지의 문구처럼, 이 또한 '민주주의의 시간'임을 기억한다. 총선이 한달 여 남았다. 다급한 마음이 들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라고 본다. 끝까지, 끝까지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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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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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자주 본 덕분일까. 책을 보는 내내 저자의 목소리가 스테레오로 울렸다. 코 앞에서 직접 이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을 보여주는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여전히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레버넌트를 보러 갔을 때 시작 시간 2분을 넘기고 입장했는데 영화가 이미 시작해 있었다. 지금껏 CGV 이용하면서 정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본적이 없다. 항상 광고가 많아서 짧게는 5분, 평균 10분 정도는 뒤에 시작했던 터라 무척 놀라웠다. 아마도 영화가 워낙 길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지만...(범계점은 처음 가본 곳이라 평소 어땠는지 알 수 없다.)


앞부분 잘리는 건 짜증나지만, 뒷부분 못 보고 나오는 것만큼 화가 나지는 않다. 예전에 사정이 생겨서 영화 보다 말고 중간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결국 다시 보러 갔다. 그 영화는 '투모로우'였다.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에서도 소년이 몬테크리스토를 나중에는 창작해내지 않던가? 아닌가? 필사였던가?? 아, 이것도 읽은지 10년 지나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암튼, 위화는 될성 부른 떡잎이었다는 것!



지금도 팟캐스트 방송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는 나로서는 100% 동의하진 않지만, 팟캐스트 방송을 많이 듣게 된 이후로 독서량이 엄청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는 걸 인정한다. 그래도 어제 '장웅의 휴식을 위한 지식'이라는 방송을 처음 들었는데 전쟁사 중 무기(서양편)을 아주 재밌게 들어서 정주행 하려고 한다. 순기능도 있음을 강조해 본다.



저 특징은 정치인에게서 아주 자주 보이는 것들 아닌가???



저자의 글에서 정권이나 시사적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 이야기를 자주 보는데, 페미니즘에 이야기할 때 가장 관심이 간다.

이 부분은 특히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이야기할 때 더 설득력 있고 더 공감이 간다. 제발 귀 좀 기울이시라.


연휴를 지나다 보니 주부들이 많이 드나드는 게시판에 시댁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왔는지에 대한 하소연이 넘쳐난다. 실제 통계로도 이혼 수치가 급증한다지 아마.


더불어서 전업으로 살아왔는데 남편이 눈치를 준다. 이제껏 '벌어 먹여왔'다는 말을 들었다는 섭섭함에 대한 글도 종종 보았다. 전업이 놀고 먹는 직업이 아닌데, 살림은 누가 하고 애는 누가 돌봤는지에 대한 것은 값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남편에게 기생해서 먹고 산 능력없는 여자로 치부될 때가 많다. 저런 말이 나왔을 때는 남자도 직장에서 압박을 많이 받았겠구나...라는 연민이 분명 들지만, 그것과 별개로 저런 식의 반응을 보이면 안 되는 거지! 저자가 말했듯이, 자녀의 양육을 위해서 한명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때 남자 쪽이 그만두는 일은 정말 드물지 않은가. 이건 개개인의 태도에 맡길 일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해결해야 할 난제인데 개별 가정은 늘 고달프다. 



르네였던가? 위기의 주부들에서 쌍둥이 엄마로 나왔던. 남편은 자꾸 사고를 쳤고, 경제적으로 시달리던 르네가 직접 일을 하겠다며 회사로 갔는데 출산전 실력이 어디 가질 않아 계속 승승장구했지만 집에 아이들이 많아(게다가 남편이 사고쳐서 데리고 온 아이까지) 도저히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르네가 회사에 강력 요구해서 탁아실을 운영하게 됐는데 그 바람에 직원들도 안정을 찾고 회사도 윈윈했더라....는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삼포세대, 칠포 세대가 넘치는 이 시점에서 저런 이야기도 먼나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많은 책을 소개했는데 내가 읽은 건 열권 조금 넘었나보다. 덕분에 궁금해지고 읽고 싶어진 책들이 많아져서 보관함에 잔뜩 담아놨다. 몇 권은 이미 사기도 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집 나간 책』의 의미는 “책은 집구석에서 읽을지라도 앎을 통한 실천은 집 밖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는 개인을 넘어 사회를 향해야 하고, 그러려면 책은 자신만의 공간인 집을 나가 더 큰 세상 속에서 다른 이의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 이것이 서민의 읽기와 쓰기의 근본적인 이유이자 지향점이라는 것. 멋지다! 저자의 책 읽기와 책 소개가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책 전파가 되고 있고, 책을 통해서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게 만든다. 집 나간 책, 집 나간 지식 모두 권장한다. 개념만 집 나가지 않게 잘 붙들어 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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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관한 명상 - 전민조 사진집 눈빛사진가선 10
전민조 지음 / 눈빛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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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예쁜 남자를 보면 눈길이 한번 더 간다. 소지섭이 그랬고, 뮤지컬 배우 박은태가 그랬다.

예뻐서 눈이 가긴 하지만 일 안해본 손이라는 생각도 뒤따라 온다. 그들이야 직업이 연예인이니 손으로 노동의 흔적을 보여줄 필요는 굳이 없다. 사실 여자들도 예쁜 손은 흔치 않다. 날씬하다고 해서 손가락이 같이 예쁘지는 않더라. 그런데 또 손이 예쁜 사람은 발도 같이 예쁘더라. 신기해... 



손에 관한 명상집, 사진집이다. 강수진의 발이, 박지성의 발 사진이 감동적이었던 것처럼 이 책도 그런 울림이 있다. 

흑백으로 담아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고단함이 느껴지는 저 손에서 경건함이, 종교미까지 느껴진다. 

표지를 장식한 아기의 저 손! 어른의 손에 대비되어 저 고사리 같은 손이 한없는 안도감을 갖고 고요하게 잠들어 있다.

평화롭고 숭고한 장면이다. 점자책을 읽어나가는 저 손은 그 자체로 눈이 되어준다. 눈이 되어주고 길이 되어주는 이 고된 손. 내 비록 솥뚜껑 손이 별명이었지만 너를 타박하지 않으리.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가야금 연주회를 다녀오셔서는 연주 중에 줄이 하나 끊어졌는데,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연주를 하더라고 얘기하셨던 게 문득 떠올랐다. 선생님께서는 그 연주자가 다른 연주법으로 해당 음을 대체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런가?? 어쩌면 가야금이 아니라 거문고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지만 손가락으로 짚었다는 얘기를 한걸로 보아서는 가야금이 맞는 것 같다.


로망 중에 하나는 기타 연주. 손에 익기까지 굉장히 아플 테지? 그래도 비교적 운반 보관이 쉬운 악기이지 않은가. 연주 폭은 넓고~ 가볍고 작지만 우클렐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안 감...


작품 말미의 해설도 같이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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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1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2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사IN 제434호 2016.01.09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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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얇은데 이렇게 심도 깊은 기사로 충만할 수가 있나. 미용실에 가서도 잡지를 보지 않는데, 광고가 대부분이고 가십성 기사가 너무 많은 잡지가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잡지는 오로지 사은품에만 관심을...ㆀ)

그런데 시사인은 밀도가 매우 높아서 보통의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만큼의 집중력을 요했다. 심지어 공부하는 기분으로 읽어야 해서 잡다한 음악 같은 것은 꺼야 했다. 


표지를 장식한 소녀상의 처연한 표정 덕분인지, 김형민 피디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가 더 깊게 다가왔다. 내가 줄 그은 부분만 옮겨오면 이렇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군인은 한순간의 즐거움에 목숨을 거는 짐승이 되기 마련이야. 전쟁을 벌이는 지도부(라고 쓰고 윗대가리라고 읽어라)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기꺼이 죽어가야 하는 병사의 동물적 본능을 충족시킬 방도를 찾기 위해 분주했고 무슨 비인간적인 상황이 빚어지든 상관하지 않았지.

태평양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이 참전을 선언하자 징집에 응한 신병들이 떼로 몰려들었어. 대규모 훈련소가 설치되고 그 인근에는 어김없이 ‘군대에 필요한’ 여자들이 몰려들었지. ‘점잖은’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자 미군 장교가 했다는 말은 전쟁의 단면을 마치 수박 속 보듯 드러내준단다. “안 그러면 여러분의 딸들이 다친단 말입니다.”

... 

1922년생 김학순 할머니라는 분이 계셨어. 그분은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여읜 후 어렵게 살다가 1939년 양아버지에 의해 일본군에 넘겨졌고 ‘위안부’ 생활을 하게 돼.

... 

소녀상은 전쟁에 내몰려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했던 그 모두의 기억과 눈물과 아픔의 상징이야.


김학순 할머니가 독립운동가의 자녀분인 것은 처음 알았다. 평범한 아버지의 딸이라고 덜 아플 리 없지만 기가 막힌 것은 사실이다. 지난 주에 '귀향' 시사회를 다녀와서 더 먹먹해진다. 영화 개봉은 아직 한달이 더 남았는데 꼭꼭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으면!


파리협정에 관한 기사도 꽤 집중해서 읽었다. 도쿄의정서를 대체할 새 기후변화협약도 궁금했고, 선진국이 앞서서 망가뜨린 지구 환경에 대해서 똑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개도국들의 반발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눈길이 갔다. 


미국은 2001년 교토의정서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에는 손상이 갔지만, 그게 다였다. 국제법 원칙으로 보면 조약의 가입과 탈퇴는 국가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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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이 되기까지 기온 상승 폭을 적어도 2도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는 과학계의 경고가 빗발치고 있었다. 이 기준을 맞추려면 210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75기가톤(Gt)으로 억제해야 한다. 현재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2100년은커녕 앞으로 30년 안에 도달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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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책 <코드 그린>에서 자신이 중국에서 겪었던 일화를 썼다. 프리드먼은 2007년 중국의 ‘그린 카 대회’에서 연설하기로 했다. 그는 중국의 산업 엘리트들이 환경 이슈만 나오면 ‘역사적인 책임’ 문제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리드먼은 이렇게 연설한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옳다는 말을 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차례가 맞습니다. 마음껏 환경을 파괴하세요! 중국이 오염으로 숨 막혀 죽는 걸 막는 데 필요한 모든 청정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도구를 우리가 발명해 여러분에게 파는데 5년이면 족할 겁니다. 그쪽 산업에서는 우리가 여러분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주세요!

이 연설은 기후변화 이슈의 패러다임 변화를 포착한다. 탄소 감축 이슈는 거대한 새 시장을 창출할 것이고, 늦게 참가할수록 손해가 될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는 누가 더 의무를 지느냐로 다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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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개발 메커니즘(CDM:선진국이 개도국에 기술과 자본을 투자해 온실가스를 줄이면 그를 선진국의 감축량으로 인정해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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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는 결국 고갈된다. 중동 산유국이 돈은 정말 많은데, 미래 먹을 거리가 있어야 한다. 글로벌 저탄소 시장이 형성될 때 선제 투자를 하면 중동의 미래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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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폰은 프레온 가스의 오존층 파괴 문제가 불거지자 대체물질 개발에 돌입했고, 몬트리올의정서 채택 시점에는 개발 직전 단계까지 와 있었다. 프레온 가스 사용을 규제하면 듀폰은 시장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새 시장이 열릴 참이었다. 환경과 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몬트리올의정서는 성공적으로 작동했고, 국제 환경협력 사례로 손에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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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협정의 핵심 방향성은 탄소 감축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시장 메커니즘을 전면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탄소 배출이 지금보다 비싸지게 만들고, 저탄소 에너지 사용이 화석연료보다 유리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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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협정은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모으기로 했는데,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개발도상국 지원과 저탄소 에너지 기술의 초기 투자비용으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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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협정의 핵심 전략은 탄소 감축이 의무가 아니라 기회가 되는 세상을 디자인하자는 것이다. 


‘행복한 교육’을 입에 달고 사는 어떤 나라- 기사는 부러움과 안타까움이 크게 교차했다. 

 

핀란드 헬싱키 외곽의 어느 학교를 방문했을 때다. 11학년(고2) 교실의 영어수업을 지켜보았다. 평이한 수업인데도 학생들의 집중력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수업을 참관하다가 교사의 양해를 구하고 물었다. 학교에 오는 것,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냐고, 그런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놀랍게도 30명 정도의 반 학생 전체가 이상한 질문이라는 뜨악한 표정을 하면서 손을 든다. 내친김에 이 공부가 여러분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냐는 물음에도 당연히 그렇단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그대로 사회나 인생과 연결된다고 믿는 아이들이 보이는 신뢰다. 


부럽고, 부끄럽다.


기사들을 읽다가 관심이 가서 '찜'한 책들이 여럿 나왔는데 그중 가장 눈길이 간 것은 고종석의 독서한담이었다.


<아주 낯선 상식>의 핵심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호남의 세속화야. 왜 광주는 세속도시가 아니라 신성도시여야만 할까? 왜 호남 사람들은 제 세속적 욕망을 풀어놓으면 안 되는가? 왜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굴레’에서 해방되지 못하는가? 한번 생각해보자고. 호남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 견줘 정치적으로 더 윤리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을까? 선거 때만 되면 이른바 개혁 정당에 몰표를 주고도, 그 몰표 때문에 지역주의자라는 조롱을 받아야만 할까? 심지어 다른 지역 출신의 개혁 정당의 지도자는 왜 꼭 영남 사람이어야 하지? 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은 대통령선거에 나가선 안 되지? <아주 낯선 상식>은 이런 당연한 질문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변을 시도하고 있어. 


정말, 아주 낯선 상식이었다. 그러게... 왜 광주는 세속도시가 아닌 신성도시를 강요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것도 참 미안하고 염치가 없게 느껴진다.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게 잡지라지만 글밥이 적은 책이 아니다. 게다가 주간지... 난 정기구독하면 200% 밀릴 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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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1-21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하게 밀리고 있어요ㅠ

마노아 2016-01-21 13:00   좋아요 0 | URL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계시군요! (>_<)

순오기 2016-01-21 0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녀상 표정은 정말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듯...
지난번 서울에서 이걸 사고 싶었는데 모두 반품돼서 다음 호를 샀어요!

마노아 2016-01-21 13:01   좋아요 0 | URL
연말에 교보문고 광화문 갔다가 뭔가 사고 싶어서 휙 둘러봤는데 이 책이 눈길을 끌더라구요.
사오기를 잘했어요. 정말 주옥같은 기사들!!

다락방 2016-01-21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호는 특별히 더 좋았어요. 그래서 그 주에 만난 친구들에게도 하나씩 사서 선물했답니다. 시사인은 정기구독의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16-01-21 13:02   좋아요 0 | URL
그쵸? 정기구독을 해야 시사인에도 도움이 될 텐데 말입니다.
올해의 계약이 잘 끝나면 정기구독 하는 걸로...;;;;

책읽는나무 2016-01-2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독하고픈데 밀릴까봐 주저주저하게 되네요ㅜ


마노아 2016-01-21 13:02   좋아요 0 | URL
밀려도 의미가 있는 구독이 되지 않을까... 지금 막 흔들리고 있어요.(>_<)

7tl40qns 2016-01-2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미있는 구독.. 구독전화 많이 받았었는데 오늘이라도 신청해야할 것 같아요. 첫창간 때 정기구독하고 몇년 뒤 해지했었거든요. 늘 죄송한 맘이었는데..
덕분에 의미있는 일을 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마노아 2016-01-22 01:29   좋아요 0 | URL
네네, 의미있는 구독이 분명 될 겁니다. 도라에몽 아이콘처럼 저도 방긋 웃게 되네요. 활짝~ ^^

초록장미 2016-01-21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향 개봉하는군요. 너무너무 마음 아플 것 같지만 꼭 보러 가야겠습니다.

마노아 2016-01-22 01:30   좋아요 0 | URL
적당히 거리를 두고서 영화를 찍은 것 같아서 더 좋았어요. 담담하게 말을 하니 더 아프긴 했지만요.
개봉이 기다려집니다.

꼬마요정 2016-01-2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밀리고 있답니다. 귀향은 스토리펀딩 때문에 알게 됐는데 너무 기슴이 아파서 못 볼 거 같아요. 표는 두 장 확보했는데 말이죠..ㅠㅠ

마노아 2016-01-24 01:50   좋아요 0 | URL
저는 더 뮤지컬 월간지도 밀리고 있는데 주간지의 압박이란...ㅜ.ㅜ
귀향은 참 아픈 작품이지만 그래도 꼭 보고 오셔요. 그래야 동행하시는 분도 덕분에 새기고 오실 테지요. ㅠ.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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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젊은 선생님이다. 1학기 때 학부모 상담 시간에 아버지가 한분 오셨는데, 언뜻 언뜻 듣기에도 이분이 자꾸 말이 짧아지는 거다. 눙치고 들어가는 말투를 쓰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이 짧아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자식 담임 선생님께 그러는 건 좀 아니다 싶어서 신경이 쓰였다. 이분은 2학기 상담 때도 또 오셨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말이 자꾸 짧아지곤 했다. 상대가 거의 자식 뻘에 가까울 만큼 젊디 젊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상대가 '여자'라는 게 이분의 말이 짧아지게 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마주보고 앉은 상대가 젊디 젊은 '남자' 선생이었다면 그렇게 수시로 말을 잘라먹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런 사례는 정말 비일비재하다. 아마 남자로 살고 있다면 잘 못 알아차렸을 수 있겠지만, 그런 취급을 늘 당하곤 하는 여자로 살다 보니 자주 목격하고 또 당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이 정도야 뭐... '귀여운' 수준이다. 이 책에서 통계로 말해주는 그 숱한 강력범죄와 비교한다면 말이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전 세계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생각하면 참으로 무섭다가도, 그럼에도 자국 국민들에게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제 식구들은 감싸는구나... 싶다가도, 그런 미국조차도 여자와 남자는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는구나 싶어서 적이 놀랐다.


중동 국가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없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 강간자의 주장을 반박할 다른 남성 증인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자신이 당한 강간을 스스로 증언할 수 없다. 당연히 그런 증인은 드물다. -17쪽


그러니까 이런 중동 국가와 비교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매일 약 세명의 여자가 배우자나 옛 배우자에게 살해당한다. 미국에서 임신부의 주요한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강간, 데이트 강간, 부부 강간, 가정폭력, 직장 내 성희롱을 법적 범죄로 규정하려고 애써온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핵심 과제는 우선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19쪽


이 나라에서는 9초마다 한번씩 여자가 구타당한다. 확실히 짚어두는데, 9분이 아니라 9초다. 배우자의 폭행은 미국 여성의 부상원인 중 첫 번째다.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매년 발생하는 그런 부상자 200만명 가운데 50만명 이상은 의료 처치를 받아야 하고 145,000명 가량은 입원해야 한다. 사후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겠다. 미국 임신부의 사망원인 중 수위에 꼽히는 것 또한 배우자 폭행이다. -49쪽 


이런 숫자는 경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조차도!!


물론, 반대 사례도 있다. 전 IMF 총재 스트로스 깐 사건의 사례 말이다.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이렇게 압도적인 권력과 명성을 가진 남성을 상대로 훨씬 가난하고 힘없는 여자가 고발을 한다면.... 언론에 나오기나 할까 모르겠다. 


아무튼,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거나 혹은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보는 그런 시각은 인류 역사 내내 있어 왔고, 21세기에도 사실 만연해 있다.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투쟁해 오고 목숨 바쳐 싸워온 덕분에 겨우 이정도 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그렇게 피흘려서 온 게 여기까지라는 것.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남자들은 볼멘 소리로 난 그렇지 않은데... 라며 불쾌해 한다. 싸잡아 욕먹는 불쾌감을 당연히 이해한다. 일면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한번씩 생각해 줬으면 싶다. 어디서나 언제나 위험과 공포에 노출되는 불안함과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슬픈 일인지. 가수 김범수가 어릴 적에 골목길을 걸을 때 앞에 여자가 있으면 일부러 발소리를 더 크게 내는 장난을 쳤다 라디오에서 얘기한 기사를 보았다.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앞에 가던 여자가 도망치듯 뛰어갔다고. 철없던 어린 시절의 장난임이 분명하겠지만, 그걸 방송에서 이야기할 정도면 아직도 골목길에서 불안감에 심장 펄떡이며 뛰어야 했던 여자의 공포 따위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무심함이 돌멩이 하나로 개구리를 죽이는 것이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납득하지 못하지만 여자들이 늘 노출되어 있는 세상의 돌멩이를 말이다. 


시사인 434호에 신윤영 씨가 쓴 글이 인상 깊었다. 늦은 밤 자신의 뒤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갑자기 자기의 어깨를 덥석 잡았던 것이다. 여자는 공포에 질려 뭉크의 '절규' 같은 표정으로 보았고, 남자는 "동네에서 몇 번 봤는데 혹시 시간 있으시면..."


하아, 센스 없는 건 둘째 치고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일갈하고 싶다. 필자는 이렇게 썼다.


너무 화가 나서 무서운 것도 잠시 잊었다. 으슥한 밤길에서 이따위 묻고 거친 방법으로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다니, 당신은 당신과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어떤 공포와 불안감을 참으며 사는지 전혀 모르지? 그런 건 관심도 없지? 왜 허락도 없이 남의 몸에 다짜고짜 손부터 대냐고! 


하지만 필자는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무슨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라고. 나름의 임기응변으로 그 자리를 피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여자들은 철이 들기 전부터 '낯선 남자'에 대한 공포를 집요하게 교육받는다. 밤늦게 다니면 위험하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성범죄의 표적이 된다, 남자는 성욕을 제어할 수 없다 등등. 뼛속까지 스민 교육의 결과로 뒤에서 걸어오는 낯서 남자를 불안하게 돌아본다든가 계단에서 가방으로 스커트를 가리기라도 하면 '왜 가만히 있는 남자들을 치한 취급을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듣는다. 몸을 드러낸 옷을 입으면 '헤픈 여자' 취급을 받고 몸을 꽁꽁 싸매면 '수녀원에서 나왔느냐'며 비웃음을 받는다. (...) 사실 성범죄의 원인은 여자의 옷차림도, 여자의 '평소 행실'도 아니다. 원인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단 하나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주입하며 마치 통제 안 되는 짐승("남자는 다 늑대야")인 양 남자 전체를 매도하는 것보다는 남자아이들에게 '허락 없이 남의 몸에 손을 대면 안 된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정말 싫은 거다'라고 가르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분명 대부분의 남자는 선량한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99%가 좋은 사람이라 한들, 그렇지 않은 나머지 1%의 파괴력이 너무 크다. 결국 그 1% 때문에 나머지 99%까지 경계하게 된다. 혹시 늦은 밤 눈에 띄게 불안해하며 종종걸음으로 당신 앞을 걸어가는 여자를 보게 되더라도 너무 기분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그녀가 당신을 겁내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당신이 인상이 나쁘다거나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그냥 당신이 남자여서 그런 거니까. 그날 밤 이후 나는 해가 지면 무조건 택시를 탄다. 


비슷한 이야기가 이 책에도 나온다.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드넓은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강간을 당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아니면 아예 나돌아 다니지 말라고 일렀다. 건물 안에 있어라. (감금은 호시탐탐 여성을 감싸려고 대기하고 있다.) 그러자 웬 장난꾸러기들이 다른 처방법을 주장하는 포스터를 내붙였다. 해가 진 뒤에는 캠퍼스에서 남자를 몽땅 몰아내자는 처방이었다. 그것은 똑같이 논리적인 해법이었지만, 남자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러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 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111쪽


겨우 한 남자의, 그러니까 1%의 나쁜 새끼 때문에 대부분의 여자들이 겪으며 감수해 오며 살아왔던 그 숱한 시간들을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충격이나 억울하다는 표정 대신에!


기사를 쓴 피터 베이커가 우리에게 환기해준바, 제노비스가 강간당하고 살해되는 광경을 자기 집 창문으로 목격한 이웃들 중 일부는 낯선 남자가 저지른 야만적인 폭행을 남편이 ‘자기’ 여자에게 권리를 행사하는 장면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남자가 아내나 연인에게 가하는 폭력은 대체로 사적인 일로 치부되었던 것, 그것이 분명 중요한 문제였다. -188쪽


이 부분을 보면서 또 다시 소환된 기억이 있다. 1989년이다. 이모가 강도를 만나 돌아가셨고, 형사들은 이모부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새벽에 화를 당했는데, 비명을 지르는 여자 목소리가 이웃들이 듣기에 '부부싸움'하는 것처럼 들렸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이모의 시신은 연쇄살인범의 짓답게 참혹했다. 그 지경이었는데도 누군가는 그걸 남편이 ‘자기’ 여자에게 권리를 행사하는 장면으로 오해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 책은 읽는 내내 무한공감에 빠져들기 때문에 무한좌절에 빠지기도 쉽다. 그렇지만 한숨부터 쉴 필요는 없다. 꽤 슬픈 이야기지만, 이 기막힌 이야기를 저자 리베카 솔닛은 제법 유쾌하게 풀어나가고 있으니까. 원래 투쟁에는 유머가 필요한 법. 심각하기만 하면 이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버텨낼 수 없다. 


여기 그 길이 있다. 천 마일은 될지도 모르는 기나긴 길이다. 이 길을 가는 여성은 채 1마일도 걷지 못했다. 그녀가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되돌아오진 않으리란 것은 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걷지 않는다. 수많은 남자, 여자 들, 그보다 더 흥미로운 다양한 젠더의 사람들이 함께할지 모른다. 여기 판도라가 손에 들었던 상자와 지니가 풀려난 호리병이 있다. 지금 그것들은 감옥과 관처럼 보인다. 이 전쟁에서 사람들은 죽을지언정, 생각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2014] -227쪽


'페미니스트' 혹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쓰기 불편했다.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이 단어에 씌어진 이미지가 말하는 사람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역자가 지적했듯이 그러나 젠더를 빼고서 젠더를 말할 수는 없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선언은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에 씌워진 부정적 의미를 걷어내고 현재에 필요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그 용어를 되찾겠다(reclaim)는 뜻이다. 용어가 문제적 현상을 호명함으로써 변화를 돕는 도구라고 할 때, 날이 너무 무뎌서 아무것도 벨 수 없는 도구는 쓸모가 없다. 휴머니즘이나 평등주의라는 대체 후보 용어의 경우가 그렇다. 젠더의 문제를 다룰 때 젠더를 빼고 말할 순 없다.  -232쪽


이 책을 읽으면서, 저 키링을 달면서 한 번 더 곱씹고 한 번 더 되새기며 페미니즘을 상기했다.  

설치고, 떠들고, 말할 것이다. 더 크게, 더 힘차게!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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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6-01-15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면서 읽다가 이모님의 사연은 너무나 마음이 아프네요. 게다가 부부싸움으로 오해받은 이모부의 일이나... 정말 부부나 연인관계는 그럴 수 있다고 치부하는 거 넘 화나요. 그것 때문에 죽는 사람이 얼만데...
남초 회사에서는 재가 담당잔데 사장없어요? 라고 묻는 인간들이나 여자만 있는 여초 회사에 가도 담당자보다 외부 남자들 얘기를 더 신뢰하는 사장한테서 유리천장을 경험하고 멘붕에 빠질 지경입닏다

마노아 2016-01-16 17:23   좋아요 0 | URL
고문이 여전히 실행되던 시절인지라 당시에 이모부가 열흘 간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을 당했는데, 더 있다가는 너무 힘들어서 자기 짓이라고 거짓 자백을 할 지경이었대요. 다행히 열흘 째에 진범이 잡혔지만요. 참 소설 속에서나 낭놀 법하 일이죠.ㅜ.ㅜ
남초 회사건 여초 회사건 어디나 여자들의 위치가 참 갑갑하지요. 이놈의 유리천장! 그래도 꾹꾹 버텨냅시다. 꼭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