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민음사 세계시인선 57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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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단편소설로 유명했던 보르헤스였기에 이 책도 소설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시집이었다.  덕분에 그가 실명한 이후로는 시작 활동에 전념했었다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시’라는 장르가 워낙에 주관적인 반응을 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이 쓴 시라도 전달이 용이하지는 않다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외국 사람이 쓴 시, 그것을 번역한 것을 읽을 때의 감동이란, 상당히 후한 점수를 준다고 하더라도 쉽게 채워지지가 않곤 했다.   게다가 ‘시’라고 하면 함축미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이렇게 장문의 시란 것은 역주를 읽어 내려가기에도 바빠서 시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기는 참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 이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서양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것은 정서적으로, 혹은 태생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거기에 대해 어떤 부정적인 느낌이 든 것이 아니라, 조금 의아하고 한편으로는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군 혹은 혁거세, 김수로왕... 하다 못해 견우 직녀라든지... 모두가 대강은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정서적으로 아주 가깝게, 그래서 늘상 회자되곤 하는 그런 주제는 되지 못하지 않는가. 

 

오히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를 더 가깝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을 보면서, 그쪽 문화권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동방의 작은 나라 코리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지만, 우리가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 줄줄이 꿰어가며 시험 공부를 하는 지금의 교과제도(그나마도 세계사는 선택이지만..;;;)에 대해 한층 마음이 불편해졌다. 

 

시집을 통해 시인이 의도하고자 했던 여러 메시지들은 얄팍한 지식을 가진 나같은 독자가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이 책을 통해서 몇몇 가지 단상들을 떠올리며 조금은 반성도 해 보고 아쉬워도 해보는 그런 시간을 가졌음에 만족해야 할 듯 싶다.


ps. 역자의 실수 한 가지.  “샤를마뉴 대제”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  ‘마뉴’라는 단어에 이미 ‘대제’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역자의 탓이라기 보다 과거 그렇게 표기된 교과서로 배운 우리의 불운을 나무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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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0-24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어렵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어렵게 읽은 만큼 머리에 많이 남아 있더군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마노아 2006-10-25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경책을 읽어도 영어로 어렵게 읽은 구절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 도종환 에세이
도종환 지음 / 사계절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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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센티멘탈의 극치?  누군가의 서평이 인상적이어서 골라잡은 책이었는데, 나의 정서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선입견이랄 수도 있고 편견이랄 수도 있는데, 옥고를 치른 사람의 글들은 은연 중 어두운 분위기가 깔려 있어, 읽다 보면 나 자신도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전에 신영복씨의 “나무야 나무야”를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 몹시 강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아마도 우리의 어머니 세대의 분들이 읽는다면 그 감정과 정서에는 몹시 맞을 것 같다.  그 세대간의 간격을 채우지 못하고 우리 취향은 아니야! 하고 잘라 말하는 것이 몹시 안타까운데, 솔직히 안 맞는 것은 안 맞는 것이다...ㅡ.ㅜ


어쩌면 이렇게 에세이 형식의 글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또한 소설처럼 가상의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닌 나와 동시대 사람의 글이라는 점에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동의하지 못하는 생각의 차이들이 이런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어느 성우의 팬클럽 창단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 좋은 목소리로 시낭독을 부탁했더니 “접시꽃 당신”을 낭독해주셨다.  목소리야 물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그 자리에 참석했던 팬들의 연령층을 생각할 때 시 선택은 그야말로 미스였다.  그때도 느낀 건데, 아마도 그 성우 분이 자랄 때의 정서에는 도종환씨의 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어느덧 나 역시도 이 가볍고 지나치게 빠른 세태에 물들어 있어서 옛스런 정취, 고아한 분위기는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섭섭한 기분도 들었다.  그럼에도 두 번 읽으라고 하면 역시 고개 저을 작품.  나중에 마흔 즈음 되어서 읽으면 또 다를 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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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
데이비드 그레고리 지음, 서소울 옮김 / 김영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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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앞 이야기였던 "예수와 함께 한 저녁식사"에서 주인공 닉은 나사렛 예수로부터 저녁 식사를 받게 된다.  친구들의 장난일 거라고 여긴 그는 특별한 이벤트를 상상하며 저녁 식사에 응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말 자신을 '예수'라 칭하는 사람이었다.

이 황당무계한 식사 시간을 억지로 앉아 있던 그는, 곧 상대로부터 자신의 갈급한 마음이 채워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 무렵엔 그가 예수라는 것을 인정하고 만다.  그로부터 그의 삶은 달라졌다.  그는 아내에게도 더 좋은 남편이 되고자 하고, 딸에게도 더 많은 시간을 쏟는 아버지가 된다.  성경을 가까이 하고 기도 모임에 나가고, 아내도 함께 교회에 가기를 바란다.  이렇게 갑자기 '예수쟁이'가 되어버린 남편을 부인은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일에 파묻혀 집안 일에 무관심했던 남편이 더 좋았노라고,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혼까지도 생각하며 출장 길에 오른다.  그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상담사로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우연히 자신의 고민에 대한 조언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이 끝나갈 무렵에는, 그가 남편이 만났던 바로 그 나사렛 예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이 책은 1권을 읽어야?제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솔직히 '재미'로 따진다면 1편이 더 신선하고 유머있었고 또 더 감동적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종교' 안의 기독교, 그 안의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역시 별 다섯의 흡족한 독서가 되었다.

닉의 아내 매티는, 어려서부터 보아온 종교인들의 모습에서 불신을 쌓았고, 신을 인정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그녀와 동행하게 된 남자 역시 종교를 미워한다고 대답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숱한 악행들, 덮여진 위선과 가식들을 남자는 탄식으로 설명한다.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남자는 '예수'를 그러니까 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 부정할 수 없다.  그가 곧 그 신이니까. ^^

여자의 속 말은 모두 좀 더 옅은 색깔로, 그리고 보라색 구름이 달려서 표시되는데(따옴표 없이) 시종일관 비아냥과 짜증 혹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랬던 그녀도 비행기가 행선지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으로 자신과 있어준 이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다.  예수는 그녀에게 생각할 거리, 도전할 거리, 그리고 변화될 기회를 제공해 주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1권과 달리 이 책은 열린 결말로 보이는 채로 끝이 났다.  뒤에는 목사님 두 분의 추천사 비스무리한 글이 실렸는데, 본문의 내용보다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혹은 직접적으로 종교와 예수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게다가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엄청 웃겼다.(엄마한테 얘기해줘야지..;;;)

이 책은 1권과 더불어 상자에 묶여서 나오는 것을 교보문고에서 보았는데, 열어보니 수첩도 부록으로 들어 있었다.  상자에 담겨 있으니 고급스러워 보여서 선물용으로도 참 좋을 것 같다.  탐이 났지만 1권을 이미 샀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3권 시리즈도 나올 지 모르겠지만 언제든 환영이다.  예수님이 수퍼맨처럼 바지 위에 팬티를 입은 일러스트는 가히 압권이었다.  이젠 익숙해져서 이 그림체도 참 마음에 든다. ^^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책인데, 불편해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줄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좀 더 고민해야 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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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 - 임길택 선생님이 가르친 산골 마을 어린이 시 보리 어린이 22
임길택 엮음, 정지윤 그림 / 보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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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앞의 작품은 헤어날 수 없는 늪과 같은 깊은 절망이 아이들의 글 속에도 깊이 묻어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에 비해선 보다 밝고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린 아이들이 가족의 생계를 함께 걱정하는 부분은 비슷하지만.

이 책의 구성은 계절과 맞물려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를 그곳의 자연과, 그곳의 농사와 생활과 함께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소박하고 순수하지만 또 나이보다 성숙하고 철이 들어 있다.  아이들의 시 속에는 고단한 일상이 녹아 있고, 그럼에도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이 안락하게 기대어 있다.

그림도 앞의 작품에 비해서 훨씬 가볍고 정겹고 따스한 느낌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시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 시의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더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앞서 읽은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라고 하겠다.

20년 전에 이 시를 썼던 아이들은 이미 다 자라서 어른이 되어 있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남아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서울과 같은 도시로 가서 새로운 일을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많이들 그리울 테지.  시골에서 살아본 적 없는 나같은 도시 촌뜨기도 이렇듯 아릿하게 자연과 벗삼아 살던 시간을 그리워하는데, 그들은 오죽할까.  특히나 이렇게 모든 곡식이 익어가는 추석을 앞둔 가을철에는 더 그럴 테지...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그 건강했던 기억들로 그들의 삶은 지금도 비어 있음이 아닌 채워있음으로 일관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돕던 그 고사리 손을, 그 예쁘고 건강한 마음을, 지금도 지키며 살고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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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 임길택 선생님이 가르친 탄광 마을 어린이 시 보리 어린이 21
임길택 엮음, 김환영 그림 / 보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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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월급

6학년 정재옥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아버지 월급 쓸 것도 없네.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랄 때 행복하다.  너무 늦게 철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너무 일찍 철이 들어야 하는 것은 서럽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사북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둔 어린이들의 글을 모은 시집이다.

아직 어리기만 한 초등학생들인데, 아이들은 아버지가 얼마나 힘겹게 일하시는지, 월급날에 아버지 어머니가 왜 더 서러운지를 알고 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절대로 광부가 되지 말아라 하시고,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이 커도 광부가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체념하듯 중얼거린다.

이들의 고단한 삶은 그림을 통해서도 절절하게 전해진다.  마치 판화를 찍은 것같은 굵은 선의 그림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탄광만큼 까맣고 깊은 동굴처럼 보인다.  



산비탈에 난 갱도에 줄줄이 들어가 있는 것은 까만 얼굴, 까만 손의 아버지들... 눈조차 표시되지 않을 만큼 까만 점으로 보이는 마음도 까맣게 탄 아버지들이다.  재생지처럼 보이는 약간 누런 종이는 그러나 만져보면 매우 부드러운 촉감인데, 판화같은 이 그림들에 잘 어울리는 질감을 갖고 있고, 거의 흑백으로 묘사되는 그림들 중에 간간히 빨갛게 칠해진 색감들이 그럼에도 아이들이 버리지 못하는 희망처럼 보인다.

투정부릴 나이에 이미 투정조차 사치라는 것을 아는 가난한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었고,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 마음이 언제 아픈 지를 알고 있다.  아픈 동생을 돌봐 주고,  형님 누나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보다 넓고 그러나 동시에 그만큼 지쳐 있다.

막장

6학년 노영민

나는 지옥이

어떤 곳인 줄

알아요.

좁은 길에다

모두가 컴컴해요.

오직

온갖 소리만

나는 곳이에요.

 

아이들은 장차 자신들이 어른으로 살아갈 세상을 장미빛 미래로 보지 않는다.  대물림될 광부로서의 숙명을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어린 마음이, 아직은 순수하게 빛나고 있는 게 다행이면서 또 그래서 참 아프게 느껴진다.

나도 광부가 되겠지

6학년 김선한

검정 페인트의 옷에

철모같이 단단한

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동굴에 들어가

탐험을 하게 되겠지.

그때 까만 얼굴에 총총한 눈을 하고 있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자신들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만 동굴이 더 이상 '탐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겠지만, 나는 이 책이 그들에게 '상처'가 아닌 '추억'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안쓰러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맘껏 기대어 투정도 부리고 어리광도 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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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30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학년 아이들이 쓴 어린이시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쓰럽네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 임길택님이 엮은 동시집의 시들은 대개 이렇게 꾸밈없더군요. 말장난이나 부리는 다른 어린이시나 동시와는 다르게요.

마노아 2006-09-3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솔직하고 진솔해서 더 아프죠. 임길택님 다른 책들도 찾아보려구요. 역시 아플 것 같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