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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 Pamphlet 1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05년 10월
평점 :
예전에 장에서 용종을 제거했던 엄마는 지난 주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셨다. 그 전 주 검사에서도 별 문제 없었고, 그저 확인만 받고 오면 된다고 여겨서 혼자 조용히 병원으로 가셨는데, 한 시간 쯤 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보호자분 병원에 오셔야겠습니다."
그 전화를 끊고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대체 왜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을까? 큰병이 있는 것일까? 온갖 상상이 머리 속을 휘젖고 다녔다. 옷을 챙겨입으면서 눈물부터 앞서 마음이 진정되지를 않았다.
스무 살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22년 전에 자궁암을 앓으셨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으셨다. 내 나이 이제 서른인데,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인데도, 혹시라도 엄마마저 잘못 되시면 내가 고아가 되는 거야? 라는 생각이 치솟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예전에 혹을 제거했던 곳 옆에서 더 큰 혹이 더 위험하게 자라고 있었다. 바로 수술을 받아야 했고,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나 나온다 한다. 엄마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난 위로 언니도 둘이 있는데, 가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부모가 세상에 안 계신다고 상상만 해도 너무 무서워서 다 큰 어른인데도 나는 펑펑 울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이토록 어린 아이들이, 이토록 많은 고아가 되어, 이토록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온 세상에 이렇게 아픈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나는 새삼 나의 무관심이 얼마나 살벌한 무기인가 깨달으며 함께 아파했다.
인구 400만의 아체는, 인도네시아 국토의 1/30에 해당하는 면적이지만 아름다운 풍광과 천연자원의 보고인지라 수탈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에 의해 점령된 이후 30년이나 자유를 위해 투쟁을 해왔던 그 처절한 땅에 쓰나미가 덮쳤다. 그 쓰나미에 의해 40만 명이 희생되었다.
전 세계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쳐왔지만, 그것이 아체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지는 않았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 때문. 그나마 외국에서 온 구호의 손길과 기자들의 발길마저 뚝 끊기자 그곳은 더 살아남기 힘든 죽음의 땅으로 변해 갔다.
이슬람 최대 인구의 나라라는 인도네시아의 위상 때문에 이슬람권은 침묵하고, 기독교권인 미국과 서구는 종교적 분쟁을 피한다는 미명 아래 인도네시아 군부와 결탁하여 자원 수탈과 무기 수출이라는 '국익'을 노리며 또 외면하였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어 왔는데도, 여전히 울어야만 했다.
헌데, 그 아체에 희망이 되어주는 것은 외국의 원조나 관심보다도 그들 자신안에 내재된 올곧은 의지와 공생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을 고아원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포용하여 끌어안는 모습, 120m나 파내려가서 힘겹게 얻은 우물의 귀한 물을, 이웃 마을들과 함께 마시며 갈증으로 허덕이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 모습, 전통적으로 여성을 배제했던 마을 회의에 여성을 끌어안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가는 모습 등이 그들에게 새 미래가 오고 있음을 보게 하였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힘들게 지내고 있다. 그들 사이로 침투해 들어온 자본주의 경제에 의한 원치 않는 가난과, 인도네시아 정부의 굴욕적인 탄압과, 하늘도 버린 듯 무참히 덮쳐버린 쓰나미에 의해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그들이었다.
2005년 8월 15일, 마침내 인도네시아 정부와 자유아체운동 지도부는 30년 내전을 마감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3년에도 평화협정을 맺었다가 6개월 만에 다시 피의 살육을 저질렀던 정부인지라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다. 그나마 희망이 보이는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와 미국의 액슨모빌은 아체 유전자원을 2010년 경이면 거의 다 빨아먹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체에 자치권을 넘겨줘도 큰 손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현실적 계산이 그들을 평화협정의 길로 가게 했을 것이다. 자원이 그들에게는 재앙이 되었던 셈이니, 그 자원이 고갈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비극적인 계산(!)이 나오는 것.
아체인들은 비극적인 참사를 당하고도 살육이나 약탈, 폭력, 자살 등의 징후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 마음에, 희망을 걸어본다. 그 곧은 마음과 삶에 대한 자세에 그들의 미래를 내다본다. 슬픔을 공유하여 그 슬픔을 쪼개어 내는 그들의 그 선함이 그들에게 다시 큰 보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큰 진리일 거라고, 나는 애써애써 믿고 싶다.
아울러, 아체에 직접 찾아가 몸으로 발로 뛰고 온 마음으로 함께 아파하며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 주었던, 우리에게 그같은 실상을 전해준 박노해님과 나눔문화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의 슬픔에 기대어 나의 부유함과 나의 충족함과 나의 안전한 삶을 깨닫게 된 점에 미안함을 느낀다. 아체가 더 이상 울지 않게, 우리 주변의 그 누구라도 그리 섧게, 외롭게 울지 않게 돌아보는 나를, 우리를 기대한다.
아체의 어린 꽃들
아버지 어머니 어디에 있나요
보고 싶고 울고 싶고 안기고 싶어요
만일 생존해 있다면 어디에 계신가요
만일 돌아가셨다면 무덤이 어딘가요
내가 자라 성인이 되면 무덤을 찾아가
꽃을 바치고 기도를 드려야 할 텐데
슬픔은 우기처럼 쏟아져도
나에게는 비를 가릴 처마 하나 없어요
고통은 건기처럼 내리쫴도
불볕을 피할 나무 그늘 하나 없어요
우리 삶의 길은 하느님이 정해 놓으셨으니
비록 어려울지라도 하느님이 원하신 대로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건가요
아체의 언덕에 피어난 어린 꽃송이들
꽃은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렸어요
파도에 살아남은 작고 어린 꽃송이들
그 꽃은 이제 향기가 나지 않아요
바람에게 향기도 전해주지 못한 채
이대로 울다 시들어 가야 하나요
하느님, 우는 아이를 내버려 두지 마세요
넘어진 아이를 그대로 두지 마세요
당신마저 저를 내버려 두신다면
어린 몸에 돌을 지고 어디로 가야 하나요
쓰나미가 모든 것을 쓸어 갔을지언정
저는 아직 작은 손을 흔들고 있어요
저를 혼자 울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저를 혼자 울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