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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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년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었는데 오래 지나서 열어보게 되었다.  두꺼운 책에 비해 사진이 많고 글자도 큰지라 읽는 데에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볼 것을^^;;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 같은 인물로 더 가깝게 느껴지는 쿠바.  그러나 그 나라가 지금 어떤 체제 하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작가 유재현씨가 두 발로 밟고 두 눈과 귀 오감으로 체감하고 돌아온 쿠바의 모습은 지극히 놀라운 세계였다.  물질만능주의에 경쟁 최우선주의를 자랑하는 자본주의 우리 땅에선 짐작하기도 또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주의 체제.  배급으로 식량을 조달하며 경제수준은 개발도상국 수준의 빈국이지만 의무교육과 의료 체계만큼은 선진국 수준의 나라. 

꼭 필요한 에너지이지만 자연을, 환경을 훼손한다면 기꺼이 포기할 줄도 아는 나라.  한낮의 길가 낮잠이 노숙자의 시간 보내기가 아닌 시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인간의 자유가 될 수 있는 곳.  노동을 신성시 여기고 노동교육을 통해 평생교육을 이루는 곳, 인간적 혁명과 인간적 사회주의를 눈으로 보여준 나라.  그 모든 이름들 앞에 쿠바가 있다.

체제의 특성에서 오는 비효율성을 부정하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쿠바에서는 '공존'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다.  소수의 부자를 위해 다수의 가난한 자를 희생시키지 않는, 욕심을 버리고 나누는 풍요로움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멋쟁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베네수엘라로부터 원유를 공급받고, 그 결재를 의료 인력으로 대체한 것 역시 놀랍고 신선한 공존법이었다.

지금의 우리 체제와 사회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그들의 기본 마인드에 대해선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1차 지구환경회의에서 한 카스트로의 발언을 옮겨본다.  이 메시지가 우리 모두의 바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불평등한 무역, 보호주의, 외채가 생태를 공격하고 환경의 파괴를 조장하고 있다. 우리가 인류를 이 같은 자기파괴에서 구해내려 한다면 세계의 부와 기술을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일부 국가들은 덜 사치스럽고 덜 소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으로 세계의 대다수가 덜 빈곤하고 덜 굶주리게 될 것이다. 제3세계는 더 이상 환경을 파괴하는 생활양식과 소비관습을 이전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자. 정의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자. 모든 과학지식을 환경오염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용하자. 외채가 아니라 생태에 진 빚을 갚자. 인류가 아니라 굶주림을 사라지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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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12-0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재현씨 글에 관심도 있고 선물도 했으면서
정작 읽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마노아님 리뷰도 있고 하니 도전해 볼까요? ^^

마노아 2007-12-02 19:06   좋아요 0 | URL
도전해 보셔용~ 저도 유재현씨 다른 책들 더 읽어볼 생각이에요6^^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 고뇌의 레바논과 희망의 헤즈볼라, Pamphlet 002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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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쓰나미가 덮쳤던 인도네시아를 다녀와서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를 썼던 박노해씨.  이번엔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은 레바논 현장을 다녀와서 이 책을 썼다.  우리에겐 잊혀졌고 묻혀진 진실을 그의 사진과 글이 적나라하게 양심을 파고든다.

작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연일 뉴스를 장식하던 소식들에 혀를 차며 마음 아파하기도 했지만, 어느덧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후 복구는 어찌 하고 있는지 우리는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 가책도 없이.

전쟁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쟁의 대상은 '레바논'이 아니었고 무장정치조직 '헤즈볼라'였다.  마치 탈레반처럼 불법 무장 단체를 떠올리기 쉽지만,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합법적 정당이었고, 전체 인구의 70%의 지지를 받는 정치조직이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부 레바논의 가난한 이들이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위험도 위협도 되지 않는, 그저 평범한 민중들이었다는 것... UN 대사관으로 몸을 피신해 보지만 거기서도 구조를 바랄 수 없었던 그들에게, 온 세상은 등을 돌린 '남'이었다.  누구도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한밤중에 박노해씨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누가 그들을 그렇게 외롭고, 서럽게 죽어가게 만들었을까.  우린 어찌 귀막고 입막고 살았던 것일까.  그 사연 속에 우리 사는 세상의 비인간성이, 무가치함이 다 드러나 있었다.  그 와중에, 어둠 속에 빛이 되어준 이들의 존재감이 유독 빛이 난다.  박노해씨가 전달한 나눔 공동체의 성금과 정성, 기도 한자락들은 그곳에서 낯선 외국인을 향해 경계와 방어의 눈빛을 풀어주기까지 했던 숨은 공로자가 되기도 하였다.

무기라는 것이 얼마나 빠르게 업그레이드가 되는지, 목표로 정한 표적을 조금의 오차도 없이 바로 피격하는 모습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 목표라는 것이 부자는 모두 비켜가고 항의할 곳 없는 가난한 민중들이라는 것, 기독교는 모두 비켜가고 이슬람 교도만 공격했다는 것 등에서는 적개심이 일었다.  이스라엘이 사용한 폭탄은 금속이 아닌 플라스틱인지라 사람 몸에 박히면 그 파편의 위치를 엑스레이로 판독할 수가 없는 무서운 무기.  게다가 그들이 박아놓은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서 지뢰의 지도를 요구하지만 절대로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 적이라지만 어찌 이렇게 악랄할까.  게다가 그들이 '적'으로 삼은 사람들은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사람만 상한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폭격시킨 주유소와 발전소.  그 덕분에 쏟아진 기름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레바논의 아름다운 모래사장과 해변을 시커멓게 오염시켜 놓았다.  이들은 세계의 관광객들을 잃어버렸고, 유명한 생선 요리까지도 잃어버렸다.  수천년 문화유적과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곳은 이제 폐허로 돌변해 버렸다.  레바논 국민뿐 아니라 인류의 소중한 유산까지도, 이스라엘은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이다.  역시나 오차 없는 그들의 무기로 말이다.

10년이 멀다하고 다시 찾아온 전쟁으로 레바논인들은 가족을 잃고 이웃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잃었지만 배우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는 여전히 불타올라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빈병을 주워 돈을 모은다.  죽어버린 가족들의 사진을 끌어안고 우는 아이들.  그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든 보듬어 보고자 박노해씨는 '그림 치유'를 선택한다.  지금 마음 속의 생각들을, 소망을, 기도를 그림으로 담아내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보여준 그림세계, 그들의 마음은 놀랍고도 아름답고 또 그만큼이나 슬펐다.





그런데 아이들은 증오와 미움보다도 '평화'를 더 갈망했고 또 추구했다.  이토록 어린 아이들도 사무치게 알고 있는 평화의 소중함을, 저들은... 어찌 이다지도 알지 못할까...

박노해씨는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부 중 한 사람인 나와프 무사위 국제국장과 면담시간을 가졌다.  30분 간 예정되어 있던 두 사람의 대화는 두시간을 훌쩍 뛰어넘으며 인류애를 나누었는데, '헤즈볼라'의 정신과 미래를 열변하는 그의 이야기에서 감동을 넘어선 전율을 느꼈다.  우리가 '정치'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 시큼하고 더러운 불편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깨끗하고도 투명한, 그리고 희망을 안겨주는 약속이 그들에게 있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침략에 대해서만 무력으로 맞설 뿐, 레바논 국민들의 안녕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치 집단이다.  심지어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일 때 병원건물을 방패막이로 쓰면 애꿎은 사람들이 다칠까 봐, 그 엄폐물을 적에게 내어주고 벌판에서 제 몸을 방패막이 삼아 싸웠던 일도 평범한 일화에 속한다.   적에게 한 약속까지도 지켜야 한다고 믿는 그들을 악용한 이스라엘은 지뢰를 설치해 놓은 곳으로 이들을 유인하는데, 헤즈볼라의 약속은 신성해야 한다며 죽음이 버티고 선 그 자리로 가겠다는 젊은이들이 쇄도할 정도였으니...

이러한 자기 희생과 정직으로 헤즈볼라는 레바논 전체 인구의 7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인들이 존경을 받는 세상.  적과 한 약속까지도 지키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스스로 입증하는 정당.  이들이 추진하는 기업활동도 존경을 받는 대상.  자본주의를 활용하면서도 진정한 평화와 공존을 추구할 수 있다니, 놀람에 놀람을 거듭하고 말았다.

그가 헤즈볼라다

말을 신성하게 하는 자
가난한 약자와 함께하는 자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자
적에게도 약속을 지키는 자
살아서 즐겁고 죽어서 빛나는 자
자신의 피로 평화를 심어 가는 자
하느님 이외에는 결코 무릎 꿇지 않는 자
바로 그 자신이다
바로 그 자신이다

이렇게 훌륭한 헤즈볼라를 이스라엘은 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었을까.  그들의 목표는 정말 '헤즈볼라'였을까.  설마 하니 '돈' 때문은 아니겠지?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아서... 어떤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화가 아니 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길 바랐다.  너희의 그 잘난 '성지' 때문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김 없이 목표는 '석유'였고, 저들의 자원이었다.  또 거기에 부채질을 한 것은 미국이었고, 그들의 목표 역시 석유로 통하는 경제적 이익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직접적인 행동으로 레바논을 찢어 놓았지만, 그들의 침략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한 우리의 잘난 나라와 그 이웃들은 그 무관심으로 레바논의 상처를 방관하였다.   강대국의 침략과 식민지살이까지 경험했고 또 분단국가로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남의 아픔을 너무 매몰차게 나몰라라 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침묵이, 훗날 어떤 식으로든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우리를 등돌릴 수 있는 저들을 원망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은 후회로 깨닫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또 다시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안 되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야 하는 우리들이지만, 이런 일들이 또 다시 벌어진다면, 그때는 외면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우리의 작은 도움이 누군가의 간절한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공포에 울게 하지 않고,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두 순 가득 내밀어 줄 수 있기를, 그런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희망한다.

침묵의 나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할 때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 성취한

자랑스런 나의 조국은 침묵했다


까나 마을에 폭격이 퍼부어지고

36명의 아이들이 학살당할 때

말 잘하는 나의 정부는 침묵했다


많은 나라들이 가장 강력한 말로
이스라엘의 학살을 규탄할 때
싸움 잘하는 나의 국회는 침묵했다


민주와 개혁을 거침없이 외치던

나의 대통령과 지도자들은

금처럼 찬란하게 침묵했다


코리아는 침묵의 나라
불의와 학살 앞에서는
금처럼 침묵하는 나라


일본이 독도를 건드릴 때마다
국제 심판이 오심을 내릴 때마다
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마다
즉각 애국투사로 소리치면서도


학교에서 내 아이가 무시당하고

밥집에서 내 순서가 뒤로 밀리고

거리에서 내 차가 추월당하면

즉각 정의의 투사로 돌변하면서도


대낮에 남의 영토를 침략하고

아이들과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야만 앞에서는
금빛 침묵으로 동조하는 나라

 

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코리아여
국익 앞에만 다이내믹한 나라여
네가 짓밟히고 피에 젖어 울부짖을 때
세계는 너의 침묵을 찬란히 돌려준다면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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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0-1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 저 책 집에 갖다놓고 벌써 몇달째 안 읽고 있는데.

헤즈볼라가 무조건 훌륭하다고 할수만은 없겠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여기에 우리가 있어요" 하는 말을 들으니 더 눈물이 나려고 하네.

마노아 2007-10-16 22:55   좋아요 0 | URL
그곳에도, 이곳에도, 우리가 손내밀 사람이 참 많이 있죠. 외면하지 않는 우리를 날마다 꿈꿔요.

2007-10-16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6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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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대니얼 고틀립은 심리학자이면서 가족문제치료 전문가이다.  그러나 또 동시에 그는 척추손상으로 전신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문상담가로서 4년 째 활동하고 있던 서른 셋 젊은 나이게 사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날아간 듯한 충격에 빠져 지내기도 하였다.  그 후 아내와의 이혼, 가족들과의 사별로 많은 아픔을 겪은 그는, 둘째 딸의 아들 샘이 자폐아 진단을 받으면서 또 다시 수렁 속에 빠지는 듯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장애와 싸우며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가꿔온 것처럼 손자 샘 역시 자폐를 이기고 삶을 지혜롭게 꾸려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 편지를 샘이 읽고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박사는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옛 이야기 들려주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 어떤 비바람을 맞았는지, 그리고 다시 열매를 맺어 새로운 싹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저 듣기 좋은 잠언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인생경험에서 알게 된 처연하고도 진솔한 이야기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적시고도 남음이 있다.  지금도 계속 자폐와 싸우며 날마다 조금씩 자라가고 있는 샘 역시 할아버지의 그 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기를 나 역시 소망해 본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누군가의 도움을 끊임 없이 필요로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가혹하기도 하며 서럽기도 한 형벌이다.  그러나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박사의 가르침대로, 그들은 몸과 마음이 다친 것일 뿐 영혼이 병든 것은 아니니까.  그것을 그들 자신이 먼저 인지하고 당당해질 수 있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본 성분은 자신에게 이미 있다는 것을 알고, 믿고, 또 의지하는 것 역시 자신의 몫이다.

박사는 샘에게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샘의 부모가 샘을 키우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당부도 꼼꼼하게 적어놓았다.  아이의 말에 귀기울여 줄 것, 아이의 싸움을 자신의 싸움으로 만들지 말 것 등등은 바다 건너 서로 다른 대륙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좋은 충고가 되고 있다.

샘의 그리고 우리의 하루하루가 소비적인 것이 아닌, 충분히 생산적인 시간들로 채워질 수 있는 지혜를 박사는 책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때로 눈시울을 적시며, 때로 부끄러운 반성과 함께 박사의 메시지들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활자가 크고 줄간격이 넓어서 책이 금세 넘어간다.  표지의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의 그림도 이 책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읽고서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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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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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내가 좋아하는 많은 지기님들이 극찬했던 그 책. 
관심을 가진 책에서 꼭 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은 어느 분의 서재에서 본 한 구절 때문이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를 사랑한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 그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라는 허탈한 질문과 함께.

 
   

책을 펼쳐 보니, 먹먹하고 막막한 인생은 저 이 한사람 뿐이 아니었다. 너무도 많은 목숨들이 먼지처럼 사라져간 노동 현장.
잃어버린, 아니 처음부터 갖지 못한 그들의 권익, 이땅 수많은 노동자. 모르고 살았지만 나 역시 그 중의 한 사람.

가난이 싫고, 차별하는 아버지가 싫고, 열심히 돈 벌어 동생들 뒷바라지도 하고, 못다한 공부도 다 하리라 청운의 꿈을 품고 강화에서 부산으로 갔던 김진숙씨. 십대의 그 나이에 세상의 강퍅함을 온 몸으로 받아낼 그 때에도, 자신의 남은 인생을 노동운동에 바치게 되리라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말못할 핍박이 해일처럼 밀려올 거라곤, 그분 역시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운명처럼 숙명처럼 안게 된 노동운동 덕분으로, 누군가는 권익을 찾기 위해 투쟁을 하고, 연대만이 살길이라며 두 손 맞잡고 힘을 보태었을 것이고, 이렇게 책 한권으로 그 마음들을 짐작해 보는 사람들도 있게 되었다.  그 눈물과 그 희생, 그 열정 모두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나였다면 못했을 거라고, 착잡한 변명과 함께......

수출 강국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그 이름의 견고한 성을 지키기 위해 너무도 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했다.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살이거나 본인부주의로 죽었다고 치부되고 말았던 기막힌 목숨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부당해고가 이어지고, 복직은 너무나 소원하고, 단식투쟁 끝엔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바라보며 다시금 져버리는 목숨들.  그리고 그 가난이 대물림되고, 가진 자는, 자본은 여전히 승승장구, 죄를 짓고도 옥살이 한 번 안하는 이 나라.  노동자의 희생의 역사 속에 이 나라 현대사가 고스란히 맞물려 있다.  그리고 그때 피눈물 흘렸던 이들의 자녀들은 다시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시간을 되밟고 있다.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이야기임을, 정규직의 미래가 곧 비정규직임을, 연대만이 곧 살길임을, 애석하게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며, 그들의 생존싸움이 나의 불편함보다 하찮게 여기며 살고 있다면, 당신 역시 이 땅의 무지한 죄인.

뉴스를 보다 보면, 얼마만큼의 사실과 진실이 보도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진다.  신정아 사건이 한참 뜨면서 정몽구 사건은 잊혀져 가고, 그와 비등한 사건들은 모두 잠재워져 갔다.  수년 전 연예인 X파일이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할 때에는 민주노총이었던가... 한참 파업 투쟁이 있을 때였는데 뉴스에서 쏙 사라졌었다.  의도적인 부풀림, 눈속임 속에서 더 중요한 이야기들, 더 급한 문제들이 잊혀져 간다.  소말리아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선원들처럼.

아끼고 아꼈던 사탕 한알이 독극물 검사까지 받아야 하는 간첩의 공작물로 치부되던 안기부 그 시절 이야기가, 사실은 지금도 음지에서 생존하게 만들어 주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 대선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강국으로 만들어 국민소득 4만불로 올리겠다고 큰소리 탕탕 치고 있지만, 그의 화수분 주머니는 문제삼지 않는 민주 대한민국.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경제'만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이 나라의 눈 먼 사람들. 갑갑하고 서글프고, 그리고 챙피해지기까지 하는 우리 사는 세상.

그 안에서, 그래도 희망 꽃피우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막연한 기대를 갖기에는 산재해 있는 문제들이 너무 커서 어설픈 웃음마저도 지어지지 않는다.  한미FTA라는 묵직한 이름 한 방이면 그대로 게임 끝일 것 같아서.  그렇게 걱정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는게 더 한심해서, 책을 덮으며 한숨과 함께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이런 세상을 살았다고, 그 세상이 지금도 이어진다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책이라도 쥐어주고, 뉴스 한자락에서도 뼈있는 이야기 한자락 더 보태기라도 하면, 내 부끄러움이 조금은 줄어들까.  그것으로 내 부채감이 가벼워질까.

묵직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지만, 저자의 글솜씨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슬픈 사연들에 이런 감탄사를 붙이는 게 미안하지만, 정말 명문장이었다고, 심장을 뒤흔드는 여운을 내내 전달해 주었다고... 눈물 한 방울 아니 흘릴 수가 없었다고, 사족처럼 붙여본다.

이 책을 알게 해준 바람구두님, 선물해 주신 조선인님 감사합니다. 꾸벅(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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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7-09-2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오늘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했었는데...(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썼나 읽어보고 있었지요) 님의 글을 읽으니 그냥 관둬야 할까,하는 생각이 살짝 드네요. 한가위 잘 보내세요^^

마노아 2007-09-22 17:14   좋아요 0 | URL
엄훠, 무슨 말씀이세요. 느티나무님의 느낌을 어서 전달해 주세요(>_<)
느티나무님의 한가위도 풍성함 그 자체이기를, 몸과 마음이 다 채워지는 명절을 기원해요~

2007-09-22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2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법천자문 2007-09-2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연대만이 살 길이라니 지금 고대는 완전히 무시하시는 건가요??

마노아 2007-09-22 18:43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S대도 눈에 안 들어오고 있어요(>_<)

프레이야 2007-09-2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람구두님과 글샘님의 소개로 이 책을 샀지요. 어서 읽고 또 한번 아파야겠어요.
편히 살면서 사회적 감수성이라도 무뎌지지 않으려면요.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신
마노아님의 글 잘 읽었어요.^^ 위의 Parvati님 댓글이 ^^

마노아 2007-09-22 20:33   좋아요 0 | URL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기 위해서 무뎌지면 안 되겠어요.
좋은 지기님들 덕분에 좋은 책도 만날 수 있으니 우린 참 복받았어요^^

홍수맘 2007-09-24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보면 맘이 무거워질까봐 자꾸 미뤄지게 되더라구요.^^;;;
이젠 챙겨봐야겠어요.
추석 잘 지내세여. ^^.

마노아 2007-09-24 09:09   좋아요 0 | URL
저도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읽기를 잘한 것 같아요.
홍수마님도 추석 잘 보내셔요. 보름달 보며 소원 꼭 비시구요^^

순오기 2008-08-0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m님이 4만이벤트로 원한 책이라 주문하며 땡스투~ 다시 알라딘에서 구매해요.^^

마노아 2008-08-04 07:26   좋아요 0 | URL
벌써 알라딘 구매로 돌아오신 거야요? 대단한 알라딘 사랑^^ 땡스투 고마워요~
 
패턴 리딩 - 실용독서의 뉴패러다임
백기락 지음 / 한스컨텐츠(Hantz)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뒷자리 샘이 '속독'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이 책으로 속독을 익히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지만 읽는 것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책을 내게 넘겼다.

나 역시 속독에 관심이 있었지만(얼마나 부러운 능력이란 말인가!) 이 책 읽고나서 내가 속독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오늘이 방학인데 못 볼 것 같다고 완곡히 거절했더니, 개학 후 돌려달라고 하신다.  그래 나는 이 책을 집에 들고가고 싶지 않아서 학교에서 보았다.  아주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왜냐고?  볼 게 별로 없었거든..;;;;

한마디로 중간 알멩이 없어 앞머리와 끝만 장황하다.  왜 독서를 해야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독서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효과적인 독서란 어떤 것인가?  사람들은 왜 속독을 하고 싶어하는가?  패턴리딩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를 주구장창 늘어놓는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한 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머리말과 맺음말, 목차는 중요하지 않고 본문을 먼저 봐라!라고 말을 하는데, 난 머리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목차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늘 절감하는 편이기 때문에 작가의 말은 영 신뢰가 가질 않는다.

이 책 한권으로 패턴리딩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난 그냥 나하던대로 느린 독서로 만족할란다.  여전히 속독하는 이들이 부럽긴 하지만, 지금도 크게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다행인 것은, 내가 오늘 이 책을 돌려줄 수 있다는 것... 정말 갖고 가고 싶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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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0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책에서 머리와 꼬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저는 머리를 보는데 시간이 가장 많이 걸려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거기에 많이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다행이네요.책을 학교에서 끝낼 수 있어서....
저희 애는 내일 방학이에요. 앞으로 당분간은 서재에 들어오기 쉽지 않을듯해요.

마노아 2007-07-21 00:54   좋아요 0 | URL
서문과 목차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무시하는 작가의 말은 영 신뢰가 가질 않았어요^^;;;
내일부터 아이가 방학이라니, 엄마한테는 개학이군요.
많이 바빠지겠어요. 흑흑... 살아(?) 남으셔욧(>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