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동시집 차령이 뽀뽀 - 국영문판 바우솔 동시집 1
고은 지음, 이억배 그림,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바우솔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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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언제나 우러러 보게 되는 대상이지만, 동시를 쓰는 이는 더 위대해 보인다. 시를 쓰는 사람이 자기 자식을 위해서 동시 한 편 안 썼다면 그건 직무유기로 보인다. 고은 시인은 그 비난으로부터 자유롭다. ^^

 

 

이억배 씨가 그림을 그렸다. 동시는 풋풋하고 그림은 구수하다. 절묘한 조화다. 시골의 넉넉한 풍경이 잘 어우러진다.

 

 

어젯밤 꿈 속에서

새가 되었지

새가 되어

멀리 날아갔었지

학교 가는 길도

학교 마당도

고속도로도

저 아래로 조그맣게 보였지

바다 위 배도

산더미 파도도 조그맣게 보였지

 

새들도 나처럼 꿈꾸겠지

꿈 속에서

사람으로

걸어가겠지

안 그러면 미안해

아주 미안해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다. 내가 날개 달고 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축복이지만, 그러니까 공평하게 너희 새들도 걸어가란 말은 못해봤다. 새들은 원래도 다리가 있으니까 걷기도 하지만...

 

가을

 

외할머니와 차령이가 누워 있어요

차령이가 말문을 열었어요

나는요 가을만 빼고 다 좋아요

외할머니가 왜? 하고 물으셨어요

봄에는 꽃 피고 나비가 놀고

여름에는 수영할 수 있어서 좋아요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니까 좋고

 

나중에 아빠가 그 말을 듣고

이다음

가을도 좋아질 거야

무척 좋아질 거야

 

왜 어른이 되면

가을이 좋을까요

잎새 지는 가을이 좋아질까요

 

그러게 말이다. '가을'은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더 어울리는 계절이다. 아이들은 찌는 볕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신나고, 겨울은 추운 빙판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 수 있는 경이로운 계절이다. 어느 틈에 가을이 좋아진 것일까. 분명 지금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 맞건만...

 

 

책 좋아하는 책보 차령이의 꿈나라 풍경이다. 아름답다.

책 속 이야기가 자장가도 불러주고, 모험의 나라로 초대할 것만 같다. 저런 집은 넓지 않아도 근사하고, 그 자체로 격조가 있다. 아, 탐난다!

 

이이주 선생님

 

(......)

 

아이들이 운동장에 놀고 있으면

이놈들아

이놈들아

땅하고만 놀지 말고

하늘하고도 놀아라

하고 큰 소리로 말하셔요

 

(......)

 

하아, 가슴을 강타하는 말이다. 땅하고만 놀지 말고 하늘하고도 놀라는 저 말이. 땅만 보고 걷지 말고 하늘도 보면서 달도 보고 별도 보고 구름도 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살았던 날들에 반성한다.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는, 넓은 이상을 품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아, 하늘하고 놀아야 해. 2012년에는 필히 그래야만 해!!

 

 

책의 뒤쪽으로는 앞에 한글로 실렸던 서른 편 이상의 시가 모두 영역되어 있다. 처음에 책을 펼쳤을 때 영어로 쓴 쪽이 먼저 보여서 책을 잘못 산 줄 알고 깜짝 놀랐더랬다. 다행히! 한글 시가 먼저 수록되어 있다. 하마터면 펼쳐보지도 못하고 덮을 책이 될 뻔 했지 뭔가.

 

고은 시인의 시는 전 세계 25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세상에! 정말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계셨구나. 해마다 노벨 문학상에 이름이 거론되는 게 우연은 아니었나 보다. 그냥 시도 그렇지만 아이의 마음을 담은 이 동시들이 외국에서는 어떻게 읽힐까 궁금해진다. 시인의 아이가 어렸을 때라면 정말 오래 전 일이건만,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아이의 순수한 마음은 여전히 예쁘고,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또 따뜻하기만 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읽은 책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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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1 어린이를 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1
한비야 지음, 김무연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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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이집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이제 만 2년이 거의 되어가고 있는 찰나에 어린이 버전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어린이 용으로 묶으니 한 권짜리 책이 두권이 되었지만 대신 내용을 좀 추렸고, 좀 더 쉬운 설명과 부록이 따라왔다.

 

사진과 그림을 겹쳐 사용한 것도 역시 어린이 친구들을 위한 배려이겠지만, 어차피 이 책은 초등 고학년이 소화할 테니 그냥 사진으로 대체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자체도 어렵게 씌어진 책이 아닌지라 중학생 정도만 되면 소화할 수 있다고 여긴 작가를 설득시켜 어린이용으로 재출간하게 만든 것은 어느 어린이 덕분이었다고 한다. 이 닦는 동안 물을 틀어놓지 않고 쓴다고 대답한 이 기특한 아이는 그 이유를 수돗물 값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도 맞는 말이고 바람직한 얘기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면 더 멋졌을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이 책이 출발했다.

 

지구에 사는 인류의 숫자는 무려 70억이나 되지만, 이 중 30억 정도가 굶주리고 있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인류가 쌓아온 이 대단한 문명 안에서도 아직도 이렇게 참담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함께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한비야는 이 책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의 말라위/잠비아,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으로 대표되는 네팔의 주민들을 소개했다. 전쟁이 가져온 기근과 질병, 그리고 차별과 지뢰에 대한 공포, 에이즈에 관한 왜곡된 인식, 그리고 단순한 도움의 차원을 넘어선 재활의 기회를 주는 구호 활동 등이 격정적으로, 그러나 차분하게 소개되고 있다.

 

 

눈이 멀지도 모를 위험한 독초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서 씹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다섯 살 꼬마 아이다. 저 또렷한 눈동자가 제대로 먹고 마시고 교육을 받으면 얼마나 예쁘고 당당하게 자랄 것인가.

 

아프가니스탄 편에서는 지뢰 전문 의사가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지뢰의 위험성을 제대로 교육시켜 주었다. 세상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혀 있는 나라는 아프가니스탄! 이곳에 묻힌 지뢰의 수는 무려 1천만 발! 오늘부터 지뢰를 더 이상 묻지 않고 제거만 한다고 해도 다 제거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천 년! 그리고 지뢰를 묻는 데는 5달러, 제거하는 데는 무려 1천 달러가 든다는 사실!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책이나 곰 인형 안에 지뢰를 묻어 놓아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아이를 노려 적군의 씨를 말리는 지뢰까지 있다고 아니 아득함을 넘어 아찔하다. 한국의 비무장 지대로 지뢰 밭이다. 이름 그대로라면 비무장이어야 하건만, 그 땅속은 그렇게 살벌하게 울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가야할 길이 얼마나 멀고도 험할지 선명하다. 피할 수도 없고 미룰 수도 없건만!

 

한비야가 아프가니스탄에 오기 직전 한 아이가 꽉 채운 저금통과 함께 카드를 보냈다고 한다. 그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느님, 이제 저는 그만 돌봐주시고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돌봐주세요. -47쪽

 

이렇게 아름답고 성숙한 마음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이 예쁜 마음 앞에 욕심 많은 어른으로서 부끄럽기만 하다.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베일의 종류에 대해서 비교해 주었다. 이집트에서 주로 마주친 것은 히잡이었지만, 차도르와 부르카도 간혹 볼 수 있었다. 니캅을 쓴 여성이 식사하는 장면은 가히 문화 충격이기도 했다. 신기해한 것이 다소 미안하긴 했지만, 그들도 내가 친구의 머리를 땋아주는 장면을 신기하게 바라봤으니 뭐 피장파장이다.^^

 

한비야는 아프리카 말라위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삶은 후 꼬들꼬들하게 말린 들쥐를 간식으로 먹는 것을 목격했다. 배가 고파서 먹는 거라 생각했는데 원래 그들의 전통 간식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메뚜기도 먹어보지 못했으니 저럴 때 들쥐는 감히 엄두가 안 날 것 같다. 하지만 저걸 먹어버리면 현지인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기는 하다.^^

 

구호요원으로 들어가서 단순히 동정심으로 그들을 돕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주어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모습이 좋았다. 받는 그들도 부끄럽지 않게 하니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에이즈가 가장 급속히 퍼지는 대륙이 아시아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것도 중국 상하이 등 남동부 대도시에선 감염자가 하나 해에 30%씩 증가한다고 한다. 세상에나! 우리나라는 헌혈량이 부족해서 혈우병 치료제 등을 만드는 혈액의 일부인 혈장을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데 그중 약 25% 정도가 중국에서 온다고... 이 정도면 상당히 위험한 수치가 아닌가.

 

이쪽 이야기에서도 함께 갔던 동행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서 꼭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에이즈에 걸렸다 해도 영양상태가 좋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 수십 년도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그 약이 1년에 1만 달러로 무척 비싸서 하루에 1달러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란다. 이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겠다. 게다가 한미FTA를 생각하면 진정 후덜덜....ㅜ.ㅜ

 

에이즈는 가장 건강한 나이인 15세에서 45세까지의 사람들을 초토화시킨다. 이들이 누군가의 부모이기에 에이즈 고아가 생기고, 사회적으로 한창 일할 나이의 인력이 줄어 사회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임산부가 에이즈에 걸리면 태아도 감염이 되고 모유를 통한 감염까지 합하면 무려 70%에 육박한다. 이를 모자 감염이라고 한다. 그러나 임신 7개월에 억제약을 한 번 복용하고, 출산 후 3일 내에 아이에게 한 번 만 보조제를 흘려 주면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6천 원 정도! 이렇게 적은 금액으로 아무 죄 없는 아기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긴급 구호가 얼마나 절실한지, 그리고 우리에게 적은 돈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구원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를 시시각각 설명한다. 그렇게 바탕을 깔아놓으니 마지막에 후원하고 있는 아이들의 사례를 내놓았을 때 독자 역시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진정성은 물론이요, 책의 편집 효과로서도 막강한 후광이다.

 

식민 지배를 받고, 그 후에 또 전쟁까지 경험했던 우리나라가 바로 그 국제 원조의 최대 수혜자였다. 1991년부터는 해외 원조를 끊고 우리가 원조를 해줄 수 있는 나라가 되기까지 했다. 월드비전 안에서도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바뀐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고... 벅찬 일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을 피워냈으니....

 

우리가 도움을 받았으니 도움을 주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시야를 넓힌다면 좋겠다. 우리가 자주 쓰는 '우리'라는 단어의 범위를 더 넓게 넓게 펼쳤으면. 우리 나라에서 우리 세계로, 우리 지구로, 우리 우주로 말이다. 그 안에 우리 모두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고 생명의 반대 역시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우리 마음 속에 사랑의 꽃씨 하나 심는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미래의 꽃이 될 어린이들에게도 맞춤인 책으로 나왔으니 그네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을 선물할 예쁜 어린이 친구가 떠올랐다. 새해의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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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31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이의 초롱한 눈빛......... 이 도리어 가슴 아프네요.
마노아님은 25번째로 글을 많이 작성하신 분이군요? ^^

저는 어제 오늘 팔견전이랑 오란고교 호스트부 읽느라 정신빼고 있답니다... 아하하.

마노아님, 새해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세요. 올 한해 이모저모로 많이 감사드립니다.

마노아 2011-12-31 13:09   좋아요 0 | URL
굶주림에 지쳐있는데도 눈빛이 살아 있어요. 그래서 더 뜨끔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준엄하게 꾸짖는 것 같아서요.

만화책과 간식을 쌓아두고 겨울밤을 지새우는 것은 또 많은 이들의 로망이지요.
저는 집에 쌓아둔 '용' 시리즈로 그래보려고 합니다. 2012년에는 가능할 거예요.ㅎㅎㅎ

마녀고양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하는 공부도 일도 다 잘 풀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히 지내셔요!!!
 
허영만 맛있게 잘 쉬었습니다 - 일본의 숨겨진 맛과 온천 그리고 사람 이야기
허영만.이호준 지음 / 가디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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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여행 좋아하고 산 좋아하는 허영만 화백. 이번엔 일본의 온천에 푹 빠졌다. 2년 동안 발과 혀로 찾아내고 탐구한 일본의 기막히게 쉬기 좋은 온천들을 두루 담아냈다. 글은 식객에서 자주 등장한 이호준 팀장이 썼고, 선생님은 캐리커쳐와 모델(?)로 등장하신다. 목차를 살펴보니 이들 일행의 자취가 담긴 곳은 이렇다.

 

1장 번잡한 마음을 씻어보내는 치유온천 - 아키타
2장 옛것 그대로 시간이 멈춘 료칸에서의 하룻밤 - 시즈오카
3장 불편도 즐기게 되는 곳 - 아오모리
4장 자연의 거대하고 신비로운 힘이 펼쳐지는 곳 - 가고시마
5장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지옥 순례 - 오이타·기타큐슈
6장 음과 양의 조화 속에서 - 이바라키
7장 이슬과 하늘, 바람과 음률이 한데 어울린 노천온천 - 나가사키
8장 창문을 열면 낭만과 운치가 가득한 곳 - 오카야마·시마네·돗토리
9장 봇짱과 센과 치히로와 함께 순례길에 오르다 - 에히메
10장 마음으로 먹고 온몸으로 고독을 즐기다 - 와카야마
11장 이방인들을 설레게 하는 미소라멘과 삿포로 맥주 - 훗카이도

 

온천을 주제어로 묶다 보니 내게 익숙한 지명은 손에 꼽고, 대개는 낯선 곳이다. 그 쪽이 설렘과 기대를 더 주기는 했다.

 

우리 말로는 여관으로 번역될 '료칸'이 일본에서는 호텔보다 더 큰 명성을 얻고 있다는 것, 실제로 료칸에 간다고 하면 자랑까지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심지어 어떤 료칸은 건물이 국가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기까지. 건물의 가치를 먼저 따져야 하는데 우리는 용도 혹은 편견을 먼저 심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산업구조도 내수비율이 높은 일본 답게 온천 관광객도 자국민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특히 가족 단위로 온천을 찾는 것이 특징. 휴식과 보양의 장소라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3대가 함께 온천을 즐기는 풍경은 무척 개인주의 성향이 높은 일본의 스타일과 달리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가와유 온천에서는 식사 시간에 요리가 놓일 때마다 해당 요리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준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물론 아주아주 배가 고프다면 수업종이 치기를 기다리는 점심시간 직전의 마음과 닮아 있을 테지만... 문득, 한복을 입고 호텔 식당에 들어갔다가 입장을 저지당했던 어떤 분의 일화가 떠오른다. 해외 토픽감이었지...;;;;

 

사쿠라지마의 심수관 가마는 정유재란 당시 포로로 잡혀 온 조선 도공 심당일이 자리를 잡은 가마터라고 한다. 그후 무려 400여 년 동안 명맥을 이어와 일본 도자기를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애석하게도 그 기술은 우리나라에서는 맥이 끊겼다. 그때 전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은 의미가 없으니 이같은 가정은 허무하기만 하지만, 그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조선의 혼을 일본에 심게 되었다고 애석해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기술자를 대접해주는 문화가 조선에서는 없었으니. 그들은 일본 땅에서 오히려 새출발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라도 기술이 전수된 것은 다행인 일이다. 씁쓸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섬나라에다가 지진과 화산 활동까지 활발한 일본이다 보니 온천도 발달하였고 그것을 이용하는 일본인들의 마음가짐도 우리와는 남다르겠지만, 그래도 부러운 부분들 혹은 대견한 부분들이 있었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만약 같은 경우 우리나라였다면 개발의 삽질 아래 무너졌을 것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보호되고 있다는 점에서 부럽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홋카이도의 하얀 눈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러브레터의 추억에 젖어서 부러운 부분으로 같이 묶어버렸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매년 인구가 증가하는 곳이 홋카이도라니, 저 새하얀 설경을 로망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주 많은가보다.

 

생선시장의 바닥에서조차 물기 하나 없다는 것에서 저자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 독자 역시 놀랍다. 하긴, 상해의 오빠 아파트에는 욕실 바닥에도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어서 물기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헉 소리가 났더랬지. 그래도 생선시장의 물기 없는 바닥이 더 대단하다!

 

 

 

책은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데, 정보를 알려주는 소정의 목적과 유머 감각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어부이지만 고기를 너무 못 잡아서 방송에 소개되기까지 한 인물의 못 잡는 것도 실력이라는 태평한 소리에 피식 웃고 말았다. 두번째 그림은 사진을 묶다 보니 윗부분이 잘렸는데 피부를 좋게 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온천인데도 피부과 병원이 있길래 지나면서 허허~하는 장면이다. 뭐,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가 진리이니까.^^

 

세번째 그림은 호오~ 하게 된 장면. 만화가로서 뼈를 묻으신 분인 건 알았지만 무려 44년이란 대단하다. 이제 해 넘기면 45년. 반 세기 이상은 거뜬히 현역으로 뛰실 분이니 이 역시 가슴이 벅찬 부분이다. 한 분야에서 이 정도로 열정을 불태우는 건 장인 정신의 나라 일본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뭐, 전체 양으로 따지면 할 말이 없지만....

 

마지막 그림은 오바마의 당선을 오매불망 원했던 일본의 한 어촌 이야기가 배경이었다. 알고 보니 그곳 마을 이름이 '오바마'였던 것이다. 온천욕을 마치고 오바마 얼굴이 인쇄된 수건으로 젖은 발을 씻고 나온다고 한다. 하하하... 우리나라엔 각하 이름을 딴 온천 어디 없을까? 그분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발을 닦아드릴 수 있는데 말이다.

 

고야산의 본당은 1200년 전부터 짓기 시작했다는데, 80년 걸려 지은 건물이 50년 지나서 벼락으로 소실되었고, 다시 짓는데 100년이 걸렸는데 50년 후 또 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그렇게 재건에 재건을 7번 거듭.... 세상에... 허영만 샘 반응처럼 정말 신앙심이 부족했나???

 

마쓰야마 성은 17세기 초에 세워졌는데, 천수각을 비롯한 21채의 건물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단 한 번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보존 상태가 전국에서 으뜸인데, 안타깝게도 천수각은 낙뢰로 소실됐다가 1854년에 재건됐다고... 이래저래 불이 무섭다. 끙!

 

 

 

호기심 충만한 허영만 선생님은 직접 앞치마도 두르셨는데, 식객호의 선장 답게 태가 멋지다. 아래쪽 사진은 돈까스처럼 보이지만 속에 든 것은 참치다. 사진이 광택이 없어서 대체로 미감을 자극하진 않지만 이 녀석만큼은 무척 군침이 돌았다. 그리고 오른쪽 기다란 그림은 삼나무를 그린 것인데 그림에서 빛이 났다! 유머 감각을 동원한 그림이 아니라 화가처럼 그렸다. 삼나무가 얼마나 곧고 큰 나무인지 실감이 났다.   만화가 신일숙의 '정령을 믿으십니까?'도 살짝 떠올랐다. 수령 7200년을 자랑하는 삼나무도 있다고 하니 정령이 살고 있다고 해도 그럴싸 하지 않을까.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고 회를 먹지 않는 나로서는 초밥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게 중에 먹는 거라면 날치알초밥 정도? 그래서 초밥을 먹는 고수의 방법 따위는 그닥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재밌어서 한 컷 찍어봤다. 초밥의 달인 등장이요!

 

남녀혼탕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각별하다. 잘못 알려진 사실도 많고, 일본 내에서도 변화가 있었기에 혼란은 더 컸을 것이다. 친절한 안내문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실내 온천에 자연석을 두어서 마치 야외에 나가 있는 느낌을 준 게 좋아보였다. 난데없이 안압지가 떠오르지 뭔가.

 

마지막 그림은 허걱 했던 장면이다. 저 한 칸에 무려 4명이 앉는다니, 내 보기엔 혼자 앉으면 딱 좋을 크기구만! 무릎 꿇고 앉아야만 넷이 앉을 수 있겠다.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무릎 꿇고 앉는 것에 익숙한 일본 사람들의 다리 체형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없을까? 혹시 안짱다리가 그래서 생기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돛을 활짝 펴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배가 근사해 보였다. 주름이 가득한 것이 여인의 치마 자락같기도 했다.

일본인의 성이 메이지유신 이후에 생겼다는 것은 꽤 충격이었다.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기에 우리처럼 오래 되었을 거라고 여겼는데 말이다.

 

몇몇 정보들도 신선했다.

 

낫토는 스님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절의 부엌인 낫쇼(納所)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따고 한다.  -123쪽

카스텔라는 16세기에 나가사키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먹던 스펀지케이크의 일본식 변형이다. -141쪽

도미는 참치와 장어를 제치고 일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생선이다. 에도 시대에는 도미의 붉은색을 귀족색으로 여겨 귀족이나 사무라이 등이 즐겨 먹었던 것에 영향을 받은 탓이다. -179쪽

우리와 달리 일본인들에게 일 년이 시작되는 달은 4월이다. 이는 국가와 회사들의 새 회계연도와 함께 대학교 신입생들의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189쪽

1950년대에는 본토에서 삿포로로 발령받은 직장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단신으로 홋카이도에 왔는데, 혼자 생활하다보니 늘 식사가 부실했다.  식당에서는 혼자 온 손님들이 많아져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주문이 점차 늘었다. 아지노산페에서는 미소 국물이 먹고 싶다는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홋카이도 원주민들이 먹던 돼지뼈 국물에 미소를 넣어 대접했는데, 어느 날 한 손님이 그 국물에 면을 넣어달라고 한 것이 미소라멘의 시초다. -220쪽

 

일본이 온천의 나라이긴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 앞에 버틸 장사란 없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동력을 끌어들였고, 그 바람에 원천수의 질은 떨어지고 온도마저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과학향기에서 보니 댐과 채굴로 인한 지진이 무척 많다고 했는데, 가뜩이나 지진이 잦은 일본이니 그런 것들이 곧 화가 될 수 있으리라.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예년 기온에 비해 지나치게 따뜻한 요즘 날씨가 걱정스럽다. 올 여름에도 내내 덥지 않다가 갑자기 폭염이 몰려왔고, 전력대란을 겪지 않았던가. 이렇게 춥지 않다가 갑자기 오지게 추울 것만 같다. 지구가 그만큼 신음하고 있다는 의미일 테지.

 

일본여행은 꼭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올 2월에 그 마음이 최고조였는데 가지 못했고 3월엔 후쿠시마 사태가... 그래서 당장에 일본 여행은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간다고 해도 료칸은 너무 비싸서 역시 침도 못 흘리겠지만, 책을 통해 대리 만족이라는 것으로 허기를 좀 채워본다.

 

책은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데 옥의 티는 역시나 잦은 오타들이었다.

 

62쪽 미국 선교사 의해 일본 최초로

66쪽에는 오마치 게이게쓰로 나오고 67쪽에는 오오마치라고 나온다.

70쪽 각종 각종 부재료와

71쪽 맑은 호수와 파란 하늘이 연중 내내-연중에 '내내'의 의미가 들어 있다.

191쪽 역사의 흔적은 거의 없다. 온천이라곳도...

 

그렇지만 반면, 아주 예쁜 우리말도 나와서 달달할 때도 있었다. 223쪽에 등장한 '달보드레한'이란 단어다. 약간 달큼하다-란 뜻인데, '달보드레'라니! 달샤베트 같이 달콤함이 뚝뚝 떨어지는 예쁜 말이 아닌가.

 

작품 속에는 선생님의 신작 대박나라며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인 친구가 등장했다. 기도의 효과가 떨어질까 봐 여행길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목적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 이런 친구가 있으니 허영만 샘이 승승장구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신작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진다. 사람이 힘든 일을 했으면 좀 쉬어갈 필요가 있으니, 샘의 신작이 마무리 되고 나면 다음 여행지에서의 맛 기행이 또 이뤄지지 않을까. 일본도 좋고 다른 나라도 좋다. 어디든 즐겁게 기다리리라. 그 사이 나도 일본 한 차례 정도는 다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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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1-12-14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나오자마자 샀는데 아직도 못 읽었어요. 마노아님 리뷰로 아쉬움을 조금 달랩니다. 조만간; 꼭 읽어야지!

마노아 2011-12-15 14:42   좋아요 0 | URL
달밤님 마음이 좀 여유로워졌을 때 읽으세요. 요즘은 정신 없어서 마음이 조급해질 거예요.(>_<)

BRINY 2011-12-1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사놓기만 하고 못읽었어요. 학년말 핑핑 돌아가서요. 1월에 느긋하게 보면서 여행계획 짜고 싶어요.

마노아 2011-12-15 14:42   좋아요 0 | URL
브라이니님 버전의 여행기를 보고 싶어요. 허영만 샘보다 더 구석구석 소개해주실 수 있을 거야요. ㅎㅎㅎ

마녀고양이 2011-12-1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료칸에 가서 자봤어요! 떡하니 푸짐한 한상도 받았구요.
차려진 한 상에 해산물이 많아서 정말 인상 깊었고, 보글보글 찌게도 불에 올려 사람마다 각자 주어서 신기했어요.
아우, 온천 가고 싶다, 해외 여행 몇군데 안 해봤지만, 저는 일본이 가장 편안했던거 같아요.
딸아이랑 둘이 달랑 가도, 치안 걱정 안해도 되구....
저는 이 책 읽으면 당장 여행가고 싶어서 우울할까봐 손 안 댈거예요, ㅋㅋ

마노아 2011-12-15 14:43   좋아요 0 | URL
오오오, 소문의 료칸에 가보셨군요!!
일본은 환율도 세지만 료칸은 게다가 또 센 가격이어서 감히 엄두도 안 나네요.
여러모로 당장에 일본 여행은 무리라고, 이 또한 신포도라고 마음을 달래봅니다. ㅎㅎㅎ

pjy 2011-12-1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료칸, 살짝 가보긴했었지요^^; 아무래도 가까운게 젤 장점인데요~ 천재지변보다 무서운게 인재라서 당분간은 일본은 모르겠습니다~

마노아 2011-12-15 14:44   좋아요 0 | URL
여기도 료칸 사용자가!
미리 가본 사람들이 부러워요. 당분간은 침만 삼키게 생겼어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품절


정의를 선택해서 내 삶이 불편해진다 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게 인간과 짐승이 다른 점이죠.
제일 큰 희망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봐요.

저는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라고 가르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늙어가야 한다고 가르쳤죠.
그게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교육 아닐까요?

평생 일해 왔는데 해군기지 들어서면
일도 못할 테고 바다도 오염될 테고......
저 바다 좀 봐요. 얼마나 예뻐요.
제발 어머니 같은 바다를 그대로 둘 순 없나요?

히말라야 첫 원정 때 오만했어요.
거대한 산 앞에서 서고야 깨달았죠.
대자연 앞에 인간은 정말 보잘것없다는 것을요.

개천에서 용 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송사리로 남아 개천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혼자 용 빼는 재주로 하늘 올라가는 것보다
함께하며 힘이 돼주는 사람이 더 귀한 존재입니다.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기술,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질주하는 과학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질주의 방향을 바꿔야겠지요.

늘 좋은 것, 좋은 음식, 좋은 잠자리만 찾다 보면 몸이 썩어.
진짜 귀한 게 없어지는 거지. 시상식에도 그래서 안 가고 싶어.
작품보다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모아지는 게 나는 아주 싫어.

저보고 왜 분노가 많냐고, 분노로 사회가 멍든다고 해요.
사실은 대기업의 탐욕이 사회를 멍들게 하는 것 아닌가요?

사진들이 하나같이 쾌활 그 자체다. 간혹 사진조차 없는 인터뷰이도 있지만, 사진을 분위기 좋게 찍을 만큼 몰입이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달까. 그렇지만 대부분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물아일체가 된 듯 닮은 표정으로 시원하게 웃고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주가 분명 있을 것이다. 김제동에게는... 그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끌어내주는 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만남을 나누기를 바란다.

순오기님의 요청으로 사진 한 장 추가!
웃는 모습은 아니지만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무척 진지한 모습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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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7-29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희정 사진도 올려주세요~~ ^^

마노아 2011-07-29 02:08   좋아요 0 | URL
뒤늦게 한 장 추가했어요.^^

뽀송이 2011-07-2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잘 계시죠?
뒷북이지만ㅋ ㅋ 이미지사진 넘흐^^ 분위기있고 예쁘세요.^^*
이 책 아직 못 읽어봤어요.^^;;
읽어보고 싶네요.^^
서울 이제 비는 그쳤나요?

마노아 2011-07-29 13:02   좋아요 0 | URL
헤헷, 이 사진이 반응이 좋네요. 예쁘게 봐주시니까 좀처럼 이미지를 못 바꾸겠어요.^^
서울은 모처럼 해가 났어요. 오늘은 이렇게 뽀송뽀송 물기를 말려주었으면 해요.
이제 빨래도 좀 말라야죠..ㅜ.ㅜ
뽀송이님 이름의 기운을 빌려주세요.^^

pjy 2011-07-3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을때와 이렇게 또 사진만 따로 보니 느낌이 새롭네요~
마노아님의 옆모습이 이뻐서 나름 셀카로 노력해봤는데....그렇죠, 손떨림은 핑계일뿐 얼굴이 다르군요^^;
머리스타일은 제가 더 길지만 꽤 비슷합니다~
간만에 아침부터 샤워하고 머리 그대로 풀른 상태로 회사나왔습니다~ 왠일인지 휴일에 회사에어컨을 틀어줍니다.무튼 풀러놓고 있긴한데~요즘엔 똥머리만 하고 댕겼더니 회사 사람들이 신기해합니다..촌스러운것들! 모태곱슬을 이제서야 알아보다니..(최근 매주마다 어디서 머리했냐고 얼마주고 했냐고 질문받았습니다--;)

마노아 2011-08-17 17:18   좋아요 0 | URL
앗, 댓글을 한참 지나서야 발견했네요. 죄송해요.6^^;;;
전 요새 더워서 머리를 질끈 묶고 머리띠로 앞머리도 확 올려버리고 다니고 있어요.
그때마다 엄니가 턱이 너무 각졌다고 구박을 하시는데 더운데 어찌합니까..ㅜ.ㅜ
수영장 갈 때도 요 패션으로 간답니다.
에어컨 빠방한 사무실에서라면 우아하게 머리도 푸르고 있을 텐데 말이지요.^^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은 지음, 최민식 사진 / 샘터사 / 2004년 9월
품절


살다보면 바위 속에 유배당한 것처럼
삶이 암담해질 때가 있습니다.

-바위와 유배라는 말이 가슴을 묵직하게 만든다. 유배보다 유폐라는 단어가 사실 먼저 떠오르긴 했다. 1963

암울한 그림자의 숙주 같은 몸은
점점 낮은 곳으로 허물어져 갑니다.

-저 쇠약한 육신이 그림자의 숙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IMF직후이니 저런 절망감을 가진 이가 얼마나 많았을까. 1998

이 위태로운 세계 속에 아이들이 샘물처럼 들어앉아
흘러갈 세상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신기해서 쳐다보았을 저 눈망울들.
하지만 호기심으로 번뜩여야 할 눈빛은 그럼에도 지쳐 있다. 허기진 눈빛, 외로운 눈빛들이다. 1967

삶을 응시하는 자들이 키워가는 세계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삶의 무게가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 무게를 꿋꿋이 견디어 내는 사람들이 버텨가는 세계에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다. 1976

그래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 불행의 그림자가 길어질지라도

-혹여 잠든 사이 불행의 그림자가 조금은 짧아지고 옅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1972

버리는 순간 눈앞이 환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지
우리를 둘러싼 어둠은 깊기만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더 버려야 이 어둠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더는 내려놓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도 자꾸만 내려놓으라고 재촉하는 세상... 1970

그래도 그 속에서는 가려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어제와는 달라져야 할 내일을 위해.

-생각한대로 살기 위해서,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1975

힘들게 일하며 떠나보내는 시간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기다리면 분명히 오는 걸까요? 포기하지 않으면, 만날 수 있는 건가요? 1962

-불순함이라고는 없는 노동에 저토록 수모를 당해야 하다니
때로 세상의 정의가 불한당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디오 없이 오디오가 들린다. 아주머니의 불안하고도 절박한, 그러면서도 능청스러움을 가장한 목소리가 들린다. 1972

불평할 줄 모르는 자들의 삶은 얼핏 평화롭게 보입니다.
하지만 잠든 어머니가 기대고 있는 벽처럼
저들의 지반에는 균열이 많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음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또 입이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시간들... 1971

가족이라는, 이웃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만이 어둠을 역전시킵니다.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된 시선, 사랑과 정이 가득 담긴 시선. 그 순간만큼은 어떤 이물질도 끼어 있지 않은 청정의 시공간. 1960

일찍 어른의 모습이 되어버리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미래가 암초처럼 모습을 나타내곤 합니다.

-유소년기를 강탈당해버린 아이들, 어리광을 부려보기도 전에 이미 인내와 침묵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의 결핍은 어떻게 보상될 것인가. 1957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모든 구속 너머에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가만히 있어서는 어떤 경계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하기 힘든 것들이 분명 있는 세상. 그래서 서러운 세상.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고 다시 주먹 꼭 쥐게 되는 이 세상... 1965

생의 모래 언덕도 저런 모습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거침없이, 주저없이, 미련없이...... 1999

늘 무엇인가가 넘치거나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삶일까요?
오래 꿈꾸었으나 가지 못한 길은
저 나무가 깨워놓은 수많은 하늘처럼
불편하게 우리를 자극합니다.

-가지 못했지만, 내가 가본 이 길도 아름다웠다고, 그렇게 믿어가며 살아가기. 2001

구불구불한 길에 뒤덮인 저 육체!
산다는 것은 제 몸속에 길을 내는 것입니다.

-그 길속에서 헤매지 말고, 속지도 말 것. 믿고 따라갈 것! 1975


최민식의 사진은 늘 강렬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피사체들의 절절한 삶이 사진으로 긴박하게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조은 씨가 글을 담았다. 조세희 씨가 쓴 글의 사진들과 많이 겹쳤는데 그 사진들은 따로 올리지 않는다. 같은 사진을 보아도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이, 또 그 속에서 공통점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최민식의 입으로 들어보면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다.

시인은 글을 쓰기 전에 사진작가를 직접 만나지 않았다. 작업에 앞서 그를 만나면 그의 정신력에 눌려 제 몫의 일이 힘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란다. 두 삶은 출간 직전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찍을 때에야 비로소 만남을 가졌다 한다. 존경에 대한 표시, 또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함께 느껴진다.
재밌는 것은, 두 사람의 사진은 여기 실리지 않았다는 것.
그렇지만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여지에서 무엇도 부족하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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