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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미도르 - 전3권
김혜린 지음 / 길찾기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새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 너무 심취해 있었더니, 김진 작가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김혜린 작가가 문득 떠올랐다.
작년 9월과 10월엔 뮤지컬 불의 검에 심취해 있었으니, 전혀 관계없는 연결고리도 아니다. ^^
김혜린 작가의 대표작은 비천무와 불의 검이다. 그밖에 데뷔작 북해의 별도 탁월한 작품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조금 덜 회자되는 작품이 "테르미도르"다.
3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프랑스 혁명이 주내용이다. 북해의 별도, 프랑스 혁명을 이야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존 인물의 이름이나 지명은 피했는데, 이 책은 아예 실존인물을 등장시켜놓고, 거기에 가상의 주인공이 등장할 뿐이다.
그림만 본다면 너무 동양적인 필체여서 아름답다는 느낌은 쉽게 들지 않지만, 여기에 김혜린 특유의 서사적인 스토리를 결합시키면 이 책 역시 명작으로 환골탈태하고 만다.
글쎄, 김혜린 만화에서 온전한 해피엔딩을 본 적이 있던가? 불의 검에서는 비교적 해피엔딩 쪽에 속했지만 바리가 죽었던 게 안타까웠고, 비천무는 두 주인공이 동반자살 격으로 죽었고, 북해의 별은... 생명은 건졌지만 다리를 잃었지 아마...;;;
그래서인지, 김혜린의 작품은 대개 어두운 느낌이 많이 든다. 그건 단지 스토리의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의 속성 때문이다. 결코 가벼운 작품을 쓰지 않는 그녀의 세계에선, 인권과 자유와 평등, 그리고 부조리한 세상의 편견 등을 많이 얘기했기에 작품이 가볍거나 쉬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유독 정말로 지독하다 싶을 만큼 깊고 어두웠던 게 이 작품 테르미도르다.
프랑스 혁명... 민중의 손으로 자신들의 왕을 끌어내리고 왕조를 몰락시켜버린 피의 역사. 그러나 흘린 만큼 그들은 자유의 시대를 스스로 당겨버렸다. 그 안에 역사의 한 획을 긋고 사라져간 많은 인물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더 아프게 각인된 한 사나이 유제니... 마지막에 그가 죽음을 향해 뛰어들던 장면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하늘 위에서 잠들지 않겠노라고... 땅 밑에서도 잠들지 않겠노라고... 땅 위에 흩뿌려진 그의 피와 그의 절규가 꼭 프랑스 혁명이 아닐지라도 혁명을 노래하고 혁명 안에서 애처로이 스러져 간 많은 목숨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울렁였다.
세계사 공부를 교과서로 하자면 솔직히 머리 아프다ㅡ.ㅡ;;;;
그런데 이런 책이 있으면 부교재로 아주 좋다. 이를 테면, 프랑스 종교전쟁을 공부하면서 황미나의 "불새의 늪"을 같이 읽으면 딱딱할 것 같은 그 시대의 이야기가 아주 부드럽게 들린다는 소리~!
프랑스 혁명을 공부하면서 이 책도 꼭 같이 읽어보기 바란다. 만화지만 절대 가볍지 않고, 무거운 내용이지만 그보다는 깊은 감동으로 낙인찍힐 법한 작품이니...
그러나 안타깝게 절판이니... 책을 구하지 못한 분은 책방으로...;;;;책방에도 없으면... 음... 먼 산 보기.ㅡ.ㅡ;;;
본인은 김혜린 이름으로 나오는 책은 모두 사자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