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회력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7
가도와키 아쓰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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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애착, 신뢰감이 없고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은 사회를 만들고 유지해가기 위해 필요한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 P7

사회가 실체로서 존재한다면, 그것은 살아서 숨을 쉬며 생활하고 있는 인간 그 자체뿐이다. 인간 이외에 사회의 실체를 이루는 것은 없다. 사회의 실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는 조직이라든가 제도, 법률 등도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편의적·잠정적으로 만든 가상의 것일 뿐, 살아 있는 우리 인간들과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제도나 법률 등은 우리들이 생활하는 데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없앨 수 있는 것이며 불합리하다면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는 대상이다. - P94

사회력이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구상하고 만들고 운영하고, 그 사회를 더더욱 개선시켜가는 힘이라고 파악했다. 또한 사회력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밑바탕에 충분한 타자인식이나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 P105

(...) 인간의 사회력은 타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배양되는 것이며 반대로 사회력 형성이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만들고 사회를 더욱 안정시키며 나아가 더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혁신시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요컨대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사회적 동물이어야 하고,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해서 사회력을 익혀야 하며 사회력을 익히기 위해 타자와 반드시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것이다. - P138

기원전부터 인간의 발달을 좌우하는 것이 환경인지 유전인지 논쟁이 계속되어왔지만, 최근에는 유전형질을 통해 선천적으로 부여된 능력을 가지고 환경과 상호작용을 반복함으로써 선천적인 능력의 성능을 높여간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 말은 아이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고도의 능력도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그 성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 될 것이다. - P151

그를 통해 명확해진 점은 아이의 사회력은 출생 직후부터 ‘인간‘환경과 얼마나 빈번히 상호작용을 지속했느냐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개시함으로써 아이의 고도의 능력이 ‘해발되고‘, 상호작용을 반복함으로써 사회력의 본바탕이 형성되며,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광범위한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추구하게 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속하여 사회적 요소가 공유되면서 양질의 사회력 형성으로 이어져간다는 것이었다. - P174

그렇다면 아이들의 성장환경이라는 시점에서 봤을 때, 이런 급속한 도시화나 시골 지역의 공동화는 어떤 변화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사라졌다는 말이며, 공동 체험의 장과 기회가 지역에서 사라졌다는 말일 것이다. - P188

어른들에게 사회력이 없는 곳에서, 즉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어른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운영해가겠다는 책임의식이 없이 사회와의 관계를 회피하려는 곳에서, 아이들의 사회력이 신장될 리 만무하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사회력 저하가 발견되었다면 이는 어른들의 사회력 저하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 P210

육아와 관련된 어른들의 책임이란 아이와 제대로 마주하고 아이가 어른을 향해 시도해오는 여러 행위들에 대해 성실히 응답하는 것이다. 물론 어른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갓 태어난 아기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유아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상대가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성장 과정에 있는 후속 세대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이란, 무엇보다 그들의 언동에 대해 성실히 응답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P230

지역의 교육력이란 지역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아이들과의 교류나 공동체험을 활성화시켜 아이들의 사회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이런 주장에 납득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아이들의 사회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에 사는 다수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다양한 지역 활동을 전개하고, 거기에 아이들을 끌어들여 어른들과의 교류를 활성화시키기만 하면 된다. - P245

아이의 사회력은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른들의 긍정적인 자세와 그로 인해 발산되는 강한 커뮤니티 의식, 거기에 뿌리내린 어른들의 다양한 지역 만들기 활동 속에서 길러진다. 그 한가운데로 아이를 데려와 거듭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상호작용과정 속에서 더더욱 사회력을 강화시켜가야 할 것이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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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2-01-04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회성을 사회력이라고 표현한 걸까요?? 이 책 찜할게요 라파엘님^^

라파엘 2022-01-04 09:18   좋아요 2 | URL
저자는 사회성과 사회력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사회성은 사회에 적응해가는 수동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 사회력은 사회에 참여하며 개선해가는 능동적인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
 
지적 생산의 기술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3
우메사오 다다오 지음, 김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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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너무 많이 가르친다고 했다. 이와 모순되는 견해이기도 한데, 의외로 학교는 ‘가르침을 아까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 과장한다면 정말 배우고 싶은 것들은 도무지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을 지나치게 가르쳐주고, 또 무엇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인가. 간단히 말해 지식은 가르쳐준다. 하지만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뿐 아니라 학문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학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현실을 보자면 대학에서도 학문의 방법을 가르쳐주기보다는 학문의 성과를 전하는 데 더욱 열심이다. - P15

지적 생산이란 인간의 지적 활동이 어떤 새로운 정보를 생산했을 때의 상황이다. 여기서 정보는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지혜, 사상, 생각, 보도, 서술, 그 밖에 다른 것이 떠오른다면 그것으로 해석해도 좋다. 간단히 말해 지적 생산이란 뇌가 움직여서 뭔가 새로운 것을 타인에게 알려주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정확할 것이다. 지적 생산이라는 개념은 지적 활동에 의하지 않은 생산과 대립하고, 지적 소비라는 개념과도 대립한다. - P24

기록해두기만 하면 예전에 발견했던 소재를 통해 또 다른 소재를 찾게 되고, 이것이 디딤돌이 되어 점차 거대한 건축물로 쌓아올려지게 된다. (...) ‘발견‘했다면 되도록 그 자리에서 문장으로 적는 것이 좋다. 그럴 여유가 없을 때는 문장의 ‘표제‘만이라도 기록해둔다. 나중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그 내용에 살을 붙여 문장을 완성하면 된다. 그러나 표제만 쓰고 며칠씩 방치해버리면 ‘발견‘은 퇴색하고 시들어진다. ‘발견‘에는 언제나 감동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문장으로 만들어두지 않으면 영원히 쓸 수 없게 된다. - P48

규격화를 권하는 까닭은 잡다한 요소들을 추방하기 위해서다. 규격화를 통해 지적 작업은 보다 손쉬워지고 집중력도 높아진다. 무척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제일 먼저 내가 시도했던 것은 문서의 규격화였다. 알고 보니 나의 지적 활동에 필요한 문서류는 고작 몇 종류밖에 되지 않았다. - P109

이처럼 지적 생산을 위한 공간을 기능에 따라 분화시키는 까닭은 지적 생산 작업에 계열이 다른 작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지적 생산보다 지적 생산물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긴다. 그럼에도 평소 앉아 있던 책상에서 사무 처리가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엄청난 양의 지적 생산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혹은 자료를 정리하고 선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놓고도 이를 지적 생산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장소를 달리하면 지적 생산과 자료 정리, 혹은 사무 처리를 혼동할 위험이 없다. - P131

우리에게 지적 생산의 기술이 필요한 까닭은 능률 때문이 아니다. 지적 활동에 초조함이 배제된 ‘질서와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인간에게 지적 생산의 기술이 필요한 까닭은 두뇌 활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서다. 두뇌 활동에 아무런 파문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 P135

독서의 핵심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함과 동시에 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식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있다. 보다 넓혀진 지식의 스펙트럼에서 현재 내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상을 개발하고 육성하는 능력의 성장, 이것이 독서의 목적이다. - P158

독서의 즐거움을 향락하는 기분도 좋지만 이런 독서는 단순히 소비적일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기술은 생산적 독서법의 터득이다. 이러한 독서는 곧 창조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저자와의 관계에서 말하자면, 추종적이고 비판적인 독서에 비해 창조적 독서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 P159

관찰과 기록의 시간의 차는 짧을수록 좋다. 실험실에서의 데이터도 그 자리에서 기록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루면 객관적으로 드러난 수치임에도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이는 야외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기억을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도 기억에 의지했다간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른다. 아이디어도 경험의 일부이므로 기록해두는 편이 좋다. - P215

자신의 경험을 기록화하고 이를 축적된 자료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지적 생산이다. 보고 들은 모든 사항을 기록하라고 권하지는 않겠다. 다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떤 경험은 진보의 재료가 된다는 진실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나처럼 지적 생산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 P220

복사본은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고심해서 완성시킨 원고가 사라져버릴 때처럼 허무한 경험은 없다. 또 인쇄소로 넘어가는 도중에 원고가 행방불명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사 복사본은 반드시 준비해둬야 한다. - P240

문장을 쓰는 작업은 사실상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생각을 정리하는 단계다. 둘째는 그것을 실제 문장으로 표현하는 단계다. 일반적으로 글을 쓴다, 라고 하면 두 번째 단계인 기술론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핵심은 첫 번째인 생각을 정리하는 단계이다. 써야 할 내용이 없으면 문장을 쓸 수가 없다.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써야 할 내용이 있어야 한다. - P248

분산된 소재를 여러 가지 형태와 순서로 결합시키면서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논리적 연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 P255

문장의 길이보다는 한 번 읽어도 누구나 이해 가능한 기능성이 중요하다. (...) 간결한 문장도 좋지만 이왕 고민해서 써야 한다면 알기 쉽게 표현하는 기능에 중점을 맞춰야 한다. - P257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 실천하지 않고 머리로만 판단하면서 비판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한다. 어느 기법이든 실행해보면 각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지적 생산에 비결은 없다. 노력하지 않고서는 결실도 없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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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다카시의 교육력 -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9
사이토 다카시 지음, 남지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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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가장 기본은 배우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람 자신이 동경을 강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렇게 훌륭할까‘ 하는 뜨거운 마음은 상대에게도 전해진다. 가르치는 사람이 이미 동경의 마음을 잃었다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 ‘더 많이 공부해보고 싶다‘라는 향상심을 자극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동경의 벡터이다. - P8

경험적 지식을 쌓았다는 장점을 남긴 채 신선함을 잃지 않는다. 이것은 이제 하나의 기술이다. ‘선생님도 우리와 함께 변화해주고 있다‘라고 하는 의식이 배우는 측에 생겨나면 배움터의 분위기를 함께 고조시키려는 기운이 북돋아진다. 일방향적인 상하 관계가 아닌 우정의 관계성이 교육의 지향점이다. - P12

현재의 교육 세계에서는 수준을 확실히 평가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시험이 인간성에 악영향을 준다고 싫어하는 교사도 있다. 또는 ‘학력은 점수로 측정 가능한 것이 다가 아니다, 그 이외의 살아가는 학력이 필요하다‘는 설을 주장하다 결국은 학력을 잴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며 실력의 유무를 불문에 부치게 만드는 교사도 있다. 그러한 모호함이 배우는 의욕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면 괜찮겠지만, 실제로는 아이가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 P28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만한 교재를 준비하여, 배우는 사람끼리 서로 절차탁마하는 우정의 관계성을 ‘공간‘의 분위기로서 실현하는 것이다. 이 ‘공간‘의 분위기는 교사 자신의 인격과 교양,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등에 좌우된다. - P31

물음의 설정은 생각하는 작업을 재촉한다. 그런 만큼 물음을 생각하는 측에는 상당한 지식이 필요하다. 아무런 해답도 준비되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 학생은 질려버린다. 완벽한 정답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교사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사의 실력이 검증받는 승부처는 발문력에 있다. 물음이 모호하고 평범한 것이라면 학생들은 깊이 생각할 수 없다. 묻는다는 행위는 실로 교육자다운 행위인 것이다. - P33

수업 중에 떠오른 멋진 영감. 그것이야말로 교육의 축제적 순간이자 하늘이 준 선물이다. 이러한 순간이 찾아오기 위해서는 교사 측에 유연한 마음이 필요하다. 자신의 해답에만 집착해서는 학생이 안심하고 영감의 날개를 펼 수 없다. 교사의 인격적 따스함, 그리고 견식에서 비롯된 여유가 학생의 자유로운 발상을 재촉한다. - P37

즉 우선 기반이 되는 것은 잘 가르치기 이전에 잘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움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자신이 배움을 통해 기쁨을 얻은 경험이 있는 것, 바로 ‘배운다는 것은 엄청나게 즐거운 일이야‘라는 분명한 자각이 있는 것이다. - P43

소위 암기는 아주 나쁘며,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가령 세계사에서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에 대한 지식을 암기하지 않은 사람이 생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한다는 행위가 지식과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사실 착각인 것이다. - P49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문적 역량과 인격적 매력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지식, 전문성이 매우 뛰어나며 그 분야에 탁월할 것. 후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포함하여 인간적인 매력이 있을 것. - P61

교사는 숙달에 관한 전문가여야 한다. 따라서 숙달이란 어떠한 프로세스로 진행되는지 자신의 체험을 통해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 우선적인 교육자의 조건이다. 어쩌다 보니 자연히 능숙해졌다는 사람은 교사에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 P70

늘 새로운 학설을 공부하고 그것을 소개하는 능동적인 태도는 학생에게 계속해서 전해진다. 중요한 것은 교사 자신이 항상 지식에 대해 새롭게 파고드는 의욕을 갖는 것으로, 그러한 마음은 아이들에게 전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그와 같은 지적 탐구 자세를 전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기도 하다. - P97

엄격하게 말하자면 교과서를 해체하여 학생에게 전할 만큼의 힘이 없으면 교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독서, 공부의 범위가 좁으면 결국은 교재 선택이 치우치게 된다. 혹은 별것 아닌 내용을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채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 P125

교사가 학생에게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면 감동과 습숙의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배우고 나서 ‘아, 재미있었다‘라든가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다‘라든가 ‘두근거린다‘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이 감동이다. 다른 하나는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할 수 있게 되면 결국 그 일이 좋아진다. 이것들은 서로 무관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 두 가지 중 하나만이라도 충족시켰으면 한다. - P132

그러므로 대화는 서툴지만 좋은 교사란 거의 있을 수 없다. ‘대화력‘이 교사에게 있어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능숙하지 않지만 잘 가르치는 교사가 혹시 있다 하더라도 틀에 박힌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선생님은 인터랙션을 통해 의미를 창출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 P134

시험은 필요한 능력을 기준으로서 공유하는 데 의의가 있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는 것이 시험의 의미이다. - P140

공부가 본업이라는 사실이 학교에서는 자주 잊혀진다. 공부가 학생을 괴롭힌다는 듯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선생님 자신이 진심으로 그 공부를 즐기는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떄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본래 엄청나게 재미있는 것이다. - P155

교사는 세상의 많은 교수법 가운데 자신이나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 탐욕스럽게 흡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레인지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 P165

향학심에 불타 성장하려는 분위기는 즐겁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다, 노력하기도 싫다‘는 사람이 불쌍해 보인다. (...) ‘배움은 축제이다‘라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 P177

그런 생생한 연극 공간에서의 연소감과 수업의 그것은 서로 닮았다. 연극에서 관객을 모으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다. 200명이나 모으려고 하면 극단원 한 사람당 티켓 판매 할당량은 몇 장, 몇십장이 되고 만다. 그에 비해 학교는 다행히도 아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관객이 있어준다. 그곳에서 매일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일단은 축제 감각의 출발점.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고마움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P183

학교라는 장소의 주된 역할은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유산 계승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중심은 문화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다루는 거의 대부분이 문화인 것이다. 하지만 교사에게 문화유산을 계승한다는 의식이 없으면 그 수업은 의도를 잃어버리고 만다. - P188

좋은 것을 간파하는 눈, 레벨 차이를 알아보는 안력이 습득되면 자신을 체크하고 수정할 수 있다. 자신을 성장시켜줄 뭔가를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한 안력을 갖게 해주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 P195

말의 힘을 믿고, 말로써 여러 가지 것들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말로 하는 직업이 아닌가. 말은 신용할 수 없다거나 어차피 전해지지 않는다고 체념하지 말고, 말을 통해 상당한 부분까지 전해진다고 믿을 필요가 있다. 말의 힘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전하는 것 자체가 교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 P206

수업 전에 미리 그 진행 방식을 전부 빈틈없이 정해두면 학생의 참가로 변화해가는 역동적인 흐름을 끌어낼 수 없게 된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누군가 던진 한마디에 의해 계속해서 전개가 깊어지는 경우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으므로 그렇게 당황하지 않는다. 도중에는 다양한 길이 있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은 목적지에 다다르면 된다. - P212

하나의 지식에 대하여 또 다른 관점이나 더욱 발전된 해석법이 등장하는 것은 학문의 세계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안적인 관점을 익히는 것 자체가 수업의 목표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 각도에서 보면 이렇지만 시점을 옮기면 이렇게도 보인다는 식으로 항상 시점을 이동시키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 P221

학교라는 곳에서는 수업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 방대한 시간에 걸쳐 방대한 지식이 들어온다. 그 모든 정보를 열린 자세로 흡수하는 사람이 더욱 큰 힘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을 구하는 힘도 가지며 스스로를 구하는 힘도 가진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 P225

자신이 교육자라는 사실을 정체성으로 삼을 경우, 상대의 변화를 기다릴 수 있는가 하는 자질이 중요해진다. 이것을 타고난 사람은 얼마 없기 때문에, 누구나 상대가 빨리 변화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상대가 변했으면 하면서도 보통은 그것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 P228

정말 훌륭한 선생님은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의욕을 내고 발전해간다. 그러한 시스템과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 P241

본래 인간은 약한 존재이다. 그런 약한 인간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정체성을 가짐으로써 강해질 수 있다. 그 정체성은 하나가 아닌 여럿 있을 때 더 강해진다. 마치 한데 꼬아놓은 실타래 같다. 한 가닥뿐이라면 금방 끊어져버린다. 그래서 섬유를 몇 개나 꼬아 한 가닥 끊어져도 나머지 구십 몇 가닥이 남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만남의 가능성을 학생들에게 준비해줄 필요가 있다. - P244

나는 학생의 자질이라든가 재능을 따지기보다 습관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이후에는 특히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머리는 좋았을 터인 아이가 점점 성적이 떨어지는 예가 있다. 그것은 요컨대 공부하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51

대체로 일을 할 때는 어느 직업에서도 자신에게 잘 맞는 스타일 찾기가 중요하지만, 교육의 경우는 특히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스타일의 선택과 개선이 더욱 중요해진다. - P268

인간은 ‘삶이 허무하다‘는 감정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허하지 않은 충실한 감정이란 수입 등 실질적인 부분과 반드시 관련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공부를 통해 생겨난다. 삶의 충실감이 배우는 자세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면 배우는 자세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교사의 가장 큰 임무라고 할 수 있다. - P275

교사의 신체는 늘 학생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학생 앞에 설 때는 어깨를 빙글빙글 돌려 굳은 몸과 마음을 풀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기분 좋아 응답하기 쉬운 신체를 갖추고 몸 전체로 동경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을 이미지한다. 그리고 환한 표정과 생기 있는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신체 조정은 교사로서의 기본기이다. 향상심 넘치는 교사의 생기발랄한 신체야말로 교육력의 근간을 이룬다는 확신을 나는 가지고 있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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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사용하는 법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7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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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이처럼 사람이 평소에 갖고 있던 이해 구조와 서술 구조 자체에 대해 추궁한다. 나아가 이처럼 추궁하는 철학적 작업 자체에 대해서도 추궁한다. 이는 무언가에 대해 말하면서 그 말 자체의 타당성과 근거를 묻는 것이다. 말하자면 메타 레벨의 물음이다. 철학이 ‘지혜의 지혜‘라고 불리는 까닭이고, 학문의 가능성 자체에서부터 다시 논해 학문의 토대를 마련하는 ‘기초학‘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 P14

서구에서는 언어가 교양과 사교와 정치의 기초, 즉 사회생활의 기초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작업이 ‘신권‘과 ‘왕권‘을 대신해 ‘인간의 이성‘을 시민의 무기로 만들면서 근대라는 시대를 뒷받침해왔다. 철학이 중등교육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명백한 그 증거이다.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기 위한 기초적 능력으로서 ‘철학하는 것‘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 P22

철학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시대의 어려움과 동떨어진 장소에서 하는 지적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적 문제야말로 철학적 양상을 띠게 되어 있다. - P25

철학은 자신에게 지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세계를 묻는 것, 같은 것이지만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음미하고 반추하는 작업이다. 철학의 시작점에 있는 작업이 ‘반성‘이라면 이는 철학이란 방법 자체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 P47

그런 시야를 개념으로 열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서 한찬 떨어진 외부에 빛을 발하는 물체를 두고 세계를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우리‘의 사고 속에 안주하고 있으면 그런 보조선은 그릴 수 없다.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시야 안에 있는 최고의 것뿐이다. 사람은 ‘우리‘의 외륜산 너머의 또 그 외부에 시점을 두고, 소위 더 유치한 꿈을 꾸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로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서 서구 철학자와 예술가들은 (...) 자신의 시선과 ‘밖‘의 시선을 연결하는 것, ‘밖‘을 자신의 중핵을 이루는 부분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기 사고의 근간까지 통째로 변환시키기 위해 시도했다. (...) 지금까지 보이기는 했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던 이러한 것들과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자신이 의거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일에 몰두했다. - P99

철학자는 다름 아닌 철학의 외부를 더 의식할 필요가 있다. 철학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제일 먼저 철학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물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때의 ‘바깥‘이란 대학의 외부나 철학연구자 집단의 외부라는 의미가 아니다. 철학은 늘 ‘메타‘ 차원을 포함한다. 무언가에 대한 물음은 그 물음 자체에 대한 물음을 자기언급적으로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비판은 자기비판을 내포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자기 음미가 철학에서는 이론학이고 인식론이고 언어 분석이다. - P111

철학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에 철학은 가장 실제적인 것, 즉 실천적인 것이었다. 바꾸어 말해 철학은 실천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 자체가 의심의 여지 없는 하나의 실천으로서 여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예로 들 것도 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사고 성과에 의해 규정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실천적이라고 생각했다. 즉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실천이라는 말과 개념이 본래의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개념 분야는 제1차적으로는 ‘이론‘과의 대립에 의해, 또 ‘이론‘의 응용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겠다. - P121

근대 과학의 탄생과 함께 ‘보기‘와 기술이 연계되면서 ‘보기‘는 그저 쳐다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움직이고 조작하며 보게 됐지만, 관측을 어떤 장치로 행하는지는 제쳐 두고, 이것도 ‘보기‘가 목적인 이상 관상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기술의 목적은 ‘보기‘가 아니라 ‘만들기‘에 있다. ‘발견‘도 무언가 새로운 존재를 ‘시야에 받아들여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는 기술의 영역에 포함된다. 그러면 ‘앎‘을 매개로 하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은 ‘보기‘와 ‘만들기‘의 중간에 존재하며 이들을 연결하는 것, 즉 앞에서 말한 제3의 기술인 ‘사용‘의 기술로서 존재하는 셈이 된다. - P133

살아가는 데는 논리적인 확실함과 정밀함과는 또 다른 확실함과 정밀함이 때때로 필요하다. 논증되지 않은 것에 몸을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그편이 진정한 의미에서 지혜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한 판단 전체에 걸쳐서 ‘철학‘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생활과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가? 관련되어왔는가? 그것이 문제이다. - P140

보편이란 다른 것과 조우하는 우연이 우리의 경험에 갑자기 어떤 미지의 사이클을 열고 그것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용해가는 부단한 ‘엇갈림‘의 운동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영원히 미완성인 채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P156

진리의 법정에 관해 예로부터 메타 레벨에서 계속 논의되어온 철학 방법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더 이상 독백일 수 없게 됐다. 철학적인 반성의 장 자체가 ‘초월론적‘인 주관성이나 의식이 아니라 사회적인 자장이라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철학적인 반성 자체가 ‘간주관적‘인 장이라는 것이고, 그 말인즉슨 대화나 커뮤니케이션이 생성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P159

(...) 서로 이질적인 복수의 지혜를 연결하는 기능이 철학에 요구되고 있다. 광범위한 지식을 갖고 사회와 시대를 상공에서 조망하는 고답적인 ‘교양‘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 사람의 삶에 진실로 중요한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현실에 다양한 지혜를 배치하고 개선하고 통합해가는 기술로서의 철학이다. - P172

박사 학위는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 바와 같이 한정된 어떤 전문 분야에서 정교하고 치밀한 연구를 완수한 것에 대해 수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가설을 일정한 과학 연구 방법에 준하여 추론하고 실증함으로써 이후 어떠한 주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정교하고 치밀한 추론과 실증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기량에 대한 인정으로서 수여되는 것이다. - P177

철학에 전문 영역이 없는 것은 철학이 항상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기 때문으로, 상호 분단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과학의 지혜를 ‘객관성‘이나 ‘보편성‘과 같은 추상적인 통일 이념으로 간신히 통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을 진정한 의미로 협동시키기 위해 기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탐구란 그런 의미에서 지혜의 다양한 시점 사이의 대화 내지 조정이기도 하다. - P180

우리는 하나의 시점 혹은 하나의 원리로는 현실의 총체를 다 볼 수 없다. 이때 ‘모든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지혜의 전체성‘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일 것이다. - P185

교육학의 ‘임상‘이란 당연히 사회의 교육 현장이다. 하지만 학교로 조사하러 가서 교육학 이론에 따라 교육 현장을 평가하는 것이 교육학의 ‘임상‘인 것은 아니다. 교육 현장으로 들어가 그 현장을 구성하고 있는 제도 및 담론이 종래의 교육학 담론 및 이론과 어떠한 공범 관계 속에서 구축되어왔는가라는 공범성을 분석하여, 현장의 문제 해결이 그대로 교육학 자체의 지각 변동으로 이어지는 활동이야말로 ‘임상 교육학‘이라고 불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P194

철학의 업무는 어디까지나 현지 조사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데카르트도, 로크도, 칸트도, 헤겔도, 벤담도, 마르크스도, 각자 시대의 사상적 과제에 도전했다. 철학이 스스로 사고 구조의 역사적 맥락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음미하는 것도, 철학이 그때그때 시대 상황 속에서 일단 사용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 P196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장소를 철학 내부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로 옮길 필요가 있다. 타인이 말하는 그 장소,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그 장소에서 그 장소를 파고들어 스스로의 장소로 삼고 거기에서부터 말하고자 시도할 필요가 있다. - P199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 주류의 니즈에 휘둘리지 않고, 또 그것에 무턱대고 부응하지도 않으며, 니즈의 더 깊은 곳에 있는 진정으로 중요한 니즈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 계기는 의외로 우리 일상의 주변에 있기도 한다. - P235

철학은 글의 양식과 글의 살결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우선은 문체에. 어떤 문체를 사고의 신경으로 삼았을 때 비로소 보이게 되는 세계가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세상에는 거의 장인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표현 스타일에 의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위상이 있다. 이러한 스타일 의식이 사라지면 언어는 늘어진다. 역설적이게도 정밀한 기술 언어를 사용하면 대개 서술의 흐름에 틈이 생긴다. 동업자에게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 P249

대화는 타인과 같은 생각이나 같은 마음이 되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면 말할수록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더욱 세밀하게 알게 되는 것이 대화이다. ‘서로 이해할 수 없다‘, ‘내 뜻은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당혹과 고통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사람은 보다 폭넓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대화 과정에서 다신의 사고도 단련되게 된다. 깊이깊이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말한 타인의 다른 사고와 생각에 귀 기울일 때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게 되기 때문이다. - P268

철학이 만약 스킬로서 이용되는 것이라면 이는 무언가 철학 이론과 그 역사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한 특정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어떤 복잡한 문제라도 온갖 각도에서 조망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상황을 해제하고 거기에서 문제를 보다 적절한 형태로 재조직하고 나아가 해결에 이르는 전망을 더듬는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P286

현실 문제 대부분은 중요한 문제일수록 답이 즉시 나오지 않으며, 답이 하나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으며, 어쩌면 죽을 때까지 정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생각하면 할수록 여러 가지 보조선이 보여서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진다. 따라서 서둘러 의사적인 답으로 결론짓지 않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야!‘라며 집요하게 논리를 따지기 위해서는 무호흡 상태로 잠수를 계속할 수 있는 사고의 체력이 필요하다. 복잡성의 증대를 참고 견디면서 불확실한 상태에 계속 있을 수 있는 지적 체력이 필요하다. - P303

철학이 우리 세계 이해의 균열과 틈새에 손을 찔러 넣어 그것을 뒤집지는 못할지라도 그 상태를 수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끝까지 그 작업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하기에 가장 불리한 곳에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 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됐지?‘하고 물음을 던지고 거기서부터 다시금 삶의 중심축이 될 수 있는 것을 탐구하기 시작할 때 그런 형태로 일상의 한복판에서 문득 점프하려고 할 때 그 사람들 옆에서 ‘반주‘하는 것이다. - P309

철학 논의에는 상호 촉발이 있을 뿐 선생도 학생도 없다. 철학은 교실이 아니라 시민들의 ‘광장‘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철학 논의가 만일 시민의 합의를 목표로 한다면 그 활동은 간접적이나마 사회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철학적 대화가 추구하는 것은 합의가 아니다. 합의보다는 오히려 문제의 소재를 찾고 물음을 변경해가는 과정 자체를 공유하는 것에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대등한 입장에서‘ 하는 것이다. 칸트가 이성의 공공적 사용이라고 말했던 것 또한 특정 직무나 사회적 입장에서 벗어나 한 명의 시민이자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지성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대등한 입장에서‘ 문제에 임하는 것이다. - P314

바로 그럴 때 비로소 과거 철학자들의 방대한 텍스트가 연구자의 어두침침한 서고가 아닌, 시민의 무기 창고로서 환생한다. 철학자들의 한계까지 논의를 거듭한 사고의 궤적, 철학사 연구는 그러한 궤적을 ‘계보‘처럼 그려내려고 해왔다. 하지만 ‘계보‘란 사상의 계열이란 형태로의 배치이다. 그리고 배치는 그 이름 그대로 별자리이고, 따라서 어떤 모양으로든 그릴 수 있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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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란 무엇인가 - 「탐구인」이 되기 위해서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5
이마이 무쓰미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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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들이 과학이나 외국어를 배우고 숙달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잘못된 스키마를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수정하고, 그와 함께 스키마를 수정해가는 것이다. - P120

우리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지식‘은 단순히 사실을 알고 있다는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그 절차까지 하나가 된 지식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은 뇌가 학습하고 지식을 포착하기 위한 신경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 P175

가장 유용한 ‘살아 있는 지식‘이란, 지식의 단편적인 요소들이 덕지덕지 붙어 몸집만 잔뜩 키운 것이 아니다. 항상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요소가 더해지는 것에 의해 끊임없이 재편되고 새롭게 태어나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존재다. - P183

요컨대 세싱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들은 지식이나 경험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듣는 것, 보는 것은 우리들이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 경로다. 귀로 들어 기억에 입력된 정보, 눈으로 보고 기억에 담겨진 정보가 ‘해석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습득된 지식 역시 ‘객관적 사실‘일 수 없다. - P188

지식은 항상 계속 변화해가는 유동적인 것이며, 최종적인 모습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최종적인 모습을 알 수 없지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요소들을 계속 늘리며 그와 동반해서 시스템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가는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지식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아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가기 위해, 직관과 비판적 사고에 의한 숙고라는 양쪽 모두를 두 축으로 움직여갈 필요가 있다. - P204

이런 임기응변적인 대처야말로 숙련을 베이스로 한 창조적 문제 해결 그 자체다. 오랜 세월의 숙련에 의해 평소와는 다른 상황에서 평소와 동일한 방식이 통용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시각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대응방식을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순식간에 완전히 새로운 것을 태어나게 하는 창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분야에서 창조적인 퍼포먼스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요소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요소를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합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 P230

일류가 되는 사람들은 어떤 것을 할 수 있게 되고 싶은지, 일류 퍼포먼스는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 요컨대 자신의 내면에서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퍼포먼스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 P241

어떤 분야라도 최고의 달인들은 향상하기 위한 수단을 항상 모색하고 실천하는 탐구인이다. 탐구인이 되기 위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탐구 인식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 지식은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다. 사용함으로써 신체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스템과 함께 점점 변해가는 것이다. 이런 인식론은 그야말로 연구를 부르는 인식론이다. - P245

자녀 양육은 정답이 없는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돌아보지 않고 세상만 살피며 좋은 양육 방법이란 단 하나일 뿐이고 바람직한 양육의 결과 역시 오로지 하나라고 생각하는 인식론을 가지고 있을 경우와, 아이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자녀에게 다가가 함께 무엇이 (Best가 아니라) Better인지를 생각해가고자 하는 인식론을 가지고 있을 경우는, 그 어느 쪽이냐에 따라 양육 방식이 자연히 달라질 것이다. - P246

탐구 인식론을 가지고 계속해서 배워가는 탐구인을 길러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첫 번째로 학교는 ‘지식을 외우는 장소‘가 아니라 지식 사용법을 연습하고 탐구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지식 사용법 연습‘이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사용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발견하고 얻는다는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액티브 러닝의 본질이다. - P264

아이가 잘못된 스키마를 가지고 있을 때는 그것을 정확히 판단하여 아이가 자신의 스키마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는 환경을 설정한다. 그것이 교사나 부모의 역할이지 않을까. (...) 아이들의 발달 단계, 지식의 단계에 맞추어 아이가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상태를 설정한다. 이것은 이론 강의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도 교사도 가르치는 일의 숙달자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계속 배우는 탐구인이 되는 길밖에 방법이 없다. - P266

자신에게만 있는 지식이나 스킬, 탐구 인식론이 없다면 협업에 공헌할 수 없다. 타인에게 없는 지식, 스킬, 사고방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민해가면서 자기 혼자 배우는 습관과 배우는 방식을 어린 시절부터 뮴에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 P268

초일류 달인들의 공통점은 학습을 스스로 생각해낸다는 것이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약한 점, 극복해야 할 과제를 깨달으며, 그에 적합한 배움을 스스로 고민한다. 그런 자율적인 배움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학교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도자는 자신의 배움을 심화시켜가지 않으면 안 된다. - P270

지식은 단편적인 사실을 긁어모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이다. 아이들은 어휘라는 거대한 지식 시스템을, 그 구조를 발견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창출해낸다. 지식은 항상 역동적으로 변하고,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성장하며,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간다. 모국어를 습득할 때 누구나 이런 ‘살아 있는 지식의 배움‘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 구축·창조의 모습이야말로 ‘주체적 배움‘이 가진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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