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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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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점이 나보다 더 힘이 세.

-9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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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sttag

-Rainer Maria Rilke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Befieh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이 시는 읽어보면(!!) 독일어 발음은 투박하다....는 생각을 바로 뽑아버린다. 오래된 언어의 아름다운 운율이 경이로울 정도. 그런데.... 이 시를 번역하니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벌판에는 바람을 풀어주시옵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결실토록 명하시고
보다 따뜻한 이틀을 허락하시옵소서
그것들을 완성으로 몰아가시어
강한 포도주에 마지막 감미를 불어 넣어시옵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오랫동안 고독하여
잠 못 이루어 독서하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잎이 지면 가로수길을
불안스레 이리저리 헤메일 것입니다.


어차피 시의 운율은 살릴 수 없다. 이종언어라는 장벽 때문에. 그래서 역자는 존대라는 한글의 특수성을 살려서 수필시로 재탄생. 번역시문학의 끝판왕으로 세손가락안에 주저 앉고 꼽아버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 순전 내기준이지만. 

릴케사진 한방.

네.... 이사람 남ㅈㅏ. 나도 첨에 멘탈터졌다 살아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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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대부분의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를 표현하기 위해 단편의 형식을 사용한다. 장편에 비해 단편의 경우, 강한 사실감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실제 신문에 실린 사실을 읽는 것 처럼. 테드 창의 이 소설도 그러하다. 이는 P.K.D. 도 그랬고 아시모프도 마친가지였으며 아서클라크역시 함께해온 오래된 습속이다. 물론 그들의 소설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상상한 “지금” 이다. 마치 조지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가 사회를 장악하고 있듯. 그들의 상상력은 지금을 내다본 것들이다. 그렇다. 그러한 고전의 스탠스를 가지고 있는 과거의 것은 이제 당시에 가졌던 만큼의 가치를 입증해나가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며느리도 모르게 자기 실현적 예언을 맞추어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일종의 “예언과 충고”의 기능은 소멸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이 읽혀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그들과 테드창을 비롯한 현재진행형의 소설이 차이를 발한다. 이들은 과거 로봇을 예언하고 원칙을 세웠던 아시모프의 역할을 담당한다. 실재로 지금의 sF는 더더욱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뉴턴이래로 모든 것이 법칙에의해 움직인다는 이론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쪼개진지 오래고, 그렇게 신봉했던 수를 연구 하는 학문마저 유클리드를 벗어나면서 카오스와 예측불가능성만 가중되고 있기 떄문이다. 단순한 기술발달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sf는 단순한 작가의 공상이나 착각, 귀신이야기가 아니라 실현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쓰여지며 그렇지 않은 소설은 sf 라 분류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바벨이라는 은유로 시작해서 현대인의 변화하는 사고를 언어학적으로 풀이하며 미래에 끼칠 영향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또한 고유한 sf의 특성상 거시적 이야기도 뺴어 놓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설명하는 언어학이나 수학적 이야기는 메타포나 부면 설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다른 소설들이 역사속의 주인공을 차용한 “당신”들의 이야기를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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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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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는 더이상 염전 너머를 보지 않는다. 보게되면, 보고 싶은 것이 생긴다. 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볼 수 없는 현실이 괴로운 법이다. 층분히 괴로운 상황이다. 이상황에 결핍감을 보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이에겐 희망이 살아갈 힘을 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의 희망은 마약과도 같다. 희망은 거짓 기대와 헛된 욕망을 만든다. 기대와 욕망은 몸에 열을 공급한다. 배출되지 않고 누적되는 열은 결국 자멸에 이른다. … 9에게 남은 희망은 그 어떤것도 희망하지 않는 무감한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염전강제노역자라는
극단적상황을 놓는다면, 기대를 놓는 것은 되려 쉬운일일 수 있지만 도처에 깔린 내 거짓희망들 사이에서 좀비가 되지않고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바야흐로 희망까지 팔면서 정신을 제 살을 베어먹는 이 천한 악화의 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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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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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래 어떤 존재도 이성과 감성사이의 외나무다리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제는 그런 시도조차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금 내가 말머리에 속죄를 매기면서도 떠오르는 조야한 감정들도 그러하다. 2인 3각보다 어려운 몸과 마음의 박자 맞추기는 자꾸만 엇박으로 가기만 한다. 그러니 속죄라고 쓰고 “치기” 라고 읽게 된다.

이언 매큐언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너는 할말이 없냐고. 나는 늘 대답한다. 할 말이 많은데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혹시 내가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게 화를 내는 것이 소설 속의 실수보다 더한 실수를 내가 안고 있어서 그래서 그런건지. 아니면 모르는지 아는지도 인지하지 못한채 저지를 미래의 실수들을 먼저 봐버렸기 때문인지. 해서, 속죄는 어떤 면에서 나에게 또 독자들에게 과거에 대한 속죄보다 더 포괄적으로 미래에 대한 이른 고해성사를 구하는 것으로 들린다.

너무 많이 들었던 이야기 아니냐고. 문학에 이보다 진부한 클리쉐는 없지 않냐고. 사실 좀 … 개인적으로 저 제목의 소설이 또 있다면 절대 집지 않을것 같다. 응 그래 알았어. 그리고 뚜껑 덮고 잊어버리는 식의 텍스트로 전락하기 쉬운 소재다.  남들 다 듣는 노래. 남들 다 보는 영화. 남들 다 하는거. 하기 싫어하며 기행을 즐기는 것이 또 창작자들의 특징 아닌가 ㅎㅎ 그런데 용감하게도 이언매큐언은 너무 많이 들어서 왜 재미있게 느껴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숙제를 가지고 고전을 만들어 냈다. 거침없고 유려한 문장, 번복되는 플롯, 그러면서도 각종 장르적 특성을 무시하지 않으며 그야말로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흥미와 신파를 한번에 얻다니. 일타 쌍피가 따로 있을까.  멋진 시간이었다. 문장을 보든 문단을 보든 페이지를 보든.  여전히 명정한 눈을 하고 인간이라는 개체를 살펴보는 그의 연필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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