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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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은 두 가지인 것 같아. 하나는 우호적인 반응으로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쪽이고 또 하나는 가장 흔한 반응이지. 이해하는 척하면서 경계하는 쪽.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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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9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29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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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은 두 가지인 것 같아. 하나는 우호적인 반응으로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쪽이고 또 하나는 가장 흔한 반응이지. 이해하는 척하면서 경계하는 쪽.




푸른 알약은 두가지를 생각한다.  마음과 몸을 생각하고. 돌봄과 돌보아짐의 상호관계를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와 개인을, 과학과 철학이라는 곁다리의 화두를 제시하면서 한줄기 나무를 엮어가는 , 그러면서도  읽다보면 감동의 쓰나미에 눈물이 날지도 모르는 로맨스이기도 하다.  빙빙 돌아 병원과 코뿔소 ,실험약물과 상처를 거쳐간 마지막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조건부 사랑의 문제. 지긋한 약과 주사 그리고 콘돔.전염이라는 치명적 두려움.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죽음에 대한 공포. 소수자를 분류하는 과학의 태도..뭐가 가장 큰 화두일까. 페이지를 펼치다보면 상상 속의 양념을 가미한 이  자전적 이야기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주인공은 그것보다 사회적 시선과 편견에 맺혀 살아가야 하는 그네들의 모습에 분개하고 과학의 이분화에 절망하고 또다른 "아이"라는 일종의 새로운 관계에 당황한다.

 

 과연 이 모든 상황은 질병 때문일까. 아니, 오랜 세월 지적장애의 동생과 함꼐 살아온 나의 예를 들자면 그런건 피로축에도 끼지 못한다. 되려 그 시선의 공포가 사람을 사로 잡는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겠지만 끊임없이 곱씹게 될 것이다. 거친 필체와 펜선역시 그런 주인공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것에 한몫한다. 장애라는 단어가 그를 모두 함축한다. 장애는 결핍이며 집단적 몰이해의 의미를 담는다. 100퍼센트를 껴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름은 극복 될 수 없다. 그러나 어느정도 격감될 수는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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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둠의 근원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품절


당신의 죽음이 나의 삶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나는 우리가 소유하지 못했던 사랑을 찾아내어 당신의 이름으로 기록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불태워 없애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숨결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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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생각난다. 시험기간이면 언제나 생각나지. 내가 왜 공부를 안하고 잠만 쳐자고 있었을까^_ 그러면서 늘 하는 우스개소리로 인용하는 구절이 바로 저것. 손바닥과 발바닥르로 연신 청동거울을 닦았다는 그 싯구에 밑줄을 그으며 자아성찰이라고 꾸역꾸역 적어넣었던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진짜 그런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거울이 더러워서 그런건지 알 순 없지만 여하간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생길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른다.

캘러한 시절 그는 로어쉐크같았다. 죄지은 놈은 죽어야지.잘못한새끼는 죽어야지. 세상이 못하면 나라도 나서야지. 하는 나홀로 야경국가의 태도로 범죄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렇게 수십년이 흘렀다.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이면을 보게 된다.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며 용서받지 못할꺼라 이야기한 것은 그저 시작이었다.

제이 에드가는 평면에서 시작한다. 그 후버이니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이스트우드는 악명높은 그의 파편을 하나하나 주워 스스로의 방식대로 짜맞추어간다. 이성과 감성 사이의 고통. 그 고통을 쥐어짜듯 보여준다. (스포가 될까봐 말을 못하겠네 어유) 눈물이 나지 않을만큼의 괴로움이 스크린으로 전해온다. 시대가 낳은 괴물로 기억하는 악인이지만, 조명은 그쪽을 비추지 않는다. 업과 스스로의 업보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길을 잃어버렸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옳은놈으로 평가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또 그렇게 믿어가며 세뇌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한 인간만 있을 뿐이다. 인간. 그래 정말 인간만 있을 뿐이다. 이전 작에서 마틴루터킹을 그리고 지금 제이에드가를 선택하며 관용을 말하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 카일이스트우드의 오스트와 디카프리오의 그늘진 얼굴을 통해 고스란히 닥쳐왔다. 그러니까-

이스트우드는 이런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너희중에 죄없는 자만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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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그닥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소재가 좋은 것과 만듦새가 탄탄한 것은 완전 다른 것이니까. 그런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건… 송환. 망할 영화학회에서 코고는 소리와 함께 들었지만, 어느 순간의 몰입도가 러닝타임을 압도하는 경험이었다.

태풍태양이 정재은의 작품인지 몰랐다. 나에게 고양이를 부탁해- 이후로 정재은은 사라진 사람이었다. 목이 달랑달랑한 닉. 그다지 생각나고 구미에 당기지 않는, 한마디로 아오안이라 이거였다.  (그리고 태풍태양은여전히 보지 않을 계획..)

영화는 말으로 시작해서 말으로 끝난다. 그런데 서사가 이상하다. 삐뚤삐뚤거린다. 시간을 막 건너 뛰고 그 다큐의 흔하디 흔한 작법 헨드헬드도 많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심지어 지미집도 나와…!!! 되려 캐묵은 자료화면과 케백스스페샬이라도 보는 듯한 지인들의 인터뷰와 혼재되어 영화는 흘러 간다.

말하는 건축가는 정기용 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건축과 건축에 대한 세계관, 토목과 삽질로 곡해받는 시선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결코 계몽하려 하지 않고 그저 보여줄 뿐이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저 정재은이 세워놓은 메타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는 겹겹겹겹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과 철학을 잃어버린 건축, 그리고 삽질과 재개발로 넘쳐버린 사회. 통렬하지 않기에 더 사람을 움찔하게 만든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부대끼며 끊임없이 한국이 힘에 부쳤던 그의 삶을 통해 몰지각한 포퓰리즘식의 정책까지도 보인다. 그로 인해 영화는 이를 인간과 연결지으며 인간의 토대 위에 쌓여지지 않아 충족되지 못한 본능인 “주”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왜 우리가 개판인지. 본능이 충족되지 않는 사회에서 한가닥 희망을 가져다 주려고 노력하는, 영화는 그렇게 한주먹 희망을 쥐어주구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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