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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만 해도 '감정교육 (1869)'에 마드무아젤 바트나라는 독신 여성을 등장시켜 페미니스트들을 은근히 조롱한다. 바트나는 "프롤레타리아 해방은 여성 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바트나는 "모든 직종의 문이 여성에게 개방되어야 하며 사생아 친부 조사, 새로운 법령 제정, 결혼 제도 폐지, 혹은 최소한 '좀 더 합리적인 결혼 제도 수립'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이런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힘으로 싸워 눌러야 한다고 바트나는 단언한다. "좋은 머스킷총으로 무장한 1만 명의 여성 시민이 파리 시청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었다." 


















코뮈나르(코뮌 지지자)보다도 더 위험하게 여겨진 것은 여성 혁명가의 등장이었다. 플라뇌르에게는 거리가 '탈정치 공간'이었을 수 잇으나, 플라뇌즈에게 탈정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코뮌이 지속되는 동안에 미국 기자 한 명이 여자들이 19세기 식 화염병 같은 것을 파리 건물 지하로 던지는 것을 보았다는 진위를 알 수 없는 보도를 했다. 그래서 페트롤뢰즈, 곧 '방화를 하는 여자'라는 인물상이 생겨났다. 당시 사람들은 여성 혁명가를 도무지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 어떤 남자보다도 위험한 존재로 생각했다. 프랑스혁명 동안에는 여자들이 집 밖에서 다섯 명 이상 모이는 것이 불법이었다.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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