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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자 마자 든 생각은, 조국 이 분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어제 나경원이 검찰 개혁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과 관련하여 검경 수사권 조정은 협의할 수 있으나 공수처 설치 문제는 조국의 사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고민을 좀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조국은 그 뉴스를 듣고 즉각 사퇴를 결심했을 것 같다. 자신이 개혁의 걸림돌이 될 시에는 언제든 사퇴할 것이고, 자신을 불쏘시개 삼아 검찰 개혁을 해야 한다고 늘상 말해 왔기 때문이다. --- 사실 엊그제 조국이 발표한 법무부의 검찰 개혁안을 모든 지상파 방송들이 머릿기사로 다루는 것을 보면서, 조국이 할 만큼 했다고, 검찰 개혁을 전국민적 의제로 만드는데, 자의든 타의든, 성공했다고, 그러므로 검찰 개혁안이 국회 통과가 되면 사퇴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문재인은 참여 정부의 검찰 개혁 노력에 대해 순진했다고 어떤 책에서 사후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순진'이라는 말이 덮고 있는, 혹은 표현하고 있는 것은, 노무현 당시에는 검찰 개혁에 대한 물적 토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전혀 조직되지 않은 열망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열망을 조직해낼 비전이 없었다. 지금이야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검찰의 직접 수사의 축소 내지는 폐지,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통한 검찰에 대한 문민 통제의 강화 등등, 사소하게는 피의 사실 공표 금지까지, 수 많이 많은 사안들이 구체화되어 국민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다. (이런 비젼을 만들어 낸 인물이 조국인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다른 것으로는, 만일 검찰이 조직적으로 개혁에 저항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노무현에게는 그 대응책이 없었고 그리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마도 법학전문대학원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검사의 수급원을 다원화하여 검찰 조직의 동일성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검찰 개혁에 대한 검찰의 집단적 반발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신규 검사 공급원을 마련해 놓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내 생각에는 검찰 개혁에 대한 물적 토대이다. 그런데 그것을 정책화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정책화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정치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보아하니, 문재인은 중소 정당들과, 선거법 개혁안과 검찰 개혁안을 주고 받는 식으로 신속 처리 법안으로 지정한 것 같다. (나는 패스트 트랙이라는 말도 최근에 알았다.) 놀라운 것은 이번 선거법 개혁안이 거대 정당에는 불리한 것이고, 그러므로 여당에서 당연히 반발이 있었을 것인데, 적어도 내 귀에는 별 파열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그런 파열음의 시간들이 다 지나간 것일까?) 여당을 단속하여 선거법 개정안(이번 선거법 개정안도 물론 개혁안이라고 본다)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중소 정당들에게 제시하면서 검찰 개혁안을 아울러 국회 본회의에 상정 가능하게 만들어 낸 것은 분명히 정치인 문재인의 전략의 성공이라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찰 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여건에는 아직 한 가지 사항이 남았다. 개혁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일단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본다. 검찰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진 자, 그리고 밖에서 봤을 때 대통령의 분신급으로 그만큼 강하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조국 이상이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 주자로 키우고자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윤석열의 검찰 총장 임명에 대해서는, 나는 문재인이 어느 정도는 실수한 것으로, 혹은 문재인이 순진했던 것으로 본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당연히 대통령은 검찰을 개혁의 주체로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말 그대로의 믿음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대통령은 국정원을 믿을 것인가? 물론 큰 틀에서는 믿어야 하지만, 국정원 내부에 온갖 견제 장치를 심어 놓은 한에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하는 한에서 믿어야 할 것이다. 검찰에 대해서도 똑같았어야 했다고 본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검찰을 개혁의 주체라고 표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검찰을 철저히 개혁의 대상, 즉 검찰 스스로는 절대 개혁을 할 수 없다는, 정치인 문재인의 확신 속에서 그랬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윤석열은 단지 개혁의 대상에 머물 수는 없는, 나름의 확고한 입지를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검찰이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가? 심야 조사 폐지 발표 다음 날 검찰은 정경심씨의 자산 관리인을 심야 조사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축소한다는 발표 직후에 유시민에 대한 검찰 직접 수사를 발표했다. 별 생각없이, 관성대로,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내부 개혁은 관성에 의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뿐이다.)


아마도 문재인이 윤석열을 검찰 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국정 농단 수사로 국민의 신망을 얻고 있는 윤석열이 검찰 개혁의 취지에 동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상대적으로라도 개혁적인 인물을, 그 개혁적 이미지로 국민적 신망을 얻고 있는 인물을 검찰 총장으로 임명한 데에는 아마도 상당히 중요한 현실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검찰이 검찰 개혁을 좌절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혁을 주창하는 정치인들을 수사로서 압박하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결과가 모두들 알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이다. 아마도 지금의 검찰 총장이 국민들에게 개혁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 인물이었다면 미친 척 하고(어차피 견제 장치는 전무하므로) 검찰 개혁을 주창하는 정치인들(지금 즉각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인물은 박주민 의원이다)에 대해 직접 수사를 개시하여 압박했을지도 모른다. 


여튼 모두들 알다시피 역사는 행위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흘러간다. 문재인은 검찰 개혁 추진 세력(박주민, 김종민, 이해찬, 이인영 등, 그리고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윤석열을 검찰 총장에 앉혀 놓았지만, 윤석열은 그 어떤 검찰 총장도 할 수 없었을 정도의 규모로 특수부를 총동원하여 조국 일가를 수사로 압박했다(윤석열이 국민적 신망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역으로 윤석열은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로 문재인의 검찰 개혁을 좌초시키고자 하였지만, 검찰 개혁을 어마 어마한 수준의 에너지가 집결된 국민적 의제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최종 결과는 다시 미래에 대해 열려 있다. (행위에 대해 반-목적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행위의 근거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실재의 운동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회의주의를 도출해내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를.)


(현실이 꽉 막혔을 때, 정보가 극히 제한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점을 본다. 재미로지만 나도 그랬다. 유튭에 조국, 윤석열의 사주가 많이 올라와 있다.:) 조국에 대해서는 중간에 낙마하는 것으로 많이들 점치더라. 올 연말에는 낙마하지만 내년 봄에 재기한다고 한다. 윤석열에 대해서는 올 연말까지가 심각하게 위기란다. 그 위기를 넘기면 계속 가고, 그렇지 않으면 낙마라는 이야기. 주로 보수적 색채의 유튭에서 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들의 해석은 윤석열이 연말까지 살아 남으면 낙마하는 것은 조국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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