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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년 4
  • 박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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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7
  • : 688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혁명성을 입증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서 봉기를 주도했다. (...) 한바탕 동만주 일대가 휘몰아쳤지만 봉기는 이내 진압되었다. 많은 활동가들이 검거되었고, 사후에도 일본 경찰은 물론 중국 관헌들까지 나서서 공산주의자 색출에 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중공당 입당이 이루어졌고, 중공당은 조선인 마을을 중심으로 각지에 하부조직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이라는 양대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쉬웠을까? 당시 한 개 혹은 몇 개 성에서 우선 폭동으로 승리하자는 게 테마였다는데, 어느 독립운동가가 지적했듯이 그렇게 마을 몇 개 부순다고 해도 금방 진압될 게 뻔한데도 우리나라 공산주의자들이 선두에 서고.. 결국 없는 수가 더 줄어서 중공당에 가입한 신세가 되었는데. 아무리 우리나라 공산주의자들이 공산당 자체가 좋아서 그랬다 치더라도 당 내부에서 다른 민족이라고 차별하지는 않았을까? ㅠ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책을 보면서 매 순간 생각하게 된다.

 

3권에 이어 공산당 운동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그러나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세계사에서처럼 운동의 흐름과 생리에 대하여 좀 더 명확히 분석한 게 돋보인다. 너무 분리되면 또 코뮌테른이 까고.. 통일하자는 이론은 좋은데 그렇게 하면 발각되기가 쉬운 듯 하다. 내 생각보다 독립운동 참 어렵군요 ㅠㅠ

 

그런데 솔직히 화요파 조선공산당에서 술 취해 싸움질만 안 했어도 후에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생각하면 자업자득이기도 하고 ㅋ 생각나는 게 있는데 내가 두번째로 싫어하는 친척이 한국외대 나왔는데, 무려 친구들과 술 마시고 여행 온 일본인들에게 시비털어서 경찰서에 잡혀간 적이 있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지만 돈 없었으면 어찌되었을지 아무튼 여자들에게도 개호9로 통했었음 ㅋㅋ 김구도 일반 일본인을 때려죽인 적이 있었다는데 난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참고 기다린 후에 더 큰 일을 행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나에겐 저 사건들 다 술 마시다 기분만 앞세워서 시비턴 것밖에 안 보임.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다. 광주학생항일운동 격문을 읽다가 소방대를 왜 해산하라 그러지?하고 고개를 갸웃했는데, 경찰과 소방대가 같이 진압을 한 걸 가지고 뜬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소방대가 날붙이를 가지고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다닌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이 그동안 만행과 차별을 조장한 것도 있고, 소동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광주 상황을 일체 묻어버렸었다 하지만..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빌미가 되었던 여학생 성추행 사건도 붐비는 대중교통에서의 오해였을 수 있다는 걸 보면... 물론 이것마저도 일본 학생이 우겼다고 보면 할 말은 없지만, 그 외에도 조선시대 말기부터 한국 사람들의 정신이 당시 궁지에 몰린 상태였으며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울화가 터져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이었단 증거는 어디에서든지 나오는 상태가 되었다.

 

심훈 1901~1936

 

1919년 3.1혁명에 참여했다가 체포됐으며, 경성 제일고등보통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항저우 치장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하나 1923년 중퇴하고 귀국한 뒤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면서 연극, 영화, 소설 등을 쓰기 시작했다.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투신,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영화 수업을 받은 뒤 귀국해 영화 먼동이 틀때를 원작, 각색, 감독했다.

 

 

문물이 발전한 지금도 소설가가 영화 시나리오 쓰는 것조차 힘들어하는데 이 분은 완전 멀티인 듯하다. 소설가, 영화 감독, 시인 다 맡고 있어 ㅋㅋ 이런 재주는 역시 하늘이 내려주는 건가. 근데 대단한 사람인데도 학교는 중퇴했네. 역시 학교에서 공부 잘했다고 사회에서 잘 되는 건 아니라니깐..

양명 1902~?

 

경상남도 통영 출신으로, 1919년 베이징대학 문과에서 수학했다. 1925년 베이징에서 결성된 혁명사에 가담하고 혁명이란 잡지를 발행했다. 1925년 귀국해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조선공산당에 가입하고, 1926년 ML파 결성에 참여했다. (...) 이후 베이징에서 ML파 기관지 계급투쟁을 발행하고 여러 이름으로 기고문을 실었다.

 

 

죽을 때까진 뭐하고 살았는지 미상이겠지만, 지금은 고등학생이었을 나이 때부터 평생 글 쓰고 사셨네 부럽다 ㅠㅠ 나도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 쩝. 중학교 때 왕따당할까봐 평범하게 살자고 생각해서 한 번 펜 내리니 다시 잡기가 힘들다.

미국인들은 베이브 루스의 홈런에 열광했고, 1929년엔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열강들의 간섭과 반혁명을 이겨내고 소련을 세웠지만, 모든 것이 녹록지 않았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나는 일단 당장 아이가 싼 똥과 오줌 치우는데 기저귀가 얼마나 편한데 그 맛을 한 번 본 인간들이 자본주의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다. 그 외에 아동을 키우는 데 자본주의가 엄청나게 '편하'긴 하다. 그래서 사실 저출산이 만연한 지금은 혁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보수적인 노인층이 더 많아지면 혁명이고 뭐고 할 기력도 없고.. 무엇보다 지금은 청년층이 너무 지쳐있는 상태인지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이상화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이거 공부하다가 선생이 깝치지 마라를 읽거나 젖가슴 운운하면 일시에 다들 깔깔 웃고 장난치던 기억이 난다.

요새 이거 공부하는 애들도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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