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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래여애반다라
  • 이성복
  • 8,100원 (10%450)
  • 2013-01-11
  • : 2,977
20210225 #시라는별 14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 이성복

언젠가 그가 말했다,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그것은 비정규직의 늦은 밤 무거운
가방으로 걸어 나오던 길 끝의 느티나무였을까)

그는 한 번도 우리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우연히 그를 보기 전엔 그가 있는 줄 몰랐다
(어두운 실내에서 문득 커텐을 걷으면
거기, 한 그루 나무가 있듯이)

그는 누구에게도, 그 자신에게조차
짐이 되지 않았다
(나무가 저를 구박하거나
제 곁의 다른 나무를 경멸하지 않듯이)

도저히, 부탁하기 어려운 일을
부탁하러 갔을 때
그의 잎새는 또 잔잔히 밀리며 속삭였다
ㅡ아니 그건 제가 할 일이지요

어쩌면 그는 나무 얘기를 들려주러
우리에게 온 나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무 얘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
(그것은 우리의 섣부른 짐작일 테지만
나무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


이성복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의 발문을 쓴 나무 조각가 홍경님은 이 시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을 소세키의 문장을 빌어 표현한다. ˝용케 여태까지 무사히 지내오셨소. / 예, 그럭저럭 어쨌든 무사히 지내왔습니다. / (그러나) 그 마음 또한 그 얼굴처럼 주름이 접혀 파삭파삭 메말라 있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한다.˝(<<유리문 안에서>>, 김정숙 옮김, 민음사 pp. 100, 149)

그렇다. 이 시집을 읽고 있으면 이승에서 60년의 삶을 산 시인이 독자인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잘 지내십니까, 고단하시지요, 그래도 오늘 하루 용케 견디셨군요. 삶이 겨울 같지요, 그러나 언제고 봄은 온답니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홍경님처럼 나도 ˝여든두 편의 시와 함께 미소짓고 어깨 토닥이고 한숨 쉬고 손 잡아주고 눈물 글썽이고 쓸쓸해하고 다시 미소 짓기를 반복˝했다.(p 145)

‘오다, 서럽더라‘의 뜻으로 해석되는 <<래여애반다라>>는 나처럼 인생을 반백 년 이상 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이다. 우리 인간은 ‘응애‘ 소리와 함께 이 세상에 던져진 그 순간부터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 윷말˝ 같은 존재다.(‘죽지랑을 그리는 노래‘ 중) 목적지향을 꿈꾸나 인생은 결국 정처가 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렇기에 생은 속절없지만, 인생 초입엔 ˝우리를 받아들인 세상에서 / 언젠가 소리 없이 치워질 줄을 /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는다.(‘식탁‘ 중) ˝속속들이 바람 든 순무˝처럼 어리석어도 괜찮다. ‘來​(오다)의 시기다.

이어 남들과 같아지려고 분투하는 ‘如(여)‘의 시기가 온다. ˝어제도 많이 힘들었겠지만, / 내일 걱정을 다 쓸어 담을 만큼 / 두개골의 용적은 충분하다.˝ 아직은 팔팔하다. 그러다 슬픔이 차오른다. 슬픔은 ˝갈가리 찢긴 암컷의 아랫도리˝에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알들˝(‘뚝지‘ 중)처럼 무더기로 우리 몸 구석구석에 들어찬다. ‘애哀‘의 시기다. 슬프고 애달프고 허물어지고 ˝무언가 안 되고˝(‘극지에서‘ 중) 있지만 그래도 ˝어린 다람쥐처럼 이 생의 저변을 콩닥거리며 뛰어다˝닐 여력이 아직은 남아 있다. ‘반反(맞서다)‘의 시기다. 이제 맞서 대드는 것도 지친다. 하여 돌아보게 되는 것은 돌과 물과 나무와 어둠과 연과 소멸과 남지장사와 북지장사 같은 삶의 면면들이다. ‘다多(많은 일을 겪다)‘의 시기다. 그렇게 50년을 보내고 60에 이른 나는 이런 모습이다.

˝허옇게 삭은 새끼줄 목에 감고 버팀대에 기대 선 저 나무는 / 제 뱃속이 온통 콘크리트 굳은 / 반죽 덩어리라는 것도 모르고˝(‘來如哀反多羅 1‘ 중)

뱃속이 콘크리트처럼 굳어 나는 마치 ˝남의 순간을 사는˝(‘來如哀反多羅 3‘ 중) 존재 같고, 내가 ˝어떤 누구인지˝(‘來如哀反多羅 6‘ 중)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런데도 더 살아야 하나. 더 살아 무엇하나. 살아 있음의 속절없음, 하고 있음의 부질없음이 내 속을 박박 긁는다. 그러나 ˝수의처럼 찢어지는˝ ˝걸으며 꾸는 꿈˝(‘來如哀反多羅 7‘ 중)에 불과하고 ˝애초에 잘못 끼워진˝ 단추 같고 ˝장난기 가득한˝(來如哀反多羅 9) 생일지라도 우리는 끝끝내 살아야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기에. 이 깨달음 앞에서 나는 ‘羅라‘, 비단처럼 펼쳐질 수 있다.

아메리칸원주민들에게 나무는 ‘서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주목나무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사는 나무이다. 우리의 생도 어쩌면 그러할지 모르겠다. 한 생은 짧지만 그 생의 앞과 뒤를 잇는 역사성을 생각하면 이 생이 결코 짧은 생이 아닐 수 있겠고, 그렇기에 무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여기까지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나는 올해 이성복 시집을 모조리 읽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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