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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라앉는 프랜시스
  • 마쓰이에 마사시
  • 15,300원 (10%850)
  • 2025-08-25
  • : 7,060

본 서평은 비채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안치나이, 무요 게이코는 도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홋카이도 안치나이 마을로 옮겨 우편배달부 일을 시작한다. 도쿄처럼 사람이 많지 않아 주민들과 마주하며 배달 일을 하던 어느 날, 데라토미노라는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괜찮으시다면 일요일에 꼭 와주세요. 음만 듣고 가세요."


​막무가내로 권유하는 데라토미노, 마지못해 음을 듣는 무요. 이 세상의 모든 소리로부터 어른의 연애가 시작된다.


오감을 깨우는 섬세한 연애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마쓰이에 마사시가 오감을 자극하는 소설, 『가라앉는 프랜시스』로 돌아왔다. 띠지의 '오감을 깨우는 섬세한 연애소설'이라는 문구만큼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소설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자극하는 문장으로 편지로 사람을 연결하는 우편배달부 무요 게이코와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고 마는 음을 수집하는 데라토미노 가즈히코, 이 두 사람의 서사를 그린다.


/

게이코는 생각한다.

사람이 형태로 만든 것은 남아도, 사람 그 자체는 남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었고,

손과 발, 몸을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었는지…….


형태로 남지 않는 것은 다 사라져 버린다.

─ P.23


​─

과학자들이 이제는 '인류세'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인간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많이 주는 시대가 왔다.

인간은 그 정도로 힘이 커진 걸까 생각하던 시기에 나는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소설은 무요가 데라토미노에게 소포를 전달하며 처음 연결되고, 그의 권유에 무요는 데라토미노의 집에서 음(音)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치 청각을 상징하듯 달팽이관처럼 생긴 프랜시스 수차의 에너지를 직접 받아 듣는 음, 데라토미노는 그걸 꼭 들어봐야 한다면서 무요에게 강하게 권하고. 데라토미노의 집 스피커가 생생한 음들을 무요와 데라토미노는 함께 듣는다.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 만에 서식하는 해달 무리가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조개를 깨는 음부터 시작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도시 몬테 폴로니코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교회 종의 음, 땅울림을 내면서 분화하는 아이슬란드 화산 음, 나이아가라의 폭포 음, 등을.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각각의 리얼한 광경이 냄새와 습도, 기온과 바람, 진동까지 수반하면서 눈앞에 떠오른다고 표현했듯 거대한 지구가 생생히 움직이는 모습이 활자를 통해 펼쳐진다. 그리고 문장은 음의 감각에서 무요와 데라토미노 서로라는 작은 존재에 대한 감각 즉, 몸의 감각으로 수렴한다. 이런 흐름을 읽어내는 순간, 거대한 힘에 고민했던 나 자신마저 무척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단 한 사람을 온전히 느낄 때는 그 사람만의 감각이 충만해지고, 세상의 모든 음을 통해서는 우리는 여전히 작은 존재임을 인지하게 되는,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작품. 이름이 있는 누군가와의 연결은 소중하구나, 하고. 결국에는 모두 사라지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이나 상호작용하는 서로를 소중히 느낄 수 있다고 어렴풋하게 닿는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이 소설이 좋았다. 인류세로 인한 현실적인 문제는 따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겠지만, 저자는 이 드넓은 대지와 거대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작고 초라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연결되는 모든 사람은 각자에게 커다란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두 사람의 서사를 통해 독자에게 전한다.


1958년 출생의 일본 남성 작가. 그 탓인지 소설 속에 낡은 사고방식이 은근하게 깃들어있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게이코에게 비정규직을 당연한 듯 권유한다던가, 나이 든 남성의 시선이나 흔들리는 감정을 즐기는 게이코의 모습 등 작가가 젊은 여성에게 바라는 희망 사항인 걸까? 하지만 데라토미노가 프랜시스 수차의 버저음이 싫었듯 이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도 소설 속의 모든 문장도 매 순간 마음에 들고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

비채 출판사에서 주관한 짝꿍서평단으로 씨네필 슝님과 함께 읽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니 감상이 확장되는 시간이었어요. 문장도 다시 보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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