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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서재
  •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
  • 앤 브론테
  • 19,800원 (10%1,100)
  • 2025-06-27
  • : 2,649

브론테 자매들 중 막내인 앤 브론테의 소설은 처음이다. 셋째 이지만 위의 두 언니가 어린나이에 죽어서 실질적으로 장녀가 된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그 동생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고 나도 어릴 때 아주 재밌게 읽었다. 사실 브론테 자매라고 하면 나는 샬롯과 에밀리 브론테 둘만 있는 줄 알기도 했다. 막내인 앤 브론테는 두 언니들에 비해 덜 알려진 작가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뒤의 해설을 읽어보니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이 출간되자 두 언니들의 작품을 뛰어넘는 놀라운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또한 당시 엄청나게 인기를 끈 소설이었지만 평론가들은 “여성은 읽지 말라”고 경고할 만큼 위험한 소설로 분류되기도 했다고 한다. 읽어보니 그럴 법도 한 게 그때가 빅토리아 시대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 급진적인 작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참한 결혼 생활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이 소설이 ‘최초의 진정한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황량한 와일드펠 저택에 그레이엄 부인이라는 젊고 아름다운 과부가 5살 난 아들 아서와 이사를 와서 세 들어 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레이엄 부인에게 호기심을 보이지만 부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 않고 이웃과 교류도 잘 하지 않은 채 은둔해서 살아간다. 생계는 직접 그린 그림을 팔아서 해결한다고 한다.

이웃의 총각 길버트 마컴은 그레이엄 부인을 보고 반하게 되고 호감을 표현 하며 책도 빌려 주고, 아들 아서와 놀아주기도 하고, 그레이엄 부인이 그린 그림에 진정한 찬사도 보내면서 점점 친해진다.

그러던 중 마을 사교계에서는 그레이엄 부인에 대한 소문들이 솔솔 피어오른다. 와일드펠 저택의 주인인 로런스가 몰래 그 집을 드나들며 그레이엄 부인과 만나고 다니고 어린 아들 아서가 사실은 로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는 거다. 이 소문을 듣고 길버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했으나 어느 날 그레이엄 부인과 로런스가 만나는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소문을 믿게 된다. 분노에 휩싸인 길버트는 친구인 로런스를 갑자기 때리고(욱 하는 성격인 듯?) 그레이엄 부인에게 따지고 드는데, 그레이엄 부인은 이 모든 소문이 다 오해라며 길버트에게 자신이 처녀시절부터 써오던 일기를 건네주며 읽어보라고 한다.

 

 

그 일기에는 그레이엄 부인, 아니 헬렌이 겪은 모든 일들이 담겨 있었다.

처음 사교계에 진출해서 남편인 아서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헬렌의 보호자인 이모는 아서가 좋은 남편감이 아니라며 반대를 했다. 하지만 헬렌은 사랑에 눈이 멀어 아서의 잘못 된 점을 자신이 고쳐줄 수 있다며 결혼을 강행한다. 나쁜 남자에 빠진 여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고쳐 쓸 수 있다고, 자신이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게 어쩜 이렇게 똑같은가...

결혼하자마자 신혼여행을 갔을 때부터 이 결혼 뭔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이 왔지만 신혼 때는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걸 이해하고 그에게 맞춰 주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남편 아서는 조만간 헬렌에게 싫증을 내고 총각 시절부터 알고 지내며 시시덕거렸던, 헬렌과도 아는 사이인 친구의 사촌과 바람을 피운다. 헬렌이 남편을 추궁하자 남편은 뻔뻔스럽게 “그래서 너가 뭘 할 수 있는데?”를 시전하고 헬렌은 그때부터 그저 공식적으로만 아내인 채로 살아가기로 한다. 결혼을 한 여자는 남편에게 종속된 채 남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대. 헬렌은 남편의 폭언과 학대를 견디며 그저 남편을 무시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남편이 어린 아들까지 망치게 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자 아버지 닮은 개쓰레기 아들로 키울 수 없다는 결심이 더더욱 굳어지게 되면서 아들을 데리고 도망가기로 계획한다.

비참한 결혼생활의 끔찍한 기록들을 자세하게 묘사해서 그 시대 여성들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소설은 그 상황을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헬렌은 남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한다. 지주인 친 오빠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데도 헬렌은 오빠가 도와준 살림살이 등의 비용까지 돈을 벌어 갚을 거라고 다짐하는 점에서 자립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자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편의 돈도 오빠의 돈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의지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캐릭터에게 굳건히 심어져 있는 것에서 작가 앤 브론테의 현명한 통찰이 엿보인다.

 


헬렌의 이 모든 기록들을 읽어 보고 길버트는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하고 헬렌의 끔찍한 결혼생활을 알게 되면서 헬렌을 이해하게 된다. 헬렌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지지만 아직 남편이 있는 상태, 이혼하지 않은 상태의 유부녀에게 계속 구애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헬렌의 뜻에 따라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시간을 갖기로 한다.

여기에서 길버트와 또 다른 남자 하그레이브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헬렌의 비참한 결혼 생활 동안 끊임없이 구애해 왔던 남편의 친구 하그레이브. 처음에는 친절하게 헬렌을 도와주는 듯 보였지만 싫다는 헬렌에게 계속해서 구애하며 왜 나를 안 만나 주냐고 화를 냈던 남자였다.

하그레이브 역시 남편 아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생각하는 자였고 남편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조금 더 신사의 예절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라는 정도.

헬렌과 길버트의 로맨스가 약간은 뜬금없고, 로맨스가 로맨스로 다가오지 않아서 전혀 떨림이 없다는 불만이 있기는 한데, 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 중 가장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좋은 남편감에 대한 교훈을 작가는 길버트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해서 더 불행해 지는 경우가 말도 못 하게 많아 안 하고 살아도 괜찮겠지만(실제로 헬렌은 아끼는 동생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해 준다) 그래도 한다면 최소한 길버트 같이 섣불리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이기적인 구애를 하지 않으며 “기다려”라고 할 때 기다릴 줄 아는 남자랑 하라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두 언니들의 작품에 비해서 이 소설은 그렇게 즐기지 못 했다. 읽는데 시간도 오래 걸렸고. 문제를 현실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해결 방안 까지 제시하는 의미 있는 소설인 건 맞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기대하는 상상력이 들어설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이렇게나 길게 세세하고 교훈적인 대화와 묘사가, 그리고 감흥 없는 로맨스가 조금은 사족처럼 붙어서 나오는 건 읽기에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도 앤 브론테가 이 소설이 출간되고 다음 해인 29세에 세상을 떠났다니까 이 소설은 20대 중후반에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 대단한 것 같기도 하다. 그 나이에 여성의 현실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깊이 있는 작품을 써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가 그 나이일 때 뭐 했더라...

아무튼 브론테 자매들은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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