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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7월 11일

 

  몇 년 만에 고향에 다녀왔다. 지난달에 고향으로 이주를 단행한 언니의 생일을 맞아서 이른 휴가를 다녀온 셈이다. 원래는 시끌벅적한 규모의 동행들을 계획했으나 이런저런 사정들로 혼자 다녀오게 되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휴면으로 이전되어버린 코레일 멤버십카드를 살리고 저렴하고 시간이 걸리는 무궁화 왕복표를 사고 나서야 떠나는 실감이 났다. 피를 돌게 하던 역마살이 알코올로 대체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았던 모양이다.

  기차를 탄다. 바깥의 폭염에서 기차는 비껴있다. 그리고 딱 이 시절에 썼을, 이 방향의 기차에서 시작되었을 시를 생각한다. 지금은 기차에서 김밥을 삼킬 수는 없지만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 이 한 줄로 연두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다. 그리고 이렇게 하행선, 기차 창에 눈을 두면 ‘저 순연한 벼포기들’은 포기, 포기 살아서 추억으로 다가온다.

​​

  연두에 울다

 

  떨리는 손으로 풀 죽은 김밥을

  입에 쑤셔 넣고 있는 동안에도

  기차는 여름 들판을 내 눈에 밀어 넣었다​.

  연둣빛 벼들이 눈동자를 찔렀다​.

  들판은 왜 저리도 푸른가

  아니다. 푸르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연두는 내게 좀 다른 종족으로 여겨진다.

  거기엔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출렁거림, 또는 수런거림 같은 게 ​남아 있다.

  저 순연한 벼포기들.

  그런데 내 안은 왜 이리 어두운가.

  나를 빛바래게 하려고 쏟아지는 저 햇빛도

  결국 어두워지면 빛바랠 거라고 중얼거리며

  김밥을 네 개째 삼키는 순간​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마치

  감정이 몸에 돌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도 되는 듯.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

  그래. 저 빛에 나도 두고 온 게 있지.

  기차는 여름 들판 사이로 오후를 달린다.


         나희덕 시집 [사라진 손바닥(문학과 지​성사 2004)]-중에서

 

















  뜨거움은 창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오래 두지 못하게 한다. 고민하다 챙겨온 책들은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이다. 이번에 2권이 출간되었는데 1권의 내용들은 까마득하다. 연결되지 않은 여행기이지만 1권부터 읽기로 한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유럽의 도시들, 나는 아마 가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는 언젠가 갈 수 있다는, 언젠가는 가고 말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아마도 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여행서를 읽게 된다. 그것도 자주.

  '아마도 가지 못할 것'이기에 더 애틋하게 그곳을 보는, 그곳을 걷는 필자에게 빠져서 그곳을 같이 보고 그곳을 같이 걷게 된다. 그렇게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를 돌아보는 데는 4시간이 걸렸다.

 


  아테네 플라타 지구, 로마의 포로 로마노, 이스탄불 골든 혼, 파리 라탱 지구, 빈의 제체시온, 부다페스트 언드라시 거리, 이르쿠츠크 데카브리스트의 집, 이런 곳에 가고 싶었다. 다른 대륙에도 관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 곳은 주로 유럽의 도시들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훌륭한 사회를 만들어 좋은 삶을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더 자유롭고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 소설보다 더 극적인 역사의 사건들을 만났고, 그 주인공들이 살고 죽은 도시의 공간을 알게 되었다. 삶의 환희와 슬픔, 인간의 숭고함과 비천함, 열정의 아름다움과 욕망의 맹목성을 깨닫게 해주었던 사람과 사건의 이야기를 그곳에 가서 들어보고 싶었다. - P5

 

  내가 도착한 곳은 '아테네'가 아니라 '나주역'이다. 고향이긴 하지만 '나주'는 여전히 서툴고 낯설다. 나주보다는 광주가 더 가깝고 살뜰한 것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서일 텐데 항상 복잡한 광주보다는 여유롭고 널찍한 나주역을 이용한다. 40여 일 만에 만나는 언니네 부부가 마중 나와 있다. 길가에는 배롱나무들이 첫 꽃을 환하고 선명하게 피우고 환영 인사를 건넨다.

  반갑다.

  이런 풍경들을 기대했다. 남도의 여름은 원색으로 환하고 명쾌하다. 어디서나 기품있게 선 배롱나무들의 꽃 인사를 만날 수 있다. '카이사르'의 흔적과 역사를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늙어가고 같이 낡아가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유쾌하고 맛있고 즐거운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됐다. 충분하다.




  7월 12일

 

  한쪽으로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 나지막하게 보이지만 멀리는 아파트가 우뚝우뚝하고, 한쪽으로는 잡목이 우거진 산이 가깝게도 멀게도 중첩되는 풍경 속에 앉아서 [유럽 도시 기행 2] ‘내겐 너무 완벽한 빈‘을 읽는다. 너무 달라서 닮아있는 풍경이라 그런지 아주 머나먼 곳을 떠도는 기분이다. 바깥에는 이웃집 노부부가 날이 밝자마자 시작한 메밀 작업이 한창이다. 박스마다 여린 메밀 순들이 가지런히 담기고 있고 유시민 부부는 빈을 여행 중이다.

  빈은, 책으로 말하자면, 유명한 인문학 고전과 비슷하다. 명성 높은 인문학 고전은 모르면 교양인이 아닌 것 같아서 읽는 경우가 많다. 대단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 읽어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내게는 플라톤 · 공자 · 단테· 괴테 등의 책이 다 그랬다. 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내 심정은 그런 책들을 펴들었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빈은 명성만큼 대단해 보였다. 도심의 모든 공간이 영화 속 같았다. 건물은 하나같이 크고 멋졌으며 거리는 넓고 깨끗했다. 상가의 쇼윈도와 사람들의 옷차림에 부티가 흘렀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실내장식이 화려했고 음식값도 그만큼 비쌌다. 바로크 스타일 건물에 들어선 공공 전시관과 세련미 넘치는 민간 갤러리에는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거장들의 그림과 조각이 넘쳐났고, 오페라하우스와 음악협회 공연장 등에서는 유럽 최고 수준의 악단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비롯한 대가의 작품을 공연했다. - P15

 


  우리도 길로 나선다.

  오빠네 와 언니네 중 올케언니만 평균 체격을 밑돌뿐, 우람한 넷을 태운 차의 첫 목적지는 신안으로 가는 천사 대교다. 갑자기 차 노릇에 충실해진 차 입장에서 즐거운 비명일지, 슬픈 비명일지도 모르고 아이스박스 한가득 점심거리를 싸 들고 소풍 간다. 목적지도 풍경도 불편함도 날씨를 포함한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모든 일정과 일상을 내려놓고 왁자하게 떠들고 모두 조금씩은 들떠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크게 웃는다. 잘못 든 길에서도 흥겹다. 돌아 나와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느라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왔다. 누구 때문도 아니다. 모두 자신의 몫을 살아내느라 버겁고 지치고 허덕거렸을 뿐이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런 소풍, 처음이다.

  어디든 길은 비었고 날씨는 적당히 흐리고 배롱나무들은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가운데 남도의 곡식들은 목마르고 뜨거운 여름을 건너는 중이다. 목포를 지나간다. 목포는 매번 거쳐 가기만 할 뿐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목포의 변방 어디쯤에선가 녹을 뒤집어쓴 채 점점 더 '세월' 속으로 묻혀가고 있을 '세월호'에 대한 부채감에 살짝 불편하다. 당연하다. 불편하다고 시선을 피한다면 더 무거운 '세월'들이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불편하고 장이 꼬이게 불편하더라도 마주해야 할 것들은 눈 똑바로 뜨고 대면해야만 한다. 그걸 잊지 말자.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보이고 압해대교를 건넌다. 이제는 고립된 섬이 아닌 압해도는 크고 넉넉하고 기름지고 포실 포실하다.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다는 조금 큰 호수 같다. 이름도 크기도 다른 섬들이 1004개나 된다는 신안군에 놓은 다리 1004 대교는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등을 잇는다. 드디어 천사들이 아닌 우리는 다리를 지난다. 시야가 탁 트인다. 가슴이 뻥 뚫린다.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고 무엇이든 담아내는 풍경이 이어진다. 차창을 내리고 바람을 빵빵하게 채운다. 마음들은 다리를 건너 서로에게로 다가간다. 악마들에게도 천사의 마음을 돌아보게 만드는 곳, 천사 대교다.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자애롭고 은혜로운 섬, 자은도(慈恩島)의 무한의 다리다. 무인도 사이를 잇는 1004미터를 바다 위로 걸어보는 것이다. 섬과 섬 사이에는 다리가 있고 할미도 절벽에는 원추리가 엉겅퀴와 나리꽃들과 어우러져 가득하다. 원추리 향이 땀 냄새마저 향기로 만들어준다. 뒤틀리고 휘어지고 꺾인 채로 나무들은 척박함과 바람을 견디며 제 자리를 지키며 어우러져 살고 있다. 우리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구나. 각각 몇 번의 수술들을 통과한 몸뚱아리들은 상흔과 뒤틀림을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작정한 것도 아닐 텐데 작은 동산만 한 무인도가 건네는 이야기는 대하소설이다. 바다를 건너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여리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야생의 꽃들이 저마다의 향기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휘어져도 뽑히지는 않은 채 나무들은 이렇게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지키고 있다고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각자의 시절도 그러할 것이다. 사느라고, 살아내느라고 강하고 뚝하게 감추고 있던 감성의 속살들이 이제는 또렷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리는 섬과 섬 사이만 잇는 것은 아니다. 섬의 속살들을 만나게도 한다. 우리 안의 속살도 드러난다.

 


  7월 13일

 

  오늘의 목적지는 여수다. 고흥 녹동항, 어판장에서 횟감을 사고 팔영대교를 건너 여수에서 간장게장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와 저녁은 회에다 ㅋ~ 한 잔의 플랜이다. 어제 마땅한 횟감이 없어 "회 먹자. 회~" 노래를 부르던 나는 회 대신 오빠가 숯불에 구워주는 삼겹살을 상추에 싸 먹으면서도 입이 댓 발이나 나온 채 툴툴거렸다.

  "내일 녹동항에 가면 민어를 삽시다."라는 오빠, 

  "민어, 비싸기만 하고 맛없든 대." 형부, 

  "요즘 서대 철이고 여수· 녹동 서대는 맛있어요." 올케, 

  "어쨌든 내일, 녹동항에 가보고 결정하자." 분분한 의견을 단번에 정리한 큰언니는 역시 카리스마 갑이다.

  새벽에는 오늘도 메밀 작업에 분주한 이들의 굽은 등을 일별하고 잠시 빈에 다녀왔다.

 


  오래된 도시들은 저마다 역사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아테네는 의도와 무관하게 상흔이 드러나고 부다페스트는 일부러 드러내며 파리는 감추었지만 보인다. 그런데 빈에서는 그런 것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으로 치면 ‘사기 캐릭터‘였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수재인데 잘생겼고 키도 크다. 손꼽는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가족 기업을 넘겨받아 성공적으로 경영한다. 예술적 감각을 지닌 교양인에다 성격마저 원만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산다. 약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빈은 그런 사람 같았다. 부러워하거나 시샘할 수는 있지만 흉보기는 어려웠다.

  여행에도 ‘상대성원리‘가 적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 빈 만큼 또는 비보다 더 대단한 도시에서 온 여행자라면 모든 게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아서, 너무 완벽해서, 내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오스트리아는 한국보다 부유하고 빈은 지구 행성에서 가장 호화로운 도시다. 건물도 거리도 사람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노점상이나 거리 음식은 아예 없었고, 치안도 완벽해서 소매치기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비가 내릴 때는 모두 실내에 머무는지 거리가 텅 비었다. 우산을 들고 걷는 이조차 드물어서 우리도 준비한 비옷을 꺼내지 않고 카페와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빈이라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다. 수많은 역사의 상흔을 덮어버리는 데 완벽하게 성공해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치적 후진성은 시씨 황후의 아름다움과 바로크 궁전의 화려함으로 가렸다. 독일과 합병해 자의 반 타의 반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서도 나치 잔재 청산 작업은 하지 않은 채 영세중립국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유엔 사무총장을 연임한 쿠르트 발트하임은 나치 돌격대 가입과 독일군 중위 복무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무난히 대통령에 뽑혔다. 독일은 모든 도시 모든 장소에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되새기는 공간과 시설을 만들어두었지만 빈에서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볼 수 없다. 그라벤의 삼위일체 상도 페스트의 참극을 모르는 여행자에게는 그저 멋지게 금박을 두른 종교적 조형물일 따름이다. - P92. 93

 

  가는 길에 운전대를 잡은 오빠는 네비를 끄고 우리들의 고향집이 있던 길과 추억이 있을 법한 길들을 달려 능주를 지나간다. 능주에서 사사 당한 정암 조광조의 이야기도 나누고 화순· 보성 쪽으로 가는 중이다. 화순 너릿재에 관한 추억담이 구불구불 이어져 나오고 지석천의 물들도 구불구불 흘러간다. 화순장으로 '두부'를 배우러 다니던 2014년 여름의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두부(고소하고 달큰하고 감칠맛 가득한)를 다시는 먹지 못할 것이다에 모두 한 표씩을 찍고 조금은 쓸쓸해 한다. 풍경은 우리들의 기분과는 아랑곳없이 옛길들을 지키는 늙은 벚나무와 멀리 논을 지키는 메타세콰이어들 사이에 자태를 뽐내는 배롱나무들이 여름 남도의 상징성으로 완벽하게 어우러져있다. 보성의 조성면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잠시 멈춘다. 처음 들르는 곳인데 익숙한 풍경은 고만고만한 건물들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시골 어느 면 소재지나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조성 장날이다. 장에 나온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은 난데없는 우리를 구경하면서 정다운 길을 지나간다. 어쩐지 아는 사람들 같다.

  곳곳에서 현수막으로 '우주'를 만나니 고흥이다. 최근 누리호가 지나갔을 법한 길들을 따라 달려간다. 오래전 뚜벅이로 갔던 팔영산과 나로도의 길들도 이제는 '누리호'의 길이 되었다.

 

  드디어 녹동항. 한센병의 유배지, 소록도가 바로 지척이다. 일반인에게는 금지겠지만, 당사자들한테는 격리와 유배의 섬이던 소록도가 다리 하나로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다리가 놓였어도, 누구나 왕래가 가능해도, 그 병을 앓는 환자에게는 여전히 심리적인 유배지일지 모른다. '소록도'는.

  팔딱팔딱한 생선들을 만나니 덩달아 살아서 펄떡이는 것처럼 걸음이 가붓해진다. 잠시 후면 경매 시간이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저 줄돔이다. 여수가 고향인 올케의 표현으로는 "샛서방한테 잡아주는 생선"이라는데 우리는 오늘 모두 '샛서방'이고 싶다. 최근에 '우리들의 블루스'에서의 이정은처럼 경매 낙찰을 옆에서 쳐다보며 그들의 제스처와 빠른 손동작을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사이, 발 빠르고 입 빠르고 손까지 빠른 오빠는 무사히 줄돔을 차지했다.



     


  요즘 마땅한 생선이 없다는 말은 사실인 듯 이쪽에서 경매를 기다리는 애들은 빈약했다. 소라나 조기 정도였고 민어가 조금 보였다. 반면에 저쪽은 이제 막 금어기가 풀린 문어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지금은 낙지가 금어기, 어제 무안에서 갯벌 낙지 '탕탕이'가 먹고 싶었던 나는 졸지에 철딱서니 없는 1인이 되었기에 오늘은 돌문어를 잔뜩 보아도 돌부처처럼 함구한다. 그러나 다음번에는 낙지를 '종류별로 다 먹어야지.' 옴팡지게 다짐한다.


  핏물을 뺀 녀석들과 아이스팩으로 채운 아이스박스를 싣고 희희낙락 고흥을 떠난다. 다리가 놓이기 전이라면 순천 쪽으로 빙빙 돌아서 갔을 여수를 고흥 영남에서 팔영대교를 건너면 여수 적금도에 닿고 '백리섬섬길'이 시작되어, '적금 대교', '낭도 대교', '둔병 대교', '조화 대교'등의 대교를 다섯 개 건너면 여수다. 각각의 다리는 각각의 섬들과 모양을 달리했지만 건너는 일에만 충실한 우리는 그저 다리들을 지나간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토록 많은 섬들에 감탄하면서. '세계 최고'라고 우리나라의 다리를 놓는 기술에 혀를 내두르면서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여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렇게 세세한 남도 여행은 처음인 형부의 감탄사가 가장 잦다.

  오빠 내외의 지인이 관리하는 '화양'의 요양병원에 잠시 들른다. 가파른 산 중턱에 자리한 요양병원은 저절로 숨을 깊게 쉬게 만드는 쾌적한 공기와 가까이로는 다도해가 보이고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아프지 않아도 머물고 싶은 욕심이 드는 곳이었다. 이런 풍경과 환경이라면 치유되지 않을 병도 없을 것 같고, 내려놓지 못할 생존의 욕심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찰자의 시선일 뿐, 암 환자 전문 병원이라는데 생이 소멸 중인 사람은 어떠할지를 헤아릴 수가 없다.

  단지 여수에는 '간장 게장'을 먹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간 것처럼 '게장 골목'을 찾아, '게'라면 종류 불문, 요리 불문하는 '게 마니아'인 큰언니도 인상 쓸 만큼 생각보다 별로인 '게장'과 터무니없는 '갈치조림'을 허겁지겁 먹고, 다리를 건너다니기 위해 길 위에 있는 것처럼 많은 다리를 다시 건너서,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이런저런 관광과 여행들로 여수의 곳곳을 다녀보았고 굳이 우리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없기도 해서 길에서 길로, 다리에서 다리로의 여행이 되고 말았다.

  오는 길의 운전기사는 올케언니, 추억이 가득한 '남평역'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남평역을 이용하지는 않았어도 나의 탯자리가 근처이고 우리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시가 있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간이역이다. 2004년 가을에 이곳을 지나갔고 그 흔적은 남았다.

 

 

  가을의 시작에서 --남도(5)

 

  기차는 정해진 길로 보성, 능주, 화순……. 이름만으로도 정겨운 지명들을 지나가고 창에 묻은 이마에서는 점점 해가 거두어집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남평역입니다. 곽재구의 시‘사평역에서’의 그곳,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의 그곳이면서도 동시에 그 어느 곳도 아닌, 그냥 남평역. 이곳을 꼭 지나 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울렁울렁 멀미가 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요, 남평이 제 고향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 역사가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여기를 한 번인가 두 번, 지나쳐갔을 뿐입니다. 남평에서 역은 멀리 있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여기에 와서 막차를 기다리거나 막차를 타보지는 않았습니다. 언제나 막차를 기다리고 타면서 살아왔어도, 여기에 역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도 이제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깝고도 먼 곳입니다. 사진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뾰족한 양철지붕의 낡은 역사, 두런두런 서 있는 나무들, 잘 가꾼 화초들 사이로 배롱나무꽃이 핀 예쁜 간이역입니다. 아무도 기차를 기다리지 않고 내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남평역’이라는 지명이 벗겨져 가는 나무 팻말과 근처의 나직한 산들을 눈에 담습니다. 어디쯤 만삭의 한 여인이 볕 바른 봄날, 몸을 풀었던 산이 있을 것입니다. 오후 한 시 남평역에 도착하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그 여인의 아이에게 시간을 주었다는데 지금의 기차는 조용히 역을 떠납니다. 이제는 누구도 기적소리로 시간을 가늠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을 낳던 여인의 나이를 훌쩍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여기를 지나갑니다. 속은 여전히 울렁울렁합니다. 여인과 아이를 연결한 탯줄이 산자락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립니다. 뜨거운 이마를 차창에 얹자 지나버린 풍경을 감추듯 9월의 저녁이 살포시 내려와 있습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중에서---

 

  소리는 멀어집니다. 사평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평역은 사라져도 사평역은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것입니다. 여인과 아이의 끈, 탯줄처럼.

 

            2004. 9. 14

 

 


  7월 14일


  지난밤에 야심 차게 준비했던 횟감은 실패했다. 알이 가득 차서 회를 뜰 수 없었다. 겨우 몇 점을 맛보기 하는 걸로 만족하고 숯불에 구워 먹었다. 구웠어도 '샛서방'한테 몰래 주고 싶은 맛이었다. 대신에 입에 쩍쩍 달라붙는 '서대 회 무침'으로 회덮밥을 한 양푼씩 만들어 먹고 복수박으로 입가심한 뒤 수박이 되어버린 배를 통통 두드리며 밤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울 집의 대표 카수, 큰언니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며 걷는 길은 좋았다.


 

   


  마지막 여정은 사진 속의 '죽림사'다. 지난밤의 살생은 다 잊고, 절집이라니 거시기하긴 하다.

  아버지, 어머니, 둘째 오빠의 영가를 모시고 난 뒤, 나로서는 첫걸음이다. 주지 스님이 바뀐 절집은 고즈넉하고 한층 절집다운 침묵에 놓여있었다. 가만가만 극락전에 들러 아미타불을 만나고 서성서성 둘러보았다. 장한 배롱나무들과 거기 머물러 있을지도 모를 영혼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기차에서 창에 머리를 박고 노을을 본다. 손에는 여전히 [유럽 도시 기행2]를 들고 있다.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슬픈 건 또 그대로 슬펐다.
  단것을 먹으면 슬픔이 덜어질까 해서 구도심의 유명한 카페에 들렀다. 19세기 부다페스트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고 시씨의 단골집이기도 했다는 그 카페에서 카라멜 프라페와 카푸치노를 마시고 산딸기 요구르트 케이크를 먹었다. 시씨는 그 집을 ‘부다페스트의 보석‘이라고 했다지만 너무 달아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벽에 창업자로보이는 커다란 남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독일어로 써놓은 안내문을 보니 이름이 ‘쿠글러 (Kugler)‘였다. 유럽의 성씨는 직업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쿠글러는 공이나 총알을 가리키는 명사 쿠겔(Kugel)에서 파생했다. 총알과 대포알이 아니라 동그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만든 그 남자는 넥타이까지 맨 양복 차림으로 카페 고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P145


  프라하는 아름다웠다. 왕궁과 교회, 거리와 강, 카페와 박물관, 모든 것이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그 무엇도 대단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 P239


  프라하 자체는 대단했다. 프라하는 역사의 상처를 감추지 않았고, 그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다. 지난날의 상흔은 지난 일로정리하고 오늘은 오늘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렇게 하려고 성과 속의 공존을 허락한다. 프라하의 공기는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품고 있는 듯했다. ‘심하게 지나치지만 않다면 뭘 해도 괜찮아. 사람들이 프라하를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도시여서가 아닌가 싶었다. - P241



  한때 고향은 환멸이었다. 아픔이었다. 눈감고 싶은, 잊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지긋지긋한 곳이었다가 늘 그립고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한 뒤죽박죽 엉망진창의 마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지명이었다. 지금은 언제나 환대해줄 가족이 있는, 아무런 기대치를 발동하지 않아도 좋은, 굳이 지금의 나를 해명하거나 꾸미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곳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푸르게 어둠이 내리는 세상, 나의 시간도 그쯤을 지나간다. 지금 타고 있는 기차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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