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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 김정인
  • 19,800원 (10%1,100)
  • 2015-08-15
  • : 582
내가 구입해온 책을 기반으로 알라딘이 추천하는 책들을 간혹 볼 때가 있다. 그렇게 얻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한국사 3부작 중 첫 권인데 시리즈가 올해 초 완간되었다고 하여 3권 다 구비했었다. 최근에 구입한 책들은 거의 다 완독했고 파시즘을 읽게 된 김에 이 시리즈를 읽어보면 좋겠다 생각하여 읽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최선이고 정답이냐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솔직히 회의적 시각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특히나 한국의 정당 민주주의는 양분화되어 소수당의 목소리는 묻히고 있는데다 그마저 다수당도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현실상 내가 가진 의견이 국회에 반영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정작 중요하게 해결되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지만 그걸 외면하는 국회나 정부에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으로선 민주주의가 차선책으로라도 가장 나은 대안일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 대중 운동의 한 정점이었던 3.1 운동 이전까지 정치체제의 변혁 과정에 대한 역사를 다룬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을 거치기를 지나 일제강점기가 될 때까지 짧은 시간에 조선은 압축적인 정치 변혁 과정이 이루어졌다. 신분제의 해체와 더불어 서양 근대 개념이 수용되면서 민중은 억압되어 있던 불만의 목소리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나열하지 않고 키워드를 중심으로 목차를 구성하여 내용을 정리한 점이 눈에 띈다.
인민, 자치, 정의, 문명, 도시, 권리, 독립 말이다. 인민, 자치, 정의, 권리는 민주주의에 반드시 필요한 키워드라면 문명은 조선이 왕조 국가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식인이) 먼저 수용해야 할 키워드였다. 도시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르는 결과이고 독립은 나라를 빼앗긴 지식인과 민중이 함께 외친 함성이었다.

‘인민‘은 19세기 이전 동아시아에서 피지배층을 뜻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다 19세기 들어 정치적 주체라는 의미로 변화되었으며 소외 계층이 인민화되는 과정을 수반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소외 계층이라면 노비, 여성, 백정이라고 할 수 있다.
1801년 공노비가 해방되고 1894년 사노비까지 노비 해방이 되었으나 신분적 차별의 뿌리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독립협회는 노비제 잔재 청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동학은 여성과 남성은 다 같은 종교인이며 과부의 재혼을 허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독교와 독립협회는 여성을 위한 교육과 계몽 운동을 벌였다. 찬양회는 여학교를 설립해야 한다 기치를 내걸었으며 여기에 독립협회도 함께 가담하여 활동을 해 나갔다.
백정은 조합을 만들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었고 동학농민전쟁 시기 농민군에 가담하기도 했다. 백정을 위한 목소리는 형평사 조직 후 모욕 호칭이나 교육 차별을 금지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해 나갔다.

‘자치‘는 대안 공동체적 개념이다. 천주교는 학문(서학)으로 수용되었다가 이후 종교로 수용, 확대되었다. 천주교는 자치공동체로서 교우촌(하느님을 따르는 친구들의 모임)을 만들고 화전을 일구거나 옹기를 만들어 팔며 공동노동/분배하는 조직을 시도했다.
동학은 천주교의 인간존엄적 평등 논리를 수용하면서도 조선 고유의 습속은 거스르면 안된다는 교리로 시작하였다. 최제우는 ‘내 안에 하느님이 있다‘라고 했으며 최시형은 ‘모든 사람, 사물, 사건에 하느님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빈부귀천 뿐 아니라 사물, 사건에도 존엄성을 부여한 것이 놀랍다. 이들은 개인 수양이자 마음 공부를 가장 중요시했다. 자치공동체는 접주제(종교 공동체)에서 시작하여 포주제(정치, 군사 공동체)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였다.
천도교는 인내천 사상으로 대중들을 종교 운동 안에 끌어들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종교 생활을 강조하였으며 시기에 맞게 독립과 민주주의를 추구했다. 의정회, 전도사회, 소년회 등의 조직을 꾸려 활동했다. 특히 천도교소년회는 경어를 사용하고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고 한다.

‘정의‘는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분배가 실현되는 투명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인민의 노력이었다. 삼정의 문란,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농민들은 생존권이 흔들렸고 이에 억눌렸던 설움이 봉기로 나타났다. 홍경래의 난을 비롯하여 수많은 농민 항쟁이 일어났다. 민란 중심 세력은 빈농이었으나 유지층과 지식인, 수공업자, 노비, 유랑민, 날품팔이 등도 동조했다고 하면 나라가 얼마나 썩어 있었는지 이해가 갈 만하다. 정부에서 삼정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았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도리어 폐해가 심해지자 동학농민전쟁이 벌어졌다. 동학농민군은 토지평균분작, 노비제와 천민 차별의 철폐, 청춘 과부의 재혼 허용, 지역과 문벌을 타파한 인재 등용을 강조하며 대의를 제시했다. 반봉건에서 시작한 전쟁은 청일전쟁을 전후로 반외세까지 더해진다.

‘문명‘은 근대적 시민이 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할 개념이었다. 서양 문명관을 수용해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생각에 지식인들은 서양 학문에 주목하였다. 독립협회는 독립신문을 통해 서양 문명 담론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1894년 정부에 의해 보통 교육이 시작되었고 대중들의 호응도 이어지면서 사립학교 설립 붐이 인다. 음력 시간에 길들여져 있다가 이때 서양식 시간 관념이 받아들여지면서 양력이 일상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근대에 들어와 형성된 공간이자 자발적 결사체들이 시위나 집회로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었다.
독립협회는 오늘날로 말하면 민회(국회)적 기능을 정부에 요구하였는데 고종을 비롯한 권력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었고 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독립 협회는 매주 토론회를 열었는데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지만 굳이 가입하지 않아도 토론회를 방청할 수 있었다고 한다. 토론으로 결성된 의견은 독립신문 등의 매체에 실어 독자에게 전달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국권 수호를 위해 전국에 284개의 결사체가 만들어지고 전국적으로 대중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 시위의 꽃은 독립협회가 주도한 만민공동회와 관민공동회가 아닐까 한다. 정부의 폭압적 진압이 아니었다면 좀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었을텐데 참으로 아쉽다.

‘권리‘는 ‘인권‘과 ‘민권‘을 자각한다는 의미였다.
조선에서는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인민화와 개인화가 동시에 진행되었는데 동학농민전쟁과 갑오개혁을 통해 제도화되는 과정을 거쳤음에도 본격적으로 개인이라는 개념은 20세기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리잡았다. 특권이 해체되면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는 자주노동이라는 개념도 퍼졌다(권세 있다고 남에게 빌붙어 얻어먹으려하는 자들은 더이상 좋은 시선을 받기 어려웠다는 뜻). 한편 교과서를 통한 윤리 교육으로 자립, 근면, 공공성에 대한 가치가 교훈적으로 전파되었다. 재판소 제도 설립 등 사법권이 제도화되고 신체형, 연좌제가 폐지되는 등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한다. 개인의 권리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지만 국권이 피탈되면서 국권과 민권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라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으냐는 지금도 생각해볼 문제이나 예전만큼 집단의 목소리를 내기란 어려워진 게 아닐까 싶다. 오늘날의 지방자치 제도를 내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박영효의 현회 제도(인민이 법을 제정하면 이것을 의회에서 논의하자)나 손병희의 향자치 제도가 그렇다. 유길준의 부민회는 비록 한성에서 시작했으나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근대 말 식민지 초 조선에서 민중이 권리를 자각하고 목소리를 외치는 시기가 도래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특히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한 여러 활동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형태와 비슷한 단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정치 체제는 왕조 국가에서 전제군주정으로, 입헌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3.1운동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입헌군주제가 좀 더 대중적인 호응이 있었으나 민주공화정이 대세가 된다. 다음 권은 1920년대 이후부터 식민지 말까지를 배경으로 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루는 것 같다. 기대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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