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가 한국의 사회주의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압도적이어서 그것을 배제하고 한국 근대문학과 예술을 논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바로 그러한 카프의 위상이 역설적으로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사회주의적 문학(실천)을 협소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사회주의문학을 카프를 통해서만 논의하는 관행은 사회주의가 한국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 카프 소속 작가의 비평론과 작품을 중심으로 한 단선적인 문학사 서술은 다양한 원천을 가진 사상적 흐름과 입체적인 스펙트럼을 형성했던 당대 사회주의‘들‘의 다양한 문화적 실상을 파악하는 것을 차단했다.- P11
송영은 1924년 4월에 있었던 각종 단체들의 발기대회에 염군사 단원들이 음악과 촌극으로 그들을 고무했다고 적고 있다. 즉, 이들은 사회주의 관련 단체들의 출범식에서 문화선전을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일본 경찰이 합법단체인 염군사를 직접 해산하진 못했지만 그 개별 구성원들을 장기 구류하는 방식으로 탄압했고, 사상성이 강하지 못했던 많은 이들이 염군사 조직을 떠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중에도 송영 자신과 이호, 이적효, 김영팔 등이 염군사의 기치를 지키며 "전 조선적인 혁명적인 프롤레타리- P46
아 문예 단체를 결성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했으며, "염군사의 주동적인 역할에의한 설복으로 파스큘라 핵심 분자들과 카프를 만들었다고 끝맺고 있다.- P47
나카니시 이노스케가 그의 조선 방문과카프 출범이라는 일회적 사건의 영향을 넘어 식민지 조선의 초창기 프로작가들에게 작품 내적인 차원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일본어 작품 및 한글로 번역된 작품이 식민지 조선의 작가와 독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읽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P87
논강은 "조선의 무산계급운동은 1927년을 일기로서 운동의 질적 방향 전환을 감행하였으며 따라서 무산계급예술운동에도 질적 방향 전환을 요구하여 이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은 이 전환의실행을 기했다고 설명한다. 논강의 이론에 따르면 무산계급운동의 방향 전환은 "부분적 투쟁으로부터 대중적 전체적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니, 즉 조합주의 투쟁에서 정치투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논강은 "일본의 제국주의의 지배 밑에 있는 전 조선- P122
민중은 필연적으로 이 정치 과정을 과정하여야 하며 그리해서 지금 그것을 과정하고 있고, "조선의 민족적 단일당‘을 절규하며 조선 각지에서 총역량을 이리로 집중시키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과정을 과정한다‘는 말은 후쿠모토가즈오가 즐겨 쓰는 논법으로 당시 사상계에 유행하던 말이다. 이론투쟁의 강조와 조합주의에서 정치투쟁으로의 전환 등은 후쿠모토주의의 중심 주장이며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안광천의 논법이자 조선공산당(M당)의 기조였다.- P123
일본 최초의 문예잡지 씨 뿌리는 사람은 관동대지진과 함께 벌어진 사회주의운동 탄압으로 1923년 10월 폐간되었으나, 1924년 6월에 문예전선』으로 재창간되었고, 1925년 12월 결성된 ‘일본프롤레타리아문예연맹(프로연‘은 문예전선을 기관지로 삼는다. 그로부터 1년 뒤 1926년에 ‘프로‘이 ‘일본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프로예藝)‘이 되었다. 그러다가다시 ‘프로‘가 분열하여 1927년 6월 ‘노농예술연맹(노예)이 만들어지지만 다시 그 ‘노예‘도 분열하면서 1927년 ‘전위예술연맹(전)‘이 생겨났고, 그 결과 ‘프로‘, ‘노예‘, ‘전예‘의 3파 정립 시대가 출현했다. 이후 1928년3월 15일 일본공산당에 대한 탄압을 계기로 ‘프로‘와 ‘예‘가 합병하여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나프NAPF)이 1928년 3월 25일 결성되었고, 기관지 전기戰가 발간되었다. 1928년 12월 25일에 다시 나프를 개조하여 ‘전일본무산자예술단체협의회‘(약칭은 여전히 ‘나프‘)가 되었고, 그 산하에 ‘일본프롤레타리아미술가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극장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음악가동맹‘, ‘일본프롤레타리아가인동맹‘을 두고 기관지 「나프』를 발간한다. 1928년의 나프 결성으로부터 1931년 9월 만주사변 때까지가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P147
카프의 방향 전환은 조선공산당 운동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었으며, 카프 맹원 중 많은 이들이 당대 사회주의 운동과 직접 관련되거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군기 사건은 코민테른 6회 대회와 이어지는12월 결정과 결의, 그리고 조선공산당재건을 모색하던 엠엘파와 서울상해파의활동과 관련되어 있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수세에 몰린 김기진과 박영희를거들며 엠엘계와 연계된 동경 소장파들은 서기 명의로 "반카프적 반XX적분파적 파괴 행동의 음모와 『군기」 탈취 책동"을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뒤를 이어 김남천 등이 군기파를 비판하고 나섰으며, 이 사건의 와중에 타락 간부로 지목된 김기진, 박영희 등이 큰 타격을 입고 카프 지도부의 일선에서 물러났는데, 이를 계기로 임화를 중심으로 한 도쿄 소장파들이 카프 중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P179
사상범들의 전향서인 감상록에는 쓰기/말하기를 강제하는 경찰, 검사, 판사, 형무소장에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자신이 향후 ‘지배적 사회규범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이며, 지금까지의 일탈을 교정하게 된 계기로 ‘생활‘, ‘가족‘ 등의 알리바이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감상록‘에는 ‘통제경제론‘, ‘민족협화론‘ 등, 당대 식민지 지식인의 마르크시즘에 대한 전향적 논의가 등장한다. 이러한 논의의 등장 역시 ‘지배적 사회규범‘에의 순응이라는 관점에서 이해 가능하다. 즉, 식민지 법기구가 전향을 강제하는 과정에서당국은 식민지 사상범들에게 마르크시즘이라는 비정상성의 교정을 요구했는데, 감상록의 작성자인 전향 지식인들은 통제경제론, 민족협화론 등 제국의 공식적인 담론과 중첩되는 변형된 마르크시즘의 전유를 통해 검열의 임계 지점에서 당국에 자신의 전향에 대한 진정성을 설득하려 시도했다.- P227
서구 아방가르드 작품의 여성화 현상에 대해 말한 리타 펠스키(Rita Felski)의「근대성의 젠더」에 따르면, 여성과의 상상적 동일시는 지배적인 남성성의 사회규범에서 자주 소외를 느끼는 아방가르드 작가의 공통적 현상이며 "여성화된- P355
남성은 당대적 가치들의 위기를 말하는 도발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리타 펠스키의 관점에 기대어 박선영은 김남천의 긍정적 인물들의 여성화를 육체적·정치적으로 통제된 지식인으로서 작가 자신의 침해된 남성성의 느낌을 의미화하는 한편, 일본이 ‘신성한‘ 전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리라 여겨지는사람들에게 요구한 호전적 남성성에 대한 도전적인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남천이 마련한 그 박무경의 자리는 당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여성작가들의자리이기도 했다.- P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