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거리의화가의 서재
시간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경험에 따른 것이다. 물론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그 형태가 좋고 옳은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본래부터 겁이 많고 소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20대나 30대 초까지는 돈이 없었을 뿐 오히려 많은 것들에 도전했던 시기였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방송 장비를 설치해서 사람들을 상대로 온라인 방송을 하기도 했고 방송국에 어느 가수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그때 나는 현실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욕심을 다 채울 수 없어서 그 헛헛함을 이것저것 다른 것을 찾아다닌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는 분명 뒤를 돌아보지 않고 경계심 없이 막 부딪쳤던 것 같다.
지금은 무엇을 하기 전 이 정도면 적당해, 타협해야지 하는 생각부터 한다. 이는 나쁘게 말하면 더 나아가거나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뜻이 되겠다.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적당한 성과를 거둘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은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는 줄어드는 것이 된다.

러셀도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긴 나도 가족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애당초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야지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혼자 결정할 수 있으면 더 편할거야 라는 오만한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지금은 결혼을 하고도 10년을 훌쩍 넘긴 것을 보면 사람 일이란 모를 일이구나 싶다.

시간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을믿지 않는다. 시간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며, 두려움은 사람을타협하게 만든다. 타협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남들 눈에 원숙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면 누군가의애정이, 차가운 세상의 한기를 몰아내 줄 사람의 온기가요해진다.
두려움이라고 해서 대개 그렇듯 단순히 개인적인 두려움, 즉 죽음이나 노화나 빈곤에 대한 두려움, 또는 세속적인 갖가지 불행 따위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좀 더형이상학적인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살다 보면 겪게마련인 중대한 재난들, 이를테면 친구가 배신하거나 사랑하는사람이 세상을 떠나거나 평범한 인간 본성에 잠재된 잔인성을 발견하는 일 등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영혼에 스며드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P98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