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잔뜩 흐렸다. 뿌옇다. 세상도 흐렸다. 흐림 뒤에 비로 이어질 것이다. 흐림을 깨고 나타난 비는 흐림의 일부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말하면 비는 싫어할 것 같다. 비는 독립적인 비로 존재할 거라고 외칠 것 같다. 아주 멀리서 비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은 순간이다.
이런 날에는 조금 밝은 기운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런 햇빛 스며든 사진 같은 것들 말이다. 2월 22일에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을 때 2월 22일이라서, 2가 셋이나 있다는 사실에 괜히 신이 났다. 혼자가 아닌 둘이 그것도 셋이나 있었다. 2월에만 누릴 수 있는 발견이고 즐거움이니까. 우리는 이토록 사소한 것들로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하니까. 여하튼 그 햇빛의 줄기는 잔뜩 흐린 이런 하루를 더욱 환하게 만든다.
2월의 끝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잠깐 생각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겠지만 글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좋은 일이라는 걸 안다. 그냥 어제와 같은 하루에서 아주 조금 다른 일상 같은 것. 속상한 일도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일상, 걱정을 쌓기보다는 즐거움은 쌓을 수 있는 일상. 짧은 2월, 여느 달보다 하루 이틀, 덜 일하고 월급을 받는 즐거움이나 산뜻하고 화사한 봄옷을 구매하고 결제한 후 택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마음들 말이다.
환하고 부드러운 햇빛을 품은 책들을 읽은 일은 사소하면서도 기쁜 일이다. 기대한 만큼 만족도 큰 소설을 만나면 더욱 그렇다. 나를 환하게 만드는 책은 『소설 보다 겨울2020』, 원도의 『아무튼, 언니』, 핍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그 중 핍 윌리엄스의 첫 장편소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은 발견의 기쁨을 안겨준다. 정말 좋은 소설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많았지만 우선은 이런 문장을 나누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이 구한 단어들이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좋아할 것이다.
나는 그 단어들 모두를 구했다. 단어들을 사전에 넣어 그것들을 구하는 거라고 아빠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았다. 내 단어들은 외진 곳에서, 구석에서 왔다. 분류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필요 없는 단어를 버리는 바구니에서 왔다. 내 트렁크는 사전 같구나, 나는 생각했다. 단지 잃어버리거나 무시당한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만 달랐다. (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