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그리하여 멀리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에 행복했다가 어지러운 뉴스를 접하면서 분노한다. 아침에는 즐겁고 저녁에는 우울하고 다가올 내일이 두려운 시간도 많다. 안락한 내 공간에서 소소한 즐거움에 만족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다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고민에 빠진다. 어른 말씀에 사는 거 모두 똑같다고 속 끓이지 말라고 했던가. 그러자고 단호하게 다짐하면서 사소한 감정에 무너지는 게 인생인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선 『가든 파티』속 읽으면서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걸 깨달는다. 알 수 없으니 계속 살아내야 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감히 이렇게 평해도 좋을까 싶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단편이었다. 표제작「가든 파티」만이 이미 읽은 소설이었다. 소설 속 인물이 한눈에 그려지는 단편은 적었고 읽다가 앞으로 돌아간 단편도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건 인생에 대한 질문들, 스스로를 다잡는 주문,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 열망, 욕망 같은 것들이라고 할까. 저마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괜찮은 거라는 이전의 생각을 주춤하거나 주저하게 만든다. 타인의 삶은 방관해도 좋은가. 내 안위와 평화가 우선이라고 말해도 좋은가. 9편의 단편 속 화자의 시선이 다양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니까 캐서린 맨스필드는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생각을 읽고자 했던 것이다. 「가든 파티」속 소녀, 유일한 남성 화자인「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도 그렇고 등장인물이 많은「서곡」에서도 모든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한다. 대부분 여성 화자를 통해 그녀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낸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모든 것이 완벽, 그 자체인 「차 한 잔」의 로즈메리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불안은 아주 작은 선의에서 시작되었다. 우연하게 차 한 잔의 값을 부탁하는 거리의 젊은 여성을 향한 마음. 따뜻한 집에 가서 차 한 잔을 대접하는 게 뭐 대수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발견하지 못한 게 있었다. 남편의 등장으로 확인한 그녀의 미모. 자신보다 젊고 예쁜 여성을 향한 남편의 관심을 차단해야 했다. 남편에 의해 결정되는 여성의 삶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런 여성의 삶은 「죽은 대령의 딸들」에서도 마주한다. 아버지는 죽었는데 여전히 그의 그림자 속에 살아가는 자매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다. 군위적이고 지배적인 아버지로 인해 오랜 시간 학습된 결과라고 해야 할까.


자매들이 용기를 냈더라면,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더라면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성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가정교사를 위해 길을 떠나는「어린 가정교사」속 어린 여성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여성 전용 기차에 오르지만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남성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의 심하고 조심했건만 노신사의 친절함에 경계를 허문다. 아, 나는 당장 소리치고 싶었다. 조심해, 그는 흉측하게 늙은 늑대야. 예상대로 흘러가는 이야기. 어린 그녀가 자책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캐서린 맨스필드의 놀랍고 대단한 통찰력. 내면에서 하나의 점으로 시작하는 불안, 공포, 우울, 절망이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지 인물의 심경 변화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뜻밖의 사실」에서 끔찍한 불안에 시달리는 서른세 살의 예민한 모니카는 10년만 젊었더라면 생각하고 젊은 여자들을 곁눈질하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유독 바람이 강한 아침, 모든 게 귀찮다가 불현듯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주문을 외듯 중얼거린다.


“난 자유로워. 나는 자유야. 바람처럼 자유라고.” 그러자 이제 떨리고, 요동치고, 신나고, 펄럭이는 세상이 모두 그녀 차지였다. 그녀의 왕국이었다. 그래, 그렇지. 나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오직 인생의 것이지. (「뜻밖의 사실」, 133쪽)


예민하지만 당당한 모니카는 미용실에서 예전과 다르게 자신을 대하는 마담이 이상하다. 그러나 뭐라 할 수도 없고. 머리를 만지는 심상치 않은 조지의 태도까지. 관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조지가 모니카에게 들려주는 말, 자신의 어린 딸이 죽었다는 사실. 불쾌했던 모니카의 마음은 서늘해진다. 아, 인생이란 뭘까. 누가 우리의 불운과 불행을 조정하는 것일까. 


복잡하고 미묘한 여성의 마음은 「서곡」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시내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가족. 그곳으로 이동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서곡」에서는 린다의 여동생 베릴과 어머니 페어필드의 부인, 어린 세 딸까지 각기 다른 세대의 여성이 느끼는 감정을 담아낸다. 언니의 코에 비해 자신의 코가 끔찍하지만 머리카락에 만족하는 베릴, 딸과 손녀까지 돌보는 페어필드, 호기심 가득한 세 딸. 평범한 일상은 이어진다. 꽃과 나무들로 채워진 아름다운 정원까지 평온한 것 같다. 하지만 잔잔한 풍경 뒤에 숨겨진 내면은 너무도 복잡하다. 린다는 자상한 남편을 존경하면서도 자신에게 강한 그가 혐오스러웠다. 평범한 일상이 때로 지루하고 허무하다. 어디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머니와 여동생, 아이들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안겨주는 건 알로에였다.


아래쪽에서 보니 알로에 잎 가장자리에 길고 예리한 가시가 돋아 있었는데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린다의 심장이 점점 단단해졌다… 특히 길고 예리한 가시가 마음에 들었다… (「서곡」, 245쪽)


「서곡」은 읽을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단편이다. 인생에 대한 궁금증, 나의 내부를 흔드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길고 예리한 가시 같은 존재에 대해서. 캐서린 맨스필드는 우리의 인생을 채우는 각각의 감정들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나를 흔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유일한 남성 화자의 시선인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의 이런 문장에 감탄한다. 빈틈없이 완벽한 단편선이라 말하고 싶다. 책장에서 꺼낸 나의 <가든 파티>, 나는 더 캐서린 맨스필드의 소설과 가까워져야 한다. 


나는 인간이란 커다란 여행 가방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로 채워지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동댕이쳐지고 덜컹거리며 보내지고 잃어버려졌다가 다시 찾아지고 갑자기 반쯤 비워지거나 아니면 더 꽉꽉 채워지다가 마침내 궁극의 짐꾼이 궁극의 기차에 홱 올려놓으면 덜그럭거리며 사라져버린다… (「나는 프랑스어를 못합니다」, 141쪽)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