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그리하여 멀리서
  • 나의 할머니에게
  • 윤성희 외
  • 13,320원 (10%740)
  • 2020-05-08
  • : 2,435

『나의 할머니에게』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조카에게 할머니였던 엄마. 오빠네 큰 조카는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지만 막내 조카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니의 아들은 할머니를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태어났으니까. 엄마는 다정한 할머니가 되려고 했을 텐데. 하지만 조카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였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와 조카들이 보내 시간을 나는 알 수 없으니까. 그 시간, 그 공간에 나는 없었으니까.


엄마 연배의 어르신을 보면서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그려지지 않는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오빠로 인해 젊은 할머니가 된 엄마. 할머니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할머니를 테마로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여섯 명의 여성 작가가 쓴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는 저마다의 할머니를 추억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할머니는 모든 걸 다 내주는 그런 존재였고 누군가에게는 무섭고 거대한 존재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후자였다. 매서운 눈으로 혼을 내는 할머니. 며느리를 흉보던 할머니. 그 며느리가 우리 엄마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작가들이 불러온 할머니의 이미지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누구나 할머니가 될 수 없고 누구에게나 할머니가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빌었어. 손주가 태어나면 구연동화도 해주겠다고.” (「어제 꾼 꿈」, 33쪽)


윤성희의 「어제 꾼 꿈」속의 ‘나’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여동생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나에겐 손주가 없다. 딸과 아들이 있지만 친자식이 아니다. 수영과 구연동화를 배우는 화자는 당당한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지나온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계모라는 이유로 자식들과 불화하고 친척들과의 사이도 좋지 않다. 굴곡진 삶을 감당해온 그녀의 바람이 꼭 이뤄지면 좋겠다.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에선 손주의 부탁이라면 거절하지 못할 것 같은 할머니를 만난다. 죽은 며느리를 대신해서 아들과 손주들을 보살피는 할머니.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 파리까지 동행한 할머니. ‘나’는 할머니가 프랑스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지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할머니에게 다가온 피아노 소리. 사전을 참고하면서 1층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가는 할머니. 밝은 표정을 짓던 할머니에게 그 시간은 달콤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때로 누군가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다. 떠난 자식의 핏줄, 손녀를 향한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애틋하다. 선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던 할머니는 요양원에 있다. 자신이 키우고 지킨 손녀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강화길의 「선베드」속 할머니가 그렇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나’와 친구 명주에 대한 이야기. 손녀보다 친구 명주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던 할머니. 자신이 떠나고 혼자 남을 손녀를 향한 기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손보미의 「위대한 유산」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깐깐하고 괴팍한 할머니였다.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혼자된 며느리와 손녀를 지원한다. 할머니와 지냈던 거대한 저택의 기억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곳에서 지내다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난 엄마. 할머니의 유산을 처분하기 위해 돌아온 곳에서 할머니의 살림을 맡아주던 아주머니를 만나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


손원평의 「아리아드네의 정원」는 미래 사회에서 만나는 할머니를 보여준다. 소설 속 ‘민아’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결혼과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 살아왔지만 인공지능의 돌봄을 받는 늙은 여자가 되었다.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노인 복지, 심각해지는 세대 갈등, 난민과 이민자.


최은미의 「11월행」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모녀 삼대가 1박 2일의 일정으로 템플스테이를 하는 이야기다. 수덕사를 향해 출발해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오는 과정을 들려주는데 그 안에서 엄마와의 딸의 사소한 대화와 갈등이 참 정겹다. 엄마와는 다르다고 여겼는데 엄마를 닮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


“엄마 둘에 딸 둘이시네요.” (「11월행」, 171쪽)


나의 엄마와 나의 딸, 나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 나의 딸과 딸이 낳은 딸. 내리사랑이 느껴진다고 할까. 언젠가 모녀 사대가 모여 정신없다는 나의 선생님의 문자가 생각난다. 내가 닮은 사람과 나를 닮는 사람을 볼 때 전해지는 묘한 감정.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외할머니가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참여한 작가는 모두 여성이다. 기획의도가 그랬을까. 남성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할머니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