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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열다섯, 그럴 나이
  • 나윤아 외
  • 11,700원 (10%650)
  • 2020-12-07
  • : 5,258

어쩌면 시대를 가장 잘 읽고 잘 해석하는 이들은 십 대일지도 모른다. 유행에 민감하고 솔직하고 자기주장도 강한 십 대. 사춘기, 혹은 중2병으로 대신하는 열다섯의 나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겪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내 안의 어떤 상처와 슬픔은 그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 시절에 만난 누군가, 그 시절에 경험한 어떤 일들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열다섯, 그럴 나이』를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는걸.

『열다섯, 그럴 나이』는 지금 십 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있는 그대로, 심할 정도로 날카롭게 직시한다. 다섯 명의 작가가 ‘히어로, 톡방, 이·생·망, 몸캠피싱, 인싸’ 다섯 가지 키워드 중 하나를 선택해 십 대의 일상을 그렸다. 키워드만 봐도 십대가 주목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줄임말,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일상, 그들만의 세계에 진입한 것 같았다.

히어로를 주제로 한 탁경은의 「캡틴 아메리카도 외로워」에서는 가장 보통의 중학생이 등장한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다니고 부모님에게 살짝 반항도 하는 그런 아이들. 그리고 자발적 백수를 선택한 삼촌. 어른들의 눈에 삼촌은 루저나 실패한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진정한 히어로다.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이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즐겁게 사는 삼촌이 차도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했다. 공부와 성적만 강요하는 부모님, 그리고 삼촌. 우리는 어떤 어른일까. 재밌게 소설을 읽고 부끄러움만 남았다.

가장 놀랍고 가슴 아팠던 건 톡방과 몸캠피싱을 주제로 한 이야기였다. 이선주의 「앱을 설치하시겠습니까」는 제목 그대로 카톡을 소재로 다뤘다. 예전과 다르게 조별 과제가 많다. 방과 후 학원으로 가야 하는 아이들, 함께 모여 주제를 선정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 그래서 단톡을 이용한다. 편하고 간편하니까. 하지만 같은 조의 한 명이 카톡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앱을 깔고 참여하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니 나머지 아이들은 그 아이를 자연스럽게 왕따시킨다. 이용자가 많다고 해서 모두 사용해야 한다고 강요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 소설을 또래인 십 대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카톡은 어쩌면 예시였을지도 모른다는 자각, 우리는 늘 희생양을 찾고 있었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희생양들이 하나둘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다음 차례는 누굴까? 자신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어, 윤은 두려웠다. (「앱을 설치하겠습니까」, 78쪽)

몸캠피싱에 대한 나윤아의 소설 「악의와 악의」는 읽는 내내 무서웠다.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 어른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십대에게도 벌어지고 있다니.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 화가 났다. 스마트폰 하나로 일상이 무너지고 삶이 흔들린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김태강의 동영상, 아이들에게 가십거리다. 동영상의 인물이라고 추정된 아이의 선한 얼굴을 떠올리는 ‘나’는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친구들의 수다에 동조한다.

누구도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악의와 악의」, 125쪽)

김태강에 대해 하나의 막이 생긴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거든다. 소문은 진실을 뛰어넘고 새로운 가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스마트폰으로 도착한 동영상 속 아이는 ‘나’같았다. 합성이라는 걸 알았지만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모아둔 용돈을 보낸다. 끝난 일이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협박.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 학교에 퍼져 아이들이 수군대는 것 같은 공포. 그런데 놀라운 건 유학을 갔다는 김태강이 학원에서 웃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나의 태도에 김태강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떻게 그런 동영상을 찍게 된 건지, 수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친구와 부모님. 나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김태강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네 편이 되어줄 거라고 손을 잡아준다.

이 지독한 악의에 매몰되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선한 것을 바라보고, 내 편에 선 사람들과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심이 선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 혹시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을지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악의와 악의」, 154쪽)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그리고 선의와 악의 어느 쪽에 서는가. 무엇이 선의고 악의인 줄 모르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처음에 선택하는 건 대부분 악의 쪽이다. 자세한 사정이나 진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한 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 단편은 사회를 향한 강력한 외침이었다. 우리 사회의 추하고 더러운 민낯인 N번방 사건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인기 많은 아이가 실종되면서 그 애에 대해 진짜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쓸쓸함을 그린 우다영의 「그 애」, 한 번쯤 속상함을 토로하는 말로 썼을 이·생·망을 주제로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야기 범유진의 「악마를 주웠는데 말이야 」를 통해서도 십 대 아이들의 고민과 관심에 대해 알 수 있다. 열다섯은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시기,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나는 시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나이다.

처음엔 십대를 이해하는 생각,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한 소설이지만 결국엔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만 들킨 것 같았다. ‘열다섯, 그럴 나이’에 내 나이를 대입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섯 가지 키워드는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투덜대며 ‘이·생·망’을 말하는 우리, 직장과 사회에서 행해지는 은따와 왕따까지 전부 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 삶을 향한 태도는 열정적인지, 자꾸만 질문이 많아지고 다짐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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