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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글씨를 제법 잘 썼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특히 조카는 설마? 하는 표정을 한다. 심지어 그 당시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탔다고 해도 말이다. 연필로 쓰는 글씨였다. 그랬던 나인데 이제는 연필을 쓰지 않는다. 손글씨를 쓰더라도 연필이 아니라 알록달록 사인펜을 겨우 쓸 뿐이다. 아마도 아무튼 시리즈에서 『아무튼, 연필』이 궁금했던 건 아련한 추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읽기도 전에 나는 연필 수집광이 들려주는 각양각색의 연필 이야기, 혹은 연필의 역사 정도로만 이 책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정도 그런 이야기도 있다. 연필이니까. 연필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연필의 디자인, 연필의 색상, 연필의 관련한 에피소드 말이다.

연필이라니. 초등학생들도 연필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연필보다는 샤프, 숙제도 컴퓨터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도 연필은 애틋하다. 이상하게 그렇다. 연필을 쓰지 않아도 내겐 연필이 있다. 필통도 있다. 버리지 못하는 물건 중의 하나가 연필이다. 모아두었던 불펜은 한 번씩 선 긋기를 해서 상태를 확인하고 버린다. 연필은 쓰지 않으면, 연필심이 존재하는 한 버릴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필을 찾아보았다. 필통 속 연필, 컵 속 연필, 연필이 꽤 많았다.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니까 연필은 취향을 떠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처음 내 이름을 쓴 연필, 소중한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고 시험지에 답을 쓰고. 누군가는 연필로 쉽게 지울 수 있고 고칠 수 있어 나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연필이 더 좋은 건 아닐까.


김지승의 작가가 연필로 바라본 여자들의 이야기는 아프면서도 근사하다. 연필심처럼 견고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좋았다. 뭔가 다른 말로 쓰고 싶다. 그냥 연필처럼 좋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흑연 심 연필을 처음 만든 사람이 여학생이었다는 글로 시작하지만 우리는 그 여학생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역사 속에서 발명가, 사업가, 전문가의 이름이 여성으로 기록된 게 언제인가. 여성의 삶은 그렇게 흐릿하며 쉽게 지워졌다. 여성이었던 비서가 연필로 쓴 건 임시였고, 중요한 결재는 상사인 남자가 만년필로 했던 과거의 일상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무튼, 다시 연필로 돌아가면 저자는 자신과 연필을 연결해 준 이들을 하나씩 호명하며 그들과의 사연을 들려준다. 다른 지방에서 이사를 온 저자가 만난 신부님이 선물한 오셀로 연필, 양배추가 말을 걸아 상담을 하면서 만나 상담사의 연필, 연필을 선물 받기 위해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듣는 코끼리 소동, 같은 건물 지하에 살았던 마녀로 불리던 이웃 할머니의 지우개가 달린 노란색 연필. 단종된 연필을 구하기 위해 웹서핑으로 연락이 닿은 스페인 프리힐리아의 실비아 할머니, 연필로 이어지는 여성작가들. 처음에 의아하게 여겼던 표지 속 코끼리와 긴 머리칼의 여성과 연필이 등장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연필로 시작해 연필로 끝나는 이야기들. 나는 한 자루의 연필을 사기 위해 거리로 선 버지니아 울프에게 듣고 싶은 연필의 의미를 생각하고 “연필은 어딘가에서 어디로 가는 다리다”란 최윤의 문장 속 연필을 상상하며,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나라도 연필이 필요하다는 <작은 아씨들> 속 막내 에이미에게 연필을 사 주겠노라 다짐하게 만든 메이 올컷의 연필을 응원한다.


‘연필을 아낀다’를 연필 쓰는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면 ‘연필을 즐겁게 자주 쓴다’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몽당연필이 되기까지 이 세상에서의 소멸을 돕는 방식으로의 아낌이다. 연필들은 천천히 사라진다. 그들을 아끼는 사람들의 손에서. (114쪽)


인간이 자기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과 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치는 순간의 교차는 우연이 아니다. 연필을 쓰다 보면 인간과 연필이 만나 아주 드문 풍경을 만든다는 걸 알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계속 연필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145쪽)


특정한 물건을 좋아하는 일, 그건 특별하거나 위대한 건 아니다. 그저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것이다. 그것이 저자에게는 연필이고, 누군가에는 그런 글을 엮은 책이고, 수많은 무엇일 수 있다. 아무튼, 연필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풍부했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연필을 더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연필을 쓰지 않더라도 연필을 쥐는 순간, 나는 이런 문장을 떠올리고 연약하면서도 단단한 존재로 살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당신도 그러기를 바란다.


사람이 잘 부서지는 존재이고, 의아할 만큼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안다’고 말하기보다 ‘모를 수가 없다’고 해야 한다. 삶이 환기시키는 건 그런 거다. 우리는 그냥 알기보다 대체로 모를 수가 없는 경험으로 자란다. 상담가가 내려놓은 연필 끝이 뭉툭해져 있었다. 흑연은 잘 부서졌다. 사람이 그런 것처럼 흑연도 강하지 않았다. 나는 다행히 흑연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 사람이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더 약해질 수 있는 존재가 나이기도 하다는 걸 모를 수가 없어서 모른 척하고 산 것일지도. (46쪽)


사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 그 말이 여전히 내 옆에 있다. 그럼 나는 잘 무너지고 부서지는 사람들 곁에 있기로 한다. 강함과 약함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그걸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그 각각의 의미와 위계는 누가 정하는 것인지를 자문하면서. 사람이 어떤 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며 그 무너짐이 어떤 죄책감을 만드는지에 예민할 수 있는 건 내가 잘 무너지고 부서지는 사람이어서다. 모를 수가 없다. 모른 척은 해도. 연필을 쓰는 사람은 부서진 흑연 가루가 종이의 섬유질에 남는 것이 연필 필기의 원리임을 매 순간 경험한다. 종이 위에 남는 건 바로 그 부서짐의 노력이니까. (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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