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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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우 없는 세계
  • 백온유
  • 13,500원 (10%750)
  • 2023-03-30
  • : 7,786


극단적으로 아픈 이야기도 싫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늘 해피엔딩인 권선징악의 세계도 싫다. 아니, 나는 그냥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소설은 열심히 읽는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어쩔 수 없이 읽어야만 한다. 특히 ‘소설 읽고 노래가사로 재구성하기’라는 수행평가를 하려면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가지고 들어가는 50여 권의 소설(해마다 업그레이드 된다)의 내용을 내가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책 소개를 할 때 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고 대화를 나눌 때 소설 속 상황을 잘 알아야 흥미를 지속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평가를 할 때 ‘소설의 내용이 노래 가사에 잘 반영되었는지’ 알려면 내가 당연히 소설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 학교 도서실 사서 선생님은 이런 나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 나온, 혹은 새롭게 발굴된 좋은 청소년 소설을 권한다. 다른 책을 한아름 빌려가는 내 손에 지난 가을 덥썩 쥐어준 책이 이 <경우 없는 세계>이었다. 작가의 이름이 낯익다. 화제작이라 하여 읽은 <유원>의 작가 백온유다.

 

우리 학교는 서울 시에 몇 남지 않은 사립 ‘남자’중학교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점점 그렇게 변해가기도 하지만 특히 청소년 소설에는 남자 청소년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별로 없다. 실제로 책을 읽는 비중도 여학생들이 많고 쓰는 이도 그러하다. 젊은 남자들의 서사는 게임의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있나 보다. 그래서 나처럼 남자 청소년들과 문학을 가르치는, 요즘 세상에 좀 희한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이래저래 생각할 것도 많고 찾아볼 것도 많다. 전작 <유원>도 대단한 서사와 문체로 쓰이긴 했지만 여성 청소년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좋은 작품이되 우리 학생들에게 읽히기에는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그랬던 경험 때문에 작가 이름을 보고 머리에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할까?) 물음표를 달고 읽기 시작했다. 주로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하는 날 책을 읽는데, 두 번째 책을 들고 나온 날엔 길지 않은 정거장을 놓칠 뻔했다. 책 속 이야기, 치밀하고 처절하다. 시작할 때 펼쳐지는 피폐해진 쓸쓸한 청년의 아픈 이야기가 ‘고통스러운 서사’가 읽기 싫어 소설을 멀리하는 내게 또 불편한 마음을 준다. 그러나 그가 자동차 자해 공갈단이 된 한 청소년을 거두는 이야기에서부터 열심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가출 청소년 이야기를 왜 쓰고 싶었을까? 작가의 어떤 경험치가 그런 주제 의식에 맞닿았을지 궁금해 하다가 나 역시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도대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안타깝고 궁금한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비교적 평화로운 우리 학교에도 한 해 한두 학생씩 불편한 유예(의무교육인 중학교 교육을 마치지 못하는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면 ‘자퇴’가 아닌 ‘유예’가 된다.)가 발생하는데 그렇게 학교를 떠나 어지간해서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정말 궁금하다.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아주 드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아무도 그들의 소식을 모른다. 소식이 들려온다 한들 소년원에 갔다. 보호관찰 중이다, 정도이다. 전국에서 한해에만도 수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는데 그 중 대다수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돌봄에 방치되어 범죄의 길에 발 담그는 경우, 혹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경우도 많다. 그 학교밖 청소년들에 대한 걱정이 나를 사로잡은 것처럼 백온유 작가도 가출한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그들의 내밀한 삶과 상처는 무엇인지 고민했었나 보다.

 

가출의 이유도 다양하겠지만 주인공처럼 얼핏 안정적으로 보이는 가정에서도 청소년의 등을 떠미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경우처럼 어떻게든 올바르게 살아내려 애쓰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본의든 아니든 일탈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일이 더 많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의 핍진한 세상을 집약해 보여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사람답게 살아내려는 아이 하나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세상에 대한 절망으로 아무렇게나 막 살아버리려는 주인공 인수의 손목을 잡는다. 인수가 나빠지려 할 때마다 뒤에서 가만히 잡아당겨 주던 경우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을 때, 홀로서기를 애쓰던 인수는 거리를 떠도는 이호를 자신의 옥탑에 이끌어 먹이고 재움으로써 경우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호에게 더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말라고, 그래도 네 곁에 다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알려주려 애쓴다. 어쩌면 그런 힘들이, 그런 손 하나가 우리가 아이였을 때 우리가 더 불행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 많은 나쁜 것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좋은 사람만으로도 세상은 살아지고 나는 더 나빠지지 않기도 하고 그런다. 그걸 보면 착하고 좋은 것은 얼핏 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을 지탱하는 정말 힘센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경우처럼, 그리고 이제 인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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