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레테 - 추억의 해독제
  • [전자책] 사탄탱고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13,800원 (690)
  • 2020-06-19
  • : 12,004

한 세기가 끝나거나 한 체제가 끝나거나 한 개인의 삶이 끝나갈 때 느껴지는 불안감이 있다. 홍콩이 반환되기 전이나 소련이 해체될 때 그들의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 강렬하게 느꼈던 불안감. 이 감각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헝가리 역시 1980년대 말 중앙계획경제체제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바뀌었고, 당연히 사회는 불안해했으며 이 책은 그 시대를 살던 한 '몰락'해가는 집단농장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은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의 문구를 제사(題詞)로 넣었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에 나오는 K의 대사다. 내가 가진 펭귄클래식 <성>에서의 대사는 "그렇다면 그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차라리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인데 내가 딱 8장까지 읽었기에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이 무슨 운명 같은 우연인가 하고 혼자 신기해하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꼈다. 


이야기는 종소리로 시작한다. 종소리에 일어난 후터키는 슈미트 부인과 함께 잠들었다 깨어났다. 이른 시각에 집에 돌아온 슈미트에게 불륜 현장이 딱 들키나 싶다가 상간남인 후터키가 재빨리 도망친 뒤 때마침 집에 온 것마냥 밖에서 문을 두드려서 슈미트에게서 받을 돈을 요구하는 모습은 조금은 웃기고도 슬픈 장면이었다. 몰락해가는 집단 농장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비는 오고 도로는 진창이다. 


술집에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셈을 가지고 술을 마시며 질척인다. 호르고시 부인이 막내딸인 에슈티케를 찾으러 오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탱고를 추다가 해가 뜨자 지쳐 잠든다. 그리고 이리미아시가 페트리너와 함께 술집으로 들어선다.


술집에는 에슈타케와 의사가 없다. 에슈타케는 소외되고 또 소외되다 죽음마저 이용당하는 소녀다. 의사는 외부에서 마을을 끝까지 바라보고 기억하려는 존재다. 


1부는 1장부터 6장까지, 2부는 6장부터 1장까지로 구성되어 이야기는 하나의 원으로 닫혀 버린다. 후터키와 슈미트 부부가 실랑이를 하는 동안 마을에는 엄청난 소식이 퍼진다. 1년 전에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가 살아돌아왔다는 것. 마을의 구원자로 여겨지던 그가 돌아오자 사람들은 갑자기 희망을 가지기 시작한다. 


집단 농장에서 전체주의적 삶을 살던 사람들은 자꾸만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일해서 번 품삯을 받아 온 슈미트는 크라네르와 함께 마을에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다가 후터키에게 걸린 것이었는데, 이처럼 모두들 마을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알던 그들이 이리미아시가 돌아왔다는 말에 갑자기 모든 일이 해결된 마냥 희망에 찼는데... 구원자로 등장한 이리미아시는 그저 공산당의 감시자일 뿐이며 그의 보고서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저 보고서로 올리기 민망한 단어들이 나열된 똥멍청이일 뿐이다. 


술집의 거미줄은 이제 이 마을에서 다른 곳으로 번져나간다. 자신들이 거미줄이 된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스스로 살아가지 못한 채 살아가겠지. 이데올로기는 종교와 같아서 맹목적이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 에슈티케의 오빠이자 악마 같은 서니는 도시를 향해 가던 중 폐허가 된 성에서 종소리인지 윙윙거리는 소리인지를 듣고 하늘에서 내려 온 반투명한 하얀 베일을 마주한다. 에슈티케가 발견된 곳에 도착하자 그 소리는 죽은 소녀의 웃음소리로 바뀌었고 분명 관에 넣었던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시체는 하얀 베일이 사라진 것처럼 사라진다. 그들이 들은 것과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야기의 시작은 종소리였다. 그리고 마지막도 종소리다. 진작에 종탑은 무너져 종이 울릴리가 없지만 종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그 종소리를 후터키도 들었고 마을 사람들도 듣고 의사도 들었는데, 정작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은 것은 의사 뿐이었다. 


종소리의 실체를 확인한 의사는 돌아와서 다시 일기를 쓴다. 희망도 기회도 없는, 몰락을 마주하는 일기를. 그리하여 끝은 다시 처음이다.  


무너진 종탑과 종소리, 죽은 소녀의 웃음소리와 시체의 환영은 어쩌면 집단이 믿고 있던 풍요의 허상과 희생양을 향한 죄책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소리의 실체는 천국이 아닌 지옥이었으며, 미래를 품고 있던 어린 소녀는 천사가 되어 오빠를 도와주고자 했으니까. 이 사람들에게 죄책감이라는 게 있을까 싶지만 희망을 가져보고 싶어진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