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대로 좋은가요?” 책은 이 한 문장으로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흔든다. 이 책은 단지 중년을 위한 경제 교양서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일 시간을 팔고, 소비하고,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작가가 설정한 이 책의 주인공은 50대 중소기업 사장이다. 의대를 꿈꾸던 딸이 작가의 ‘자본론 강의’를 듣고 사회과로 진로를 바꾸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장은 혼란에 빠진다.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작가와 사장의 대화는, 우리가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돈, 노동, 소유, 시간”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든다.
우리는 늘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보상받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것이 ‘착시’라고 말했다. 노동자는 하루 8시간을 일하지만, 실제로는 절반의 시간만 자신을 위해 일하고 나머지는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일한다는 것.
작가는 이 개념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풀어낸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시간을 훔치는 시스템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우리는 문득 우리의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정말 내 시간은 내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팔아버린 시간일까?
“사회주의자가 꿈꾸는 세상은 다 같이 소주 마시는 세상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와인과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p.119)
이 말은 사회주의를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문장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을 이야기하는 선언이다. 노동의 공정한 분배, 여가의 확보, 문화의 향유.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인간은 ‘노예가 아닌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돈보다 ‘시간’의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직업이란 결국 자신의 시간을 파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돈이 아니라,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후회하지 말라.” 이 구절은 단순한 경제학적 조언이 아니라, 철학이자 위로다.
작가는 지금이야말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기계가 인간의 팔과 다리를 대신하던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와 ‘감정’까지 대체하는 시대가 왔다. 생산수단이 AI와 로봇으로 옮겨가면서, 인간은 더 이상 그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자’로 머물 위험에 처했다. 기본소득이 우리를 살릴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소비만 허락된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
결국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공지능의 시대,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 《오십에 읽는 자본론》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라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 더 깊고, 더 인간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다.
“시간의 주인이 되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말라.”
“나의 시간과 타인의 시간을 매너 있게 맞대라.”
책을 덮고나니, ‘하루의 의미’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경제학이 아닌 ‘인생학’으로서의 《자본론》,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에게 남기는 진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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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7
가격만 눈에 들어오고 그 배후의 노동이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내 돈 내고 산 물건 내 마음대로 한다는 생각을 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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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4
상대의 삶을 부정하면 나 역시 부정당할 뿐이에요. 나의 수십만 시간과 상대의 수십만 시간이 상호 존중 속에서 매너 있게 만나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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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7
돈이 아니라 시간의 관점에서 제 인생을 보게 되면, 참 잘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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