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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 치누아 아체베
  • 9,900원 (10%550)
  • 2008-02-22
  • : 4,116
-20251012 치누아 아체베.

지난 달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읽고 독후감 쓴 걸 AI한테 읽어 보라 하면서 문득 궁금했다. 그 소설은 동아프리카에 한동안 머물던 백인 지주 관점에서 쓰였고, 탄자니아(케냐였나)지역 자연의 아름다움과, 유럽 출신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지역민에 대한 애정, 그의 입장에서 느낀 유대감 같은 걸 담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원주민 입장에서도 그럴까? 원주민 입장에서도 백인과 우정과 연대감을 느끼고 그걸 서술해 둔 작품도 있을까? 그런게 창작되었더라도 동족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고 비난과 함께 매장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AI는 그런 내 질문에 원주민 관점의 소설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어보라고 답했다. 마침 언젠가 소설책을 마련해뒀어서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었다. 연휴의 일곱 권 독서 중 마지막이 이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읽어 보니, 책을 권한 AI조차 되게 외부자 관점이고 뭘 몰랐네 싶었다. 이전 읽은 소설이 동아프리카 지역이라면, 이번 소설은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이보족들의 마을들이 배경이었다. 난 백인과 원주민의 우호적 교류 같은 걸 물었는데, 선교사들에게 설득되어 개종하고 광신적 기독교도가 된 원주민들이 등장했지만, 그들이 이야기의 주축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갈등의 주된 부분이고 원주민 공동체의 전통과 단결을 무너뜨리는 쪽에 가까웠다.

이야기의 주인물인 오콩코는 세 부인(나중에는 두 명 더)과 그 자녀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강인한 남자이다. 그는 게으르고 여성스럽고 능력없던 자신의 부친을 원망하고 부끄러워하면서, 그와는 정반대의 사람이 되고자 애쓴다. 열심히 일해서 가세를 일으키고, 강한 체력으로 훌륭한 씨름 선수의 모습을 보이고(그걸로 남의 여자도 꼬셔서 부인 삼는다), 마을 조상신의 강림 대리자 역할을 하는 에구구의 한 명으로도(비밀이지만) 활약하며 야심을 키운다. 그런 그도 연약했던 딸 에진마에게는 애틋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숨기고, 마을 여인을 죽인 다른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상처럼 데려온 소년 이케메푸나를 아들처럼 키우면서 결국 그의 죽음이 결정되었을 때 약해질 마음이 두려워 스스로 그 아이를 죽여버린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인이나 아들을 마구 때리고, 소리를 지르고, 강함과 전통 유지의 상징 인물이지만,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그냥 개같은 폭력 가장이다.

마을 사람들이 주술에 의지하고, 쌍둥이를 버리거나, 죽은 아이를 악령 취급하며 토막내거나, 죽음에 대해 복수를 하기 보다는 보상을 하면 그걸로 끝내버리는 걸 그린 걸 보면 작가는 그런 잔인한 전통들까지 옹호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서구의 폭력에 맞서 전통을 옹호하다 숭고하게 죽은 인물로 오콩코를 묘사한 뒷표지의 글도 너무 해석을 닫아놓은 느낌이었다. 작가가 나이지리아의 폐습에 저항하고 끝없이 서구사회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가르쳤던 걸 감안하면 오히려 오콩코는 시대착오적이고 폭력, 무대뽀로 침입자들을 밀어내려다 실패하고 굴욕을 참지 못해 역시나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삶을 내버린 인물로 그려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콩코의 죽음과 함께 후반부 짤막한 부분에서 초점화자는 백인 치안판사로 옮겨간다. 자기 구미에 맞게 아프리카에 대해 서술하고 제목 붙이는 그 장면은 이전/이후로 아프리카가 겪는 수모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싶었다.

얌으로 만든 푸푸란 음식이 궁금해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도 이태원에 가면 푸푸, 에구시수프, 비터수프 같이 나이지리아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뭉뚱그려 그런 식당들을 아프리카 레스토랑, 하고 소개하는 페이지들도 있었지만, 좀 더 세세하게 직접 찾아다닌 후기를 남긴 어느 페이지를 보면,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모로코 등등 식당을 운영하는 이에 따라 음식 종류의 세부 구성도 좀 다르고, 아프리카의 서부/동부/북부 문화권의 종족이나 언어나 종교도 다 다르겠다 싶은 걸 알겠다. 우리를 ’아시아‘ 하면서 한중일아세안중앙아시아서아시아남부아시아 모두 뭉뚱그려 버리면 섭섭해할 거면서, 우리도 그냥 ’아프리카‘ 하고 그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에 너무 무지하고 검은 한덩어리처럼 취급하면서 디테일한 차이와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해온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은 구전 문학 비슷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되어서, 사실 이거다 하고 밑줄 친 문장은 없었다. 서사도 장장마다 바로 이어지지 않고 일단 어떤 상황이 발생한 걸 암시한 다음 뒤이어 구체적인 맥락과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변죽 울리며 청자가 뒷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구성이 많았다.

우무오피아 사람들은 아바메 사람들처럼 멸족했을까? 아니면 기독교로 개종해서 겨우 명맥만 잇고 문화적 유산들은 다 잊힌 채로 살게 되었을까? 나이지리아에 무척 많은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고 군부나 정치인들만 부자가 되고 서민들은 여전히 가난한 채 석유 채굴로 오염된 니제르강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에티오피아는 커피라도 사다 마시고 인류의 조상 이야기 할 때마다 들으니까 좀 관심을 가졌는데, 서아프리카는 아는게 참 없다. 영국이 지배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부족간에 이간질하고 사이 나빠지고 하는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든 너무 자주 들어서 신기하지도 않다.

많이 궁금해도 가보기 쉽지 않은 나라들, 에이즈가 국민 절반 이상을 덮친 나라도 허다하고, 외부인들 보면 강도 대상으로 삼고, 그런 방식이 아니면 삶을 유지할 수도 없는 국가들이 많아서 대부분 여행 금지 구역 지정되어 가볼 수 없는 대륙, 방문하기엔 위험한 국가가 대부분인 게 안타깝다. 지도에 존재하지만 찾아가는 게 신기하고 찾아갈 이유를 찾기도 어려운 나라가 되어버리기까지 그 과정의 이야기 일부를 책에서나마 조금 엿본 것 같다. 많이는 읽지 못하더라도 가끔 이런저런 아프리카 국가들의 목소리 들려주는 소설을 읽고 싶은데, 읽어야겠는데, 첫 입부터 썼다. 이제는 외부인인 내가 가도 콜라 열매 같은 거 깨서 나눠주는 호의를 바랄 수 없을 마을의 오래전 모습이 아마도 글로만 남았다. 누군가 기를 쓰고 써서 그나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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