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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 [전자책] 안녕, 드뷔시
  • 나카야마 시치리
  • 10,000원 (500)
  • 2020-05-14
  • : 261
-20210215 나카야마 시치리.

이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 하루카와 잠시 경쟁 구도를 이룬 피아노 연주자가 등장하는데, 그 이름이 미스즈, 뜻은 아름다운 방울이었다. 어려서 내가 살던 도시의 피아노 대회가 열리면 늘 대상을 휩쓸던 아이와 이름이 같아서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나간 피아노 시 대회에서 연주를 마친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대를 내려왔다. 너무 긴장했고, 몇 달 간 치열했던 연습도, 성심성의껏 레슨해 준 선생님의 노고도 순식간에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 망했어. 나는 역시 재능이 없어. 시상 발표 때 대상-금상-은상-동상-장려상이 거꾸로 불렸는데 4위인 동상에 내 이름이 들리자 어리둥절했다. 상품은 멜로디혼이었다ㅋㅋㅋ. 대상은 같은 반이지만 다른 학원을 다니던 아름다운 방울이가 탔다. 이후 5, 6학년 때도 계속 시 대회에 나갔지만 다음엔 장려, 그 다음엔 아무 상도 타지 못했고 방울이는 매 대회마다 대상을 휩쓸었다. 마지막 대회 이후 피아노 선생님이 결혼하면서 학원을 닫고 지방으로 이사가게 되어서 나도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다. 선생님은 혹시 학원을 옮길 생각이면 어디어디 학원으로 가라고, 거기 선생님이 이 도시에서 제일 잘 가르친다고 했고- 그 학원은 방울이가 다니던 곳이었다.
한 2년 쯤 놀다보니 다시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서 중학생인 나는 선생님이 소개한 그 학원에 갔다. 조금 늦게 받은 제자라 그런지, 지인 소개라 그런지, 이 동네에서 공부 제일 잘 하는 애라는 소문을 미리 들어서 그런지 새 선생님은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그런데 그 학원에 다니면서 나는 선생님이 가르친 아이들이 시 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비결을 알게 되었다.
학원에는 칸칸 마다 피아노가 한 대 있었는데 입구 쪽에 터돋은 곳에 계단 한 두 칸 올라가면 문이 있고 그 안에 피아노가 있는 넓은 방이 외따로 놓여 있어 조금 특이했다. 내 동생과 같은 반인 첫째 남자아이와 그 아이 여동생 둘 까지 그 학원을 다니는 삼남매가 있었는데, 모두 제법 피아노를 잘 쳐서 상도 곧잘 탔다. 남매 중 둘째인 여자아이가 어느 날인지 연습을 안 해 온 모양이었다. 레슨 중인 방안에서 갑자기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렸다. 학원 아이들은 다들 갑자기 어두워진 얼굴로 못듣는 척, 모르는 척 했다. 방울이도 그랬다. 그날은 아주 애를 잡는지 자 같은 걸로 때리는 소리, 울음소리, 피아노소리가 섞여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나중에라도 내가 저 꼴을 겪는 게 아닌가 겁이 났는데, 애초에 선생님은 내가 피아노를 취미로 배울 뿐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리 엄하게 다루지 않았다. 선생님은 연주 한 부분 한 부분 꼼꼼하게 잘 보시는 분이긴 했지만 실력 향상의 비결은 매서운 지적과 매가 병행된 결과였다. 나는 그렇게해서까지 잘치고 싶지는 않았고...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학원에 다니는 동안 방울이랑 친해져서 걔네 집 놀러가서 그 동안 방울이가 대상 탈 때마다 받은 전리품-바이올린은 줄이 끊어졌고, 팬플루트를 시범삼아 불어줬고, 플루트였나 크로마 하프였나는 배우는 중인데 어렵다고 했고, 오르간은 쓰잘데 없어서 팔았다고ㅋㅋㅋ- 구경도 했고, 같이 문방구에서 와플 파이도 사 먹었다. 친하지 않을 때는 피아노를 나보다 잘 치는 것이 샘도 나고 애가 피아노만 잘 치지 너무 쌀쌀 맞고 콧대 높다 생각했는데 친해지고 나니 말도 잘하고 재미있었다. 그애 집에 있는 팝송책을 마음에 들어하자 문방구 가서 악보를 복사하는 것도 허락해 주었다. 아름다운 방울이는 나중에 피아노를 그만두었다가 결국 다시 피아노로 돌아간 것 같은데 지금은 뭐하고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
뭐 그래서 나는 피아노를 얼마나 치냐... 하면 체르니 40번 치다 관뒀고 슈베르트 좀 치다 말았습죠...지금은 하나도 못 침 ㅋㅋㅋㅋ그래서 소설 읽는 동안 피아노에 관한 부분이 나와도 음 잘 모르겠다 하고 봄 ㅋㅋㅋ

제목부터 드뷔시가 등장해서 음악 소설이구나, 지난 번에 읽어보니 시치리 아저씨는 추리물 작가던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궁금했다. 다행히 소설의 메인 테마 격인 드뷔시의 ‘달빛’은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감상 시험 때문에 지겹게 들어서 아는 곡이었다. 그때 시디 하나에 구워 반복해서 들은 노래들이 아직도 귓속에 남아 있다. 주입식 공교육이 장점도 있군요…
사고로 할아버지와 사촌을 잃고 본인은 심한 화상으로 몸이 망가지고도 삶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피아노 연주에 매진하는 하루카와 그녀를 가르치며 재활을 돕는 미사키가 주 인물이다. 보면 볼수록 미사키는 심각한 사기 캐릭터(이자 훈남)였다. 이후로도 미사키가 활약하는 음악 추리물 시리즈가 나온 모양인데 별로 궁금하진 않다ㅋㅋㅋ. 하루카가 사람들의 뒤틀린 시선과 신체적 어려움이라는 겹겹의 고통을 딛고 피아노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뻔함과 감동을 오락가락 하다가, 진짜 범인은 또 누구냐 하고 이놈저놈 다 의심해보다가, 마지막 얼마 안 남은 분량 동안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하나, 하는 순간 터지는 반전에서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ㅋㅋㅋㅋ 너무 문학상 신인상 노리는 소설이라 처음에는 별로인 느낌도 있었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이 정도로 재주 부렸으면 상줬어야 겠네, 그런데 다른 경쟁작도 시치리가 쓴 개구리 살인마 소설이었다고 하니 님이 짱 먹으세요...ㅋㅋㅋㅋ
지난 소설 작가 형사 부스지마 읽을 때는 대사만 잘쓴다고 뭐라했는데, 이 소설 보니 같은 작가 소설이 맞냐 싶게 지문에도 힘을 빡 줬다. 식상함과 참신함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소설로 피아노 연주를 과연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는데, 십여페이지 가까이 미사키의 협연 풀어 놓은 건 조금 지루했지만 뒤에 하루카의 콩쿨 장면은 최선을 다하셨구나 싶었다. 피아노는 잘 모르고 딱히 재미는 없지만 나름대로 리듬과 강약과 감정과 느낌을 글로 담으려고 애쓴 건 신기하기도 했다. 그치만 그닥 연주를 글로 읽는 효용은 모르겠음 ㅋㅋㅋ
읽다 말고 소설에 등장한 피아노곡을 유튜브로 찾아 들으니 좋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곡들의 링크를 정리해 놓았다.

Seong-Jin Cho – 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 
https://youtu.be/d3IKMiv8AHw

Seong-Jin Cho – Etude in C major Op. 10 No. 1 
https://youtu.be/9E82wwNc7r8

부르크뮐러 2번 - 아라베스크 Burgmüller - Arabesque
https://youtu.be/PAuj1-DncI0

베레초프스키 |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4번 마제파(Mazeppa)
https://youtu.be/a-iaC044s_8

Seong-Jin Cho plays Chopin Etude op.10 no.2 in A minor
https://youtu.be/ayX919A1b1o

Dmitry Shishkin – F. Chopin ˝Etude in C sharp minor, Op. 10 No. 4˝ (Chopin and his Europe) (encore)
https://youtu.be/ZZ1KQAlj7LM

Dmitry Shishkin plays Liszt ˝La Campanella˝
https://youtu.be/kkq_3CrvFUM

조성진 Seong-Jin Cho] Debussy Claire de lune 드뷔시 달빛
https://youtu.be/97_VJve7UVc

Stanislav Bunin: Debussy - Arabesque No. 1 in E major
https://youtu.be/GStfo_f4L0g

+밑줄 긋기
-이야기와 음악에는 힘이 있다.
이는 재앙을 막는 초능력이 아닐뿐더러 죽은 자를 되살리는 마력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믿게 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힘이다.

-한데 말이다, 이 할아비 생각으로는 갖고 싶고 되고 싶다는 소망이나 희망은 과일 같은 거란다. 젊어서 먹으면 자양도 되고 미용에도 좋지. 그렇지만 과일이라는 게 때가 지나면 상하고 썩는 법이거든. 썩은 과일은 독소를 지녔지. 당연히 그걸 계속 먹는 사람은 배 속부터 좀먹히는 거다. 그리고 현실과 싸우는 힘을 잃어 간단다. 게다가 말이다, 아무리 맛있어도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으면 배탈이 나게 되어 있어. 사람은 누구나 과일을 먹어도 되는 한도가 미리 정해져 있는데 그걸 분수라고 한다. 분수를 모르는 자의 말로는 대체로 자멸이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간신히 삼킨 말이 두 가지 있었다.
주위 기대를 배신하는 게 그렇게 죄스러운 일일까.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

-세상은 오래 전부터 비열하고 저열하며 뻔뻔스러웠던 것이다.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밑바닥에서 올려다본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면 그 모습이야말로 진짜였던 것이다.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공격에 노출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이 비난하는 쪽에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한다. 아니,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잔학함을 정의감으로 둔갑시켜 자기 내면에 있는 악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올바른 인간이라고 믿는 것,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을 악으로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악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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