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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 [전자책] 몫
  • 최은영
  • 6,000원 (300)
  • 2020-01-07
  • : 452
-20210207 최은영.

끄억...언니가 오늘 좀 달렸다. 단편 분량 세 편이지만 온도도 속도도 모양도 다른 작가들 세계를 요래저래 옮겨다니며 불태운 하루였다. (라고 썼지만 어차피 달리 할 일 없는 빈둥대는 주말...)
최은영의 단편집 두 권을 본 게 벌써 3년 전이라니!!! 지금 와서 다시 읽으면 나는 왠지 그 소설들을 더 좋다고 말할 것 같다.
이 소설 처음 읽는데, 이상하게 첫 머리부터 이미 읽어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인칭이면 조금 수월하게 읽혔을 글을 일부러 당신은, 하고 해진을 지칭하며 일부러, 일부러 불편하게 읽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말을 어디서 읽었던 것 같았다. 혹시 비슷한 이야기 어디서 들으신 분 있나요...아니면 나 예전에 이 소설 읽는 꿈을 꾼 건가요…
그 사이 읽은 책에서 접한 고대 남학생들이 이대생들에게 저지른 집단 폭력, 교수의 조교 성폭력 사건, 기지촌 여성 살해 사건, 그리고 작가와 비슷한 시절 대학 다니면서 멀찍이서 접한 반미 집회, 대학 노래패에서 세미나하던 기억, 그런 게 가득한 소설이라 남일 같지 않게 읽었다. 거기에다 그때는 서로 사랑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표현하지 못했던, 그래서 뒤늦게 돌아보면서 아파하는 해진과 희영과 정윤의 마음을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그려놔서 마음이 쿡쿡 쑤셨다.
최은영의 소설을 모두 다 좋아하진 않았는데(대부분은 좋았지만 가끔은 기복이 있나...했는데), 이 소설은 정말 좋게 읽혔다. 또다시 드는 생각이지만 예전 소설집 한 번 더 읽으면 그때 못 봤던 걸 볼 것 같고, 다음 소설집이든 장편소설이든 작가의 새 작품을 기대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자꾸만 내가 바뀐 것인지, 내가 이상한 지 되묻곤 한다. 아무렴 어때. 내 바깥이 바뀌고 안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일 거야. 그게 더 나쁜 쪽만 아니라면 괜찮을 것이다.

+밑줄 긋기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서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정윤은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말을 끊지 않았고, 충분히 들은 뒤에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다. (키야악 두 문장으로 인물을 이렇게 간명하게 그려버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한 깊은 수준의 공감을 했고, 상처의 조건과 가능성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 나날이 길었다.

-그때 당신과 희영의 뒤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범죄는 모국에서! 그러자 누군가 조금 작은 소리로 따라 외쳤다. 강간은 미국에서!
당신과 희영은 서로의 얼굴을 봤다. 몇몇이 그 구호를 산발적으로 외치는 동안 당신은 몸을 돌려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말했다. 구호 중단하세요. 구호 중단하세요. 그러나 당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인파 속에서 허우적대면서 말했다. 구호 중단하세요.(아...진짜 읽으면서 참담한 기분이 들었던 집회 현장…)

-정윤 언닌 정말 그렇게 믿어요?
희영이 입을 열었다.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 그런 일이 없어질 거라는 거, 통일 조국이 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거, 여자들이 맞고, 강간당하고, 죽임당하는 일이 없어지리라는 걸 믿어요, 언니?
논리에 모순이 있네. 정윤이 말했다. 민족 주권과 빈곤의 문제를 여성 문제로 축소해서 보려는 겁니까?
당신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로 그런 희영과 정윤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했다.
언니는 여성 문제가 그렇게 작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전 그분이 살아 있을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사람들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했어요. 민족의 누이 운운하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 하려고 그렇게 처참한 시체 사진을 사용했고……
정윤이 희영의 말을 끊었다.
여성 문제요? 본인이 돌아가신 분과 같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거 오만한 생각 아닌가. 너무 다른 입장 아닌가. 희영은 그런 삶을 경험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런 삶에 대해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희영이 그렇게 가난해 본 적 있어요? 몸을 팔아야 할 만큼? 대학 교육까지 받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신발 신으면서 희영이 같은 여자랍시고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장면인데 많은 담론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나는 그나마 불과 일년 여 차이에 구성원이 다른 조직이라 선배들이 오히려 희영과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운동에 접근했던 게 다행이었을까. 국가와 민족을 외치는 대신 파시즘과 군사문화 타도와 여성주의를 이야기했던 게 그나마 다행인가. 당사자성에 대한 논의, 곡해도 생각하게 되고. 어쨌거나 이 부분도 조금 참담한 기분. 가장 좋아하던 선배 입에서 오히려 적대적인 말을 듣는다면 진짜 멘탈 부스러질 것 같긴 함…)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희영은 거기까지 말하고 당신을 부드럽게 바라봤다.
정윤 언니가 그랬지. 나는 이 문제로 글을 쓸 수 없다고. 어쩌면 그 말이 맞았는지도 몰라. 가끔씩 언니들의 마음이 너무 가깝게 다가와서 내가 언니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정윤 언니의 말을 생각이 들면 정윤 언니의 말을 생각해.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모른다고. 착각하지 말자고.
(아야야...희영아 살살 때려...얼마 전 친구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과열되기도 했었는데...어떤 말들은 한 사람의 인생 방향을 영영 틀어 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또 어떤 말하여지지 않은 말 또한 그런 일을 한다. 그런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ㅠㅠ)

-Q.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인만의 원칙이 있나?
A.솔직할 것. 나의 가장 더러운 부분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가까운 사람들의 상처를 함부로 재현하지 않는 것.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하지 않는 것. 아는 척, 잘난 척, 내가 뭐라도 되는 척하지 않는 것. (ㅠㅠ명심하겠습니다요… 그리고 최은영님 가장 더러운 부분도 정말 쓸 수 있었다면 그 마음이 순백에 가깝지 않나 싶음….이건 착하게 쓰겠다고 맘먹는다고 써지는 게 아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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