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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 볼테르
  • 11,520원 (10%640)
  • 2009-12-20
  • : 2,571

볼테르가 최상급 스토리텔러라는 말에 급 궁금해져서 냅다 읽었다. 스타일 면에서 살짝씩 아쉬움은 남았어도 최상급이란 타이틀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고나 할까. 인간계를 내다본 이들의 철학과 사상은 극문학으로 탄생하고 생산되었다. 볼테르가 쓴 <캉디드>는 순진한 주인공이 비극적인 상황을 연달아 맞으면서 깨달아가는 삶의 모순을 풍자한다. 어쩐지 <돈키호테>를 매콤한 맛으로 확 압축시켜놓은 듯한 이 작품을 어떻게 리뷰해야 할지 막막한데 일단 해보겠다.


독일에 어느 영주의 성에서 길러진 고아 출신 캉디드. 그는 철학자이자 가정교사인 팡글로스에게 받은 낙관주의 신봉 사상에 푹 빠져버린다. 철학자 말에 따르면, 이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라고 한다. 즉 어떤 사태가 일어난다 한들 그것이 최선의 결과였다는 의미이다. 뭐, 거기까진 좋은데 주인공이 영주의 딸과 스파크가 튀더니 결국 성에서 쫓겨나고 만다. 이후로 캉디드는 유럽 곳곳을 배회하며 전쟁에 휘말리고, 정치에 얽히고, 도적들을 만나고, 감옥에 갇히고, 누군가에게 속거나 이용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걷게 된다. 마치 하늘이 그의 낙관주의를 무너뜨릴 작정이라도 한 듯이.


성을 나온 캉디드는 불가리아 군대에 끌려가 미친 듯이 매 타작을 당한다. 그곳을 달아나 도착한 마을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문전 박대를 받는다. 그러다 거지꼴로 다니는 철학자 팡글로스를 만나 듣게 된 소식은, 불가리아 군대가 영주의 성을 함락하고 사람들과 영주의 딸까지도 죽였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불과 작품의 극 초반 내용인데, 이쯤 해도 철학자의 낙관주의는 틀려먹었다 느낄 법 하건만, 제대로 세뇌당한 캉디드는 계속해서 팡글로스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 한다.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소동마다 캉디드는 신념을 지키는 반면, 볼테르는 그 속에서 갖가지 모순을 집어내고 풍자하기에 바쁘다. 독자인 당신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면서.


캉디드는 영주의 딸을 탐한 죄목 때문이라지만, 이유 없이 고통받은 철학자의 신세를 이해할 수 없어 세상을 탓해본다. 그러나 철학자는 그 모든 과정들이 최선의 세계를 위한 필수 요소라며 반박했다. 심지어 선인이 악인으로 변하여 서로를 죽이는 것마저도, 개인의 불행은 공공의 이익이 된다는 결론으로 이 또한 최선임을 강조했다. 내게는 그 주장들이, 도망치기에 급급한 궤변론자의 헛소리로 느껴졌다. 볼테르 또한 그렇게 느끼도록 이런 패턴을 반복한 듯하다. 두 사람이 도착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대 지진이 일어나 국토의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고, 여기서도 최선이 어쩌구 필연이 어쩌구 하는 말을 내뱉자, 그걸 들은 종교 재판소의 비밀 요원이 두 사람을 끌고 가 감옥에 집어넣는다. 교수형에 처하겠단다.


어찌어찌해서 캉디드는 도망쳤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영주의 딸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는다. 그녀는 불가리아 군인에게 끌려갔다가 유대인에게 팔린 상태였다. 그 유대인을 살해한 캉디드는 재판소장까지 죽이고서 그녀와 멀리 달아난다. 놀랍게도 아직 초반 내용인데, 이 같은 미친 전개가 한참 남아있어 일일이 썼다간 시간이 부족할 테니 몇 가지만 더 쓰고 마치겠다. 여행 중에 혼자가 돼버린 캉디드는 다시 영주의 딸과 만나기 위해 유럽과 남미를 돌고 돌게 된다. 파라과이에서 만난 신부가 알고 보니 그녀의 오빠였는데, 자신의 결혼 계획에 반발하자 홧김에 오빠를 죽여버린 주인공. 이렇게 우발적인 사고조차도 어떻게 필연이라 부를 수가 있을까. 이런 일들이 계속되자 캉디드의 강한 사상도 조금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엘도라도에서 막대한 돈과 보석을 얻은 캉디드는, 그것으로 여행 중의 위기에서 벗어나곤 했다. 그의 선한 마음과 달리 사람들은 캉디드의 등골까지도 빼먹을 심산이었다. 이 시기에 같이 동행하던 철학자 마르틴은, 팡글로스와 반대되는 비관주의로 캉디드의 어수룩함을 지적해댔다. 캉디드의 재물을 훔친 사람의 배가 침몰하자 인과응보라며 기뻐하는 주인공과, 배에 타고 있던 무고한 승객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는 마르틴. 두 사람은 끝까지 동행하며 갑론을박을 멈추지 않는데, 확실히 마르틴이 등장하고부터가 읽는 맛이 난다. 여튼 너무 길어져 이만 쓰기로 하겠다. 분량이 많지도 않는데 전개 속도가 너무 빨라서 좀 산만했던 작품이다. 차라리 길게 늘려서 템포 조절만 해줬으면 아주 완벽했을 터. 결말이 어떻게 나는가가 너무 궁금했는데, 이렇게 깔끔하고 간단명료한 마무리라니, 진짜 볼테르는 넘사벽이다. 헌데 그에 비해 또 읽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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