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다 좋다고 난리인데 나만 또 안 맞는 작가를 발견했다. 역사와 초자연적 현상을 결합한 환상소설가라는 앨마 카츠. 내놓은 작품마다 문학상 후보작에 오르내렸다던 꽤나 잘나가는 미국 작가이다. 아직 수상 타이틀은 없는가 본데 어째선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고.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 판단이 설 텐데 아직 국내에는 요 한 권뿐이다. <심연>은 그 유명한 타이태닉호의 침몰사건을 가져와 유령 소재를 접목해낸 고딕 느낌 나는 호러소설이다. 늘 그렇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하다 보니 그렇게 막 참신하지는 않았다. 바로 앞전의 리뷰에서도 말한 바 나는 오컬티즘에 매력을 잘 못 느껴서 더 그럴 것이다. 아니면 이 오컬티즘을 잘 뽑아내는 맛집을 아직 못 가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제.
타이태닉호가 침몰한 1912년과, 자매선인 브리태닉호의 첫 출항인 1916년의 두 시점이 교차된다. 1912년은 타이태닉호 승무원인 주인공 애니가 승객들을 담당하는 내용과, 승객들의 잡다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배에서 음산한 기운을 느낀 승객들은 교령회를 열어 유령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클라이맥스에 주인공이 문 열고 들어와 파투 나지만 혹자는 애니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애니는 한 유부남에게 눈이 멀어 자꾸만 접촉을 시도하고, 그의 아기를 제 자식인 양 여기며 집착해댄다. 애니의 이해 안 가는 행동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문득 이 책을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했던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에 깡생수를 들이켰다.
1916년은 타이태닉호에서 생존한 동기의 권유로 다시 복귀한 애니의 시점을 다룬다. 여객선의 타이태닉호와 똑닮은 병원선으로 만들어진 브리태닉호, 그리고 군 간호사가 된 주인공. 전쟁 중상자를 치료하는 바쁜 일상들로 트라우마를 회복 중인 가운데 4년전 그 유부남이 환자로 입원하게 된다. 드디어 일할 맛이 좀 나는가 했더니, 그가 애니를 보고서 기겁을 해대는 게 아닌가. 자신과 같은 마음일 줄 알았던 왕자님의 예상 못 한 배신으로 멘탈이 나가있던 중, 그가 흘린 첫 아내의 일기장을 통해 애니가 아주 대단한 착각 속에 살았던 것과, 타이태닉호에서 다들 쉬쉬했던 유령의 정체를 깨닫는다. 와 정말 놀랍지가 않다.
이런 유령 테마에서는 뭔가에 홀려서 혼비백산하는 패턴이 계속 나와주어야 한다. 헌데 <심연>은 주인공의 허둥대는 이유가 유령이 아닌 이성한테 푹 빠져서라는 게 아주 그냥 웃음벨이다. 애니의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등등 서사에 제법 힘을 주셨던데,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게다가 주인공 외에 여러 인물들의 자잘 자잘한 이야기들이 여객선의 침몰과 함께 소리 없이 흩어져 버린다. 그러니까 죄다 불필요한 얘기로 끝나버렸는데 이 맥거핀에 불과한 서사들을 뭐 하러 집어넣었을까 싶었다. 물론 작품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였기도 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나머지 역시나 실화 바탕은 별 수 없나 싶더랬다. 그런 것치곤 타이타닉 영화는 명작이었으니 거참 아리송하네. 암튼 많이들 재밌다고 하니까 저 때문에 거르지는 마시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