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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똥벌레
  • 화재의 색
  • 피에르 르메트르
  • 13,320원 (10%740)
  • 2019-04-10
  • : 1,084

가뜩이나 코로나로 힘든데 날씨마저 최악이라 요즘은 뭘 해도 의욕이 없다. 톱니바퀴가 군데군데 고장 나버린 일상은 밤낮을 가리질 않고, 내 육체는 좀비처럼 숨 쉬고 움직이는 중이다. 가뜩이나 독서활동도 뜸해지는데 골라든 책마저 재미가 없었으니, 근 한 달 동안을 슬럼프로 보내고 있다. 아무리 노잼이라도 내가 웬만해서는 중도에 포기하거나 스킵 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마구마구 점프하면서 읽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나름 흥행 보증수표 같은 작가인데 어쩌다 이렇게 핵노잼으로 전락한 걸까. 전작인 ‘오르부아르‘에 비하면 냄비받침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의리상 완독은 했으나 실망이 커서 리뷰는 패스할까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읽은 책은 전부 기록을 남기는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님은 일단 뭐라도 남겨보기로 한다. 이제껏 모든 글에 영혼을 갈아 넣었지만 이번에는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련다.


‘오르부아르‘의 후속작이라곤 하나 배경만 같을 뿐이라 딱히 연결된 내용은 없었다. 전편에서는 똑같은 문제와 절망적인 상황을 재치와 유머로 넘긴 반면에, 후편에서는 웃음기 최대한 빼고 엄격/근엄/진지모드로 일관되게 헤쳐나간다. 너무 무거워질 때마다 종종 위트 몇 스푼 넣으시던데 오히려 그게 더 마이너스였다. 작품 분위기가 이렇게나 어둡고 심각한데 억지로 유머를 집어넣는다 해서 그게 재밌어질까? 웃기기는커녕, 눈치 없단 소리 듣기 딱 좋은데 과연 ‘오르부아르‘를 썼던 사람이 맞나 싶다. 그냥 적당한 텐션에 진지함으로 일관되게 썼으면 더 좋았을 텐데. 스토리와 소재도 되게 별로였다. 전반전은 은행가 집안이 경제 위기로 파산하는 내용이고, 후반전은 은행가의 딸이 원수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구미가 썩 당길만한 스토리도 아닐뿐더러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밋밋해서 영 임팩트가 없다. 1부 마지막에 아들이 왜 건물 창가에서 뛰어내렸었는지 이유가 밝혀지고, 사업과 재산을 날려먹게 만든 주변인들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드디어 주인공의 피 튀기는 화려한 복수가 시작되려나 싶었다. 그러나 주인공의 복수혈전은 내가 원한 것과 딴판인 데다, 아들과 프랑스 여가수의 지루한 장면이 너무 많아서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과연 프랑스인들은 이런 문학에 박수쳐주고 그레이트를 외치시는지 궁금할 따름.


그나저나 지지리도 인복 없는 주인공이었다. 부친은 떠나시고, 아들은 장애인이 되고, 절친이던 하녀는 돈을 빼돌리고, 기업 파트너는 교활한 방법으로 재산을 날려먹게 만들고, 국회의원인 숙부는 돈 꿔달라 협박하고, 아들의 가정교사였던 애인은 아들을 오랫동안 괴롭혀왔다. 자신은 갈수록 쫄딱 망해가는데 원수들은 잘 먹고 잘 살고 모든 게 잘 풀려만 가니 얼마나 괴로우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 작품도 대충 보면 개그콘서트 같은데 자세히 보면 인간극장이라 하겠다. 여튼 이래저래 해서 시원하게 복수하고 막을 내렸지만 왜인지 통쾌한 맛은 없어서 기쁨은 반이 되고 슬픔은 배가 되는 애매한 기분만 남았더랬다. 아 진짜 하나하나 파고들어서 전부다 태클 걸고 싶지만 지독한 날씨에 까칠력을 다 뺏겼는지 더 이상 힘이 나질 않아 이제 그만 써야겠다. 이 책이 나를 잘못 만난 건지, 내가 이 책을 잘못 만난 건지 모르겠다만 머릿속에 뭐 하나 남는 게 없었던 대단한 작품이었다. 이제 그만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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