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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오테카 라우렌치아나

내가 쓰는 기사에 스스로 점점 만족을 못 느낀다고 털어놓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여전히 과학에 관해 쓰고 싶지만, 다른 식으로 쓰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편집자가 으레 하듯이, 조가 이 새로운 방식이 어떤 것인지 물었을 때 나는 딱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P2324
기사에 쓸 만한 것이 있을까 주위를 흘깃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등 자신의 기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궁금해졌다. 그들은 이곳이 월드와이드웹의 탄생지임을 알까? 디지털 우주가 기원한 이곳에서 물리적 우주의 기원도 탐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이가 있을까?- P25
고생물학자나 고고학자와 달리, 물리학자에게는 연구를 시작할 유적이나 화석이 없다. 변하지 않은 채 후대로 전해지는 것이 전혀 없다. 물리학자가 연구하는 모든 것은 변형되고 진화하고 융합한다. 진리는 그냥 발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재현해야 한다.- P25
물리학과의 우리 모두는 그 기사가 어떻게 나왔는지 잘 알았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잘 쓴 기사였다. 그는 연구자들을 희화화하지 않았고, 그들의 연구 경력에 입발림하는 칭찬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기사가 크게 호평받은 것은 그가 연구 정신과 그 연구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제대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 기사는 내가 지나다니는 복도 게시판에 꽤 오랫동안, 몇 달 동안 붙어 있었고, 나는 작게 나온 그의 사진과 이름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뭐 그런 쪽이었다.- P31
이론물리학은 대체로 사적인 활동,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열정이 흘러나와 외부 표현물을 찾아낸 듯하다. 나는 설령 의미 없는 소품이라 할지라도, 이 강당의 분위기를 다시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간직하고 싶다. ‘세른 공기: 2012. 7. 4.‘라고 라벨을 붙인 볼품없는 주석 깡통이라도 누군가 팔기 시작한다면, 나는 그걸 사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설 것이다.- P3334
오래전에 찍힌 색 바랜 사진을 통해 나를 사랑하고 따스하게 품어주는 할머니는 갑자기 수수께끼를 간직한 인물이 되었다.- P53
"이 힉스 보손 기사 말인데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요? 오늘 아침 여기에서 터져 나온 감정에 관해서도 썼어요? 이 연구에 매달려온 사람들, 아니 이 연구 자체가 삶이었던 사람들의 기쁨은 담았어요? 그들의 흥분, 혼란 그리고 그들이 이 연구에 쏟아부은 피와 땀, 눈물은요?"- P56
"내 말은요, 독자들에게 모든 사실을 마지막 하나까지 다 들려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냥 그것들이 어떻게 의미를 만드는지만 보여주면 되는 거죠. 연결을 보여주는 거예요. 과학을 보여주세요!"- P57
"아시겠지만, 사상은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마음속에서 구현되는 거죠. 바로 그 때문에 이론 물리학자들이 자신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대중에게 설명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거예요. 우리는 보여줄 물질적인 것이 거의 없고, 모든 활동이 펼쳐지는 장소인 마음속으로 사람들을 초청할 수도 없어요."- P60
그녀가 떠날 때, 나는 손에 쥔 종이를 편다. Breaking.symmetries@gmail.com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억누를 수 없다. 모든 최고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알려주는 주소 같다.- P63
안녕, 사라
처음 두 장이에요. 집필은 가장 좋을 때에도 외로운 과정이 될 수 있어요.- P72
(아이작) 뉴턴은 겉으로 보이는 복잡성 아래 질서가 있다고 믿었고, 비록 결과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을지라도 원인을 보면 자연이 단순하면서 스스로 공명한다고 믿었다. 이를 토대로 그는 일련의 규칙을 제시했다. 교회에 있는 규범에 거의 상응하는 자연철학의 규범을 정립했다. 이 규칙은 단순했다. 만물의 일차원인은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원리로부터 유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인은 반드시 결과보다 단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P115
비슷한 결과들은 동일한 원인에서 비롯될 것이다. 일반진리라고 확언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자연철학에서는 드러난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 외에 다른 원인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P115
불타는 모습은 그 어떤 전조가 아니라, 그저 태양을 도는 우리 행성처럼 확실하게 규정된 궤도를 따라 지루하게 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었다. 혜성은 운명의 전령이 아니었고, 따라서 두려워할 대상도, 인간사에 조언을 해줄 존재도 아니었다. 우리의 운명을 바꿀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운명이 속박되어 있는 것은 천체다.- P123
"맞아. 거의 같은 맥락이었지. 지상은 천체의 그림자가 아니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견해가 귀족이 관찰한 것에 비해 잿더미나 다름없는 것도 아니야. 어떤 개념의 진가는 그 본질적인 가치에 있는 것이고, 검사와 시연을 견디는 능력에 있는 거지. 자연은 우리 모두를, 왕과 농민을 동일한 규칙에 따라 똑같이 대해. 자연은 천체와 지구를 구별하지 않아."- P126127
"(전략)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야. 아이작 경은 자신의 전설적인 연구가 불완전하고 미완성이라고 고백하면서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개괄했을 때 크게 용기를 낸 거야. 그는 사과도 변명도 하지 않고, 그저 그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지. 뉴턴은 자신이 간파한 중력이 중간에 매개하는 것이 전혀 없이 아주 먼 거리에 걸쳐 작용하는 힘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았어. 이 점을 인정한 것은 그의 실패가 아니라 위대함이었고, 후대 학자들에게 설명하는 일을 맡긴 거지. 그는 이렇게 썼어. ‘자연을 설명하는 일은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세대에게 너무나 어려운 과제다. 확신을 갖고 무언가를 좀 하고, 나머지는 후대의 누군가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낫다."- P129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대학교가 교양 교육의 장소이며, "과학 추구를 삶의 본업으로 삼는" 우리 같은 이들조차도 자신의 연구와 "문학이든 문헌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간에 다른 학문들 사이에 연결을 이루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어. 그는 "과학자들 사이에 팽배할 수도 있는 협소한 직업 정신"과 "사람들이 작은 세계, 자신들의 아주 작음에 더 알맞은 세계로 응결되는" 경향을 경계했어.- P146
이전의 뉴턴처럼, 맥스웰도 수학의 힘을 써서 추상적 관계를 정확히 표현하고, 이론을 세우고 그것으로부터 구체적인 예측을 내놓을 수 있었지.- P157
맥스웰의 방정식은 겉으로 보기에는 진동하는 전기장이 진동하는 자기장을 생성하고, 또 그 반대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끝없이 번갈아 진동하는 이 운동이 빛의 요람을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난 거야. 빛은 맥스웰의 이론에서 파동으로 여겨져. 이 방정식에서 도출된 일정한 속도로 전자기장에서 퍼져나가는, 자체적으로 유지되는 물결치는 교란이야.- P167
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할 때 우리는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은 상황들에서 특정한 수학적 형태가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부터 시작해. 그런 사례들에서 비록 해당 양들의 물리적 해석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관계의 수학적 형태는…… 동일"해. 그에 따라 ‘추론 사슬‘도 서로 아주 비슷비슷하니까, 수학 수수께끼를 푸는 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어. 한 계를 연구하여 얻은 지식을 다른 계를 파악하는데 적용하는 거지. 이런 계의 물질적 측면만 살펴본다면, 우리는 어떤 유사성도 찾아내지 못할 거야. 본질적인 관계를 수학적으로 기술해야만 닮은 점이 드러나.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 사이의 유추를 통해 계속 숨겨져 있었을 연결 관계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수학적 형태의 유사성 덕분이지.

*system, 과학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는 통일된 전체 영역을 가리키는 말. 계 바깥은 환경이 된다. —옮긴이- P168169
제대로 음미하고 싶어서 원고를 인쇄한 뒤 내가 아는 가장 평화롭고 조용한 곳으로 갔답니다. 와이드너 도서관의 서고예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높은 책장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바깥에 신경을 빼앗길 일이 없고, 온 세계가 책장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축소된 곳이지요. 오로지 희미하게 풍기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어요. 당신의 글이 나를 다른 시대와 장소로 데려갔으니까요.- P172173
맥스웰의 전설적인 방정식을 그렇게 낯선 언어로 읽고 있다 보니, 사실의 객관성과 그것을 우리가 내면화할 때의 주관성 사이의 창의적인 긴장을 새삼 느끼게 돼요. 우리 각자는 자신의 경험이라는 망토로 세계를 덮고 있다는 것을요.- P174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원대한 목적이 최소한의 가정을 토대로 최대한 많은 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보았어요. 그리고 그는 그 일을 탁월하게 해냈지요. 통합의 대가인 그는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묶고, 질량과 에너지를 연관 지었지요. 그가 특수 상대성과 일반 상대성의 주역인 빛과 중력의 혼인을 중매하려고 나선 것도 필연적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실패했지요. 그가 양자역학을 완고하게 거부한 탓도 있었어요. 그는 확률 용어를 써서 정립된 이론은 "우리를 신의 비밀에 더 가까이 데려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P178179
개념은 상품이 아니라, 생명체예요. 어느 개념과 사랑에 빠질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게다가 교환이 가능한 것도 아니지요.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가치 있는 것을 이루려면 자신에게 충실해야 해요.- P179180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는 냉철한 과학자라는 신화가 "경험에도 반할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 떠올리기도 어렵다"라고 반대하면서 탁월한 지적을 합니다. "법정에서는 변호사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상반된 주장을 펼친다. 특정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는 상상력은 그 견해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사람만이 지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일이 진행되는 방식이지요. 다른 방법은 아예 없어요. 주관성은 과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강화합니다. 생각이 저마다 다른 아주 많은 이들이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때 좋은 점은 능력에 상관없이 결코 어느 한 사람이 전체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각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열정을 추구해요. 진리는 그 집단적인 노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지요.- P180
아인슈타인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시간이 팽창해 보인다고 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으므로, 이 말은 내 운동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지각이나, 남들의 운동을 보는 내 지각에만 적용된다. 자신의 기준틀에서는 모든 일이 늘 일어나는 그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이들을 본다면, 나는 그들의 시간이 내 시간보다 느리게 흐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만히 있고 내가 움직인다는 주장을 똑같이 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의 시계가 평소처럼 움직이는 반면 내 시계는 느리게 가고 있다고 지각할 것이다! 이 명백하게 모순되는 현실들 중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방법은 전혀 없다. 둘 다 똑같이 옳다. 모든 논리적 단계들을 밟았다고 해도, 이 불가피한 결론은 여전히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P204205
우리가 이미 확인했다시피, 중력은 가변적인 힘이다. 힘의 세기를 자동으로 조정함으로써 모든 질량을 지닌 물체가 미리 정해진 비율로 가속되도록 한다. 이러한 사실은 중력의 속성과 가속도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아인슈타인은 그 관계를 알아내겠다고 결심했다.- P220
나는 난생처음 보는 듯 밤하늘을 응시했다. 별빛이 무심하게 태양 옆을 쌩 지나치는 대신에 사실상 고개 숙여 인사한다는 것을 과연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컴컴한 깊은 우주 공간에서 이 미묘한 사회적 인사 교환이 기나긴 세월 동안 이루어져왔다. 나는 천체가 얼마나 더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자연의 섬세한 예의범절이 또 뭐가 있을까?- P234
(닐스) 보어(Niels Bohr)가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을 때, 그 이론은 아직 풋내기에 불과했어. 서툰 10대 청소년처럼 인습 타파적이고, 반항적이고, 어색했지. 기존 학계는 마치 부젓가락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처럼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 그러나 모든 청소년이 그렇듯, 양자론은 그냥 환영받기를 원했어. 고전역학에 아직 완전히 세뇌되지 않았고 대담한 새로운 개념을 아직 열린 마음으로 대할 젊은이들에 둘러싸일 필요가 있었어. 아주 격식 없는 분위기인 보어의 이론물리학 연구소는 이 어린 이론이 자라는 데 필요한 바로 그런 양육 환경을 제공하는 집이었어.- P240
사람들은 동료애가 넘치는 코펜하겐 회의가 공식적인 솔베이 회의(Solvay Conferences)와 전혀 다르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와닿은 것은 둘이 같은 씨앗에서 발아했다는 거야. 물리학이 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음으로써 말이지. 어느 면에서는 이런 회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세계가 너무 커서 어느 한 사람의 마음속에 담길 수 없는 광기에 직면해 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해.- P244245
지난 약 15년 동안,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은 나란히 함께 쓰였어. 모순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야. 보어-조머펠트 원자 모형은 전자 궤도가 양자화해 있다고 말하면서도, 고전역학 법칙을 써서 그 에너지를 계산했어. 그 계산은 잘 들어맞았지만, 물리학자들은 뻔히 드러나는 논리적 모순을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있었지. 윌리엄 브래그(William Bragg) 경은 자신이 월요일·수요일·금요일에는 고전 이론을 쓰고, 화요일·목요일·토요일에는 양자론을 쓴다고 말했다. 아마 쉬는 날인 일요일에는 이 지옥 같은 선택의 중압감에서피신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이중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해도, 하나의 일관된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했어.- P268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는 수학이 길을 열어줄 것이라 믿고, 방정식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어. 그리 오래가지 않아서 그는 친숙한 대수 규칙들이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 듯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몹시 실망스러운 일이었어. 그가 연구하고 있는 양들이 경험과 전혀 들어맞지 않는 기이한 특성을 보여주었어. 이 양들의 곱이 곱하는 순서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였지.
선입견을 버리겠다고 결심했음에도, 그는 이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어. 그것이 자기 이론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 다행히 그 곱셈의 비가환적 특성에 모두가 실망한 것은 아니었어. 괴팅겐의 막스 보른(Max Born)은 이 ‘새로운‘ 법칙이 수학자들이 오래전부터 행렬 같은 가로세로로 배열된 대상들을 곱하는 데 썼던 잘 알려진 법칙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어. 그러니 하이젠베르크가 말하고 있던(자신도 모른 채) 것은 위치와 운동량 같은 양들이 양자 규모에서는 어느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행렬 전체로 나타난다는 거였지. 당연히 이 개념은 낯설었지만, 적어도 수학적 논리에 어긋나지는 않았어.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는 이 연구를 양자론의 서광(Morgenrote)이라 부르고 그것으로 수소 원자의 에너지 스펙트럼을 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예기치 않게 축복을 내리는 은혜를 베풀었지.- P281282
이 발전 단계에서 양자역학은 여러 성부가 함께 노래하는 복잡한 음악처럼 들리기 시작했어. 엄밀한 목소리뿐 아니라 직관적인 목소리도 합쳐졌지. 시각화하려는 사상가도 열정적인 수학자도, 형식 체계의 애호가도 철학자도, 이론가도 실험가도 거기에 속해 있었어. 비록 이 다성부 음악이 더 풍부한 소리를 내긴 했지만, 각 선율들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었고, 불협화음이 확연한 음도 있었어. 그래도 돌이켜보면, 이렇게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끝없이 말을 주고받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빨리 또 멀리까지 양자론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 확실해.- P282283
하이젠베르크 역학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베이곤 하던 물리학자들에게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의)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한 파동의 수학은 상처에 바르는 연고나 다름없었어.- P285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은 이렇게 말했지. "이 퍼짐은 밀도의 퍼짐이 아니다. 위치의 비결정성, 즉 입자가 특정한 위치 범위 내에 있을 확률의 분포 범위가 더 넓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슈뢰딩거의 파동이 통 안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통이 균일한 밀도의 물질로 채워져 있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에든 있을 가능성이 똑같은 입자가 하나 들어 있다는 뜻이다."- P287
많은 이들이 과거의 결정론적인 고전역학에 향수를 느꼈지만, 좌절감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킨 것은 설령 단어들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한다 해도 기존 어휘를 써서 양자 현실을 아예 기술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어. 슈뢰딩거가 말했듯이,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도약은 평범한 사자에서 "날개 달린 사자"—비록 우리의 경험에 속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상상할 수는 있는—로의 전이가 아니라, 원과 삼각형에서 ‘삼각 원‘ 같은 명백히 자기모순적인 실체로의 도약과 비슷한 거야. 더 나아가 그는 그런 모형을 아예 상상조차 못한다고 말했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지?- P288289
사실상 이 터무니없을 만치 직관에 반하는 말은 입자와 파동의 관점에서 묘사하려고 할 때 비로소 이해가 가. 파동을 정확한 위치에 속박하는 방법은 오로지 한 점에 가까운ㅍ곳에서는 서로 보강하고 그 밖의 지점에서는 서로를 소멸시키는 식으로, 파장이 다른 파동들을 아주 많이 덧붙이는 것뿐이야. 그러면 입자를 닮은 아주 선명하게 집중된 ‘태풍의 눈‘이 나오지. 국부화가 이루어졌기에, 이 ‘입자‘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지만, 더 이상 특정한 파장을 지니고 있지 않아.
반대로 파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쪽을 선택하고 광선을 하나의 파장으로 제한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면 위치가 더 이상 정확하지 않아. 파동은 어느 한 지점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야. 반드시 공간의 한 영역에 걸쳐 뻗어야 하지. 따라서 우리는 어떤 물체의 위치나 파장(운동량) 중 한쪽을 더 정확히 알아낼 수 있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반드시 다른 쪽 양의 측정은 모호해지게 돼.- P290291
어쩌면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강력한 교훈은 이것인지도 몰라.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 말이야. 겉으로는 별개인 양 보이는 것들이 더 깊이 파고들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경이로운 근본적인 현실의 서로 다른 측면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 아마 자연의 진정한 모습이 감당할 수 없을 만치 엄청난 까닭에 우리는 걸러진 이미지만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 필터마다 다른 특징을 부각시키고, 대강이라도 전체의 모습을 구성하려면 그 모든 특징들을 종합해야 하지. 이 말이 정말 맞는다면, 아마 우리가 과학에 하는 가장 가치 있는 기여는 세상에 어떤 필터를 갖다 대느냐에 달려 있겠지.- P297
방정식들은 자신들이 자취를 남긴 우회로를 충직하게 따라오면 길이 조금씩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반복해서 증명했지.- P300
마치 온기와 보금자리를 제공했던 공리들이 조각나 부서지고, 우리는 춥고 발 디딜 곳도 없는 무지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지. 때때로 이런 식으로 사유 체계에 구멍이 뻥 뚫리는 듯할 때,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야. 해체된 조각들을 다시 모아 재구성해서 기존에 제대로 설명했던 것들을 간직하고, 앞으로 나올 새로운 설명이 들어갈 공간까지 갖춘 새 구조를 만드는 거지.- P321
하지만 과학자들도 참을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야. 1936년 뮤온(muon)이 발견되자, 과학자들은 거의 모욕감을 느꼈어. 뮤온이 존재할 이유가 전혀 없었거든. 뮤온은 어느 모로 보나 전자와 똑같았어. 2백 배 더 무겁다는 것만 빼고. 이지도어 라비(Isidor Rabi, 나중에 노벨상을 받았어)는 이렇게 절망감을 드러냈지. "대체 저걸 누가 주문했지?"- P330
여기 체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42번 버스는 내가 휴식을 취할 때 애용하는 공간이 되었어. 이 버스는 느긋하게 한 시간 반 동안 트리에스테의 중심가에서 국경 근처에 있는 오피치나라는 그림 같은 소도시의 조용한 거리까지 운행해. 완만하게 굽은 길을 따라 가면서 굽이를 돌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경치가 계속 펼쳐지지. 몬루피노의 거대한 석조 건축물, 깊은 곳에서 수정 같은 불빛이 반짝거리는 그로타지간테 동굴, 꼭대기에 승리의 여신 석상이 있는 파로 델라 비토리아 등대를 지나 트리에스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계속 올라가.
승객은 대부분 동네 주민들이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지. 말에 밴 경쾌한 운율이 아름다운 풍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언덕에 줄지어 있는 나무들을 따라 늘어선 그림 같은 집들이 저녁놀의 무지갯빛 색조에 잠겨 빛나고 있어. 또 해가 지면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녹아들어 마치 딴 세상처럼 빛나고 있어. 이런 환경에서 오페라의 열정적인 노래와 퇴폐적인 멜로디가 나오는 것 같아. 이탈리아의 흘러넘치는 아름다움이 그런 소리들을 불러낸다고나 할까?- P335336
어떤 물체를 대칭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물체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작용이 있다고 말하는—또는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 P339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이렇게 썼어. "마음에 품은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인내심을 갖고, 질문 자체를 사랑하려고 애써라. 잠긴 방처럼 그리고 지금은 아주 낯선 언어로 쓰여 있는 책처럼. 지금은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 갖고 살아갈 수 없는 해답이 주어질 리 없을 테니까. 한마디로 삶에 충실하기를. 지금은 질문을 품고 살라. 아마 훗날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서서히 답에 다다를 테니까."-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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