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앤서
Mulan 2024/12/1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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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서
- 문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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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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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문경민, 김영사)
문경민 선생님 소설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어두운 부분을 수면 위로 끄집어 내어 이야기한다. 그런 부분이 걸리기는 하는데, 누군가는 얘기해야 하고, 사회에서 충분히 이야기되어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 이야기다. 인간이 만든 아르굴에게 인간이 위협 당하고, 아르굴을 피해 만든 여러 개의 방벽들이, 연합하지는 못할 망정 인간들의 정치질(?) 때문에 세워지고 망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있을 법한 일 같았다. 이런 재난과 혼란 속에 사람들의 정치질도 충분히 있을 법 했다. 있을 법한 일 같아서 슬펐다.
유이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총대 메고 사람들을 대표하는 일을 했다. 18년 동안. 지칠 만했다. 오랫동안 힘든 일을 겪으면, 놓고 싶은 순간이 생기는 게 사람일 거다. 유이가 쿠니 지구를 떠나게 되었을 때, 욕하는 사람이 분명 있었을 거고, 내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이는 지쳐버렸다. 열아홉 살 때까지 발안 셸터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고 앤서에서도 18년을 버티면서 살아왔다. 더는 견디고 이겨내고 안간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격벽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였다.(41쪽)
오늘 교직원 협의회가 있었다.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고, 까딱 잘못 하다가는 실수하겠다 싶었다. 선배 학사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말에 책임질 수 있으면 하는 거라고, 그리고 화내지 말고 나이스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적은 가까이 두라고. 다행히 실수하지는 않았다. 내년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점이 매우 컸다.
이 과정에서 학년부장님이 힘들어 하셨다. 아, 그냥 힘들어도 올해 학년부장을 신청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부장을 하고 이런 기회에 말할 걸, 괜히 애꿎은 학년부장님만 힘들게 했구나. 함께 말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신청을 안 했는데, 내가 부장이 아니면 학년말 이런 상황에서 조용히 있어야 했던 거였다. 이미 쏟아진 물이지만, 부장님께 참 죄송했다.
나는 정치를 생각하면 환멸이 든다. 학교에도 국회의원 같은 정치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책에서도 이런 부분을 어찌나 잘 묘사하고 있는지.
🏷˝저의 바람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니요. 중요합니다.˝
파비언은 차창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진심보다 믿음이 중요해요. 사람들은 믿고 싶은 걸 진실로 느끼니까.˝
˝진실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믿는 사람들도 많아요.˝
파비언은 콧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진실은 그때그때 달라요. 답이라고 찾은 게 오답이라는 걸 알게 되는 일은 우리 인생에 흔하디흔하지. 중요한 건 결국 믿음이오. 이것이 답이라는 그 순간의 믿음 말이오. 믿고 싶지 않은 진실에 마음을 여는 사람은 없어요. 힘을 실어주지도 않지. 힘이 실리지 않은 진실은 글쎄, 그딴 걸 어디에 써먹을 수 있단 말이오?˝(221쪽)
정치에서 진실은 없다. 어느 곳에도. 각자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지금 상황도 똑같지 않나.
떨어져 있는 세월이 길어지면, 사람이 달라지나..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속한 공동체가 달라지면, 그 사람의 심지가 굳지 않는 한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결혼하기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서다.
🏷킨 때문에 아버지가 죽게 된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킨이 자기 목적을 위해 그때의 일을 이용한 것은 다른 의미로 충격이었다. 칼에 베이는 듯한 배신감이 유이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킨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228쪽)
유이는 킨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킨 입장에서는 유이가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누구나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요즘 내가 읽는 책에서 계속 나오는 단어가 있다. 공동체, 이야기, 사랑.
🏷˝유이야, 살아. 사는 것처럼 살아. 행복하게 살아. 사랑하면서 살아. 네가 사랑하는 것을 찾고, 돌볼 것과 지킬 것을 잡아. 그걸 손에서 놓지 않고 사는 거야.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였어. 세상이 엉망이면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해야 해. 그렇게 산다면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거야.˝(260쪽)
🏷유이는 속으로 되뇌며 가야 할 곳을 바라보았다. 하이난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나 그곳에서 유이가 맞이할 모든 것이 삶의 이유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삶을 찾고 싶었다.(303쪽)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삶 아닐까. 공동체의 이야기를 가지고 사랑하면서 사는 삶. 🏷˝세상이 엉망이면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해야 해. 그렇게 산다면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거야.˝
📚내가 읽은 문경민 작가님 책
✔️훌훌
✔️화이트 타운
✔️열세 살 우리는
✔️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
✔️딸기 우유 공약
✔️지켜야 할 세계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복어
✔️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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