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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캣책리뷰::알라딘
  • 무한대의 소년
  • 카를 올스베르크
  • 15,300원 (10%850)
  • 2025-11-03
  • : 360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소설은 스티븐 호킹의 인용구로 시작합니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보여도 아직 할 수 있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으로 거의 전신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과학자입니다. 그의 삶 자체가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정신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마누엘의 이야기는 스티븐 호킹의 삶과 평행선을 이룹니다. 죽어가는 몸 안에 갇힌 살아있는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을 다른 매체로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


인공지능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카를 올스베르크 저자는 2007년 첫 소설 『시스템』으로 슈피겔 베스트셀러에 오른 뒤, 마인크래프트 세계관을 활용한 청소년 소설로 아마존 2위까지 오르며 청소년과 성인 독자 모두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와 주제의식의 균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력을 염두에 둔다면 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다루는 『무한대의 소년』의 기술적 설정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열다섯 살 마누엘은 직업 선택을 고민할 필요도, 여드름이 언제 사라질지 걱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루게릭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누나 율리아는 동정 대신 농담으로, 부모는 눈치를 보며 애써 일상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헤닝 야스퍼스의 인터뷰에서 기발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소프트웨어를 다른 기계로 옮길 수 있듯 인간의 정신을 몸에서 꺼내서 기계에 전송한다는 계획입니다. 윤리적인 이유로 인간 실험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시한부 인생인 마누엘은 스스로 그 실험에 참여하겠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실패하더라도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무한대의 소년』은 의식의 복제와 존재의 정체성, 마인드 업로드라는 철학적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 공상과학 스릴러 소설입니다. SF적 장치를 빌려 인간 존재의 경계를 묻습니다. 단순히 AI와 인간의 대립을 그리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를 데이터화할 때 나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탐구합니다.





야스퍼스는 인간 역시 진화가 만든 아주 복잡한 기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격, 생각, 기억, 희망, 바람은 다 정보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이 정보들이 두뇌의 하드웨어에 저장되어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다른 저장 수단으로 옮겨도 상관없을 거라고 합니다. 


야스퍼스의 비밀 실험실에서 불멸 프로젝트를 맛보기로 체험한 마누엘은 지금까지의 가상현실 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실감합니다.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뭔가를 잡을 수 있는 기분이 어떤지를 경험합니다.


마누엘의 정신이 머물 공간은 인공 지능이 자체 창의성을 발휘하여 생성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마누엘의 세상은 무한하다는 의미입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수많은 생명체들과 살아가게 됩니다.


🔖 어쩌면 이것도 새로운 형태의 종교에 불과할지 몰랐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믿음. 다만 낙원이 내세가 아니라 기계 안에 있다는 것이 다를 뿐. - p82


작가는 영혼의 존재 여부, 생사 결정권 문제, 자아 문제 등 인간됨이라는 근본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시간을 흐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지금'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허상인지 자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간은 환상에 불과한 것 같아…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고.",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순간에 이미 생각을 했으니까 과거인 거야."라는 고백처럼 말입니다.


기억과 자아도 동일한 맥락에서 재구성됩니다. 기계가 기억을 이식하거나 복제할 수 있다는 설정은 '나'라는 주체가 기억에 얼마나 의존하는가, 그리고 그 기억이 사라지거나 바뀌었을 때 '나'도 바뀔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불러옵니다. 마누엘은 자신의 존재가 기억과 결부된 자아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그 기억이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과 마주합니다.





불멸 프로젝트가 세상에 알려지자 극렬한 찬반 논쟁에 휩싸입니다. 마누엘은 기계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 겁을 내는 미치광이 종교 집단에게 납치되고 맙니다. 마누엘의 선택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 놀라운 반전과 함께 스펙터클하게 펼쳐집니다.


기술 진보가 인간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통념을 넘어서 작가는 기술이 인간을 정의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기계와 인간의 범죄적 연결망,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의 윤리, 기술 뒤에 숨어 있는 욕망 등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SF의 오래된 주제 중 하나인 마인드 업로드를 다루면서도 기술적 가능성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작가의 이력 덕분에 기술이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기술이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가 직면할 실존적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제기했던 질문을 21세기 맥락으로 업데이트합니다.


서사 자체는 복잡하지 않지만 기술과 인간, 기억과 자아, 시간과 존재라는 통상적 경계를 흔드는 요소가 매력적인 『무한대의 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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