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산업의 파도를 건너온 한 가족의 시간 여행 『이 일로 돈을 벌었다고요?』. 이정환, 김은정 부부 교사가 함께 쓴 이 책은 과거를 산업의 변화를 통해 현재의 나를 이해하도록 돕는 살아 있는 경제사 수업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이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느끼지 않도록 이씨 가족 4대의 삶을 통해 70년 한국 산업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작농이었던 증조부에서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증손자까지, 각 세대가 경험한 산업 변화는 산업사이자 곧 생활사로 이어집니다. 역사 교과서의 딱딱한 연표 대신 가족의 일기장을 넘기듯 한국 산업의 거대한 흐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한 가족의 밥그릇이 증명하는 대한민국 산업사 70년, 세대를 관통하는 생존의 역사 『이 일로 돈을 벌었다고요?』. 마치 증손자가 증조할아버지에게 건네는 질문 같기도 하고,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산업들을 향해 던지는 의문을 담은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1950년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지주에게 착취당하던 영길의 아버지가 광복 후 농지개혁으로 처음 자기 땅을 갖게 되는 장면입니다. 대한민국 산업사가 '소유'라는 개념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줍니다.
땅 한 평 없던 사람이 땅 주인이 되는 경험. 그것은 생산수단을 갖게 된다는 경제적 의미를 넘어, 한 인간이 역사의 객체에서 주체로 전환되는 상징적 순간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아이들에게 경제 정책을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서게 합니다.
유튜브 채널 '엄근진쌤의 수업 레시피'를 운영하며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해온 이정환 교사는 추상적인 농지개혁이라는 정책을 한 가족의 희망으로, 삼백 산업(밀가루·설탕·면직물)을 식탁 위의 변화로 풀어내며 흥미진진하게 펼쳐보입니다.
여성과 청소년 노동력이 대거 투입된 1960년대 경공업 발달기에는 산업화의 그늘을 응시하게 합니다. 복잡한 역사의 결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들의 땀방울이 오늘의 산업 기반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공감하도록 그려냅니다. 증기기관과 방직기로 시작된 영국의 산업화가 100여 년에 걸쳐 진행됐다면, 한국은 불과 10여 년 만에 압축했습니다. 그 속도가 가능했던 건 영희 같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중화학 공업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철강, 조선, 화학. 무거운 물건을 만드는 중화학공업으로의 전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이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절박함을 성수의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1980년대, 성수의 아들 정훈은 자동차 카드에 푹 빠진 초등학생입니다. 이 시대는 생산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 전환하는 분기점이었습니다. TV가 안방에 들어오고, 마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전자·통신 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중산층이 탄생합니다.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경제 구조의 문제점도 만들어냈습니다.
"게임만 해서 뭐 먹고살래?" 2000년대, 성수의 막내아들 지훈이가 아버지로부터 들었을 법한 잔소리입니다. 게임이 오락을 넘어 거대한 산업이 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인터넷 혁명이 있었습니다. PC방 문화,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 온라인 게임의 등장. 한국은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앞선 IT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금융, 유통, 문화, 게임.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돈이 되는 시대. 지훈의 이야기는 한국 경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 역할을 합니다.
2010년대, 웹툰 작가가 된 성수의 손녀 유정이 이야기는 한류 산업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K-POP, K-드라마, K-웹툰, K-푸드. 1960년대 가발을 수출하던 나라가 2010년대에는 문화를 수출합니다. 이 극적인 변화가 한 세기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2020년대, 나이 든 성수는 어린 손자 도윤이와 함께 드론 축구 대회에 참가합니다. 일제 강점기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로 일하고, 이제 드론을 날리는 할아버지. 한 사람의 인생에 70년 산업사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성수가 일하던 조선소도 이제는 스마트 팩토리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산업에 대한 언급도 의미 있습니다. 70년간의 압축 성장은 환경 파괴라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장과 환경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순환경제. 도윤이 세대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4차 산업혁명까지 70년이라는 압축 성장의 시간을 가족의 밥상과 일터를 통해 풀어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드론을 날리는 장면은 세대 간 연결을 상징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이 가족이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거시적 경제사를 가족사로 풀어낸 『이 일로 돈을 벌었다고요?』. 교과서에 나오는 경제 용어들이 가족의 밥그릇, 일터, 꿈과 연결되면서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70년 산업사의 큰 그림이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