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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못한 길

야구 이야기, 아니 어느 롯데 팬 이야기


올해 봄부터 시간이 많아져서 야구를 열심히 보고 있다. 늘 야구를 좋아했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워낙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아서 야구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대학동기이자 친한 친구는 해마다 봄부터 여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결과에 따라 희비를 오가며 기분이 오락가락하곤 했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늘 그러셨을 것이다. 멀리 살아서 볼 수는 없지만, 안 봐도 눈에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친구와 아버지 뿐 아니라 수많은 롯데 팬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올해 내가 아주 오랜만에 그 무리에 다시 합류했다.


집에 티비가 없는 나는 야구를 보기 위해 티빙에 가입했다. 이게 예전에는 포털 사이트에서 무료로 공중파 티비 중계를 볼 수 있었다고 하던데, 올해부터 바뀌어서 유료로 티빙에서 봐야 한다고 하더라. 자주 야구를 챙겨보다 보니 당연히 야구장에 가서 경기를 보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혼자 가기는 좀 심심하고, 여기 서울에 아는 롯데 팬은 내 친구가 유일하지만, 그 친구는 평소 바빠서 야구장을 같이 가기는 어려웠다. 나는 아이들을 꼬셨다. 큰 아이는 몇 해 전 야구를 소재로 한 드라마 [스토브 리그]를 나와 함께 봤었기 때문에 야구에 관심이 있었다. 작은 아이는 야구를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언니가 간다면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몇 차례 야구장 표를 예매했다.


사직 구장 직관의 마지막이 아마도 대학 1학년 이었던 90년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30년 만에 야구장에 다시 갔다. 올해 첫 직관은 고척 구장이었다. 키움이란 구단이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키움이 어떤 구단인지, 어떤 선수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이왕 아이랑 같이 야구장을 가게 된 것이니, 좋은 자리에 앉아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예매 시작 시간을 미리 알아두고 알람을 맞춰놓았다. 예매는 오후 2시 시작이었다. 정각 두시가 되자마자 예매 버튼을 눌렀는데, 대기 번호 1450번대의 번호를 받았다. 그래도 다행히 번호는 빠르게 줄었다. 약 4분 정도를 기다려 예매 화면으로 들어왔는데, 이미 좋은 자리들은 빈 자리가 별로 없었다. 이게 앱의 오류인 건지 사람들이 몰려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예매 화면에서는 해당 구역에 빈 자리가 있다고 빨간색 숫자가 떠 있지만, 좌석을 선택하는 화면으로 넘어가면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 작업을 두세 번 반복하면서 화면이 넘어가는데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해 오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고, 빈 자리를 뜻하는 빨간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어, 이러다가 자리를 못 구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나는 롯데 팬이기 때문에 당연히 3루 내야 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내가 원했던 1층과 2층의 좋은 자리들은 이제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3층 이상 위층으로 가면 너무 멀어서 잘 안 보일 것 같았고, 외야로 가기도 싫었다. 결국 조금 고민한 후에 3루를 포기하고 1루 쪽을 살폈다. 3루 쪽 좋은 자리는 아주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지만, 1루 쪽은 아직 자리가 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구역을 선택해 빈 좌석을 선택하려 들어가면 또 보이지 않았다. 결국 3층 자리를 알아보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고 다시 3루를 봤는데, 그새 3층의 좋은 자리도 다 사라져버렸다. 다시 1루로 돌아와 겨우 3층 자리 2개를 예약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예약을 해놓았는데, 큰 아이가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겼다고 야구를 못 보겠다고 했다. 나는 실망이 컸지만, 어쩔수 없었다. 이미 성인이 된 아이가 내 맘대로 움직인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표를 취소할까 생각하다가 마침 나처럼 시간이 많은 친구가 생각나서 그와 함께 첫 직관을 갔다. 고척 구장이 돔이라서 처음엔 좀 신기했는데, 내가 예매한 3층 자리는 정말 멀어서 선수들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시작 시간을 기다려 좋은 자리를 구하려했던 내 시도는 완전 실패였다. 그리고 고척 구장은 표가 좀 비쌌다. 금요일 경기라 주말 가격으로 받아서 더 비쌌다.


그 다음은 잠실이었다. 두산과의 경기였는데, 잠실은 그래도 구장이 크고 좌석이 많아서 고척처럼 예매가 어렵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대기번호 1000번대를 받았다가 들어가니 3루 1층 좋은 자리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주중 3연전 중 둘째날 경기를 큰 아이와 함께 보고, 그 다음날인 셋째날 경기를 작은 아이까지 셋이서 함께 보았다. 장마 기간이라 경기가 비로 취소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 두 경기 모두 취소되지는 않았다. 마지막 날 셋이 갔을 때에는 경기 중에 무조건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어서 비닐 우비를 3개 사서 들어갔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가 앉은 자리는 위에 지붕이 씌워져 있어서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전혀 모르고 표를 예매했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 그래서 경기 중에 비가 오락가락 할 때마다 대다수의 관중들이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아주 마음 편하게 경기를 보았다. 3루측 1층 자리 중에 그렇게 비를 피할 수 있는 자리는 정말 소수였는데, 딱 거기에 우리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 다음 두 번은 인천 문학경기장을 갔었다. 인천까지 거리가 멀어서 평일에 가는 것이 조금 망설여지긴 했는데, 그래도 오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예매를 했다. 이번에 구한 자리가 지금까지 예매했던 자리들 중에서 응원단상과 가장 가깝고 선수들도 잘 보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함께 가기로 한 아이들 둘이 모두 아팠다. 둘 다 못 가서 아쉬워했다. 나도 실망하고 표를 취소할 생각이었는데, 다른 일을 하다가 그만 취소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넘겨버렸다. 이대로 몇 만원을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다시 처음에 고척 구장을 같이 갔던 친구랑 또 다른 한 명을 급하게 섭외해 다녀왔다. 마지막도 문학이었다. 이번에는 1층을 포기하고 4층을 예매했다. 문학구장의 경우 4층 맨 앞에서 경기장이 가깝게 잘 보인다는 글을 어디선가 보았었다. 1층을 포기하고 바로 4층 맨 앞자리를 찾았는데, 몇 개가 보였고, 제일 좋은 위치로 두 자리를 예매했다. 큰 아이와 같이 둘이 갔는데, 아이도 자리가 좋다고 무척 만족했다. 


구도(야구도시) 부산에서 자란 나는 어렸을 때 그러니까 국민학생 때부터 프로야구를 좋아했다. 가난한 집이었는데도, 부모님을 졸라서 롯데 자이언츠 어린이 클럽 뭐 그런 이름의 멤버쉽에 가입해 자이언츠 유니폼과 같은 디자인의 셔츠와 모자를 받았었다. 최근 아이들에게 어릴 때 이 셔츠를 입고 모자를 쓴 사진을 보여주며, 아빠는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롯데 팬이었어 라고 자랑처럼 말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였다. 아버지와 함께 혹은 다른 친척들까지 해서 여러번 사직 야구장에 갔었다. 요즘도 고척 돔 구장에서는 가방 검사를 하던데, 그 시절 야구장에서도 가방 뿐 아니라 옷에 술을 숨겨들어오지는 않는지 옷까지 검사했다. 아직 국민학생이라 어렸던 나는 검사를 안 받고 그냥 통과했는데, 그래서 아버지는 내 옷에 소주를 서너병 씩 숨겨 들어가게 하셨다. 그 시절 야구장에 대한 기억들 중에 유독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들이 많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랑 같이 자주 야구장을 다녔다. 그때 사직구장은 7회부터 무료로 열어줬다. 대략 시간을 맞춰 근처에 가서 조금 기다리다 보면 들어갈 수 있었고, 컵라면을 먹으며 야구를 보곤 했다. 고등학생 때는 학원을 핑계로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야구장을 가곤 했다. 가끔 용돈이 있으면 표를 사서 1회부터 들어갔고, 돈이 없을 때에는 7회까지 기다려서 들어가곤 했다. 그 시절에는 매일 스포츠 신문을 사서 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신문을 다 보면 빌려와 프로야구 기사들을 꼼꼼히 읽고, 팀 순위와 선수들 성적 등을 공책에 적어두곤 했다.


해태 선동열 선수와 롯데 최동원 선수의 맞대결은 딱 세 번 있었다. 상대 전적 1승, 1무, 1패. 저 1무에 해당하는 경기가 영화 [퍼펙트 게임]로 만들어진 바로 그날 경기였다. 너무 오래전이라 디테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두 선수가 맞붙은 경기 중 롯데가 졌던 경기를 사직 구장에서 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본 경기가 저 전설적인 경기가 아니었던 것이 아쉽지만, 단 3번 밖에 없었던 전설들의 맞대결 중 하나라도 본 것이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롯데의 우승은 1984년과 1992년이었다. 마지막 우승 후 30년이다. 현재 프로야구 리그 10개 팀 중 우승을 못한 지 가장 오래된 팀이 바로 롯데다. 저 92년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라디오로 롯데의 가을 야구 중계를 들었다. 나 말고도 우리 반에 그렇게 몰래 라디오로 야구 중계를 듣는 아이들이 많았다. 조용한 교실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롯데가 점수를 올리면 조용히 몸 동작으로만 환호하곤 했다. 84년은 그야말로 최동원의 원맨쇼로 우승을 했고, 92년엔 투타 모두 우승 전력이라 하기엔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선수들이 적시적소에 멋진 활약을 펼쳐 우승까지 갈 수 있었다. 올해 롯데 경기를 꾸준히 보다보니 확실히 롯데가 야구를 못하는 것이 맞긴 하더라. 해마다 하위권 성적이라 좋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는 기회는 많았을텐데, 왜 이렇게 잘하는 선수가 별로 없을까? 롯데와 함께 긴 시간 하위권에 머물렀던 한화는 그래도 좋은 선수들은 많던데, 롯데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


그래도 올해 롯데 타선은 흔히 말하는 윤고나황 이라는 젊은 타자들의 성장 덕분에 그래도 괜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윤동희는 타격감도 괜찮고 수비도 잘 하고 어깨가 좋아서 외야에서 바로 홈으로 던지는 송구도 좋다. 얼마 전 강하고 빠른 송구로 홈으로 들어오던 주자를 아웃시킨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고승민도 약간 기복이 있긴 하지만 타격이 참 좋고 수비가 좋다. 나승엽은 이들 중에서 그래도 장타력이 조금 더 있고, 타격감이 좋다. 1루수라서 수비는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중에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마황이라 불리는 황성빈이다. 지난 주였던가 2루 주자로 있었을 때 윤동희가 친 타구가 중견수의 호수비에 잡혔고 태그업을 해서 3루로 뛰기 시작했는데, 타구가 펜스에 맞을 정도로 깊어서 그랬는지 3루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홈으로 돌더라. 어! 하고 저러다 잡히면 어쩌려구 하는 순간 송구가 포수를 향했고, 아슬아슬하게 황성빈은 홈으로 들어왔다. 야구를 오래 좋아했지만, 태그업으로 홈까지 들어오는 장면은 처음 봤다. 황성빈은 정말 발이 빨라서 내야 땅볼로 아웃될 정도의 타구에도 벌써 1루에 들어와 있기도 하고, 일단 나가면 2루는 거의 매번 훔친다. 황성빈이 달리면 상대 투수와 수비진이 흔들려서 실책이 자주 나오고 그렇게 공이 빠지면 또 달린다. 6월이었던가? 볼넷으로 1루로 나간 황성빈이 도루와 실책으로 3루까지 가고 그 다음 희생플라이로 태그업해서 안타 하나도 없이 홈으로 들어와 1점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아니, 황성빈이 일단 나가기만 하면 그런 정면이 생각보다 자주 나온다. 


큰 아이와 같이 몇 번 야구장을 가면서 제일 아쉬운 점이 바로 이 수도권에서 우리가 보는 경기는 롯데의 원정 경기라 늘 우리가 3루에서 봐야 한다는 점이었다. 올해 다섯 번의 직관 때마다 홈팀 팬들이 좀 부러웠다. 그렇다고 야구만 보러 부산까지 가기는 좀 돈과 시간이 아까웠다. 그런데 여름 휴가로 부산을 가기로 정해둔 기간에 사직 구장에 야구 경기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곧바로 예매하러 들어갔다. 이게 참 공교롭게도 예매 시작하고 한 두어시간 후에 그 주중 3연전이 사직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께 함께 야구를 보러 갈 것인지를 물어보고(안 가고집에서 편히 티비로 보시겠다고 답하셨다.) 아이들에게도 사직 구장에 야구 보러 갈 거냐고 물었었다. 그러니까 하루만 미리 알았어도, 아니면 적어도 두세시간만 미리 알았어도 딱 예매 시작 시간을 맞출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당연히 1루 쪽 좋은 자리는 이미 다 없어진 후였다. 아쉬운 마음에 아무리 예매 페이지를 들락날락해봐도 꼭 앉고 싶었던 구역에 빈 자리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조금 뒤쪽, 조금 외야에 가까운 자리로 세 자리를 예매했다. 아이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큰 아이는 "그래도 사직에서 볼 수 잇는게 어디예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일 날 때마다 혹시 취소표가 나오는지 확인하리라고 다짐을 했다. 아마 그날 저녁이었을 것이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고 생각하고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앱을 켜고 1루쪽 자리를 찾아봤다. 와! 딱 내가 원했던 구역 한 가운데에 딱 3자리가 나와있었다. 누군가 얼마 전에 취소한 것 같았다. 자리가 없어질까봐 정말 빛의 속도로 예매를 했다.(적어도 기분은 그랬다.)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아이들에게 알리고 낮에 예매했던 외야에 가까운 자리를 취소했다. 취소하기 전에 혹시 내가 실수할까봐 몇 번이나 확인을 거듭했다. 큰 아이는 무척 기뻐했고, "우리 아빠 최고!" 라고 답했다. 


올해 롯데 자이언츠는 팬 세명이 늘었다. 한 명은 2000년대 이후로 바쁜 삶을 살아가느라 야구 경기를 못 보다가 다시 돌아온 팬이고, 나머지 두 명은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아빠 때문에 팬이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롯데가 여전히 야구를 잘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야구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기에서 패배하는 날이 많고, 패배하는 날이 많다는 것은 팬으로서 실망하고 기분이 나빠질 날이 많다는 뜻이다. 이왕이면 좀 더 잘하는 팀의 팬이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왜 하필 롯데 팬이 되어서 이렇게 패배감을 자주 맛보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만 왜 하필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을까 하고 탓할 수는 없는 법. 애들 입장에서는 하필이면 아빠가 롯데 팬이어서 라고 원망할 지는 모르겠다. 올해 다섯 번의 직관은 모두 패배였다. 내가 야구장에 가는 날엔 친한 친구들도 모두 야구를 보거나 최종 점수를 확인한다. 또 패배라고 놀리기 위해서. 차라리 롯데를 위해 야구장을 가지 말라고도 말한다. 이번에 사직 구장에서만은 꼭 롯데가 이겼으면 좋겠다. 직관 1승을 우리 가족에게 꼭 안겨 주었으면 좋겠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모두 힘 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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