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에서 크루아상 하나를 집어 든다. 따뜻한 기운은 여전한데 반죽은 조금 물러진 것 같다.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 겨울 아침은 당신 몸 안에서 크루아상이 되고, 당신은 크루아상의 오븐과 집과 쉴 곳이 된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을, 그리고 사라져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버렸으니. (9-10쪽)
소박한 삶의 상징들에 결부된 지적 허영은 종종 감미롭게 느껴진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은 시골풍의 사치다. (23-24쪽)
이것은 모순적인 사치다. 우리는 가장 완전한 평화 속에서, 진한 커피 향 속에서 온 세계와 소통하는데, 그 세계가 담긴 신문에는 전쟁의 참화, 사건 사고가 난무하다. 똑같은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면, 연신 휘몰아치는 말 때문에 주먹질을 당한 듯 벌써 스트레스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리라. (중략) 하지만 그 폭력에서는 까치밥나무 열매 시럽과 코코아, 구운 빵 냄새가 난다. 신문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31쪽)
두 팔을 펼쳐 모은 상태로 오래 책을 읽다 보면, 턱이 스르르 내려가 모래사장에 파묻힌다.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온다. (중략)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고, 싫증이나 들쭉날쭉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게 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에 포함되는 것이다. 눈이 아닌 몸으로 책을 읽는, 그런 느낌이 든다. (40쪽)
엉겁결에 초대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속박에서 벗어나 몸이 몹시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다. 초대 받은 집의 검은 고양이가 무릎 위로 기어올라 앉으면, 마치 내가 그 집에 입양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삶은 그곳에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 있다. (47-48쪽)
그러나 사과 냄새는 예전 기억 이상의 그 무엇이다.(중략) 지하 저장고나 어두운 곳간의 추억을 떠올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곳에 살아 서 있기에 옛날 일을 떠올린다.(중략) 사과 냄새를 맡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그것은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떤 삶, 더 이상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없는 ‘느림‘의 냄새이기 때문이리라. (78쪽)
때마침 괜히 바나나 스플릿을 주문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후회의 감정이 당신을 어쩌면 따분한 단맛일 수 있는 바나나 스플릿을 끝까지 먹게 만든다. 건강해진 타락이 나약해진 식욕을 부추기러 온다. 어린 시절, 찬장 속 잼을 몰래 꺼내 먹던 기분처럼, 우리는 어른의 세계에서 부적절한 쾌락을 훔쳐온다. 규범에 의해 마지막 한 스푼가지 배척당하는 쾌락. 바나나 스플릿은 우리를 죄악에 빠뜨린다. (104쪽)
시간을 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버는 것일까? 여하튼, 길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조용히 열을 지어 돌아가고 있는 이 무빙워크는 나에겐 하나의 긴 공백이다.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