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뒤표지에 ‘페트라르카 탄생 700주년 기념 국내 최초 번역본’이라 표기하고 있다. 2004년 10월에 펴냈으니 20년 전의 일이다. 이 책이 다른 번역본과 구별되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칸초니에레> 전 366편 중 1편부터 50편까지를 모두 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소네트뿐만 아니라 발라드, 세스티나, 칸초네도 포함하고 있어 페트라르카의 다채로운 시 형식을 눈여겨볼 수 있다.
다음으로 번역문과 함께 원문도 나란히 싣고 있다. 영시와 한시는 원문 수록이 장점으로 평가되기 마련인데, 이탈리아어 등과 같은 여타 외국어는 관점에 따라 긍정과 부정 의견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원문과 번역문을 비교하여 감상할 수 있는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로 보면 실효성이 미약하다. 어쨌든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소네트 등과 같은 정형시의 경우 시의 형식과 운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대 들어보구려, 흩어진 시구로 이루어진 그 소리, 그 한탄 / 나 그 안에서 마음의 자양분 취하고 / 내 젊은 날의 첫 실수 위에 /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달랐던 그때, (P.6, 1편)
1편은 시집 전체의 서시에 해당한다. ‘흩어진 시구로 이루어진 그 소리, 그 한탄’은 <칸초니에레>의 원제인 ‘속어 단편 시모음’을 지칭하고, ‘내 젊은 날의 첫 실수’는 시인이 라우라에게 첫눈에 반해 이후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애달파 하고 방황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소네트는 앞서 읽은 이상엽 번역본에서 적었듯이 14행의 정형시에 라우라를 향한 시인의 사랑을 절절하고 애절하게 기쁨과 때로는 슬픔, 희망과 절망이 어우러지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감정을 토로한다. 시집의 전반부이므로 라우라 생전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주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우라를 향한 시인의 사랑은 거침없다. 예수의 탄생과 비교(4편)하며, 그리스 신화를 인용(23편)하기도 한다. 어느 시를 들추더라도 시인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소네트가 아닌 다른 시 형식의 작품들이다. 11편과 14편은 발라드, 22편과 30편은 세스티나, 23편, 28편, 29편, 37편과 50편은 칸초네라고 한다. 발라드는 4행과 10행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스티나는 6행 6연, 3행 1연으로 비교적 긴 시다. 칸초네는 긴 시인데, 특정한 형식이 엿보이지 않는다. 시인의 뜨거운 시상을 소네트라는 제한된 형식으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기에 보다 자유롭고 길게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 이런 형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절제미 대신 자유로움을.
페트라르카의 시선이 오로지 라우라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작품 중에서도 이슬람 세력에 대한 반감을 보이는 시가 몇 편 눈에 띈다. 교황이 주도한 대규모의 십자군은 종료되었지만, 이후로도 여러 차례 소규모 십자군이 출범하였던 만큼 사제인 페트라르카가 기독교 세력의 단결을 요구한 건 당연하리라.
그대들의 겸손하고 온순한 양은 야만스러운 늑대들을 / 물리치리라. 그리하여 신성한 이들을 분열시키는 자는 / 그 누구든 갖은 고초를 겪게 되리니. (P.70-72, 27편)
아랍인, 투르크인 그리고 칼데아인, / 홍해 바다 저편에 있는 / 이방의 신들을 믿는 모든 이들이, /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그대는 알게 되리라. (P.78, 28편)
시인은 평생에 걸쳐 이 시집의 원고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작가 연보에 따르면 사망한 해인 1374년에 아홉 번째 원고를 수정하였다고 하니 이 시집에 대한 시인의 집착과 애정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그토록 라우라를 향한 시인의 사랑은 그녀의 죽음과 상관없이 평생에 걸쳐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이다. 라우라는 유부녀라고 한다. 그녀는 시인의 사랑을 받아들였을까, 아니 알아차리기나 했을까, 시인은 끙끙거리며 속앓이만 하며 일방적 사랑에 그친 게 아닐까. 라우라는 시인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듯하다.
아래로 향한 그녀의 시선은 / 자만과 모욕감으로 모든 기쁨 앗아가고, / 때 이른 내 죽음의 원인이 되리라. (P.118, 38편)
청춘의 불같은 열정과 사랑의 정념은 인정하지만, 이것이 노년에 이르기까지 대상이 오래전에 사망하였음에도 변함없이 이어진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라우라에 대한 시인의 사랑은 현실적인가 아니면 관념적인가. 어리석은 독자는 불순한 의구심을 품는다.
뜻깊고 흥미로운 책이지만, 모호한 대목을 간단히 언급하고 마치겠다. 옮긴이는 작품 해설에서 서시에서 언급한 젊은 날의 과오를 라우라가 아닌 한 여인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은 일을 가리킨다고 풀이한다. 시인이 늘그막에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서시에서 과연 시 내용과 거리가 먼 그 일을 굳이 언급하였을까 회의적이다. 늙은 사제에게 과오는 여인에 대한 사랑에 빠져 주님을 향한 헌신에 매진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녀에게 우아한 복수를 하려 하네, / 어느 날엔가 숱한 사랑의 모독에 앙갚음하려고, / 남몰래 사랑의 화살을 당겼다네, / 때와 장소를 기다려 상처를 주기 위해. (P.6-8, 2편)
위 시구는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 누가 복수를 한단 말인가, 시인이 라우라에게? 아니면 사랑, 즉 아모르가 라우라에게 복수를 하려고 시인에게 화살을 쏘아 자격도 없는 그가 그녀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사랑, 즉 아모르의 화살에 맞은 이는 분명 시인 자신이다. 다음의 시구를 보면 화살에 맞은 시인의 고통과 벗어나려는 헛된 노력이 구구절절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