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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근밭 걷기
  • 안희연
  • 10,800원 (10%600)
  • 2024-06-15
  • : 18,744






 당근밭엔 당근이 많겠지. 당근밭에 가 본 적 없다. 어떤 밭인들 가 봤으려나. 다 못 가 봤다. 당근은 토끼나 말이 좋아하겠지. 두더지도 좋아할까. 안희연 시집 제목이 《당근밭 걷기》여서 잠시 당근밭을 생각해봤다. 무는 뿌리인 무뿐 아니라 잎도 먹는데, 당근 잎은 못 먹을까. 나물 같은 거 해 먹으면 안 될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다니. 당근 잎 먹어 본 적 없다. 파는 당근엔 잎이 없다. 채소에도 꽃이 피는데 당근 꽃은 어떨까. 파는 당근은 거의 꽃을 피우지 못하겠다.


 채소는 거의 몸에 좋겠다. 몸에 안 좋은 것도 있을까. 당근은 날 걸로 먹어도 되지만 익혀 먹는 게 좋다고 한다. 기름에 볶아서 먹으면 좋던가. 그렇게 먹어야 당근에 있는 영양소를 몸이 잘 흡수한다던가. 난 당근 잘 안 먹는 것 같다. 당근이 들어가는 걸 거의 안 먹는 듯하다. 당근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저 뭘 해 먹지 않으니. 여기에는 시집 제목과 같은 시 <당근밭 걷기>가 실렸다. 두더지가 나오니 뜰에서 두더지 잡는 일을 하다가 그만둔 사람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세한 건 모른다. 당근밭에 두더지는 천적일 것 같다. 두더지가 당근밭에 나타나면 늘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동물하고 나눠 먹으면 안 될까. 두더지가 한두 마리면 괜찮아도 많으면 어려울지도. 별 생각을 다했다.




토끼는 의미를 덧씌우기 좋은 동물이다


너에겐 삶이 선물이니? 물으면

굴을 파는

그럼 저주 같니? 물어도

굴을 파는


내일은 다를 거라 믿고 싶을 때

너무 오래는 말고 한 사나흘만

나를 좀 갖다 버렸으면 싶을 때


빈 공책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토끼는 그럴 때 나타난다


순백의 토끼 더러운 토끼 겁에 질린 토끼 속는 토끼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며


토끼는 몇 겹의 세계를 건너간다

창밖에는 백 년 전의 눈이 내리고 있다


겨우 이런 곳에 오고 싶었던 거야?

이곳에선 너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박힌 못을 빼는 심정으로

계속 질문을 건네보지만


결국은 내가 만든 날씨

깊어진다는 착각


일렁이는 불은 화면 속에 있고

이곳엔 추위를 느끼며 토끼 탈을 뒤집어쓴 내가 있을 뿐이다


빈 공책을 할퀴고 지나간다, 바람소리

깨어 있는 나를 어디까지 깨우려는 것일까, 한낮의 자명종소리


토끼 탈을 벗어 곁에 둔다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의자여서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모든 시간이 다 자국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꽁꽁 언 얼음 아래서 들려오는 기척

아직 있다


-<토끼굴>, 52쪽~53쪽




 토끼가 생각났는데 <토끼굴>이라는 시가 있었다. 토끼 탈을 쓴 걸까. 토끼가 나오는 다른 시도 있다. 이 시집에 담긴 말에는 ‘새’가 많다. 누군가는 새라는 말을 슬프게 여겼다. 사람이 죽으면 흰 나비가 되어 나타난다는 말이 있는데, 새가 되어 나타난다는 말도 있던가. 어디선가 누군가 죽고 새가 날아오자 죽은 사람을 떠올린 것 같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속눈썹이 얼어붙었어.


 이 세상 추위가 아니구나.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비겁해 보여도 할 수 없다고 이쯤에서 생각을 끊어내려 했는데


 본섬은 이미 점처럼 작아진 지 오래였고 배는 계속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어. 이 여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너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고이고 고여 바다를 이루고 한 척의 배를 띄웠다는 거.


 이 배엔 조타실이 없고 발로는 올라탄 흔적이 없다. 무엇이 배를 움직이는 걸까. 내릴 수 없다는 걸 알고 나니 꺼내줄 사람을 기다리게 되더라. 그런 존재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평선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와 하늘의 구분이 의미 없어지는 때가 오고. ‘새는 북쪽으로 갔다’고 적었다가 ‘새가 날아간 곳이 북쪽이다’고 고쳐쓰는 일을 그만두게 돼. 그런 말장난은 반쪽짜리 믿음일 뿐이다고.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무엇이 배를 멈출 수 있을까. 어떻게든 너를 찾아 본섬으로 되돌아가고 싶은데 이제 그곳은 눈을 감으면 큰불로 타오를 뿐이야.


 안 그래도 잔잔한 바다가 간밤에 더 고요했어. 숨소리조차 시끄러울 만큼. 어둠속에서 뒷걸음질치다 무언가를 밟았는데. 뭘 봤고, 뭘 밟았을까. 그후론 배고픔을 모르게 되었어.


 손가락을 움직이면, 손가락이 움지이지 않는다. 이곳이 너의 나라구나. 사월이 끝났을 뿐인데 세상이 끝나버린 기분이 들어.


-<본섬>, 74쪽~75쪽




 이 시 첫연을 봤을 때부터 죽음이 떠올랐다. 배는 세월호일까. 마지막 연엔 ‘사월’이 나오는구나. 이 시 다음부터 여러 편에 죽음이 담겼다. 누군가의 죽음을 겪고 시를 썼을까. 할아버지는 그럴지도. 귤 상자를 들고 너의 집을 찾아가는데, 너의 집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어느 십일월의 저녁이었지

비가 오고 있었고

밖으로 나왔는데 놀랍도록 날이 포근했어


지구가 단단히 미친 것 같아

인간은 숨만 쉬어도 지구 붕괴에 가담하고 있어

멋지게 비를 맞으며 살고 싶은데 오늘 또 우산을 샀지 뭐야  (<긍휼의 뜻>에서, 37쪽)




진심을 다하려는 태도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고

멀리 두고 덤덤히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미결>에서, 140쪽)




 여기 담긴 시를 다 알지는 못한다. 시가 길어서 다 옮기지도 않았구나. 읽다 보니 괜찮은 느낌이 드는 시가 여러 편 있었는데. 어쩐지 슬프기도 쓸쓸하기도 한 시다. 시는 거의 그럴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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