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설은 드물게 읽는다.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은 자주 보지만, 어느 순간부터 활자를 통한 이야기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분명 가장 빠르게 ‘읽히는’ 매체가 소설인데도, 한 번 멀어진 뒤로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간단후쿠』라는 제목이 먼저 나를 멈춰 세웠다. 낯선 단어, 그러나 결코 간단하지 않을 듯한 느낌.
책장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후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어린 시절 보았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여옥’이, 그리고 영화 '귀향' 속의 그 소녀들이 스쳐갔다. 짙고 오래된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입을 수밖에 없던 옷, 그게 바로 간단후쿠였다. 제목부터 이미 이 소설은 가볍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간단후쿠’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인공은 어느 순간 간단후쿠가 되어버리고, 간단후쿠가 그녀를 입는다. 입는다는 건 덮는 것이고, 덮는다는 건 지워지는 것이다. 작가는 이 단순한 은유를 통해 여성의 몸과 역사, 그리고 기억의 지워짐을 잔잔하지만 날카롭게 드러낸다.
김숨 작가의 문체는 절제되어 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문장 사이마다 묵직한 숨결이 스민다. 감정의 파도가 요동치는 대신, 한 줄 한 줄이 묘하게 차갑고 정제되어 있어 오히려 독자의 내면을 강하게 흔든다.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간단후쿠를 벗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과거를 벗는 것이지만, 그 과거는 이미 몸에 스며든 옷감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간단후쿠』는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기억’이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작중 인물들은 구체적인 시대의 인물이라기보다, 어떤 상징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으며 특정한 인물의 서사보다는, 우리 모두의 내면 어딘가에 남아 있는 부끄러운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고통은 한순간이 아니라, 일상의 틈새마다 흩어져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의 문장들은 조용하지만 매섭다. 한강 위의 찬바람처럼, 살갗에 닿는 순간 비로소 그 차가움을 느낀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직접적인 설명도, 감정의 폭발도 없다. 하지만 그 한 줄에서 나는 오래 숨을 고르지 못했다. 억압은 대개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서늘한 정적 속에서, 존재의 결을 바꿔버린다. 과거의 고통이 개인의 몫으로만 남지 않고, 세대를 넘어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간단후쿠』는 단지 역사의 비극을 되새기자는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입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를 향한 이야기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잊어버린다는 건 더 무서운 일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조용히 일깨운다.
문장은 간결하지만, 그 속엔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한 질문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간단후쿠’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묵직함은 끝까지 이어졌다. 벗어던지고 싶지만 벗을 수 없는 옷, 그 옷을 입은 채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작가의 진심. 이야기는 영상보다, 음악보다, 활자 속에서 더 선명하게 살아 숨 쉰다는 것을. 『간단후쿠』는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