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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풍경












예전에 읽었던 소설(장르:로맨스)이 있다.

데이트앱을 통해 만난 두 사람. 여주는 가벼운 만남을 원하는데, 남주는 여주에게 단번에 반해버렸다. 직장(이공계)과 공통의 취미 등으로 자주 만나게 되는 두 사람. 안 그러려고, 진짜 안 그러려고 하는데(뭐를?), 자꾸 그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엥?). 여주는 자꾸 자신의 비밀을, 과거에 잘못된 행동을 남주에게 털어놓는다.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남주. 여주에게 진지한 만남을 요청한다. 하지만, 여주는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하고. 그럼에도 계속 만나게 되는 두 사람. 곤경에 처한 여주를 도와주려 했던 남주.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여주는 남주의 도움을 거절해 그의 신뢰를 반사해 버리고. 남주는 크게 상심한 채 여주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남주를 찾아온 여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여주와 마주친 남주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하고, 여주는 남주를 붙잡아 세운다. 이래저래 도와준 거 고마웠다고. 자기가 이래저래 했던 거 미안하다고. 또다시 자리를 뜨려는 남주.

좋아한다 말했는데

고맙다니요.

사랑한다 말했는데

미안하다니요.

다른 할 말이 있다고 머뭇거리는 여주. 가슴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남주가 말한다. 2분 줄게요. 하고 싶은 말을 해요. (이 책은 번역본이 아직 없습니다)

여주가 말한다. 나한테도 이런 사랑이 가능할 줄 몰랐다고. 당신을 만나면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지금 내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고. 당신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혹시 내게 기회를 줄 수 있겠느냐고.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남주의 머릿 속 생각은 이탤릭체로 쓰여있다.

"It means that ..." That you're mine, the uncivilized part of him screamed. That I'm going to take you and hoard you.

드디어 도착했다. 바로 이 부분이다. 타인을 자신의 소유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생각. 그런 발상. 그런 시도. 10번도 더 인용했을 법한 <가부장제의 창조>의 그 문장을 다시 한번 가져와보자.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노예가 될 사람들이 타지방 부족 구성원, 말 그대로 타인들일 때 가장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개념을 확장하고 노예화된 사람들(the enslaved)을 어떤 면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런 지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 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예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 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가부장제의 창조』, 138쪽)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서는 사유재산의 기원이 여성 억압의 제도화와 가부장제의 강화 속에 있다고 보는데, 거다 러너는 그중에서 가장 먼저 사유화된 것이, 사유화된 집단이 '여성들'이라고 본다. 재생산이 가능한 대상, 재산가치가 충분한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것인데, 이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여성 교환' 개념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 간의 여성 교환을 통해 남성들은 인간 사회를 '남성 위주로' 조정해 내었고, 이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규범화했다. 인류 문명을 통틀어 한결같이 여성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신체적으로 남성과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억압의 대상물이었다.

세상은 변했고, 이제 온 세상은 ‘쿨함’에 대한 추구를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요원하기는 해도 여성의 삶은 이전보다 나아졌으며, 또한 나아지고 있다. 이제 여성도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샐리 루니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러한 문화 현상의 실체를 보여준다. 내가 너를 사랑하되, 너를 구속하지 않을 것이며. 너는 온전히 내 것일 수 없으니, 때때로 혹은 영원히 너는 자유하라. 문명인의 생각이며, 차가운 도시 남녀의 사랑법이다.

바람돌이님의 주옥같은 댓글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바람돌이님이 ‘독점욕’이라고 표현하신 것을, 나는 ‘사랑의 배타적 속성’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뜻,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다른 인간관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이 여럿일 때, 자식들은 평생 엄마의 애정을 갈구한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 그는 이미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얻어낸 자식이거나 자신에게 당도할 애정이 없음을 간파한 자식이다. 연인 관계가 그러한 독점욕, 사랑의 배타적 속성이 폭발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에서도 바람돌이님과 내 의견은 '쿨하게도' 일치한다.

아일린이 원했던 그것은 인류 문명 초기에 발현되었던 소유에 대한 원초적 감정과 닿아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딴 여자랑 결혼하고, 섹스한 다음에, 나를 생각해… 이런 말도 아니고 방구도 아닌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는 없었으며. 사이먼 역시 제정신 못 차리고 헛발질하다가 날새기 전에 정신 챙겨서 다행이다.










오늘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로 빌린 책은 이 책이다. 퇴근 후에 집에 안 들어가고 샌드위치 먹으면서 책 읽고, 부지런히 챙겨온 무선 키보드 꺼내 이 글을 마저 썼다. 둥지 비기 전에 떠나기 잘했다. 오늘은 셋 다 늦는다고 한다.

이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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