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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뒤의 작가 소개를 보니 들뢰즈의 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출판사는 봄알람.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봄알람. 『김지은입니다』의 봄알람이다.

 


오랫동안 철학은 남자만의 것이었고, 생각하는 여성은 미쳤거나 사회부적응자 또는 남성을 유혹하는 악녀로 취급받았기에(7쪽), 철학사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책은 시작한다. 남성보다 훨씬 더 자연에 가까운 존재로 ‘여성’을 규정했던 플라톤에서부터 시작해, 서양 철학에서 ‘타자’로 인식되었던 ‘여성’이 ‘철학’을 말할 때, 가장 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여성의 철학적 사유는 보편적일 수 있는가? 남성의 철학은 인간 전체에 대한 보편적 사고이지만, 여성의 철학은 여성들만의, 반쪽의, 혹은 여성 주관에 의한 사고라는 주장이다. 판단의 주체는 남성 혹은 남성 철학자들이고, 이는 객관적이고, 정당한 판단이라고 ‘여겨졌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 가야트리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도나J. 해러웨이, 시몬 베유, 쥘리아 크리스테바 여섯 명의 여성 사상가이자 철학자의 주요 사상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그들의 개인적인 삶도 살펴본다. 애정을 가진 철학자가 있다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것이고, 처음 듣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애정을 갖게 될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젊은 작가 김은주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

 

 

주디스 버틀러의 저작은 어렵기로 유명하다. 여러 번 도전했으나 끝내 버틀러 읽기에 실패한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다. 버틀러는 철학계의 슈퍼스타다(69쪽). 미디어에 비친 우아하고 지적인 태도, 멋진 이탈리아 청년같은 수려한 외모(69쪽)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난해하고 독창적인 그의 학문적 업적은 대중적인 인기와 더해져 현재의 명성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여성이라는 범주에 대한 의문 제기, 안정된 젠더 개념에 대한 그의 질문은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 다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장 은밀한 장소인 ‘화장실’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한 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그의 제안대로 새로운 종류의 페미니즘 정치학을 등장시키고, 이름 붙이고, 정의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주디스 버틀러는 같은 대학 정치학 교수이자 파트너인 웬디 브라운과 살고 있는데, 버틀러가 전 남편과 낳은 아이를 함께 키웠다고 한다. 나는 버틀러가 어머니인 줄 몰랐다. 주디스 버틀러가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 어머니인 줄 꿈에도 몰랐다. 아이가 아직 어릴 때, 버틀러가 아들 이삭에게 물었다고 한다. 여자 둘이 부부인 우리 가족이 이상하지 않느냐. 이삭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건 저에게 이상하거나 어려운 게 아니고요. 진짜 어려운 건 집안에 두 명의 학자가 있다는 거예요.” (89쪽)   


 

나는 이 부분에서 엄청 웃었다. 집안에 학자가 두 명. 교수가 두 명. 직업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두 명. 완벽한 학습 환경. 공부의 압박. 공부의 생활화. 공부, 공부, 공부.

 


 

예전에 친절한 알라딘 이웃 잠자냥님이 알려주셔서, 두 명의 시몬 베유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었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의 시몬 베유(Simone Veil)는 ‘베유 법’이라는 불리는 자발적 임신중단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유럽의회 최초의 선출직 의장을 역임했던 정치가 시몬 베유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몬 베유는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이다. 그녀는 실천을 강조한 철학자 에밀 샤르티에(알랭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27년 친구들과 사회 교육 모임을 만들고, 노동자 교육을 시작했으며, 1931년 르퓌 국립 여자고등학교에 철학 교사로 발령을 받은 뒤에도 한 주에 한 번씩 노동자들을 만나고, 월급을 받으면 책을 사서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광부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선술집에서 노동자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129쪽) 체질적으로 병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가난하고 권력이 적은 사람들과 함께 했고, 25세가 되어서는 직접 노동자의 삶을 살기 위해 전기 공장, 르노 자동차 공장에 금속 절단공으로 일했다. <시몬 베유 노동 일지>에서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자신을 소진하는 현실을 ‘뿌리 뽑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937년 4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고, 아시시의 산타마리아 대성당에서 조토가 그린 프레스코화를 관람하면서 그녀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고, 이듬해에도 비슷한 영감을 얻게 된다. 공포와 절망 앞에서 삶을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그녀의 깨달음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의 결과였고, 새로운 신학적 비전의 제시였다. (143쪽)

 


34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몬 베유의 저서들을 모아본다. 앎에 그치지 않고 실천의 삶을 살되 온전히 자신을 불살랐던 시몬 베유에게 ‘불꽃의 여자’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몬 베유, 불꽃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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