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 소유냐 삶이냐 / 사랑한다는 것
  • 에리히 프롬
  • 9,500원 (5%300)
  • 2016-09-09
  • : 662
소유냐? 존재냐?

‘소유’(have)는 합체하며 계속 가지려는 양식이라면
‘존재’(is)는 소유하려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생성해가는 과정이며 세계와 하나가 되는 실존 양식이다.

몇 가지 일상 경험에서 구체적으로 대조해보면,
먼저 독서에서 소유양식은 책의 줄거리나 작가의 사상을 암기하고 문화적 재산을 획득하려 한다. 반면, 존재양식은 책을 읽으며 통찰력과 깨달음을 얻고 진실과 현실을 구별하는 등 생산적인 반응을 한다.
권위 면에서 소유양식은 힘을 바탕으로 착취를 하거나 제복과 칭호를 가짐으로써 영향력을 발휘하려 한다. 반면, 존재양식은 능력을 바탕으로 이 권위(영원한 권위는 없지만)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성장을 돕고 인격적으로 자연스럽게 권위를 표현한다.
사랑도 소유양식은 구속, 감금, 지배와 같이 생명력을 죽이는 행위로서 대상을 갖고 다루려고 한다면, 존재양식은 생산적, 능동적 행위로서 상대에게 생명력을 주며 자신도 새롭게 확장하려 한다.
이 밖에 학습, 대화, 기억과 신념 등도 마찬가지다. 공통적으로 소유 양식에서는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계속 소비 혹은 보유, 취득을 하려한다면 존재 양식은 열려있고 깨어있는 상태에서 능동적, 생산적으로 반응하고 본질에 가까이 있으려 한다.
두 양식의 중요한 차이는 생명력을 더하느냐 덜어내느냐 인듯하다. 마치 길 가에 핀 꽃이 예쁘다고 꺾느냐 있는 그대로 감상하느냐 차이처럼 말이다.

그럼 대체 왜 소유보다 존재의 양식을 지향해야할까?
독자 맘대로 해석하자면 ‘따듯한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다.

소유와 존재를 완전한 대립 관계로 볼 수 있느냐는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소유 양식의 부정적 측면을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존재 양식의 가치가 올라간다.
예를 들어,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다고 가정할 때, 소유 양식의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기거나 잃을까봐 불안해하기 쉽다. 나라는 존재가 내가 가진 것으로 동일시되기에 더 많이 가짐으로써 나의 가치를 높이길 원하고 타인에게 경쟁심, 질투심, 적의심을 품을 수 있다. 소비(소유의 한 형태)가 주는 쾌락은 허무함에 덮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정신적 탐욕에도 포화점이 없어 끝내 권위주의적 구조와 죽음이란 공포에 굴복하기 쉽다.
반면 존재 양식은 본디 소유하려 하지 않기에 안정감 있고 나누어 갖는 경험 덕에 타인과 연대할 수 있으며 순간의 쾌락보단 오래 지속되는 기쁨을 추구한다. 잃어버릴 것도 없으니 죽음 앞에 공포를 느끼기보단 삶의 긍정적 여유를 느끼며 생명을 유지하고 또 다른 대상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과거, 미래의 시간에 지배받지 않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면서 시간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인간 행복의 중요 요인인 ‘긍정적 관계’가 여러 요소들로 인해 위협받는 오늘 날. 존재 양식은 ‘나눔’의 가치가 따뜻한 인간성 회복과 행복한 관계 유지에 얼마나 중요하고 도움이 되는 지 알려주고 있다.

소유가 끝나고 접속의 시대가 온다했던 제러미 리프킨의 생각처럼 시대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이 당장 소유를 포기하진 못하지만 작은 거라도 삶에 능동적, 생산적으로 반응하며 사회에 유용한 변화를 주고, 나눔을 통해 연대할 때 ‘풍성하게 존재하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